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46: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 6•25 위기에서 건져주셨고, 10대 경제대국으로 세우시며, 평화통일과 선교대국으로 세워주실 만군의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6•25 원흉은 누구인가?》
* 9년전 "평화통일기도운동" 카페에 올린 글
반만년 한국 역사에서 가장 처절한 전쟁이 바로 6.25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한국인 전사자 137,899명을 비롯하여 미군(36,940명), 북한(52만명), 중공군(148,600명)이 생명을 잃었고, 부상자와 행방불명자를 포함하면 남한 99만명, 북한 150만명에 이르고, 천만명의 이산가족과 10만여명의 전쟁고아를 양산했다. 이로 인해 남북분단이 고착화되고 통일의 길이 멀어져 버렸다.
이 무모한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가? 적화야욕에 혈안이 된 민족반역자 김일성이 전쟁의 원흉이다.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를 지은 '핼버스탬'의 글에 의하면 김일성은 인민군 7개사단이 3주안에 남한 땅 전체를 점령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스탈린의 사주와 모택동의 지원 약속을 미리 얻었다. 당시 북한군은 막대한 화력과 군사력의 우위를 가졌으며, 남한군에는 한 대도 없는 전차(소련제 T-34)와 자주포(SU-76) 수백대로 기선을 제압하며 19만명의 군대로 6월25일 새벽 38선 전역에서 일시에 남침을 감행했다. 남침 당시 남한은 비상경계령이 6월24일(토) 0시부로 해제되어 많은 병력이 주말 외박, 외출로 비어 있었고, 일요일인 25일에는 소수의 당직근무자만 잔류하여 북한의 남침에 속수무책이었다.
김일성은 기세좋게 막강한 전차를 앞세우고 남침 하루만에 의정부를, 3일만인 6월28일에는 수도 서울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파죽지세로 공세를 취하여 8월1일에는 낙동강 방어선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세는 김일성의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6월2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남침을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북한의 무력공격을 격퇴하기 위한 지원 권고 결의안을 채택했고, 6월29일에는 유엔군 투입을 결정했다. 이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국군과 연합군이 북한군을 포위하고 궤멸시키기 시작했다.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씀은 6.25 전쟁에도 통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일시 서울이 다시 적군 치하에 들어갔지만 김일성의 적화야욕은 물거품이 되었고 처참한 패배로 귀결되엇다. 아군측 전사자의 4배나 되는 67만명의 무고한 목숨을 죽이고 북한전역을 초토화시킨 채로 3년 뒤 휴전이 성립되었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남한이 먼저 북침했다는 허위사실을 믿고 선동하는 종북세력들이 수십만에 이른다. 천안함의 46명 우리의 아들들이 북한의 기습도발로 숨져간 사실이 과학적인 조사로 명백히 밝혀졌지만, 이를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북한이 유감 표명까지한 연평도 포격사건도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그렇지만 역사적 평가는 후세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스탈린의 앞잡이 김일성의 적화야욕으로 7500만 한민족의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고! 소련군 대좌 출신 김일성이 바로 5000년 한국 역사상 최대의 역적이라고! 1000만 이산가족과 더불어 한민족 모두는 김일성을 '역사적 죄인'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3대 세습을 획책하며 2500만 북한 동포의 인권을 말살하고, 핵개발과 선군정치로 수백만 주민을 굶어죽게 만드는 김일성 후손들의 행적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