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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활(狡猾)
어떤 사람이 약은 꾀를 쓰는 것이 능함 또는 술수(術數)나 행동 따위가 능란(能爛)함이 있게 약음을 일컫는 말이다.
狡 : 간교할 교(犭/6)
猾 : 교활할 활(犭/9)
(유의어)
교쾌(狡獪)
교힐(巧黠)
교힐(狡黠)
간사하고 꾀가 많아 남에게는 아량 곳 없이 자기만 살겠다는 말이다. 교활(狡猾)은 개 사슴 록(犬) 변이다. 교(狡)나 활(猾)은 모두 동물 이름이다. 물론 실존하는 것은 아니며 전설상의 동물이다. '산해경(山海經)'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 동물에 대한 특성이 있다.
교(狡)라는 짐승은 옥산(玉山)에 살며 개와 같지만 표범 무늬를 하고 있다. 머리에는 쇠뿔을 달고 있으니 그 형상이 괴이하다. 울음소리 역시 개와 비슷하다고 적혀 있다. 한 가지 특별한 것은 이놈이 나타나면 그 해에는 여지없이 풍작이다. 그런 점에서 교는 길조이며 어느 누구나 반긴다.
활(猾)이란 짐승은 아주 간악하다. 사는 곳은 요광산(堯光山)인데 몸뚱이에는 돼지털이 나 있으며 동굴 안에서 겨울잠을 잔다. 한소리 기합을 지르듯 울어대면 온 천하가 큰 혼란에 빠져 버린다. 사람들은 모두 흉조의 상징이기 때문에 활을 두려워 한다. 따라서 교의 주변에는 활이 있기 마련이다.
교(狡)나 활(猾)은 산속에서 호랑이 같은 맹수를 만나면 스스로의 몸을 구부려 공처럼 만들어 버린다.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삼키려 들면 재빨리 입안으로 들어가 내장으로 굴러가 그것을 파먹는다.
배가 아파 호랑이가 날뛰면 맘껏 내장을 뜯어 먹는다. 그리고 호랑이가 죽으면 그제야 유유히 뱃속에서 빠져나온다.
교활(狡猾)이란 짐승은 몰래 숨어 다니며 주위를 어지럽게 신출귀몰하며 남을 해롭게 해 자기만 그물에서 빠져 나오려는 얄팍한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가 봉직하는 직장에서 주로 자기의 입신출세만 앞세우고 다른 동료를 헐뜯거나 험담하는 일이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자신의 본분도 모르고 주체 없이 마구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는 않은지 반성해 봐야 할 일이다. 이를 모르고 교활(狡猾)과 아첨으로 점철되는 이가 패가망신의 길이라고 새겨두기 바란다.
전설의 동물 교활(狡猾)
흔히 간사하고 꾀가 많은 사람을 교활하다고 말한다. 사실 교활(狡猾)은 전설 속 동물에서 유래한 말이다. 교(狡)와 활(猾)이란 놈은 중국의 기서(奇書)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동물인데 간사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활(猾)은 뼈가 없는 동물이다.
길을 가다가 호랑이라도 만나면 몸을 똘똘 뭉쳐 조그만 공처럼 변신하여 제 발로 호랑이 입속으로 뛰어들어 내장을 마구 파먹는다. 호랑이가 그 아픔을 참지 못해 뒹굴다가 죽으면 그제야 유유히 걸어 나와 교활한 미소를 짓는다. 안타까운 사실은 오늘날까지 교활(狡猾)이라는 동물이 우리 주변에 활개를 치고 다닌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왕으로 꼽히는 황제는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다. 이세민은 열린 마음과 소통 리더십의 제왕으로 최고의 태평성대, 즉 '정관의 치'를 구현했다.
당 태종은 신하의 직언에 귀를 기울이고 신하들의 간언을 장려한 정치철학을 실천했다. '간언하는 신하를 곁에 두어라', '솔직하게 직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라'로 그의 정치 철학을 요약할 수 있다.
당 태종의 정치 철학을 다룬 '정관정요'는 오늘날에도 치세술의 명저로 꼽히고 있으며, 군주의 도리와 인재 등용에 대한 훌륭한 지침을 보여주고 있다.
