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3:14-18.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가십시오.
오늘 본문은 벧후서의 종결부분으로 주의 재림및 거짓교사문제에 대해 결론적 권면과 송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를 원하며 오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큰 복되기를 축복합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14절에서 시작하는 단어가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무엇을 바라 볼까요? 하나님의 날과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고 소망하고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주의 재림입니다. 이것이 위를 바라보고 사는 신앙입니다. 인생은 먼지에서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땅을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은 순리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하늘의 시민이기에 땅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땅의 연연한다면 믿지 않는 불신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 모습이 진정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 하십니다. '점도 없도 흠도 없다는 것은' 제단에 바쳐진 희생 제물을 생각하면 됩니다.(민19:2)흠이 있고 점이 있는 짐승은 제물로서 부적당하였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적용될까요? 신체적인 것이 아닌 영적으로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이 산상 수훈에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청결한 한 자는 하나님을 볼것임이요'(마5:8),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뵈올수 있는 유일한 길이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청결하다는 것은 두 마음이 아닌 한 마음으로 주를 바라보며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거듭났다면 그는 오직 한마음으로 주를 바라보고 주를 사모하고 삶속에서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원망없이 주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을 볼수있다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시편에는 24:3-4,절에서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지금 하나님은 이런 자를 찾으시고 또한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점도 흠도 없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희생으로 놓으셨습니다. 이제는 또 다른 제물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이제는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하고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벧전2:9),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고 거룩한 백성이라 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아니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또 전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고 또한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그래서 그 성전을 더럽히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고전3:16-17)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그래서 거룩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5:8)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2:5) 또한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다시 14절에서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여기서 '나타나기를''휴레데나이'는 '발견하다'라는 의미로 부정사 수동태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성도가 흠없고 점도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평강 가운데서 하나님에 의해 발견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또한 '힘쓰라'는 '온 힘을 다해 노력하다'라는 '스푸다사테'는 부정과거 명령형입니다. 이는 이럴까, 저럴까 하는 것이 아닌 단호하게 결단하고 그 길을 평강 가운데서 전심 전력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15절에서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여기서 오래 참으심은 주님의 속성입니다. 바울은 고전13:7절에서 사랑은 오래 참고 했습니다. 또한 갈5:22절에는 성령의 열매로서 등장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엡4:2절에서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용납하라고'말씀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오래 참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시간 상으로 길다는 의미가 아닌 모든 사람이 저럴수가 있어 하고 흥분하여 누군가에게 돌을 던질 때에도 요동하지 않고 침착한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군중 심리에 끌려서 이성을 잃고 따라가는 것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중심은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중심 잡고 계신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9절에서 아무도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마음이라 하십니다.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문 0명 의 어록을 보니 문씨가 옥살이를 하는데 어느 여자가 옥살이 하는문씨를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면 자신의 머리카락과 실을 섞어 짜서 가져왔더라고 기록하였더라구요, 그것도 여자 문제로 간통죄로 걸려서 옥살이 하는데 문선생이라 하면서..바로 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환란 가운데서 오래 참고 소망가운데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15절에서 베드로는 바울을 사랑하는 형제라 하시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과 같은 민족을 형제라 칭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서 구속함을 받은 모든 자를 형제라 자매라 칭합니다. 그 지체된 바울도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받은''도데이산'은 '주다'를 의미하는 '디도미'의 신적 수동태로 바울에게 지혜를 주신이가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롬2:4),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이 우리를 회개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바심을 내어서도 아니되고 또 안오실거야 하고 뒤 돌아서서도 아니되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소망가운데 굳게 서있으면 마침내 새하늘과 새땅이 우리앞에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입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사48:9), 아멘,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9:22), "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5)
성경의 말씀을 왜곡하면 반드시 멸망에 들어갑니다.
16절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성경을 읽다가 보면 알기 어려운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럴때는 억지로 풀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 해석된 말씀은 자신 뿐만 아니라 무식한 자들에게 멸망에 빠지는 길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무식한 자들'이란 교육을 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사도들에게 제대로 말씀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 그래서 그리스도의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이 피상적으로 믿다가 잘못된 길로 쉽게 빠져 버리는 자들, 또한 교회의 대한 바른 진리를 갖고 있지 못해서 넘어지는 것은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성경이란 베드로서신뿐 아니라 바울서신이나 요한 서신이나 다른사도들의 서신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수많은 성경들이 번역되어 나오면서 자기네가 번역한 성경은 진짜이고 다른성경은 변개된 사탄의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 땅에서 완벽한 성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원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푼다는 것은 '왜곡시키다''곡해하다'라는 의미로 성경을 자기들에 틀에 맞추려고 곡해했다는 의미입니다. 통0교의 원리 강론이 무엇입니까? 하와가 아담과 성관계를 맺기 전에 뱀하고 했기 때문에 그것을 원래대로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 피가름이라 해석합니다. 그리고 죄없는 문 아무개와 성관계를 3회 가지면 원죄가 없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에 속아 넘어가서 많은 신도가 생겼고 지금은 어마어마한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거기서 나온 어떤 사람의 말은 원리를 따라 하는 성관계이기 때문에 죄가 아니고 또한 즐기면서 골라가면서 맘에 드는 여자랑 한다는 것입니다.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하는 일입니다. 거기만 그러합니까? 다른 이단들도 동일합니다.
17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밍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즉 잘못 해석된 성경을 가지고 오는 자들의 미혹을 주의하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날에 주님앞에서 버림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법한 이들'은 사단의 하수입니다. 이들은 할 수만 있으면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성도들을 미혹하려 합니다.(막13:22), 마음에 새겨야 할것은 이들은 성경을 들고 우리에게 다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들을 분별할수 있어야 하고 말씀위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해야 하고 성령안에서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기도도 해야 합니다.(엡6:18), 또한 말씀의 검, 성령의 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사단을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우리도 진리로 무장하고 영들을 분별하여 승리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4:1)
우리는 믿음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18절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그리스도인의 삶속에서 말씀을 배워 적용해 나가면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까지 성장해 가라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눈에 식별이 되도록 성숙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앎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속에서 증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앎이란 심판과 죄와 의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 지식은 영적인 것을 뜻합니다. (고전2:6,7)
그리고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전1:5-7)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한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처럼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1:10)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늘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아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삶이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성결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평강가운데 교제가 잘되고 있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이 바르게 말씀위에 서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일에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에 대해 있음을 인지하여서 늘 뒤를 돌아 보고 현재의 상태도 점검하고 그리고 앞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늘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전한 자로 성장하고 성숙해 질 것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