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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0 오전 09:39
일반 위원석 스포츠서울 체육1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제26회 이길용 체육기자상을 받았다. 국내 유일한 발롱도르(Ballon d'or) 선정위원이다.
<한국 혼합복식의 간판이었던 이용대(오른쪽)-이효정 조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경기를 펼치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지난 주 포스팅된 '위원석의 삼위일체:배드민턴 이것이 궁금하다. 상편'에서는 '궁금증 하나: 배드민턴은 손으로 하는가, 발로 하는가?'와 '궁금증 둘: 시속 300㎞가 넘는다는 셔틀콕을 어떻게 받아칠 수 있을까?'를 알아봤습니다. 하편에서는 이어서 세번째,네번째 궁금증을 풀어봅니다.)
◇궁금증 셋: 한국배드민턴은 왜 복식이 단식보다 강할까?
한국 배드민턴은 그동안 올림픽에서 '효자종목'으로 꼽혀왔지만 실상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은 다른 종목에 비해서 오히려 일천한 편이다. 이에리사를 필두로 한 여자탁구대표팀이 중국과 일본을 연파하면서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을 제패했던 '사라예보의 기적'은 1973년이었다. 레슬링의 양정모가 해방 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안은 것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때의 일이었다. 배드민턴은 국제 무대 진출이 상당히 느렸다. 대한배드민턴협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배드민턴이 보급된 것은 해방 이후였다. 처음에는 일종의 놀이처럼 취급됐지만 1957년 배드민턴협회가 공식 출범하면서 경기로 전파되기 시작했고 1962년 전국체전의 정식종목이 됐다. 국제대회에서는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했다.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때만 해도 '나가봤자 메달을 따기 힘들다'는 판단에서 파견 거부를 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결국 우여곡절끝에 4명의 선수를 파견했다). 1981년 혜성처럼 등장한 황선애가 전영오픈에서 단식 우승을 차지하면서 큰 전기를 마련했고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황선애-강행숙이 여자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기폭제가 됐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이 국내에서 열린 첫 배드민턴 국제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박주봉(당시 한체대 4년)이 3관왕(남복.혼복.남자단체)에 오르며 한국 배드민턴 역사의 새 장을 활짝 열었다. 이후 한국 배드민턴은 빠른 시간에 세계적인 강국으로 성장했다.
한국 배드민턴은 전통적으로 복식이 단식보다 강하다. 이는 최고의 메이저 대회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의 역대 성적만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은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2016년 리우 대회까지 총 7번 올림픽 본선에 출전했다. 한국이 그동안 따낸 올림픽 메달수는 총 19개다. 이 가운데 단식은 단 3개(남단 1개,여단 2개)뿐이다. 복식에서 무려 16개(남복 7개,여복 6개,혼복 3개)를 수확했다. 네트스포츠에서 기본은 당연히 단식이다. 테니스나 탁구도 마찬가지다. 단식 챔피언이 복식 챔피언보다 더 각광받는 것은 어느 종목이나 마찬가지다. 매년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의 챔피언은 무조건 단식으로 기억된다. 복식 우승자는 가물가물하다. 그렇다면 오랜 기간 세계정상권의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배드민턴은 왜 '복고단저(複高單低) 현상'이 고착화 됐을까.
우선 시스템적인 요인이 있다. 한국은 대표팀 합숙훈련 체계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다. 복식은 파트너 사이의 호흡이 중요하다. 같이 오래 훈련을 할수록 복식조의 위력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대표 선수끼리 장기 합숙훈련을 하면서 가장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복식 파트너를 찾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 한 배드민턴 관계자는 "유럽은 클럽 위주로 돌아간다. 우리는 국가대표팀 위주다. 복식조의 시너지를 내기에는 한국적 시스템이 휠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둘째는 위의 시스템적 요인과도 연관되지만 '한국형 복식 스타일'의 확립에 있다. 즉 한국은 그동안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복식경기 스타일의 전통을 만들어왔고 이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강경진 국가대표팀 감독은 "단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야 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오랜기간 단식 최강자로 군림해온)중국의 린단이나 말레이시아의 리총웨이가 그런 좋은 예이다. 반면 복식은 타고난 것 외에도 후천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복식에서 선천적, 후천적 요인의 비중은 대략 5대5 정도라고 본다"면서 "한국은 그동안 뛰어난 선배들이 복식에서 강한 전통을 만들어놓은 흐름이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만의 복식 스타일이 확립된 측면이 있다. 일종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형 복식 스타일의 특징에 대해서는 "우선 우리는 복식조의 파트너십이 좋다. 혼자 튀려고 하지 않고 파트너를 배려하는 경기 운영을 한다. 서로 배려하면서 플레이하다보니 시너지가 난다. 전위에 나선 선수는 어떤 나라보다 더 아기자기한 플레이를 한다. 파트너를 위해서 만들어주는 플레이에도 능한다. '내가 조금 부족하다고 해도 상대를 믿고 맡기는' 플레이를 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것에 큰 덕목이 있다"고 설명했다.