정관정요에서 이세민은 '신하란 군주의 허물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존재'라고 말하면서 '역린(逆鱗)을 건드려 달라'는 주문을 했다. 역린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이다.
군주가 노여워하는 군주만의 약점 또는 노여움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군주의 노여움을 무서워하여 옳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말하지 않는 신하란 충신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세민에게는 '옳음'을 위해서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조차 두려워 않는 위징이라는 충신이 있었다.
위징은 이세민의 결정이 백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여지없이 제동을 걸었다. 무려 300번 이상, 이세민의 노여움을 살 만큼 과감한 비판을 하기도 했다.
위징이 죽은 후, 태종은 645년 고구려를 침입했다. 그는 안시성 싸움에서 대패해 도망한 뒤 시름시름 앓다 3년 뒤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참담한 실패를 맛본 태종은, '위징이 살아있었다면 이번 원정을 말렸을 것'이라는 후회를 '신당서' 위징열전 편에 남겼다.
태종이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를 묻자 위징은,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습니다. 물은 배를 뜨게도 하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습니다(君舟民水)'는 비유로 답했다.
위징이 없는 이세민의 실패한 마지막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과거의 정부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부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교훈이다.
백성을 위해서라면 임금에게 역린을 건드리는 충언을 아끼지 않을 수 있는 충신이 필요한 시기이다. 간신 교활(狡猾)이 아니라 충신 위징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세상을 기대하면서 언론이 오늘의 위징이 되어 줄 것을 주문한다.
교활(狡猾)
교활(狡猾)과 낭패(狼狽)는 상상의 동물 이름이다. 이 교활(狡猾)이란 놈은 어찌나 간사한지 여우를 능가할 정도인데, 중국의 기서(奇書)인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동물이다.
교(狡)라는 놈은 모양은 개인데 온몸에 표범의 무늬가 있으며, 머리에는 쇠뿔을 달고 있다고 한다. 이놈이 나타나면 그해에는 대풍(大豊)이 든다고 하는데, 이 녀석이 워낙 간사하여 나올 듯 말 듯 애만 태우다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이 교(狡)의 친구로 활(猾)이라는 놈이 있는데 이놈은 교(狡)보다 더 간악하다. 이놈은 생김새는 사람 같은데 온몸에 돼지털이 숭숭 나 있으며 동굴 속에 살면서 겨울잠을 잔다. 도끼로 나무를 찍는 듯한 소리를 내는데, 이놈이 나타나면 온 천하가 대란(大亂)에 빠진다고 한다.
이처럼 교(狡)와 활(猾)은 간악하기로 유명한 동물인데, 길을 가다가 호랑이라도 만나면 몸을 똘똘 뭉쳐 조그만 공처럼 변신하여 제 발로 호랑이 입속으로 뛰어들어 내장을 마구 파먹는다.
호랑이가 그 아픔을 참지 못해 뒹굴다가 죽으면 그제야 유유히 걸어나와 미소를 짓는다. 여기에서 바로 그 '교활한 미소'라는 관용구가 생겨났다.
동작빈(董作賓)의 '연표학(年表學)'에 따르면, '산해경'의 저자는 우(禹)와 백익(伯益)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는 서기전 2183∼2175년까지 9년간 왕위에 있었으므로 2175년을 교활(狡猾)의 출현 시기로 잡는다.
전국시대 연나라의 음양오행학자 추연이 지었다거나, 춘추전국시대 무렵 초나라 사람들이 이 책을 지었다는 다른 주장도 있다.
그 밖의 흥미로운 상상 속 동물들
'산해경'에서는 교(狡)가 들판에서 소리쳐 울면 오곡이 풍성하게 익어 풍년이 든다고 적혀 있다. 교활(狡猾)과 유예(猶豫) 역시 상상 속의 동물이다. 교활하다는 말은 속임수를 잘 써서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교(狡)는 모습은 개와 같고 몸에는 표범 무늬가 있으며, 소처럼 뿔이 나 있는 짐승으로, 개 짖는 소리를 낸다. 활(猾)은 뼈가 없는 동물이다. 호랑이 앞에서 얼쩡거리면 호랑이가 먹이인 줄 알고 냉큼 삼킨다. 하지만 뼈가 없으므로 활(猾)을 삼킨 범은 씹을 수가 없다. 활(猾)은 호랑이 뱃속에 들어앉아 안에서부터 호랑이를 파먹어 들어간다. 이 얼마나 교활한가?
