초동 모선정으로
계묘년 새해를 맞은 나흘째다. 아침 최저 기온은 연일 빙점 아래로 내려가지만 평소 다니는 산책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어제는 아침나절 집 근처 도서관에 머물다 점심때가 되어 향토사단이 옮겨간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창원역에서 가까운 아파트단지에 사는 지기를 찾아 책을 한 권 전했다. 이후 도계동과 명서동을 거쳐 내가 사는 아파트까지 두 시간 넘게 도심을 걸었다.
새날이 밝아온 수요일 아침은 강변으로 나간 산책을 하려고 길을 나섰다. 밀린 찬밥을 데워 먹은 아침 식사여서 점심 도시락은 준비하지 못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반송 소하천을 따라 걸어 원이대로로 나갔다. 대방동에서 출발해 온 30번 버스를 탔더니 주남저수지를 둘러 본포로 가는 농어촌버스였다. 시내를 벗어나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났다.
동읍 사무소 앞을 우회하는 신설 지방도 개설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주남삼거리에서 석산마을을 지날 때 차창 밖 주남저수지 갯버들 가지 사이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어 폰 카메라를 꺼내 사진에 담았다. 버스가 봉강을 지난 본포마을 회관에 닿았을 때 내렸다. 민물횟집을 지난 강둑에 오르니 둔치에는 한겨울에도 텐트를 치거나 차박으로 야영하는 이들이 더러 보였다.
길이가 1킬로미터가 넘는 본포교를 걸어서 건너면서 물길을 흘러가는 풍경을 폰 카메라로 몇 장면 담았다. 아침 해는 동녘에서 강물로 비치고 사방의 높고 낮은 산들은 강심으로 머리를 조아려 모여든 듯했다. 다리를 건너간 학포에서 둑길을 따라 샛강 청도천에 놓인 반학교를 건넜다. 밀양 초동의 반월과 창녕 부곡의 학포 사이로 흐르는 청도천 하류에 놓인 다리가 반학교였다.
반월 강변은 4대강 사업 때 습지 생태공원이 조성되었다. 당국에서 꽃길을 조성해 꽃이 필 때면 외진 곳이지만 탐방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봄에는 꽃양귀비가 화려하고 가을에는 코스모스였다. 초목이 마른 겨울 식생에는 고라니들이 서식하지 싶다. 산에서 사는 꿩들은 둔치로 날아와 그들만의 세상을 누렸다. 목이 검붉은 장끼 한 마리가 쩌렁쩌렁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둔치의 습지 탐방로를 따라가니 앙상한 갯버들 가지 사이로 얼음이 언 샛강은 기러기들이 빙판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스케이트를 줄기는 이들이 신발을 신고 빙상장 얼음판에 대기는 모습 같았다. 습지가 끝난 곳에서 강둑으로 올라 들녘을 지나 성북마을 앞으로 갔다. 초동천이 흘러온 둑길을 걸어 초동저수지로 갔더니 당국에는 근래 둘레길을 조성해 놓아 산책하기 좋았다.
초동저수지는 주남저수지처럼 저지대에 광활하게 넓은 면적이었다. 저수지 둘레길에서 산기슭의 작은 마을에 이르렀다. 그 동네는 밀양 박씨 선산과 모선정이 있어 모선동으로 불렸다. 조선 초기 박씨 가문에 효행이 뛰어난 인물을 향사하는 재실이었다. 당시 부모가 돌아가면 3년 시묘살이는 기본이었는데 김종직 문하생으로 효행이 뛰어난 박수견은 시묘살이를 계속하다가 돌아갔다.
모선정이 가까운 찻길 근처 식당에서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실내에는 시화가 걸려 있고 시집이 보였다. 나와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주인장은 시를 쓰는 분인 듯했다. ‘6시 내 고향’ 향토 맛집 방송에도 소개된 식당이었다. 점심 식후 서호마을 동구로 가서 변계량 비각을 둘러봤다. 그곳 태생으로 여말선초 변계량 형제와 부친의 학덕을 기리는 빗돌이었다.
변계량 비각에서 산등선을 넘으니 금포마을 이정표가 나왔다. 금포는 계유정난 이후 사화를 피해 한양에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광주 안씨 세거지다. 교통이 혼잡한 찻길을 피해 들녘 들길을 걸어 수산으로 향했다. 수산에서 알려진 국수 공장의 국수를 세 다발 사서 제1 수산교를 건너니 해는 중천에서 기우는 즈음이었다. 다리를 건너는 창원 대산으로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왔다. 23.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