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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조선사 연구회
 
 
 
카페 게시글
역사토론방(출처있는글) 구한말의 "하얼빈(哈爾瀕)"을 찾아 봤습니다...구한말의 "하얼빈"위치는 조작이 아닌듯 합니다.
홍진영 추천 0 조회 1,020 09.01.04 15:21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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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1.04 15:43

    첫댓글 역사를 조작한 마당에 근대사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중국 만주의 철도 역사의 년대는 재 검토가 필요합니다. 조작의 손길이 미치니 않는 자료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료 중에 소설, 문인의 글 등이 있으며, 공사 맡은 기록 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머지 않아 역사의 진상은 곧 밝혀집니다. 사람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이제 역사의 진상을 인류에게 드러내야 겠다 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 역사의 자료는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입니다.

  • 작성자 09.01.04 16:30

    이 하얼빈 등지의 동청철도 역사는...조선만이 아닌...러시아나 서구열강 일제의 잇권이 첨예하게 충돌했던 역사이니...아무리 조작할려도..각자의 잇권들이 아직도 남아 있기에...공동으로 조작 합의가 불가함으로...북만주 송화강 동쪽을 대한제국이라 하지 않고...동청이니...유대 새 이주계획지'라 했던 것 빼곤... 별반 조작이 되지 않았다 보입니다...즉,동국과 대한제국에 관한 부분만 심히 왜곡됐단 겁니다.

  • 작성자 09.01.04 16:26

    글 작성 중 급한 일이 있어 인제 마자 쓰면서...교정 시작 들어갑니다.

  • 09.01.04 20:26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을 갖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야후백과>에서 시베리아를 찾아보면, 동시베리아와 서시베리아로 나뉘어 진다는 내용이 나올 뿐입니다. 또한, 비슷한 크기의 국가인 카자흐스탄과 몽골이 신강성을 기점으로 좌우로 나뉘어 진다는 점이 특이하구요...

  • 09.01.04 20:28

    본 내용이 논쟁의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카스피해 부근 또는 그 좌측에서 구한말의 한국의 지명이 발견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부분은 거의 현대사의 해석을 근본적으로 다시해야 하는 부분이므로, 고증의 신중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일제시대 동북아 만주의 기록들이 모두 완벽히 거짓이 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 09.01.05 01:23

    조선왕조실록에서 하얼빈(합이빈)이라는 명칭은 고종이후 '순종'시대 밖에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그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명칭으로 생각됩니다. 이 밖에 인터넷 문헌에서는 다음의 기록이 나와있네요...(http://www.hanatour.com/asp/genexh/gateway_frame.asp?gen_exh_code=G2038&target_url=/asp/travelinfo/if-13000.asp?city_code=HRB).

  • 09.01.05 01:16

    옛날 금과 청 왕조의 발원지였던 하얼빈은 만주족어로 명성, 명예를 뜻하는 "阿勒锦(아러진)"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근대의 하얼빈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흥성기를 보내면서 가장 일찍 서양식 문화에 개방을 하여 가장 앞선 국제화 성격을 갖춘 도시가 되었다..

  • 09.01.05 01:17

    19세기말 러시아인들이 이곳에 중동철로를 건설하자 30여개 국가의 16만여 외국인 거주자들이 생겨났으며, 경제와 문화가 전례없이 번성하여 하얼빈은 당시 동북아의 가장 부유하면서 유명한 국제 상업도시가 되었다. 중국과 서방문화가 이곳에서 연결, 융합하였고 그런 독특한 문화는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 하얼빈은 매우 많은 유럽식 건축물을 보존하고 있어, 중앙대로를 따라 이어진 1400미터의 긴 거리에는 배전정풍, 바로크풍, 르네상스풍 등의 다양한 정교하면서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여전히 늘어 서있다. 이런 풍경으로 하얼빈은 "동방의 작은 파리" , " 동방의 모스크바: 라는 애칭을 갖고 있기도하다...

  • 09.01.05 01:24

    이 도시는 19세기 에서 20새기 즉, 1800년~1900년 사이에 급속히 발전했던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중국(동방의 문화)의 문화와 서방의 문화가 혼재하여 발달하였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곳이구요...

