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당시 아버지 프란시스 실즈는 24세, 어머니 테레사 슈몽은 31세. 부모가 결혼신고를 한 것은 브룩을 임신한 5달 후, 태어나자 바로 이혼. 아버지는 그 뒤 딴 여자와 결혼, 새부인이 데리고 온 남매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등, 모두 다섯 식구가 살고 있다.
4살 때 초등학교에 입학, 도중 영화 촬영 때문에 1년간 휴학했는데도 제 나이보다 2년이나 빠르게 미국 명문 프린스톤 대학을 다녔다. IQ가 155. 글재주가 뛰어나며 공상적인 글도 있고, 심리 묘사를 잘 하는 시도 많다. 그림도 잘 그리고 폐물을 이용한 조각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피아노에도 솜씨가 있다. 발레도 4년 쯤 배웠었고 노래 공부도 했다. 프린스톤 대학에서 올 A를 받을 만큼 미모와 지성을 겸비하고 있다.
모델 출연은 생후 11달부터 시작. 8살 때와 10살 때는 <공원의 왕자>라는 영화 등에 잠깐. 본격적으로 영화 스타가 될 셈으로 데뷔한 것은 <프리티 베이비>. 브룩이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래 세계 최대의 미인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2살 때(77년) 출연한 루이 마르 감독의 <프리티 베이비>라는 영화에 데뷔하면서부터. 그때 출연료가 2만 7,500달러. 국제적으로 유명한 루이 마르 감독에 픽업되면서 브룩 실즈의 주가는 급상승하여 <짚시의 왕(King of the Gypsies)>, <완다 네바다(Wanda Nevada)>에선 피터 폰다와 공연하여 15만 달러나 받았다. 다시 그의 개런티는 껑충 뛰어 <아가씨, 나와 그대 뿐이고(Just you and me, Kid)>에선 무려 50만 달러가 되었다. 그뒤로 계속된 <푸른 산호초(The Blue Lagoon)>라든가, <사하라>에선 100만 달러 선에 육박하였다. 89년 <브렌다 스타> 이후 5년의 공백 끝에 영국-호주-일본의 합작 서스펜스물 <The Seventh Floor>에 출연했다.
97년 테니스 스타 안드레 아가시와 결혼했다 2년 뒤 결별, 2001년 방송작가 겸 제작자인 크리스 헨치와 재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