셋째 유망주들이 단식보다 복식을 선호하는 성향이 크다. 같은 맥락에서 배드민턴협회도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을 위해 복식조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1982년 대표팀 코치가 된뒤 1986년부터 1996년까지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한성귀 전 감독은 예전 언론 인터뷰에서 "맨 처음 대표팀을 맡고 선수단의 실력을 살펴보니 단식에서는 메달을 따기 쉽지않아 보였다. 그래서 주종목을 복식으로 삼아야겠다고 판단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한 배드민턴 관계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좋은 선수들이 복식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선수들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다. 올림픽 메달이 일단 지향점이 된다. 그런데 단식보다 복식에서 좋은 성적을 내다보니 우수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복식을 선호하게 됐다. 국제대회 성적을 내는 것이 중요한 협회나 대표팀도 좋은 선수들을 복식쪽으로 유도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한 배드민턴 선수는 "단식은 복식보다 힘들다. 또 부상 위험이 크다. 복식은 또 국제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우수 선수들의 복식 선호 경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이전에는 단식과 복식을 겸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은 복식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지만 원래 단식도 잘 쳤던 선수였다. 박주봉은 "전성기때 단체전에 출전하면 (내가)단식 1번, 복식 1번으로 나갔다"고 회상했다. 한체대에서 배드민턴을 맡고 있는 김연자 교수도 현역 시절 전영오픈에서 단식(1986년)과 복식(1988년)을 차례로 제패했다. 하지만 이후 주요 국제대회에서 단식과 복식을 같이 뛰는 것에 대한 체력적 부담이 커지는 등의 이유로 해서 대표팀내에서 단식 전문과 복식 전문이 나눠지는 흐름이 고착화되고 있다. 협회나 대표팀도 국제경쟁력이 있는 복식에 좀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배드민턴에서 기본은 단식이다. 단식 종목에도 관심을 기울여 복식과 균형 발전을 해야만 한다. 대한배드민턴협회도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박기현 배드민턴협회 회장은 "배드민턴은 고르게 발전해야 하는 것이 맞다. 복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단식을 강화하기 위해서 국내 대회 방식부터 바꿔 가고 있다. 우선 초등부 단체전 대회를 5단식으로 치르고 있다(단체전은 원래 3단2복으로 열린다). 단식 우수 선수를 양성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또 국가대표팀에도 지난해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단식 지도자인 아구스 산토스 코치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남자단식의 세계 최강자였던 린단(중국)이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경기하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단식과 복식은 경기 스타일도, 최적화된 선수도 많이 다르다. 단식은 코트 전체를 활용할 수 있는 풋워크가 뛰어나야 한다. 코트에서 잘 뛰는 선수가 강할 수밖에 없다. 지구력이나 체력도 상대적으로 더 강해야 한다. 뛰어난 단식 선수는 얼굴이 작고 팔다리가 길면서 키도 크다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마디로 날렵한 체형이다. 복식의 경우 상대적으로 둥글둥글한 체형의 선수도 정상급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있다. 복식은 순간적인 파워가 중요하다. 전위에서 네트플레이를 잘하는 선수와 후위에서 강한 공격력을 펼칠 수 있는 선수가 조화를 이룬다면 금상첨화다. 10년간 국가대표에서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복식 금메달을 따낸 박주봉-김문수 조가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복식에는 기본 포메이션이 있다. 우선 톱앤드백(T&B)이 있다. 공격을 목적으로 하는 포메이션이다. 전위와 후위로 나뉘어 코트의 앞과 뒤를 담당한다. 두 사람 모두 센터라인에 선다. 전위가 네트플레이를 포함해 전체적인 경기 운영을 담당한다. 동작이 빠르고 푸시에 능하면 유리하다. 후위는 체력이 좋으면서 뒤에서 강력한 스매시를 날려야 한다. 경기 도중 이 포메이션으로 있는 상황이 길수록 승리의 확률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더 공격적인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이드바이사이드(S by S)는 주로 수비를 목적으로 하는 포메이션이다. 코트의 센터라인을 중심으로 좌우로 절반씩 맡아 수비한다. 상대의 스매시나 드라이브의 응수에 적합하다. 초보 동호인의 경우는 자신이 맡아야 하는 구역이 확실하므로 플레이하기가 쉽다. 이 경우 단점은 파트너중 실력이 떨어지는 한명(속칭 구멍)이 집중적인 공략을 당하기 쉽다는 점이다. 자칫 1대2의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위의 두 포메이션이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공수의 전환에 따라서 빨린 톱앤드백이나 사이드바이사이드의 전형으로 재배치를 해야 효율적인 경기를 할 수 있다. 다이아고날(diagonal)은 보통 혼합복식에서 주로 쓰인다. 코트를 대각선으로 2등분해 절반씩 담당한다. T&B에서 전위와 후위가 맡는 역할을 두 선수가 함께 나눠서 한다는 의미가 있다. 단점은 대각선으로 날아오는 셔틀콕을 파트너중 누구가 리턴할지가 불분명하다.