또한, 무슨 일을 결정하지 못해 망설이거나 시일을 미루는 것을 유예(猶豫)라고 한다. 유(猶)와 예(豫)도 모두 전설 속의 동물들이다.
유(猶)는 원숭이, 예(豫)는 코끼리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 두 짐승 다 의심도 많고 겁도 많아 주위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거나, 우물쭈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도 의심이 많아서 차마 내려오지 못하고 매달려 있거나, 내려왔다가 다시 얼른 올라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유예(猶豫)는 무엇인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머뭇거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법률 용어로 쓰는 집행유예(執行猶豫)라는 말은 잘못을 저질러 형을 집행해야겠는데, 형의 집행을 잠시 연기해서 지켜보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죄인을 감옥에 보내지 않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중에는 후대 사람이 글자에 맞추어 억지로 만든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내용이 많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속에서 옛 사람들의 상상력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다.
산해경(山海經)
(상상력의 보물창고)
동아시아 상상력의 근원을 찾아서
당신은 보르헤스(J L Borges)의 '상상동물 이야기'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보르헤스, 이 괴짜 작가는 그야말로 상상력의 화신이라 할 만큼 기발한 작품들을 많이 썼다.
그 덕택에 우리는 세상이 평면경에 비쳐진 것처럼 똑바른 것만 아니고 볼록거울이나 오목거울에 비쳐진 것처럼 굴곡지게 생겼다는 것도 알게 되고, 정상적인 일과 더불어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도처에 편재해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당신은 상상력의 힘을 실감하는가?
미국의 한 저명한 잡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오늘날의 첨단 과학 기기는 대부분 과거의 SF소설이나 만화에서 상상했던 일들이 실현된 케이스라 한다.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를 읽어보면 동서고금의 수많은 이상한 동물들이 출현한다. 가령 사자도 이길 수 있다는 일각수(unicorn)에 대한 기록을 보자.
어떻게 일각수를 잡을 것인가? 일각수 앞에 처녀를 데려다 놓는다. 그러면 일각수는 처녀의 품안으로 뛰어든다. 처녀는 일각수를 감싸 안고 국왕의 궁전으로 끌고 가면 된다.
용맹한 일각수이지만 단 하나 약점이 있다. 순결한 처녀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용해 일각수를 포획할 수 있다. 매사가 이런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괴짜의 대가 보르헤스도 경탄을 금치 못할, '상상동물 이야기'의 원조 같은 책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국의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이다.
보르헤스는 '상상동물 이야기'의 서문에서 자기 책이 '햄릿 왕자, 점, 선, 평면, 관처럼 생긴 것, 입방체, 모든 창조와 관련된 단어들 그리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신을 정당화시켜줄 수 있을 것'이며 '모든 것의 총체, 즉 우주'라고 추켜세운바 있는데 사실 이러한 찬사는 '산해경'에게 바쳐져야 할 것이다.
모든 이야기의 조상이자, 상상력의 근원인 신화에 대해 우리는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대개 알고 있지만 동아시아 신화에 대해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황제(黃帝)가 제우스로, 서왕모(西王母)가 헤라로, 예(羿)가 헤라클레스로 대체되어 과거 동아시아의 신들은 이제 '사라진 신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라진 신들'과 교신하려면 우리는 '산해경'을 읽지 않으면 안된다. '산해경'에는 고스란히 이 신들이 남아 있어서 우리가 호출할 때 뛰어나와 우리의 무의식에 각인된 그들의 이미지를 환기시켜 줄 것이다.
산해경은 어떠한 책인가?
그렇다면 '산해경'은 과연 어떠한 책인가? '산해경'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 전에 성립된, 중국의 대표적인 신화집이다.
