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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는 크게 외국어고, 국제고, 과학고, 예체능고로 분류된다. 인문계적 성향을 보이는 학생들은 외국어고와 국제고로, 이공계적 성향을 보이는 아이들은 과학고로, 예체능에 강점이 있는 아이들은 예체능고를 선택한다. 특목고는 기본적으로 중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했던 아이들이 모여 성적을 다투다 보니 학교 내신에서 일반고에 비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특목고를 폐지하려는 교육정책과 맞물려 전문가들은 특목고의 인기가 전보다 못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여전히 특목고의 인기는 뜨겁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결국은 ‘좋은 대학에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카이스트를 제외하고 전통적으로 특목고 출신 학생이 가장 많이 입학하는 대학은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인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일명 ‘스카이 대학’이다. 매년 입학 순위에는 조금씩 변동이 있었지만 결국은 3개 대학으로 몰렸다. 적어도 재작년 입시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2012년 입시에서는 이화여대가 특목고생이 가장 많이 입학한 대학으로 뽑혔고, 그 뒤를 연세대, 성균관대, 서울대, 고려대가 이었다.
올해 이화여대의 신입생 2,989명 가운데 특목고 출신 학생은 982명으로 전체의 29.4%를 차지한다. 이는 서울대 24.3%에 비해 무려 5.1%나 높은 수치다. 교육계에서도 이화여대가 서울대 특목고생의 입학률을 앞질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상반된 견해를 내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이다’와 ‘앞으로도 계속 특목고생의 탈스카이화바람은 계속될 것이다’ 전혀 다른 시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12학번 이화여대생이 된 특목고생에게 궁금증이 생긴다. 왜 ‘특목고 출신 이대 다니는 여자’가 되었는지 말이다.
입시의 판도가 바뀌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뭐든 잘하는 일명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로 대표되던 똑똑한 학생들이 이제는 ‘엄친딸(엄마 친구 딸)’로 대표되고 있다. 우먼파워가 커진 까닭은 여성들의 장점이 부각되는 쪽으로 교육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친딸들의 파워는 이제 우스갯소리가 아닌 객관적인 통계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 예로 특목고 입학 여학생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특목고생 남녀 비율은 7 : 3으로 남학생이 훨씬 많았으나 점차 6 : 4, 5 : 5로 가파르게 남녀 숫자가 달라졌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아예 뒤바뀌어 남녀 비율이 4 : 6으로 여학생이 확연히 많아졌다. 올해 입학 통계를 보면 그 차이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작년 대비 여학생은 약 6% 증가한 반면 남학생은 약 5% 감소했다. 최근 몇 년간의 통계로만 보면 여학생은 꾸준히 증가하고 남학생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여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게 된 이유도 있지만 최근 달라진 특목고 입시전형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단순 경력과 점수 위주의 선발에서 탈피해 최근에는 학생 개개인의 스토리와 감성을 담은 자기소개서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 남학생에 비해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여학생이 입시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수한 특목고 여학생들은 입시 판도도 바꿔 놓았다. 이번 대학 입시 결과에 따르면 대학의 대부분이 전년도 대비 특목고 출신 신입생 수가 줄었다. 특히 전통적으로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스카이 대학’에서 두드러진다. 전년도에 비해 서울대는 104명, 연세대는 131명, 고려대는 109명이나 특목고생이 줄어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 반면 여대에서는 오히려 특목고 출신 신입생 수가 증가한 걸로 밝혀져 앞선 세 대학과 대조를 보였다. 이화여대 40명, 숙명여대 51명으로 증가폭은 크지 않지만 대부분의 상위권 대학이 하락했다는 걸을 감안했을 때 눈에 보이는 수치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입시의 판도를 바꿔놓은 결정적인 열쇠는 바로 특목고 여학생들, 바로 엄친딸들 손에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특목고생 입맛에 딱 맞는 이화여대표 맞춤 입시 만찬
빠르게 변해가는 교육 흐름만큼 요즘 고등학교 학생들의 입시 시각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고등학교 1, 2학년 학생 2,489명을 대상으로 한 전남교육정책연구소의 종합 실태파악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 선택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1순위는 ‘졸업 뒤 취업이 쉬운가’였다고 한다. 그만큼 취업은 대학생을 넘어 고등학생에게도 심각한 고민거리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일 터. 그래서일까. 요즘 고등학생들은 명분보단 실리를 추구하는 실리주의적 사고가 엿보인다. 1위의 뒤를 이은 2위와 3위를 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2위는 ‘성적, 입학 전형이 나에게 유리한가’, 3위는 ‘대학의 명성과 인지도’라고 꼽은 점을 볼 때 전통적인 입시 시각을 탈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학을 보고 전공을 결정짓던 소위 ‘대학간판 입시’에서 전공과 입학 전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先)전공 후(後)대학 입시’로 변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주요 사립대학들은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적극적으로 특목고생 유치에 힘썼으나 처음 도입 취지와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았다. 성적 위주의 획일적 방식에서 벗어나 잠재력과 창의력 등으로 학생을 선발하자는 취지였지만 그와 달리 성적이 우수한 특목고생 위주로 선발하는 경향이 문제였다.
