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시험을 마친 날 심심한 마음으로 뒷문을 지나고 뒷산 길을 지나 도착한 시장에서 마땅한 식당을 찾다찾다 지친 배로 옆으로 간이식탁과 의자만 일렬로 놓인 정말 무너질것같은 분식집에서 먹었던 쫄면. 그 쫄면은 먹기 전까지 나에게 쫄면이란 배운 것이 먹고싶을때 분식점에서 먹는 다른 무엇보다 질긴 면에 대충만든 소스의 음식이었다. 사실 그 쫄면에는 회냉면에 들어가는 그것(아직 모른다 뭔지는)도 들어있었다. 어쨋든 나는 제대로 맛있는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분식집에서 너무나 제대로 된 쫄면을 먹었던 것이다.
또 엄마의 친구 분(그분은 재일교포였다)이 남포동 어딘가 에 데리고가서 사줬던 정통일본식 새우튀김정식. 사람이 포만감을 느끼는 것은 양이 아니다. 새우튀김의 아삭거림에 대한 놀라움과 밥, 미소국, 그리고 하나둘 담겨있는 반찬 하나하나에 대한 즐거움으로 이미 나올 때는 뱅글뱅글 웃고만 있었다.
고등학교때의 가장 중대한 사건중 하나는 술이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 술을 먹고다녔다.(지금은 아는 고등학생에게는 나이 다 차거든 먹어라 라고 말한다. 사람이 너무 이중적인가) 집에서 담근 포도주만 마셔 봤었고, 혹시 놀러갔던 집에 2층으로 가는 계단가득 놓아둔 과일주에 맛은 모르고 단지 그 노력에 부러워하던 꼬마가, 친구들이랑 몰래먹은 마주앙 레드와인 한잔에 '술은 음식이다' 라 떠들고 다니게된 것이다. (그 레드와인병의 절반은 내 친구가 실수로 내 발 위로 다 쏟았다)
그 이후로 나는 어찌 음식에 취해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해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술을 마실때마다 취해 주사를 부리는 사람을 보면 옛 유럽에서 맛있는 음식을 여러가지 많이 먹기 위해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였다는 그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제 나는 20살을 넘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더욱 쉽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여행의 대부분의 시간은 서울에서 보내게 된다.
그때 정기적으로 이뤄졌던 나의 서울여행은 올라와 파파이스에서 닭을 먹고, 김밥집에서 누드김밥을 먹고,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는 순례같은 것이었다. 내가 20살이던 시절에는 버거킹, 파파이스, 김밥전문점이 부산에 없었다. 그것들이 내려온 건 몇 년 지난 후의 일이다.
또 그때 마침 서울에 생기기 시작한 패밀리레스토랑을 갔고 그곳에서 사실 미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며 정말 단어그대로 가족끼리 가서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는 곳이라는 곳에 비싼 값을 주긴 했지만 정말 미디움으로 구워져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 라던지 아니면 내 입맛대로 싸먹는 멕시코 음식이라던지 아니면 튀긴 닭다리나 연어슬라이스가 수북하게 싸여있는 샐러드바 라던지 어쨋거나 즐거웠다. 요즘은 그런 먹거리를 무지 좋아하는 우리 아빠가 딸이 내려갔을 때 나 아빠가 올라오셨을 때 맛있을 것을 먹으러 그곳을 가거나 같이 못가면 포장을 해서 들고 오기도 한다.
이 시기에 내가 또 하나의 즐거움을 찾은 것은 디저트였다. 빵이 아닌 치즈로 만들어진 케익이라던지 꽝꽝 얼은 아이스크림위에 부어서 먹는 초콜릿 이라던지..
또한 나의 술에 대한 관심은 짙어져서 맥주는 벌써 취향이 정해져버렸고 위스키와 꼬냑에 손을 뻣히기 시작했다.(지금에 와선 조금씩 변하기는 하나 좋아하는 위스키, 칵테일까지 정해져버렸다. 남은 건 와인뿐인가..)
학교가 끝나고 서울에 올라와서 살기 시작했을때 나는 서해에 살고 있구나를 절감해야했다. 살지 않을때는 이곳은 먹을 것이 많은 즐거운 것이었으나 그것이 집에서의 반찬거리의 문제로 바뀌었을 때는 달랐던 것이다.
노량진 시장에서 조개들이 너무나 많은 것에 놀라고 고등어값에 또 한번 놀랐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부산에서는 고등어자반을 먹을 일이 없다. 늘 싱싱한 것을 파니까. 학교 때 여행다니면서 구경했던것과는 다르게 어느 곳에서 생활한다는것은 먹는것에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그만큼 그 고장의 먹거리도 조리방법도 달랐다.
어쨋거나 나는 좋아하는 고등어구이를 먹기 힘들어 진 것에 슬퍼하며 서울에서는 별로 안 먹는다는 아나고(붕장어)회를 사서 밥에 비벼먹는다. 부산에서는 자취생활이나 마찬가지었기때문에 그나마 음식을 만들어먹었지만 서울에서는 언니의 보살핌? 속에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난 벌써 오징어튀김을 안 만든 지 5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지금은 회사에서 먹는 밥이 거의 다 가 되어 가고 있고, 사람은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지않으면 돈 주고 먹는 음식의 맛에 더욱 민감해 지는 지도 모른다.
첫댓글 이쯤에서 생기는 의문하나. 그 의문을 풀기 위한 질문은 味食樂3을 읽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