대체로 기원전 3~4세기 경에 무당들에 의해 쓰여진 이 책에는 중국과 변방 지역의 기이한 사물, 인간, 신들에 대한 기록과 그들에 대한 그림이 함께 실려 있다.
이 책이 만들어진 동기에 대해서는 무당들의 지침서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고 고대의 여행기라는 설도 있다. 근대 이후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책은 종교적으로 샤머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산신에 대한 제사에서 쌀을 바친다든가, 곤륜산(昆侖山)과 같은 세계 대산, 건목(建木)과 같은 세계수에 대한 숭배, 가뭄 때 희생되는 무녀(巫女)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그러한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샤머니즘이 성행했던 고대 은(殷) 왕조의 문화 내용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은 왕조의 조상신인 왕해(王亥), 제준(帝俊) 등에 대한 신화는 다른 고서(古書)에서 잘 보이지 않는데 '산해경'을 통해서 그 내용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은(殷) 및 동이계(東夷系) 민족의 특징적인 문화현상으로 간주되는 조류숭배와 관련된 신화내용도 많이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산해경'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책이 단순히 오늘날의 중국 신화와만 상관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인근의 여러 민족들, 한국, 일본, 월남, 티베트, 몽골 등 동아시아 전역의 고대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산해경' 신화가 형성되던 시대의 대륙은 결코 오늘날과 같은 하나의 중국이 존재했던 장소가 아니고 수많은 종족이 이합집산을 거듭했던 무대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산해경'을 중국 신화집으로만 보지 않고 동아시아 고대문화의 원천이자 상상력의 뿌리로 간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산해경의 신화세계
이제 '산해경'의 신화세계를 탐색해 보기로 하자. 우선 신들의 세계를 보게 되면 '산해경'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처럼 다양한 능력을 가진 신들이 등장하는데 마치 제우스와 같이 산해경 신화에서 신들의 왕으로 군림하는 대신은 황제(黃帝)이다.
그런데 황제는 중원의 지배자였으나 변방의 강자인 치우(蚩尤)의 도전을 받아 신국(神國)은 일대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그 상황을 산해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대황북경(大荒北經)에 '치우가 무기를 만들어 황제를 치자 황제가 이에 응룡(應龍)으로 하여금 기주(冀州)의 들에서 그를 공격하게 하였다. 응룡이 물을 모아둔 것을 치우가 풍백(風伯)과 우사(雨師)에게 부탁하여 폭풍우로 거침없이 쏟아지게 했다. 황제가 이에 천녀(天女)인 발(魃)을 내려 보내니 비가 그쳤고 마침내 치우를 죽였다.'
황제, 응룡, 발(가뭄의 신)과 치우, 풍백(바람의 신), 우사(비의 신) 두 계열의 신들의 전쟁은 황제 측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황제는 여러 종족의 조상으로, 문명의 창시자로 추앙된다.
이 전쟁신화는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히는데 중원과 변방의 대립에서 중원의 정통성 확립, 야만 상태인 카오스에서 조화로운 문명인 코스모스로의 이행 등의 해석이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단군신화에서 환웅천왕을 보필했던 풍백과 우사가 이번에는 치우를 도와 황제와 싸우고 있는 모습이다. 이로 미루어 치우가 단군신화 내지 한국의 신화와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 추리해 볼 수도 있다.
다음으로 '산해경'에 표현된 신화적 사물의 세계에 대해 알아보면, 산해경에는 신성한 지역, 머나먼 이방 등에서 언제나 일상을 초월한 기이한 형상의 사물이 등장한다.
가령 능양의 못에 산다는 염유어라는 물고기를 보자. 서차사경(西次四經)에 '다시 서쪽으로 350리를 가면 영제산(英鞮山)이라는 곳인데, ··· 완수(涴水)가 여기에서 나와 북쪽으로 능양(陵羊)의 못에 흘러든다. 이곳에는 염유어(冉遺魚)가 많은데 물고기의 몸, 뱀의 머리에 발이 여섯이며 눈은 말의 귀와 같다. 이것을 먹으면 가위눌리지 않고 흉한 일을 막을 수 있다.'
염유어는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다. 그것은 물고기, 뱀, 말의 신체적 특징을 합쳐놓은데다가 발까지 달려 있어 양서류 같기도 한 기이한 동물이다.
