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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장 오자서(伍子胥)의 죽음 (6)
어느 사이에 잠이 들었는가.
오자서(伍子胥)는 잠깐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아버지 오사(伍奢)와 형 오상(伍尙)을 보았다.
그들은 오자서 앞에 나타나 말없이 울기만 했다.
오자서(伍子胥)는 꿈속에서나마 아버지와 형을 본 것이 반가워 두 사람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러는 순간 그들의 모습이 홀연 눈앞에서 사라졌다.
- 아버지, 형님.................!
오자서(伍子胥)는 안타까움에 소리 지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마음이 더욱 심란했다.
공연히 가슴이 쿵쿵거렸다.
'이상하구나. 왜 이리 불안한가. 이제껏 한 번도 꿈속에 나타난 일이 없던 아버지와 형의 꿈을 꾸었기 때문인가.'
그럴 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왕명이오!"
왕명이라는 말에 오자서(伍子胥)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서둘러 의관을 갖추고 궁에서 나온 시종을 맞아들였다.
시종은 뜰 한 가운데 서서 부차의 명령을 전했다.
"왕께서 재상에게 이 보검을 하사하시었소."
오자서(伍子胥)는 보검을 받았다.
예전에 그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보검인 촉루(屬鏤)였다.
부차(夫差)가 아끼는 칼 중의 하나다.
그는 대번에 부차의 뜻을 알았다.
'자결하라는 뜻이로구나.'
방금 전 꿈속에서 아버지와 형이 나타나 말없이 울다 사라졌던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오자서(伍子胥)는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의 뜻을 정했다.
촉루(屬鏤)를 두 손으로 받들어 허공 높이 치켜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지난날 선왕은 부차를 의심하여 나라를 맡기지 않으려 했건만, 나는 부차(夫差)를 왕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또 피이(被離)는 백비를 쓰지 말라고 충고했건만, 나는 백비(伯嚭)를 높은 지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입니까. 부차(夫差)는 나의 충고를 듣지 않고 백비는 간교한 말로 촉루를 보내게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불찰입니다. 나는 오늘 죽습니다만, 내일이면 월(越)나라 군사가 쳐들어와서 오(吳)나라 사직을 파헤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말을 마치자 오자서(伍子胥)는 보검을 뽑아들었다.
날카로운 빛이 뜰 안에 번뜩였다.
오자서(伍子胥)는 칼을 거꾸로 쥔 후 이번에는 집안 식구와 문객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죽은 후 두 가지 일을 해주기 바란다."
"유명(遺命)을 반드시 따르겠습니다."
"내가 죽거든 두 눈을 뽑아 동문 위에 걸어놓아라. 월(越)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吳)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볼 것이니라."
"................................!"
"또한 내가 죽거든 나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한 그루 심어라. 그리하여 부차(夫差)가 구천의 손에 죽게 될 때 그 가래나무로 부차의 관을 짜도록 하라!"
참으로 지독스런 유언이었다.
이윽고 오자서(伍子胥)는 칼끝을 자신의 목에 대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칼은 오자서의 목을 뚫고 뒤로 삐져나왔다.
춘추시대 끝자락인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나 온갖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활약한 시대의 주인공으로 활약한 풍운아 오자서(伍子胥)가 역사 무대 저편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하늘도 한 영걸(英傑)의 사라짐을 알았음인가.
별안간 먹장구름이 몰려들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뜰에 서서 오자서의 죽음을 지켜보던 식구와 문객들은 통곡하여 핏물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궁에서 나온 시종은 오자서의 목에 꽂힌 촉루검을 뽑아 궁으로 돌아갔다.
부차(夫差)가 시종에게 물었다.
"유언은 무엇이더냐?"
시종은 사실대로 말했다.
부차의 얼굴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자가 죽으면서까지 그런 저주를 남겼단 말인가?"
그는 즉시 수레를 타고 오자서의 집으로 갔다.
오자서(伍子胥)의 시체는 그때까지도 뜰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부차(夫差)는 한 손에 촉루검을 거머쥐고 오자서의 시체를 향해 외쳐댔다.
"오자서야, 죽은 후에 네가 무엇을 볼 수 있겠느냐?"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는 칼을 들어 오자서의 목을 끊었다.
부차(夫差)는 좌우를 둘러보며 또 명했다.
"그의 소원대로 이 목을 성문 위에 걸어놓아라. 하지만 동문(東門)이 아니라 월(越)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남문(南門) 위에 걸어라. 죽은자가 과연 무엇을 볼 수 있을 것인지 나는 확인해보리라!"
그는 또 외쳤다.
"오자서의 목 없는 시체를 치이(鴟夷)에 담아 전당강에 던져 버려라. 해와 달이 너의 뼈를 녹일 것이며, 물고기와 자라가 너의 살을 뜯을 것이다."
치이란 말가죽으로 만든 술부대를 말한다.
궁중 무사들은 부차(夫差)가 시키는 대로 오자서의 목을 남문에 내걸고 그 시체를 치이(鴟夷)에 담아 강물 속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자서(伍子胥)의 시체는 가라앉지 않았다. 물에 둥둥 떠 다니다가 며칠 후 한 언덕에 닿았다. 그 근처에 사는 어부 하나가 오자서의 시체가 담긴 술부대를 발견하고 건져올려 몰래 오산(吳山)에다 장사 지내주었다.
그 후 사람들은 그 산을 서산(胥山)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자서(伍子胥)가 묻힌 산이라는 뜻이었다.
아울러 무덤 앞에 사당을 지어 해마다 성대한 제사를 지내며 원통하게 죽어간 오자서의 넋을 위로했다.
서산(胥山)은 강소성 오현 서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도 그 곳에 가면 오자서의 사당이 세워져 있다.
- 앓던 이를 뺀 것처럼 시원하다!
오자서를 죽인 오왕 부차(夫差)는 더 이상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게 되자 하늘을 날듯 기분이 상쾌했다.
그는 오자서의 후임으로 백비를 재상으로 올려 나라일을 다스리게 했다.
백비(伯嚭)는 마침내 자신의 소원을 이룬 것이었다.
애릉 전투에서 제(齊)나라를 격파한 이후 오왕 부차(夫差)는 새로운 야망에 부풀어 있었다.
이른바 '천하 패업'이었다.
그는 북방으로 향하는 교통로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제 2차로 물길을 뚫었다.
3년 전에는 장강과 회수(淮水)를 연결하는 운하를 팠다.
이번에는 회수와 제수(濟水)사이에 운하를 파 두 강의 물길을 연결시킨 것이었다. 이로써 오(吳)나라 사람들은 배를 타면 가만히 앉아 제(齊)나라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남북을 잇는 이 교통로 개척은 당시로서 대단히 획기적인 것이었으며, 후일 중국 대륙이 하나의 생활문화권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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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연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