이에 교육부가 강력하게 제지하고 나서자 대학들은 특목고 전형을 축소하거나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소극적으로 변한 다른 대학과 달리 이화여대는 적극적으로 특목고생들의 구미에 맞는 입시 전형을 발표했고, 특목고생들은 ‘실리’를 고려해 이화여대를 선택했다.
특목고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상대적으로 불리한 내신점수를 커버할 수 있는 다양한 전형이었다. 2012년 이화여대 수시전형 결과를 보면 입학의 당락이 학생부 교과 성적, 즉 내신이 아니라 논술이 결정지었다. 인문계열의 경우 모집단위에 따라 영어 제시문을 읽고 답하는 논술과 통계자료, 표에 따른 자료해석 능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논술로 나눴다. 자연계열의 경우 교과 중심적 논술을 바탕으로 수리논술 3문항에 과학 1문항으로 총 4문항이 출제되었다. 하지만 인문계열의 논술 중 영어 제시문이 다소 까다롭게 출제되어 상대적으로 일반고생에 비해 특목고 특히 외국어고생에게 유리했다. 한마디로 논술이 특목고생에겐 불리한 내신을 커버해줬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합격에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이화여대의 파격적인 행보는 2013학년 입시에도 이어진다. 지난해 일반전형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외국어 교과별로 상위 14단위씩, 총 56단위를 반영한 데 비해 이번 입시에는 교과 구분 없이 상위 30단위만 반영한다. 즉, 교과 중 성적이 우수한 과목만을 반영한다는 말이다. 결국 일반전형에서 학생부 영향력은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불리한 학생부 성적으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특목고생이라면 귀가 솔깃한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이화글로벌 인재 전형’ 중 외국어에 우수한 학생을 뽑는 인문계열 전형도 눈여겨보면 좋을 듯하다.
mini interview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에듀베이션 송경훈 원장
이번 이화여대의 입시 강세를 두고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원인과 전망은 대체로 비슷하다. 대입 전략 컨설팅 에듀베이션의 송경훈 원장(33)은 “오락가락하는 입시태풍에 어린 갈대들만 휘어진다”며 교육정책을 꼬집었다.
“입시전형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 소위 말하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이의 체력’이라는 대학 합격의 세가지 조건이 이제는 무의미해졌습니다. 특히 엄마들은 입시 전문가들도 복잡한 입시전형을 공부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일 겁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엄마의 정보력’은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지요. 매년 바뀌는 입시전형, 입시정책이 있는 한 예상치 못한 대학의 강세와 수험생들의 피해는 속출할 거예요.”
2012년 예상치 못한 특목고생들의 이화여대 입학 지원으로 인해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 피해는 2013학년도 입시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화여대에 소신 지원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보다 한 단계 더 낮춰 안정 지원을 해야 할지 말이다. 게다가 2013년에는 입시에 변수가 있는데, 바로 2014년부터 학생부 성적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뀐다는 점이다. 입시정책의 틀이 바뀌는 만큼 이번 입시는 어느 때보다 치열한 눈치작전과 하향평준화가 심할 듯싶다.
“분명 학생부 성적으로만 본다면 특목고 학생들이 불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형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분석하여 입시전략을 세우세요. 내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것으로요. 그리고 수시모집으로 입시를 결정지으려는 학생들이 많을 테니 수시에 집중할 것인지, 정시에 집중할 것인지 선택하세요.”