신화적 동물은 대개 이러한 잡종적 형상으로 묘사되는데 그것은 그 동물이 갖는 비범한 능력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염유어를 먹을 때 악몽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이 물고기가 상상계에 대해서도 힘을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로써 고구려 고분벽화에 왜 염유어가 등장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것은 죽은 자의 편안한 내세를 도모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겠는가?
산해경에 나타나는 신성한 사물은 잡종적 형상 이외에 양성구유(兩性具有)의 특징을 지니기도 한다.
가령 '남산경(南山經)'의 단원산(亶爰山)에 산다는 유(類)라는 짐승은 너구리 같이 생겼는데 저 홀로 암수를 이루고 그것을 먹으면 질투를 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양성구유란 두 극단을 조화시키려는 신화적 지향의 표현이다. 질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짐승의 양성구유적 특성으로부터 비롯한 공감주술적 효능의 결과이다.
신들의 세계, 신화적 사물의 세계에 이어 살펴 보아야 할 것은 신화적 인간의 세계에 대해서이다. 신화적 사물과 마찬가지로 신화적 인간 역시 일상의 주거 지역이 아닌 곳에서 기괴한 형상으로 출현한다.
가령 중국의 남쪽 변방에 있다는 관흉국(貫匈國)이라는 나라의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보자. 해외남경(海外南經)에, '관흉국 그 동쪽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가슴에 구멍이 나 있다.'
원문은 간단하지만 주석에 의하면 관흉국 사람들 중 신분이 높은 사람은 웃옷을 벗고 천민들로 하여금 대나무로 가슴을 꿰어들고 다니게 한다고 하였다.
또 다른 기이한 모습은 저인국(氐人國) 사람에 대한 묘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해외남경(海外南經)에, '저인국이 건목(建木) 서쪽에 있는데 그들은 사람의 얼굴에 물고기의 몸이고 발이 없다.'
이것은 완연히 서구 동화에 나오는 인어의 모습이다. 그러나 산해경의 그림을 보면 저인국 사람은 서구와 같이 예쁜 여자 인어가 아니라 무뚝뚝하게 생긴 남자 인어이다.
왜 서구에서는 인어를 여성으로 보고 중국에서는 남성으로 인식했을까? 그것이 바로 문화적, 풍토적 차이일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보면 진시황의 무덤 속을 밝히기 위하여 인어의 기름을 짜서 만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을 켜두었다고 한다. 그 인어가 저인국 사람이었을까?
산해경에서 표현된 신화적 인간은 대부분 이처럼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너무나도 큰 귀를 두 손으로 붙들고 살아가는 섭이국(聶耳國) 사람들, 머리가 하나에 몸이 셋인 삼신국(三身國) 사람들, 입에서 불을 토해내는 염화국(厭火國) 사람들, 소인국과 대인국 사람들 등 산해경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이한 모습의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이들이 모두 중원이 아닌 변경 밖에 사는 이방인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여기서 고대 중국인들의 종족중심주의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원을 의식세계로, 변경 밖을 무의식 세계로 빗대어 본다면 이민족의 이와 같은 다양한 모습은 우리의 무의식에 감추어진 수많은 욕망의 형상적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산해경이라는 방대한 책에서 지금까지 예를 들어 소개한 신화적 존재들에 대한 내용은 극히 작은 부분으로 산해경의 전체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에는 물론 역부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화의 편린들을 통해서나마 서구 신화와는 분명히 색깔이 다른 신화의 큰 물줄기를 확인하고 그것이 여전히 우리의 상상력의 근저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면 다행이라 할 것이다.
◼ 어떻게 산해경을 읽을 것인가?
자,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물을 것이다. 산해경이라는 책이 상상력의 근원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읽는단 말인가? 그냥 읽으면 안될까? 그렇다! 우리는 근대 이후, 우리 이야기를 읽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밖에서 들어온 이야기, 곧 소설은 무슨 엄숙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아(작가들도, 평론가들도 모두 목에 힘을 주고 말하기 때문에) 경전처럼 읽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해야 하고, 주제 의식이 분명해야 하고, 구조가 치밀해야 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이 뚜렷해야 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 담겨 있어야 하고, ···해야 하고, ···해야 하고, 아마 이런 조건에 견뎌낼 우리 이야기가 있을까?