같은 네트 스포츠지만 테니스는 서양인의 독무대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배드민턴은 아시아가 유럽보다는 앞서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한국외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일본 등이 정상급이고 유럽에서는 덴마크가 경쟁력이 있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의 팀 세계랭킹에 따르면 10위 안에 비아시아 국가로는 덴마크(2위)가 유일하게 들어있다. 배드민턴에서 동양인이 더 세계정상급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한우구 배드민턴협회 차장은 "일단 유연성 순발력, 예측불허의 움직임 등 배드민턴이 요구하는 덕목이 동양인에게 더 어울리는 측면이 있다. 같은 네트 스포츠라고 해도 배드민턴과 테니스는 움직이는 동선이 다르고 요구되는 체력 조건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화우 협회 과장은 "아무래도 저변의 차이가 있는 것같다. 아시아쪽이 배드민턴 종목에 대한 관심과 선수층의 저변이 더 넓다. 실제로 세계 최고의 스포츠 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배드민턴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대표팀 안에서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리우 올림픽의 경우 국가별로 단식이나 복식 모두 최대 2명(2조)이 출전 가능했다. 한명(한조)이 본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세계랭킹 16위 이내에만 들면 됐다. 하지만 두명(두조)이 함께 본선에 가기 위해서는 둘 다 세계랭킹 8위 이내에 들어야만 한다. 따라서 두명(두조)이 같이 세계랭킹 8위권내에 들기 위해서는 대표팀내의 자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랭킹 관리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세계랭킹은 국제 대회의 중요성에 따라서 각 순위별로 서로 다른 점수가 주어지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발표된다. 배드민턴에서 주요 메이저 대회는 올림픽(4년주기 개최) 세계선수권대회(매년 개최) 토마스컵(세계남자단체전) 우버컵(세계여자단체전) 수디르만컵(세계혼합단체전.이상 2년주기 개최) 등을 들 수 있다. 그 바로 밑이 월드슈퍼시리즈 프리미어, 그 다음 단계가 월드슈퍼시리즈다. 그 아래로 그랑프리 골드 대회와 그랑프리 대회순으로 넘어간다(예를 들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면 1만2000점이, 슈퍼시리즈 프리미어 1만1000점, 그랑프리 골드 7000점,그랑프리 5500점이 등이 각각 주어진다). BWF는 주요 대회의 난립을 막기 위해서 월드슈퍼시리즈 프리미어는 5개, 월드슈퍼시리즈는 7개로 숫자를 제한하고 있다. 상금이나 시설 등의 유치조건을 놓고 4년짜리 유치신청을 각국에서 받은 뒤 대회의 급을 결정한다. 코리아오픈이 한때 월드슈퍼시리즈 프리미어로 열리다가 지금은 한단계 아래인 월드슈퍼시리즈로 진행되는 것은 이런 이유가 있다.
