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미라지펜션
일월 첫 주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은 통영 펜션에서 대학 동기들과 보냈다. 40여 년 전 만남이 시작되어 코로나로 근년 몇 차례 회동을 못하다가 작년 여름 다시 만났다. 여덟 가족이 부부를 동반해 여름과 겨울에 1박 2일로 만나는데 나는 혼자 나가서 동기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울산의 한 동기는 경기 가평에서 아내의 치병으로 참석하지 못함에 비하면 내가 나은 편이긴 했다.
금요일 점심나절 같은 생활권에 사는 동기 내외 차에 동승해 통영으로 향했다. 그동안 시내버스로 종점까지 가서 산천을 누비다가 모처럼 동선을 달리해 교외로 나갔다. 고성에서 고속도로를 달려 통영에 닿아 산복도로를 따라 운하를 건너 도남 관광단지 근처 펜션에 이르렀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건너편은 한산도였고 윈드서핑 계류장을 돌아가니 통영 국제음악당이 보였다.
통영 친구가 기다린 숙소에 여장을 푸니 각지에 흩어져 사는 동기 부부가 속속 나타났다. 울산에서 두 가족이 왔고 대구에서 한 가족이 왔다. 저녁 식사가 예약된 식당으로 옮겨 가 함양에서 온 친구가 합류했다. 그는 오전에 방학식을 하고 처리하는 몇 가지 공문을 결재하고 나오니 늦었다고 했다. 친구는 객지 사는 자녀가 와 아내는 동행하지 못해 나처럼 혼자 참석한 경우였다.
바다와 접한 통영답게 저녁 식사는 초밥집을 능가하는 풍성한 해산물이 차려져 나왔다. 반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서로에서 잔을 채워 권하며 신선한 생선회와 어패류로 식도락을 즐겼다. 취향에 따라 곡차나 맥주를 비운 친구도 있고 나는 맑은 술을 들었다. 2년마다 윤번제로 맡는 총무는 다음 차례로 넘기고 오는 여름에는 의령으로 새집을 지어 귀촌한 친구네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저녁 식후 숙소로 돌아오니 통영의 친구는 밤참에 해당할 요리를 했다. 요리 솜씨가 좋은 친구는 겨울 특미인 물메기 두 마리와 양념은 준비해 놓았더랬다. 어느새 바닷말의 일종인 몰을 넣은 물메기탕을 끓여 내었다. 저녁 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동기들은 물메기탕을 안주로 연장전을 벌였다. 지난날 40여 전 첫 모임이 이루어질 당시를 회고하며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다.
밤이 이슥해 부녀들은 건넛방으로 떠나도 술자리 담화는 계속되었는데 나는 도중에 다락으로 올라 잠들었다. 새벽녘 잠을 깨어 어둠 속에 옷을 갖춰 입고 창원에서 함께 갔던 동기 내외와 삼칭이해안 산책을 나섰다. 날이 덜 밝아 등댓불이 반짝거리는 희뿌연 새벽 바다에는 조업을 나서는 배가 지났다. 수륙해수욕장을 지나 등대 낚시공원이었고 산책로는 해안을 따라 계속 이어졌다.
벼랑 틈새 소나무가 붙어 자리는 바위섬까지 갔다가 숙소로 가려고 되돌아섰다. 날이 밝았지만 미세먼지가 심해 대기는 안개가 낀 듯했다. 한산도 섬 위로는 아침 해가 떠올랐는데 미세먼지로 둥근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임진왜란 때 한려수도를 지킨 이순신이 아침 해가 뜨는 것과 같았을 밤에 뜬 달을 봤다면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던 시조를 읊조렸을 만도 했다.
숙소로 돌아와 여장을 정리하고 식사 자리로 이동했다. 강구안 서호시장은 주차 여건이 혼잡해 무전동의 복국집을 찾아갔다. 졸복 수육과 향긋한 미나리가 든 복국으로 속을 푸려는 늦은 아침상을 받았다. 운전대를 잡을 일이 없는 나는 마주 앉은 한 동기와 맑은 술을 잔에 채워 비웠다. 식당을 나와서는 각자 생활권으로 흩어졌는데 울산의 한 친구는 귀로에 무학산을 등정하려 했다.
나는 창원 동기 내외와 함께 국도를 따라 고성읍으로 나가 두호리에서 간사지교로 길 안내를 했다. 당항포 바다 일부를 매립 고성 동해로 건너는 다리가 간사지교였다. 마동호와 함께 당항포를 가로지른 방조제다. 다가올 봄 어느 날 그곳을 다시 찾으면 볕 바른 자리에 움이 터 자랄 쑥을 캘 수 있을 듯했다. 창원 시내로 들어와 집 근처 어탕국수집에서 점심을 들고 동기와 헤어졌다. 23.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