옛적에는 대개 저녁 먹고 슬슬 산보 삼아 마을 한복판에 가보면 얘기꾼이 사람들을 불러놓고 이야기판을 벌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걸 몇 푼 주고 부담 없이 듣고 오면 되는 것이 우리의 이야기였다. 그때의 얘기꾼이 말했던 대본을 직접 구해다 읽은 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고전 소설이다.
산해경은 신화집이니까 물론 고전 소설과도 다르다. 여기에 비하면 같은 신화라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너무나 인간중심적이고 구조도 소설처럼 잘 짜여져 있다.
그런데 산해경은 온갖 괴물들이 제각기 출현하지만 일정한 줄거리가 없다. 파편화된 이미지의 행진일 뿐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남산경(南山經)에, '다시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청구산(靑丘山)이라는 곳인데 그 남쪽에서는 옥(玉)이, 북쪽에서는 푸른 흙이 많이 난다. 이곳의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여우같은데 아홉 개의 꼬리가 있으며 그 소리는 마치 어린애 같고 사람을 잘 잡아먹는다. 이것을 먹으면 요사스러운 기운에 빠지지 않는다.'
산해경은 이와 같은 문장의 수 없는 반복이다. 어느 산엘 가면 무엇이 있고, 다시 어느 산엘 가면 또 무엇이 있고, 하는 식이다. 수천 년 전 무당들의 핸드북, 이것이 산해경이다.
어느 방향, 어느 지역에 어떤 괴물, 어떤 신, 어떤 이상한 사물이 있는가를 밝혀 놓은 책이다. 아니, 책이 아니라 원래는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설명해 놓은 말이 오늘날 남아서 글이 되었다.
산해경에는 아직도 150폭의 그림이 있다! 위의 예문을 보고 눈치 빠른 독자는 청구산에 사는 짐승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것은 구미호이다.
야담에서 많이 나오는 이상한 여우, 혹은 요사스러운 여자의 대명사인 구미호의 아키타입(archetype)이 바로 산해경에 있는 것이다.
산해경의 글은 이처럼 이미지에 의존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구조적이지 않고 체계적이지도 않다.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한 편의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근대 소설처럼 한 편의 잘 짜여진 명작을 예상했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끝없이 반복되는 '어디에 무엇이 있고' 하는 식의 이야기, 그것을 계속 읽노라면 마치 무당의 주문을 암송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아까 얼핏 본 한 구절에서 느꼈듯이 산해경의 그 단편적인 이미지 하나하나는 동아시아 상상력의 원천이다.
나는 이런 좋은 책을 행여 당신이 읽다가 중도에 포기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러나 당신은 기억해야 한다. 앞서 강조했듯이, 우리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근대 소설에 대해 거는 기대를 갖고 읽으면 별로 재미가 없다.
우리 이야기는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얼개가 엉성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동서양 문화권의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 결코 열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중언부언 길게 얘기를 해왔지만 결론적으로, 그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나는 여기에서 도연명(陶淵明)이라는 중국의 위대한 시인이 산해경을 어떻게 읽었는지, 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도연명은 '산해경을 읽고' 라는 시를 남겼는데 거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반갑게 봄술 기울이며,
터밭의 푸성귀를 뜯네.
보슬비 동쪽으로부터 나리고,
훈풍도 더불어 불어올 제.
목천자전(穆天子傳)을 두루 보고,
산해경을 훑어보네.
잠깐 사이에 우주를 돌아보게 되니,
진정 즐거운 일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도연명은 지금부터 1,500여 년쯤에 살았던 전원시인이다. 그는 농사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와 산해경을 훑어본다. 이 '훑어보네'의 원문은 '유관(流觀)'으로 되어 있다. 즉 '물이 흘러가듯이 본다'는 뜻이다. 물이 흘러가듯이. 그렇다!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따라서 읽어나가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산해경을 읽을 때 당신은 심각하게 의미를 탐구할 필요는 없다. 그저 물 흐르듯 이미지에 몸을 맡기면 될 것이다.
