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녹색 나무들, 한편의 잘 그려진 그림 같은 아름다운 배경에 자리잡은 오래된 저택, 저택 정원의 잘 손질된 나무에는 여러 마리의 새들이 긴 여행의 여정을 풀듯 앉아 쉬고있었다.
새들이 내려보는 정원의 중앙에는 잘 익은 나뭇잎처럼 진한 녹색의 머리를 가진 남자와 오렌지 빛의 머리를 가진 여자가 서로 끌어안고 춤을 추듯 흔들거렸다.
"아, 아, 사랑해요... 볼스턴"
볼스턴 이라 불린 남자는 작게 미소를 지어 여자의 말에 답하고, 점점 목을 낮춰 그녀의 목에 입술을 가져가 키스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때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도 사랑해 휴린, 너의 붉은 피를..."
진한 녹색의 머리는 붉은 핏빛의 색으로 변하였고 그의 고른 치아에 보기 흉할 정도의 긴 송곳니가 생겨, 그녀의 목을 우지끈 물어뜯었다. 마치 흡혈귀가 여인의 목을 탐하듯.
붉은 색의 피가 사방으로 퍼졌고, 피가 역류해 한곳으로 빠져나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다. 피를 많이 뺏겨 창백해진 얼굴 그대로 쓰러졌다.
"하, 너의 사랑 잘 받았어... 휴린 마지막으로 너를 가져갈게"
쓰러진 여자를 향해 낮은 톤으로 말한 흡혈귀는 왼쪽가슴을 파헤쳐 심장을 꺼내났다.
도려내진 그녀의 심장은, 거대한 가뭄에 작은 호수가 말라버리듯, 한 방울의 피도 묻어있지 않았다. 푸른 하늘이 붉게 노을졌다.
여인의 피와 심장을 빨아먹는 흡혈귀 뒤에 하나의 길다란 그림자가 다가왔다.
"라그나 프레이슨, 이제 그만 '그곳'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라코일 인가?"
"그렇다."
라그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을 불러온 목소리에 답했고, 뒤를 돌아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거절한다. '그곳'은 너무 답답하단 말이지"
검은색 로브와 후드를 뒤집어 얼굴과 머리를 가린 라코일은 등뒤에 매단 두 개의 검 중하나를 꺼내 고쳐 잡자, 그의 검이 작게 떨리며 황금색 마나가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황금빛 마나의 둘러 쌓인 라코일의 검은 라그나를 향했고, 라코일도 그에 대항하듯 그의 주먹 마디마디에서 길다란 손톱이 각각 4개씩 나왔고 예의 그 붉은 빛 마나를 형성했다.
"크크크... 저번처럼 봐주진 않는다. 라코일!!"
"훗..."
라그나는 마치 어린아이가 새 장난감을 가졌을 때처럼 흥분된 얼굴로 웃었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라코일의 입에 작은 미소가 번져 나갔다.
거대한 두 마나의 충돌로 주변에 스파크가 일었고, 나무 위의 새들이 놀란 듯 날아갔다. 그 다음 라코일과 라그나는 서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상대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황금을 그대로 녹여놓은 듯한 고귀한 금발과 얼음 색 연 푸른 눈동자의 순백색 갑주로 몸을 무장한, 우아하고 근엄한 분위기를 내는 청년과 투박한 검푸른 머리와, 머리색과 같은 왼쪽 눈, 그리고 그것과 매우 이질적인 맑은 푸른색 오른쪽 눈, 그리고 예의 그 순백색 갑주로 무장한 사내가 각자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서로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검은, 날이 서지 않은 연습용 검으로, 연습용 검치고는 손질이 잘 돼있고, 여기 저기 장식도 된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검술 연습장은 굉장히 넓었으며, 순백색의 벽 곳곳에는 잘 만들어진 검들과, 기사용 렌스, 값옷등 각종 무구들과 기사들을 그린 그림으로 장식 되어있었다.
"헤헤... 케인, 블레스 아이(Bless eye) 쓰기 없기다!!"
