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샘열차>
내 칸의 6명 승객 중에서 가장 먼저 짐을 풀었다. 승객들이 쉼없이 복도로 다녀서 눕질 못하고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있는데, 건장한 체격의 현지인이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들어선다. 짙은 갈색 피부에 머리를 짧게 깎은 중년의 사나이로 전형적인 인도인 모습이다. 첫눈에 호감이 갈 정도로 인상도 좋고 말쑥한 차림에 세련된 모습이다. 대뜸 '사우스 코리언'이냐고 묻더니 자신은 '노스 코리언'이란다. 뜻밖의 소개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반문해서 물어 보았으나 틀림없다는 것이다. 국경을 넘는 인적교류가 활발한 요즘 세상에 핏줄로 국적을 구분하는 건 시대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개방적인 남한에 귀화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야 신기할 것이 없지만, 폐쇄적이고 고립된 북한에 귀화한 외국인을 이곳 열차 안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를 고려해 봐도 이 사람의 태도는 석연치가 않은 구석이 있다.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긴 부연 설명이 시작된다. 설명 중에 북한의 그레이트 리더가 김영인이라고 해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곳 사람들이 'J' 발음을 'Y'로도 한다는 것은 고아 유적지 안내인의 설명에서 알았지만, 북한에 거주한다는 사람이 김정은을 김정인으로 발음할 리는 없다. 좀 더 얘기를 들어보아도 현재 남북관계 정황에 대한 무지함이 드러날 뿐이다. 한국인에 대한 호감의 표시라기 보다 수긍하기 힘든 동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마침 옆 칸에서 자리를 바꾸자는 제안이 있어서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고 그를 피할 수 있었다. 자리를 바꾸고 나서 정돈을 하고 다시 생각해 보았다. 호감을 끌어내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데, 무엇을 의도한 호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분단 상황이 강대국들의 잇속 챙기기로 이용되는 것도 견디기 힘든 현실에서, 그 땅에 사는 사람을 상대로 속임수로 이를 챙기려는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서 가슴이 아팠다.
바꾼 자리는 3층이었다. 배낭과 몸을 선반 위에 얹었다. 창쪽에 배낭을 밀어 붙이고 B4용지 크기의 벼개를 베고 누워 보았다. 머릿맡에 배낭이 없다면 복도 밖으로 발이 나가지 않을 정도니까 180cm정도의 길이, 폭은 70cm 정도다.열차가 워낙 낡아서인지 궤도와 바퀴의 마찰음, 쇠가 뒤틀리며 삐걱대는 소리, 머리맡 창문 떠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으면서 밤을 보내야했다. 새벽 두 시. 너무 답답하고 견디기 힘들어서 열차 출입문 밖 승강구와 화장실이 있는 좁은 공간에 나와서 메모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곳은 옆 열차의 승강구/화장실과 고무튜브로 연결되어서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된 곳이다. 이곳도 오래 머물기는 힘든 곳이었다. 열차와 열차 사이를 연결한 튜브가 보온과 안전, 공간활용 기능을 충분이 발휘하고 있긴 하지만 화장실 냄새까지 꼼짝 못하게 잡아 놓은 것이다. 고도의 정신력과 인내심이 없었다면 그곳에서 두시간을 버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정리를 하고 들어오는데 출입문 안쪽 첫 칸에서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문 바깥보다 덜하긴 해도 여전한 냄새와 철재 출입문이 여닫히는 소리, 출입문 창유리로 전등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최악의 위치다. 그래도 잔다. 잠이 고통마저도 넉넉하게 이겨내는 장면이다.
수용자의 생활문화 배경이나 성장과정이 다르면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내가 힘든 것이지 모든 사람이 힘든 것은 아니다. 이 냄새나 소음이 평범한 인도인에게는 어떤 자극도 없이 지나치는 일상일 수 있다. 많은 인도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로 받는 고통이나 불편함을 수용하는 프레임은 우리와 좀 다르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도 있지만 생의 업으로 여기고 순순이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윤회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통을 보다 나은 다음 생을 보장하는 자산으로까지 격을 올려 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누적된 고통이 사회를 불안하게 할 것을 우려한 현자(?)들의 학습지도안에 있던 내용이거나, 해결 불가능한 고통으로 부터 도피 하는 방법의 하나에 불과하다. 모든 인간이 현실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진보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특별이 초기 인류를 말한다면,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 힘의 원초는 고통을 벗어나려 했던 인간들의 의지에서 발원하였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이기심이 더 큰 발전 동력을 갖게 되었지만.
2020 01 06. 마이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