예체능의 힘, 이번에 통했다
특목고에서 인문계, 자연계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예체능계다. 국악고, 예고, 미술고, 체고 등 각 전공에 따라 다양한 특목고가 있으며, 대부분 대학입시에서 수능과 실기를 동시에 잘해야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2012학년도 이화여대의 특목고 출신 강세에는 또한 예체능계 특목고생의 압도적인 입학률이 있었다. 예체능계 입학정원인 588명 중 374명, 63.6%가 특목고 출신 신입생으로, 국악부터 미술까지 어떤 한 분야에 치우침도 없이 다양한 장르의 학생들이 지원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예체능계 특목고생들이 이화여대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랜 세월로 다져진 전통 있는 명문 예술대학이기 때문이다. 내신보다 실기에 더 비중을 두는 실기 위주의 입시, 입학 후 탄탄한 커리큘럼, 학생들 편의를 고려한 실습실, 현재도 활발히 예술 활동을 펼치는 교수진 등 입학 전보다 입학 후의 내실을 다지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전통’으로 다져진 탄탄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이화여대 예술대학만의 강점이다. 현재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가며 왕성한 활동 중인 선배들과 재학생 간의 긴밀한 네트워크 형성은 또 다른 배움을 제공한다는 평이다. 예체능계 특목고 시절에 형성된 선후배 간의 네트워크가 이화여대로 이어질 정도로 특목고와 대학 간의 연계성이 좋다.
또 다른 이유로는 차별화된 모집군의 위치다. 4년제 정시 모집일 경우 가, 나, 다 군별로 하나씩 총 3개를 쓸 수 있는데, 대부분 대학들이 한 군데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예체능계 학생들이 많이 선호하는 서울대, 홍익대 등이 나군에 위치한 반면 이화여대는 가군에 속해 있다. 이화여대 입장에서는 서울대, 홍익대 등과 불필요한 경쟁을 피하고 우수한 특목고생들의 지원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또 학생들 입장에선 실기 제약을 받기 때문에 다른 계열에 비해 학교 선택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학교 선택의 폭과 명문대 입학 기회를 동시에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마련 되었다. 결국 학생과 이화여대 모두 득이 되는 ‘윈-윈 전략’인 셈이다. 이번 입시에서 그 전략이 적절히 잘 맞아떨어져 특목고생과 이화여대 모두 웃을 수 있는 해피엔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통과 명문을 앞선 실리주의 입시의 최강자, 성균관대
2012년 대학 입시에서 외고, 국제고, 영재학교 출신이 가장 많이 진학한 대학은 연세대, 고려대에 이어 성균관대가 차지했다. 전체 신입생 중 특목고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6위에 불과하지만 매년 증가폭이 심상치 않다. 작년’ 대비 올해 157명이 증가해 같은 기간 131명 감소한 연세대와 대조를 이뤘다. 우수한 학생들이 전통 ‘스카이 대학을 마다하고 성균관대에 입학하는 것은 삼성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 과감한 투자와 아낌없는 지원으로 재학생들의 만족도가 높고, 수험생들의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재학생 49.3%, 즉 두 명 중 한 명은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장학금 제도가 파격적이다. 교내 장학금만 311억으로 국내 대학 중 단연 1위다. 학비가 비싼 의과대학도 예외 없이 장학금 혜택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게다가 의과대학의 경우 학생 1인당 교수의 수가 2.1명으로 우수한 수업환경을 제공한다. 그래서일까. 몇 년 전 서울대를 포기하고 성균관대 의과대학에 진학해 화제가 되었던 학생처럼 전국에서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또한 입학하면 삼성 입사를 보장하는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인 ‘반도체 시스템 공학과’는 현재 이공계열 최고의 특성화 학과로 꼽힌다. 신입생 전원이 해외에서 반도체산업에 대한 기본을 닦은 후 중국의 수조 삼성전자 현지 법인, 대만의 신추과학단지, 홍콩과학기술대학교를 견학한다. 물론 견학비용, 여행경비는 무료다. 이 외에도 설계실습, 프로젝트 수행으로 실무 적응력을 높이고,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에게 직접 강의를 들어 현장 실무 감각도 높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