히죽거리며 한마디한 금발의 남자는, 검을 바다에 내리 끓듯 다가가 크게 올려 베었다. 케인은 막는 것보다는 피하는 것을 선택했는지, 몸을 짧게 이동해 아슬아슬 하게 검신을 피했다. 아니 피했다고 생각했다.
올려 베기를 하던 검이 공중에서 한바퀴 회전해 내려 베기로 바뀌어 공격해오자, 케인은 본능적으로 검을 올려 막았다. 그때 그의 오른쪽 푸른색 눈이 빛나며, 그의 뇌리에 한가지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향해 무차별 검을 휘둘러 공격 해오는 상대의 모습이...
케인이 급하게 검을 막자, 곧 그 영상 그대로 금발의 미남자는 엄청난 속도의 연검기(連劍技)를 펼쳤다. 언뜻 보기엔 무작정 휘두르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공격은 정확히 상대의 머리에 한번, 오른쪽 어깨에 두 번, 왼쪽 옆구리에 두 번, 복부를 횡 베기로 한번, 오른쪽 허벅지에서 왼쪽 정강이 베기로 한번, 왼쪽 아킬레스건에 한번, 도합 8번의 빠른 베기가 나왔다. 케인은 이미 블레스 아이로 공격을 예상한지라 침착히 대처했지만 어깨와 옆구리등 총 두 번에 검격을 당했다.
"뭐야..?! 비겁하게, 블레스 아이(Bless eye) 쓰기 없기로 했자나!!"
"그건 너 혼자 한말이자나, 난 안 쓴다고 한적 없어"
"그..그랬나?"
"쳇, 아이스 넌 너무 강해 부러울 정도로.."
아이스는 의외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그런 그의 모습이 귀엽다고 느낀 케인은 작게 미소지었다.
"괜찮아, 케인?"
아이스는 케인이 검격을 당한 곳에 손을 대고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곧 그의 손에서 눈부실 정도의 빛이 났고, 갑주 속 피멍들린 상처가 사라져버렸다. 흔히 말하는 회복 마법이었다. 상처가 치료된걸 확인한 케인은 급히 옆에 떨어져 있던 검을 주워, 신속히 아이스의 목덜미로 가져갔다.
"엇, 뭐야!! 비겁하게"
"싸움에 비겁이 어딨어?
"아얏!!"
당황해하는 아이스를, 검의 검등으로 꿀밤을 때리듯 툭 하고 친 케인은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말 잘들어 아이스 우린 성기사야, 성기사는 부끄럼 없이 실력만으로 싸워야 한다고 수업 받았지, 하지만 세상은 달라 적이 어떤 비겁한 수로 나올줄 어떻게 알아? 패배는 곧 죽음이야, 알량한 기사의 자존심으로 정정당당한 대결만을 바라다 뒤에서 칼맞아 죽어가며 상대를 비겁자라 외쳐도 돌아오는 건 비웃음 뿐이야"
"하..하지만, 난 성기사야 신에게 오직 당당히 실력만으로 싸울거라 맹세했어 설령 내가 죽더라도 그 맹세만큼은 영원케 하고싶어"
"아이스 넌 분명 제국 제일의 성기사이자, 제국 제일의 기사야 하지만 한명의 전사로서는 빵점이야 풋, 그게 네 매력이긴 하지만"
아이스와 케인 둘은 서로에게 있어 단 하나뿐인,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가장 친하고 소중한 친구사이이다. 비록 서로가 걸어온 길은 달라도...
"이제 그만 올라가자, 오늘은 중요한날 이자나"
"응"
평소 같았으면, 조금만 더하고 가자고 때를 부렸을 법한 아이스였지만, 오늘은 그저 아쉬움에 고개를 까닥거렸을 뿐이었다. 케인의 말대로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으니, 하이엘프 족 족장 카스탈 쥬스피어, 용병왕 블러드 스탐, 동부 중소 국가의 국왕들등 주요 인사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