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의 영산포에서 홍어와 노닐다가 돌아와
영산강 뱃길이 번성했던 1915년에 설치된 영산포 등대는 영산강의 수위측정도 했고 등대기능도 했었으며,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것으로는 유일한 것이었다. 1904년까지 목포에서 영산포까지 오르내리던 배는 거룻배와 같은 소형 무동력선이었고 목포에서 영산포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18시간 정도였다. 1904년 영산포에 동력선인 증기선이 들어왔다. 목포에서 거슬러 오르는 뱃길은 네 시간이 소요되었고 내려갈 때도 세 시간 쯤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1912년 목포에서 광주까지 자동차 길이 열리고 호남선 철도가 생기면서 영산포 뱃길은 주춤거렸지만 영산강 하구언이 막아지기 전까지 영산포 뱃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뱃길을 통하여 흑산도 홍어와 추자도의 멸치젓 배가 드나들었다. 그때의 영광은 찾을 수 없지만 지금도 영산포에는 홍어洪魚를 조리해 파는 상점들이 여러 곳 남아있는데 ‘영산홍가’ ‘선창홍어’ ‘호남수산등의 홍어집들이 그 유명세를 가지고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홍어는 흑산도 홍어가 일품이다. 그러나 흑산도 홍어가 별로 잡히지 않자 흑산도 홍어잡이 배가 한척밖에 남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 틈새를 비집고 칠레산 홍어가 그 빈자리를 메꾸었는데 올해들어 흑산도에서 홍어가 많이 잡히기 시작했다.
어부들의 말에 의하면 “칠레산 홍어는 뻐시어가지고 맛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흑산도 홍어는 창시(내장)같은 것도 하나도 안 버리고 먹는다고 한다.” 홍어는 홍어목 가오리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우리나라 연근해와 남 일본 연해 동중국연해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 목포, 영광, 인천등지의 연근해에서 많이 서식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지리지 중 가장 오래된 <경상도 지리지>에는 울산군의 토산공물로 실려 있다. 홍어는 전라남도 흑산도에서 나는 홍어를 제일로 치며 겨울철에 맛이 가장 좋다. 홍어는 홍어 자체에 매운맛이 있어 맛이 뛰어나지만 신선할 때보다, 약간 삭혀서 암모니아 냄새가 날 때 가장 맛이 있다.
칠레산은 색깔이 탁하지만 흑산도 홍어는 표피에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지만 뭐니뭐니 해도 홍어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헝겊으로 쓱싹 문질러서 대충 썰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홍어는 톡 쏘는 맛이 특징인데, 그 맛은 코를 통해 곧장 올라와 뇌리를 스치는 암모니아 냄새라고 한다. 그 맛을 어떤 사람은 “역겨워야 완성되는 역설의 미학”이라고도 하는데, 그 맛이 만들어지는 것이 흑산도에서 이곳 영산포까지 오는 열흘이나 15일간의 뱃길이었다. 배에 냉동시설이 없던 시절 열흘정도의 시간에 자연발효가 되어 식힌 홍어가 나오게 된 것이다. 영산포 ‘영산강 홍어’집을 운영하는 양치권(55세)씨의 말에 의하면 홍어는 암놈이 맛있고 비싸기 때문에 어부들은 잡자마자 수컷의 성기를 잘랐다고 한다 그래서 억울한 일로 싸울 때에 쓰는 말에 “만만한 것이 홍어좆이라더니 내가 홍어좆이냐”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알싸하고 톡 쏘는 맛이 일품인 흑산도 홍어는 그 맛이 부위마다 다르다. 미국의 작가인 허만 멜빌이〈백경〉을 쓰기 위해 포경선을 4년간을 타고나서 쓴 글에 의하면 고래고기중의 가장 맛이 뛰어난 부위가 혓바닥 고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홍어의 가장 맛있는 부위는 어느 곳일까?
날개 살은 광어 날개 살처럼 씹는 맛이 좋고, 뱃살 부위는 도톰하게 썰고, 몸통은 적당한 두께로 썰어야 좋다. 아가미 부위는 부들부들하면서도 묵직한 맛이 나는데, 하지만 홍어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건 코다. ‘일 코, 이 날개, 삼 꼬리, 사 살’이라고들 한다. 어떤 이는 애(간)를 최고로 친다. 그리고 홍어는 삼합으로 먹어야 한다. 삼은 완성의 숫자다. 삼합이란 적당히 삭힌 홍어, 삶은 돼지고기, 잘 익은 김치가 만나는 것이다. 입은 하나인데, 맛은 세 가지가 충돌한다. 기름진 돼지고기와 매콤한 김치 때문에 처음에는 홍어의 꼬릿꼬릿한 냄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돼지고기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홍어 특우의 퀴퀴한 향이 날카로운 여운으로 남는다. 겨울이면 홍어애탕이 최고다. 큰 홍어에서는 보기 드물게 큼직한 간이 나온다. 토장을 푼 국물에 홍어 간과 내장을 넣고, 냉이와 보리 나물을 넣는다. 시원한 국물에서 바다의 맛이 솟아오른다. 고기를 먹을 줄 아는 사람들 중에는 간 맛을 일미로 치는 사람이 많다 홍어 애 몇 점을 날로 먹으면 입 안에서 흐물흐물 허물어지면서 우유처럼 감미로운 뒷말이 혀에 안긴다
오랜만에 맛본 홍어 애국에 소주 한 잔이 그립지만 환한 대낮이고 할 일이 남아 그냥 마음속으로만 홍어들이 눈에 삼삼하다. 두고 온 영산강에 지금 희뿌연 달빛이 내려 앉았을까?
2021년 4월 26일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