그럴진대 당신은 부지중 산해경의 원초적 이미지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고, 그때 당신의 묻혀 있던 상상력이 잠에서 깨어나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른다. 도연명은 이미 '잠깐 사이에 우주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산해경은 어떠한 성격의 책인가?
산해경은 신화서로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지리서로서의 기능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민속학, 종교학, 역사학 등과 깊은 관련이 있고 최근에는 UFO, 첨단 과학 등과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와 같이 복잡한 성격을 지닌 산해경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상력을 발휘하는 훈련이 된다.
2. 산해경은 우리 문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동이계 신화의 내용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산해경에는 우리의 신화 및 문화와 관련된 내용이 적지 않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염제(炎帝), 인면조(人面鳥), 거인 과보(夸父), 삼족오(三足烏) 등 산해경 신화의 모티프들은 이의 훌륭한 증거이다.
3. 산해경의 신화적 상상력을 현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오늘날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 문화산업에서는 신화적 소재를 많이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서구 신화나 중세의 마법, 기사 이야기를 소재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해경의 기발한 이야기와 독특한 이미지 자료들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서구 상상력 중심의 문화산업을 벗어나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 狡(교활할 교)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交(교)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狡(교)는 ①교활(狡猾)하다, 간교(奸巧)하다 ②시샘하다, 의심하다 ③예쁘다, 음란하다 ④사납다, 개가 짖다 ⑤미치다(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 ⑥해치다 ⑦강건(強健)하다, 용맹스럽다 ⑧재빠르다, 급하다 ⑨어그러지다, 어긋나다 ⑩개의 이름 ⑪짐승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교활할 활(猾)이다. 용례로는 약은 꾀를 쓰는 것이 능함을 교활(狡猾), 간사하고 꾀가 많음을 교쾌(狡獪), 간사한 재주와 지혜를 교지(狡智), 날쌘 토끼를 교토(狡兔), 성품이 비뚤어지고 교활함을 경교(傾狡), 약삭빠르고 사나움을 교광(狡獷), 교활한 마음을 교정(狡情), 교활하고 음험함을 교험(狡險), 교활하게 생긴 아이를 교동(狡童), 교활하고 간악함을 교악(狡惡), 교활한 관리를 교리(狡吏), 간사한 꾀로 남을 속임을 교사(狡詐), 성품이 비뚤어지고 교활함을 경교(傾狡), 미친 듯이 날뜀 또는 그런 사람을 광교(狂狡), 난폭하고 교활함 또는 그러한 사람을 표교(剽狡),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교토사주구팽(狡兔死走狗烹),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 놓는다는 교토삼굴(狡兔三窟) 등에 쓰인다.
▶️ 猾(교활할 활)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骨(골, 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猾(활)은 ①교활하다(狡猾--), 간사하다(奸邪--: 마음이 바르지 않다) ②어지럽다, 침범하다(侵犯--) ③어지럽히다 ④희롱하다(戱弄--), 가지고 놀다 ⑤교활(狡猾)한 사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교활할 교(狡)이다. 교활한 아전이나 관리를 활리(猾吏), 교활하고 악한 도둑을 활적(猾賊), 교활한 지혜를 활지(猾智), 어떤 사람이 약은 꾀를 쓰는 것이 능함 또는 술수나 행동 따위가 능란함이 있게 약음을 교활(狡猾), 간사하고 교활함이나 간악하고 교활함을 간활(奸猾), 침략하여 어지럽힘을 침활(侵猾), 음흉하고 교활함을 흉활(兇猾), 본토박이의 교활한 무리를 토활(土猾), 혜성의 하나로 목성에서 생성된 별을 천활(天猾), 사납고 간교함을 한활(悍猾), 모질고 교활함 또는 그런 사람을 광활(獷猾), 하는 짓이 추잡하고 교활함을 추활(麤猾), 능갈치고 교활함을 능활(能猾), 간악하고 교활함을 회활(獪猾), 간악하고 교활한 사람이 없어지게 하는 일을 간활식(姦猾息)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