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경마 기수는 ‘프로 스포츠의 꽃’
- 지난 5년간 이직률 ‘0’ 직업안정성 ‘최고’
- 가혹한 조교사들? 조교사 상당수 ‘기수출신’
얼마 전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활동하던 여자기수가 거칠고 남성적인 경마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여성 특유의 예민한 감수성과 치열한 승부의 세계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조교사들의 언어폭력과 권위주의, 치열한 경쟁, 불평등한 기승 기회 등 열악한 환경을 지적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수를 꿈꾸고 있는 기수지망생들이 적잖이 실망하고 있다. 키가 작지만 운동신경이 뛰어난 청소년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경마 기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하고 기수의 꿈을 포기하기엔 이르다. 경마 기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존재하는 모든 프로 운동선수 중에서 가장 성공확률이 높고 안정적 생활이 보장되는 ‘프로 스포츠의 꽃’이기 때문이다. 야구나 축구, 탁구 같은 대부분의 스포츠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도 프로 선수가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프로 선수가 되더라도 성적이 좋지 못하면 금방 퇴출되어 밥줄이 끊기는 것이 비정한 프로의 세계다.
하지만 경마 기수는 경마교육원에 입소하여 2년의 교육과정을 마치면 2년의 수습기간을 거쳐 거의 대부분 정식기수로 데뷔한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거의 100%의 확률로 프로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다. 정식기수가 된 뒤에도 야구나 축구처럼 성적부진으로 인한 퇴출의 위험이 거의 없다. 성적이 부진하면 기승기회가 줄어들기는 하지만, 현행 상금제도는 하위군 기수들의 생계를 보장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말을 잘 못 타도 웬만한 중견기업 과장급 수준의 보상을 받는다.
작년도 서울경마공원 기수들의 평균수입은 1인당 약 1억 원, 부산경남경마공원은 8천만 원 정도다. 서울경마공원 리딩자키 박모 기수는 작년에 3억 6천만 원을 벌어들였다. 부경 리딩자키 조모 기수는 2억 2천만 원을 벌었다. 게다가 기수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할 수 있다. 서울경마공원 최고령 기수인 김귀배 기수는 올해 48세(62년生)다. 기수생활을 더 할 수 없으면 조교사라는 직업이 기다리고 있다. 조교사는 마방을 총 지휘하는 CEO로, 능력 여하에 따라 엄청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 기수들은 은퇴 후에 상당수 조교사로 전직한다. 기수 정년은 60세, 조교사 정년은 63세로 일반 회사에 비해 정년이 긴 편이다.
기수가 괜찮은 직업이라는 사실은 이직률이 증명한다. 지난 5년간 비위행위로 면허가 취소된 케이스를 제외하면 자발적 이직은 한 건도 없었다. 한 경마관계자는 기수지망생들에게 프로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버려도 좋다고 말한다. “기수는 능력 여하에 따라 고소득이 가능하지만 강제퇴출이 없고 나이 들어도 계속 할 수 있다. 오히려 안정적인 생활이 승부근성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이번에 조교사들의 권위주의적 행태가 도마 위에 오르긴 했지만, 조교사들도 과거에 기수나 마필관리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개선의 열쇠는 미래의 조교사들인 젊은 기수들과 관리사들에게 있다. 우리 속담에 ‘못된 시어미 닮는다’는 말이 있지만, 고된 시집살이를 했더라도 인자한 시어머니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결국 젊은 기수들과 관리사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마방문화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직률 제로의 경마기수는 여전히 ‘프로 스포츠의 꽃’이며 운동선수를 꿈꾸는 이들의 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