◇궁금증 넷: 배드민턴 대 축구, 누가 최강의 생활체육인가?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체육 정책 가운데 앞으로도 큰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 작업이었다. 지금까지 엘리트 체육에 집중됐던 투자와 관심을 생활체육으로도 대폭 확대해 기존의 '국제대회 성적지상주의'를 '온 국민이 스포츠를 통해서 건강해지고 행복을 찾는' 패러다임으로 바꾸자는 정책 방향은 올바른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지난해 3월 엘리트체육을 담당했던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책임졌던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한 뒤 양단체 산하의 각 종목 단체들도 차례차례 통합 과정을 거쳤다. 대한체육회 산하의 수많은 단체 가운데 엘리트와 생체의 통합을 통해서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종목으로는 단연 축구와 배드민턴이 손꼽힌다.
두 종목은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국제 무대에서 나름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축구는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릴 정도고 배드민턴은 역대 올림픽의 효자종목으로 통했다. 국내에서 매우 탄탄한 동호인 조직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누구나 편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종목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축구는 빈 공터에 공 하나만 있어도 된다. 동네 뒷산의 약수터나 공터에 네트만 걸면(심지어 걸지 않아도) 훌륭한 배드민턴장이 될 수 있다. 동호인수가 탄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용품 시장이 활성화되고 일정 이상의 규모를 형성하게 된다. 해당 종목의 협회에 거액의 스폰서십이 가능한 토대다. 또 자발적이고 열성적인 동호인 모임이 시군구 단위로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다보니 지역 민심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관리 대상이 되고 있다. 제29대 배드민턴협회장을 지냈던 신계륜 전 국회의원도 처음에는 지역구 관리를 위해서 배드민턴을 시작했다가 운동의 매력에 흠뻑 빠져 나중에 협회 수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지난 2월 28일 대만 브랜드 '빅터'와 공식 스폰서십을 맺었다. 향후 4년간 현금과 현품을 포함해 매년 70억원 규모(총 280억원 규모)의 대형 계약이었다. 국내 경기단체 가운데 협회 스폰서십만으로 이런 거액을 벌어들이는 곳은 축구말고는 배드민턴밖에 없다. 참고로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012년 나이키와 8년간 총액 1200억원(현금 600억+현품 600억)의 스폰서십 계약을 맺었다. 연간으로 따지면 평균 150억원 규모다. 축구와 배드민턴의 대중적인 인기도를 고려하면 배드민턴협회의 계약 규모가 만만치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2009년부터 배드민턴협회와 인연을 맺은 빅터는 이번 계약으로 2021년까지 12년간 배드민턴협회의 메인스폰서를 맡게 됐다. 대만 브랜드인 빅터는 왜 거액을 한국 배드민턴에 투자하고 있을까. 일단 세계적인 강호인 한국 배드민턴의 스타급 선수들을 활용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특히 이전에는 특급스타 이용대를 전면에 내세워 중국시장에서 큰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용대가 국가대표팀을 은퇴하고 라이벌 업체인 요넥스팀으로 옮긴 뒤에도 빅터의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이런 이면에는 국내 동호인 시장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또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기현 배드민턴협회 회장은 "(빅터의 지속적인 투자에는)국내에서 배드민턴이 동호인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생활체육의 무한한 잠재력이 (빅터 투자를)뒷받침해줬다"고 평가했다.
<국내 배드민턴 동호인수는 최대 300만명으로 추정된다. 2016 전국 다문화가족 배드민턴대회의 한 장면.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국내 배드민턴 동호인 규모는 어떻게 될까. 박기현 회장은 "국내 동호인 수는 약 200만명에서 300만명 사이로 추정된다. 아직 정확한 수치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올해부터 동호인 등록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등록시스템을 구축하고 전국 동호인 대회 운용 방안을 만드는 등 국민 스포츠로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동호인대회 수는 협회에서 주최하는 전국 규모 대회가 5개 있다. 전국대회가 한번 열리면 대략 3000~5000명 수준의 동호인이 출전한다. 각 시도협회에서 개최하는 대회는 17개의 시도협회장기 대회가 있고 시군구에서 개최하는 대회는 수백 개가 넘는다고 한다. 엄청난 규모다. 축구는 어떨까. 대한축구협회 생활축구본부 김효중 국장은 "전체 축구 동호인 수는 150만명에서 300만명으로 추산된다. 통합 이전의 생활체육쪽 자료로는 90만명이 등록된 적도 있다. 올해는 지난 3월부터 오는 10월까지 전국대회와 시도대회 출전선수들을 우선 대상으로 등록을 받을 계획이다. 