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경 / 안도현
한밤중에 돈사에 불이 났다기에 우리는구경을 갔었지요
잊을 수 없어요 강 건너에 있었지요
돈사는 어둠 속에 뻥 뚫린 빨간 구멍처럼 보였지요
아무도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았어요 모두들
팔짱을 끼고 바라보았지요
우리는 킥킥, 웃었지요
노릿노릿하게 익은 넓적다리 구이가 생각났거든요
그 냄새가 물큰, 강을 건너오는 것도 같았어요
어른들이 우리의 입을 손으로 막았지요
동그렇게 말려올라간 꼬리에 불이 붙는다면
돼지는 불붙은 기관차처럼 돈사를 뛰쳐나올 테지요
풀 잘 마른 밭둑에다 마구 몸을 비벼댈지도 몰라요
불길이 강물에 닿으면 피식피식 꺼지겠지요
실제로 강물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가
제 몸의 불을 끄고 다시 흐르자
누군가 말했지요, 돼지는
불이나면 절대로 돈사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는다고
우왕좌왕 허둥대지도 않고 그 자리에 앉아서
돼지는 고요히 마침내 앉아서 불길을 뒤집어쓰고
숯덩이가 된다고
나는 지금도 모르고 있지요
밥 먹고 똥 싸는 집, 질척질척한 그곳이
돼지는 정말로 우주라고 믿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돼지는 집을 끝까지 지킨 게 아니라
거추장스런 집 같은 것을 그날부터
아예 내던져버렸던 것일까요?
[출처] 안도현 시인 19|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