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교외로
새해 정월 초닷새 목요일 아침 식후 느긋하게 산책 걸음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교통문화연수원 앞으로 나가 반송시장을 지났다. 시장 골목은 아침을 맞아 노점 과일상을 비롯한 가게들이 문을 여는 즈음이었다. 횟집 앞은 수족관 트럭이 와서 활어를 내리고 떡집에선 새벽에 빚었을 온기가 남은 떡을 펼쳤다. 아침나절인지라 손님은 드물고 상인들만이 손길이 분주했다.
반송시장에서 원이대로로 나가 차도와 나란한 보도를 따라 걸었다. 아침 출근 시간대가 지나서인지 거리에 오가는 차량은 혼잡하지 않았다. 운동장 사거리 지하도를 건너 창원문성대학 앞에서 창원컨벤션센터와 시티세븐을 지났다. 명곡교차로 창원천 3호교 부근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파티마병원 곁의 창원농업기술센터로 갔다. 거기는 도심에서 한겨울 꽃을 볼 수 있는 양묘장이다.
특례시로 바뀐 창원시는 마산합포구 현동 묘촌에 꽃 양묘장이 있다. 100만 인구에 걸맞게 규모가 큰 양묘장이다. 도심 거리와 공원으로 사계절 공급하는 여러 화초를 가꾸었다. 매년 늦가을 마산합포구에서 개최되는 국화 축제의 꽃들도 봄부터 거기서 길러 전시장으로 실어 나왔다. 팔룡동 농업기술센터는 현동 묘촌 양묘장을 보좌하는 기능을 하는 도심 속의 꽃 재배 농장이었다.
양묘장 뜰에는 수령이 오래된 왕버들 두 그루가 옹글고 비틀어져 위용을 자랑했다. 겨울이라 나목인 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모습이 언젠가 천연기념물 보호수로 지정받을 날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왕버들 곁에 꽃모종을 키우는 비닐하우스가 서너 동 되었다. 팔룡동 양묘장은 현동 묘촌에 비해 규모가 적은 편이었지만 한겨울에 꽃을 피운 팬지가 가득 자라고 있었다.
팬지는 지금도 공원이나 도심 광장 화단 곳곳에 심겨 자란다. 내한성이 강해 겨울 추위에 꽃과 잎줄기가 얼어 생기를 잃어도 날씨가 풀리면 금방 생기를 되찾았다. 농업기술센터 양묘장에는 비닐하우스에서 부녀들이 작업에 열중했다. 노란색과 자주색 꽃이 핀 팬지를 더 넓은 자리로 가지런히 옮겨 심었다. 서양 제비꽃의 일종인 팬지를 비닐하우스 바깥에서나마 원 없이 완상했다.
농업기술센터 양묘장을 둘러보고 명서동 주택가 거리를 지나 도계동으로 올라갔다. 향토 사단이 인근 함안 군복으로 떠난 터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상가가 형성되었다. 돼지국밥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소답동 상가를 지난 예전 경전선 폐선 신풍고개 터널을 걸었다. 당국에서는 폐선 철길을 산책로로 개설하면서 ‘행복터널’이라 이름을 붙였다. 터널을 지나니 동읍 용강마을이 나왔다.
용강마을에는 조선 후기 호랑이에게 물려 상처를 입은 아버지가 있었는데, 아들이 그 호랑이를 낫으로 잡아 복수해 효자가 된 오이원의 빗돌이 있다. 해주 오씨 문중에서는 그의 행적을 새긴 빗돌과 정려각으로 효행을 기렸다. 용강에 딸린 용암에는 나주 임씨 문중의 삼대 효자비도 있었다. 문이 닫혀 구체적 행적을 살필 수가 없었으나 할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효행을 새긴 비였다.
용암의 삼대 효자비 근처에는 김녕 김씨 열녀비가 세워져 있었다. 영산 신씨 가문으로 시집온 소남 여사가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 병구완으로 허벅지 살을 떼어 회생시키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날은 한 집안이 기울어야 효자나 열녀가 나왔고 국운이 쇠하거나 난리가 났을 때 충신이 나왔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통 윤리를 내세우기는 다소 괴리감이 드는 실천 덕목이었다.
용암에서 용전으로 가는 볕 바른 자리에는 광대나물이 자주색 꽃잎을 펼쳐 자랐다. 가지치기를 끝낸 매실나무와 단감농원은 봄 농사를 기다렸다. 용전을 지나 남산리에서 퇴직 후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 예전 근무지 동료를 찾아갔다. 나보다 대여섯 살 더하는 동료는 전업 농부로 건강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구룡산 산자락이 흘러내린 남산리는 그분 태생지로 유년을 보낸 곳이었다. 23.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