  • 09.01.05 01:19

    그런데, 특이한 것은 19세기말, 즉 1800년대 후기에 러시아인들이 이곳에 '중동철도'를 놓았다는 기록이 나타난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름이 독특합니다. '중동'이라... 중동은 지금의 이란과 이라크등의 중앙아시아를 말하는 것이 아닌지?...

  • 09.01.05 01:21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만약 하얼빈이 금과 청의 발원지였다면, 카스피해의 북쪽, '아스트라한' 지역이라는 논리가 생겨납니다만... 그 도시가 그 도시라는 이야기 인데요...

  • 09.01.05 01:59

    글을 모으니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는 군요.

  • 작성자 09.01.05 04:24

    중동철도란 단어 하나만 가지고...하얼빈이 카스피해 터키나 이란 근처로 이동을 한다...?...상당히 무리가 아닐까요...?...중동철도란 명칭은...동청철도를 중화민국 설립이후 청나라에게서 민국정부가 인수하면서 바꾼 이름입니다...중화(민국)의 동쪽 철도란 말이지...영국인들이 정해준 일방적 명칭인 중앙 아시아란 데서 딴게 아닙니다...해방이훈...다시 장춘철도로 바뀌었다네여...

  • 작성자 09.01.05 04:26

    지극히 상식적인 시각으로 저 위의 철도 노선도를 봐 주십시요...카스피해와 흑해사이..아님, 카스피해와 알알해 사이를 열차로 가는게 경제적이겠습니까...아님, 카스피해의 어느 하얼빈(?)이란 항구에서...기차를 배에 싯고 볼가강까지 가서 다시 내려 놓는게 경제적이겠습니까...?...기차에 실린 화물과 승차 인원들은 또 어떻게 하고여...?..그 당시 기술로...열차를 한 량씩 분해해 화물선으로 들어 옮길 크레인이라도 있었단 말씀이신지여...?

  • 작성자 09.01.05 04:21

    더더우기...일제는 당시만 해도 중원 남동부에서 독립군들과 지지고복고...열강들과 잇권다투하기도 군대와 경제력이 빠듯했을 땝니다...일본이 그때 까지도...그 중심이 동남아에 있었다 가정하더라도...중원의 처절한 패권다툼 와중에...터키 근처까지 가서...러시아와 철도 부설권을 놓고 전쟁을 했다는 말씀이신지여...?...아무리 역사가 왜곡 은폐됐다 하더라도...항상 재야는 있는 법...중동의 전 인구는 ...어찌 당시는 엄청난 세기적 대 공사였던 철도 부설과 그에 의한 일본군과 러시아의 전쟁을 단 한명도 전해듣지 못한 걸까여..?...메이슨들의 조종자인 외계 괴물덜이 최면을 걸어서란 답변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 작성자 09.01.05 04:31

    그 당시만 해도...열강들의 전통 군사행동과 정복활동은 군함을 통한 해군력이고...물류도 해운이 가장 효과적이였습니다...엄청난 규모의 해운 조건을 갖춘 흑해함대 노선이 있는데...뭐 하러 바닷길로 기차를 분해해서 실었다 내렸다 조립했다 화물과 인력을 다시 내렸다 실었다 한답니까...?...그냥 살짝만 빗겨서 육지로 직행하면 그만인 것을여...?..시베리아 라인은...이 수로가 중간에 살짝 살짝 끈기기에...이를 보완키 위해 철도가 필수였던 것이겠고여.

  • 09.01.05 10:15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금과 청의 발원지라는 설명과 함께, 동서양의 융합된 문화가 번영한 곳이다라는 표현에 주목을 한 것입니다. 사실, 현재의 북경과 만주는 동서양의 문화가 함께 번영하기에는 지리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항상 그것이 의문이었습니다. 다시말해, 하얼빈은 1800년도 이후의 청나라의 중심지였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좀더 많이 찾아 보아야 하겠으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는 느낌을 감출수 없었습니다. 1800년도 이후의 역사는 사료적 고증의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부분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점점더 흥미진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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