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찬세한도(題贊歲寒圖)
林木似名節(임목사명절)-숲과 나무가 명분과 절개
松柏有本性(송백유본성)-소나무와 잣나무에 본성이 있다
君子窮益堅(군자궁익견)-군자는 궁할수록 더욱 견고해져
不容復何病(불용부하병)-용납되지 않음이 무슨 잘못인가.
榮枯亦偶然(영고역우연)-영화와 곤경도 우연한 것이니
豈與凡奔競(기여범분경)-어찌 다른 꽃들과 분주히 다투리오.
時遘霜雪嚴(시구상설엄)-가끔씩 서리와 눈의 혹독함 만나
氣得天地正(기득천지정)-천지의 올바른 기를 얻었다.
傳習後凋心(전습후조심)-남보다 앞선 지조를 오로지 익혀
希賢以希望(희현이희망)-현인을 바라며 희망으로 산다.
오찬(吳贊)
추사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
추사(秋史)가 제주도에 유배 중이던 1844년(헌종 10년)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1804~1865)이 추사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변함없이 지극함에 감동하여 그려준 그림이다.
이러한 사연은 그림의 왼쪽에 쓰여 있는 추사의 발문(跋文)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추사는 발문에서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의 글귀를 인용하여 권력과 이익에 좌우되는 세상인심과 그 가운데서도 스승을 잊지 않고 중국에 가서 구한 귀한 서책(書冊)을 멀리 귀양 간 스승에게 보낸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마음 씀씀이를 칭찬하였다.
또한 논어의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날씨가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
라는 구절은 특히 “세한(歲寒)”이라는 시기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하면서, 고적(孤寂)하고 외로운 자신의 유배생활을 세한(歲寒)에 비유하고 송백(松柏)과 같은 기상을 잃지 않으려는 자신의 굳센 의지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다.
그림을 보면 넓은 공간에 자그마한 집과 아람드리 송백(松柏)만이 매우 간략하게 그려져 있어 추운 시절의 황량한 느낌이 잘 나타나 있다.
심각형의 안정된 구도 속에 꼿꼿하고 굳센 필치와 메마르고 차가운 묵색(墨色)이 어우러져 고고(孤高)한 문기(文氣)를 강렬하게 발산하고 있다.
이상적은 중국어 역관(譯官)으로 십여 차례 중국을 드나들며 스승 추사의
소개로 중국의 명망 있는 문사(文士)들과 깊이 교유하였다.
추사에게서 세한도(歲寒圖)를 받은 이상적은 이듬해 다시 중국 북경에 가게 되었고 옛 친구인 오찬(吳贊)의 잔치에 세한도를 내보였다.
이때 자리를 함께 했던 청나라 문사 16인은 이 그림을 감상하고 세한도의 높은 품격과 사제 간의 깊은 정(情)에 감격하여 저마다 이를 기리는 시문(詩文)을 남겼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