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애의 여력을
가난한 복음 환경을 가진 지역을 도우라는
성령의 권고에
덜 된 죄인을 드렸더니
성령께서 무교군 지역인 전북 <장수>를 무대로 주셨다.
주제넘게 횡재를 한 셈이다.
교회건축을 위한 허가절차가 문화재 답사로 지연되고
연합한 형제들이 그동안 해오던 현지 봉사가 적지 않아
아직 본격적으로 이사하지 못했기에
우리부부는
주중에 선교센터 내 산전 밭을 일구고 채소 등을 심으러 왔다가
안식일을 맞았다
주소록을 보고
인근 임실지역의 새소망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는 농촌전원 풍경이 정겨웁다.
시내 상류 쪽인 아늑한 곳에 자리 잡은 아담한 교회가
조금은 쓸쓸하지만
평생 목회자가 주재하지 못하는 작은 교회들을 섬긴 내게는
가슴져미는 감회가 새롭다.
끌어 앉고 싶은 감사의 회한이 눈빛을 흐린다.
분명 저곳에도 예수님에 빠진 힘없는 열애의 가족이
있을 것을 예감했기 때문이리라.
10시가 다 돼서야 청년 전도사님이 봉고차에 모셔온
얼마의 교우들이 처음 뵙지만 낯설지 않다.
바뿐 농사철에 예뿐 얼굴을 반납한 지친 영혼들
필자에겐 더없이 사랑스런 보고 싶던 하늘 이웃이 아닌가
홀로 이끄시는 윤 집사님의 안교 인도를 받으며 가슴이 먹먹하다
저렇게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면서
가진 것 모두 나누지만
여전히 모자란 외로움..
주보의 두 번째 기도제목에는
<준비된 일꾼을 보내 달라>는 그들의 간구가 가슴을 에운다.
규모 있는 교회들 속에 역할이 없는 수북한 장로님들에게
과연 이 비상 신호가 전달이 될까?
개혁의 답이 이 속에도 울리고 있구나..
소장님이신 송기봉 장로님과 윤용안 집사님은
장로교회의 독실한 교우였기에
참 빛을 발견하고 온 가족이 개혁하여
몇 교우들과 함께 가난한 등대지기로
모든 것을 다 드려 교회를 섬기고 계셨다
짧은 시간의 경험이지만
신실하신 두 여 집사님과 이루는 조화로운 교회 살림의 모습을 뵈오며
큰 교회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하늘 가족의 냄새를 묻혀왔다.
군 소재지 지역이기에 배려된 듯
총각 전도사님(이봉연전도사님)의 땀내 나는 봉사가 감사하다.
예배가 마치자 어디론가 사라진 전도사님은
아이들 몇 명을 차로 배달하여
어린이 반 다니엘 이야기에 혼신을 다 하신다.
모두를 다 해내야하는
만능을 요하는 소규모 교회들의 역할에
지치지 않게 해 달라고..
예정에 없던 기도가 새어 나온다.
마음이 예뿐 사모님도 주시라는 추신까지...
외로운 것처럼 마음이 끌리는 평안이 있을까?
가난한 것처럼 꾸밈없는 자유가 있을까?
그러나 사랑스런 이들의 기도 속에 묻어난 진실을 캐며
이 도성을 <조용히 불태울 비범>을 감득하며
우리 부부는 아랫목 같은 따뜻한 안식일을 누렸다
장수개척이 아니라면 함께 사랑을 일구고픈 강한 충동을 느꼈다.
잠간 집에 다녀오신다더니
경영하시는 목장의 발효유 봉지를 사랑 묻혀 건네신다
집에 돌아와 보따리를 끄르니
아까워서 유효기간이 밉다
먹기보다는
오래 두고 형제의 사랑을 기리면 좋으련만
나는 이 우유를 마시며
얼마나 사랑스러워질까?
울컥 하늘 형제가 떠오른다.
남당리 개척교회를 애태우시던 김춘자 집사님 닮은 윤 집사님
어쩌면 역할도 닮았을까?
부족한 과정지도를 그렇게 감동적으로 들어주시던
너그러우신 두 여집사님
외로움을 헤쳐가는 신실하신 전도사님
노 집사님과 할아버지 부부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몸이 불편한 따님
조약돌 같은 아이들
그리고 외로운 교회를 위하여 파견된 피아노 선생님
장로님 따님의 피아노 소리가 감미로웠다
너무 감사하다
나에게 또 하나의 기도목록이 세워지고 있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영원으로 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