우선 약 7만명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에는 시군구대회 출전선수까지 등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축구의 경우 전국 규모대회가 10개 정도 있고 17개 시도협회별로 주최하는 지방대회가 시도별로 3~4개씩 있다. 시군구 단위로 내려가면 역시 수도 없이 많은 대회가 존재한다. 두 종목의 동호인과 대회 규모는 막상막하, 용호상박으로 보인다. 두 협회에서도 상대 종목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 축구협회 관계자는 "축구는 남자 위주이지만 배드민턴은 여자 동호인도 많은 것으로 안다. 축구를 즐기는 연령대보다 배드민턴쪽 연령대가 더 넓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배드민턴협회 관계자는 "초.중.고.대학교마다 축구 한번 안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종목의 인기나 전체 저변에서 축구가 더 폭넓은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현 상황을 보면 배드민턴과 축구 어느 쪽이 더 많은 동호인수를 확보하고 있는지 정확하게는 판정하기 힘들다. 아직 생체쪽 동호인들의 등록 시스템이 확정되지 않았거나(배드민턴) 등록 작업의 초기 단계(축구)이기 때문이다. 양 단체에서 동호인수의 최대치를 300만명선으로 보고 있는 규모는 엇비슷해 보인다. 여기서 나오는 문제는 '과연 어느 선까지가 종목 동호인'이냐는 기준이다. 배드민턴협회 관계자는 "동네에서 배드민턴 한번 치면 동호인인가, 학교 운동장에서 공 한번 차면 축구 동호인인가 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동호인 대회에 출전한 사람으로 기준을 한정한다고 해도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는데 최소 몇년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동호인 대회 출전이라는 것은 그 종목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도, 최소 몇년 이상은 그 종목을 했다는 지속성 등에서 유의미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축구의 경우 올해는 전국대회와 시도대회 출전자들을 대상으로만 등록을 받을 예정이며 기초자치단체 단위 대회의 등록은 내년 이후로 넘겼다. 배드민턴의 경우 아직 배드민턴협회와 17개 시도협회가 동호인 등록 방침에 대한 합의점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자체적으로도 충분히 활성화돼있는 지역 동호인들 모임(또는 단체들)이 중앙단체의 동호인 등록 방침에 대해서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양측의 합의가 늦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배드민턴과 축구 가운데 누가 최강의 생활체육인가를 따지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 두 종목 모두 '국민 스포츠'의 잠재력이 큰 만큼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스포츠로 온 국민이 행복하고 건강한 시대'를 만들어나가는데 주축이 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국내팬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방수현이 1995년 코리아오픈에서 경기하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
성한국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현장을 떠난 뒤 서울시배드민턴협회에서도 일하면서 엘리트와 생체쪽을 다 경험했다. 그는 생활체육으로서 배드민턴의 매력에 대해서 "배드민턴은 실내 스포츠다. 사계절을 다 즐길 수 있다. 또 남녀노소가 다 어울려 운동할 수 있다. 남녀가 복식으로 셔틀콕을 날리다보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 동호인 모임에서도 수준별로 다 촘촘히 나눠서 경기를 할 수 있어서 등급을 올려가는 즐거움이 있다. 운동 효과도 뛰어나다. 자기 체력에 맞게 운동할 수 있다. 모임을 통해서 지역사회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사회적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이종성 교수는 "배드민턴은 관람 스포츠로서의 인기는 낮은 편이지만 참여 스포츠로서의 잠재력은 너무나 큰 종목이다. 흔히 우리가 '약수터 운동'으로 부르던 종목이었다. 단순히 일반 엘리트 스포츠의 좁은 테두리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국민 스포츠로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종목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부처간의 협업, 예를 들어 문화체육관광부(스포츠 분야) 보건복지부(국민건강 분야) 여성가족부(여성과 가족의 여가선용) 등의 코업도 가능해 보인다"고 밝혔다.
화창한 봄날이 왔다. 부담없이 라켓 하나 들고 체육관을 찾아도 좋고, 가까운 뒷산에 올라도 좋다. 배드민턴을 한번 즐겨봅시다.
<한체대 배드민턴 코트에 붙어있는 수칙. 코트에 나서는 배드민턴인들의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사진=삼위일체>
('위원석의 삼위일체:배드민턴 2편'은 4월 13일 오전에 포스팅됩니다. 한국 배드민턴의 최고 레전드인 '셔틀콕의 황제' 박주봉의 스토리와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기사제공 위원석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