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문학관>
장마가 물러가고 더위도 막바지에 이른 8월 초에 안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다행히 회색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다가 간간히 비를 뿌려 주기도 하니 그다지 덥지 않아 다행이었다. 인터넷으로 가는 길을 검색하며 도착할 때 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니, 서울에서 안동까지 고속버스는 3시간 30분, 승용차는 2시간 30분 걸린다고 하였다. 하지만 첫 번째 코스인 이육사 문학관까지 4시간이 넘게 달려 왔다.
이육사문학관은 도산서원과 퇴계종택을 지나 조금 더 가서 있었다. 2층 건물의 문학관 전면 벽 에는 시인과 소설가들의 년 중 강의 프로그램이 작가들의 사진과 함께 붙어 있었다. 떠나기 며칠 전에 전화해 만나기로 한 이육사선생의 유일한 따님인 이옥빈 여사를 찾았다. 2층 사무실로 안내 되어 시인이기도 한, 문학관 관장 이영일 선생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이옥빈 여사가 들어 왔다. 자그마한 체구에 얼굴에 미소를 띤 모습이 단아해 보인다. 커피를 대접 받으며 두 분이 들려주는 이육사 선생의 이야기에 어느덧 2시가 넘었다.
이옥빈 여사와 점심을 먹을 계획이어서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던 우리 일행은 여사의 안내로 식당을 찾아 문학관을 나섰다. 가는 길에 자기가 살고 있는 묵재(穆齎)고택을 들려서 가자고 안내하였다. 들어가는 입구의 넓은 꽃밭에 꽃이 피어 있어 고택의 정취가 더욱 그윽하다. 하얀 고무신이 정갈하게 놓인 댓돌위에 눈길이 간다. 사진 한 장 찍고 안내하는 대로 이방 저 방 들어가 보고 여사가 기거하는 방에도 들어가 보았다. 한식 온돌방으로 벽장이 있던 자리를 개조하여 화장실로 개조하여 편리하게 꾸며 놓았다. 주말이 되어 서울에서 내려 온 아드님이 집 안팎을 드나들며 일을 하고 있었다. 양반 동네 안동. 가는 곳곳마다 고택이 즐비하고 예스럽기 그지없다.
목재고택을 나와 시골길을 한참 달려가서 식당까지 기와지붕인 까치소리 식당에서 더덕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모두들 맛있어하며 남김없이 그릇을 비웠다.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 1904. 경북 안동 출생~ 1944. 1. 16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사망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이다. 육사(陸史)는 그의 아호로 대구형무소 수감생활 중 수감번호인 264를 후일 아호로 썼다. 다른 필명은 이활(李活)이다.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진보)이며,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한학을 수학하다가 도산공립보통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1925년 10대 후반에 가족이 대구로 이사한 뒤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7년 10월 18일 일어난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형인 원기, 동생 원일과 함께 처음 투옥되었다.
문단 등단 시기는 《조선일보》에 〈말〉을 발표한 1930년이며,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중국과 대구, 경성부를 오가면서 항일 운동을 하고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작품도 발표했다. 그동안 대구 격문 사건 등으로 수차례 체포, 구금되었다.
1932년 6월 초 중국 베이징에서 만국빈의사에서 노신을 만나, 동양의 정세를 논하였다. 후일 노신이 사망하자 조선일보에 추도문을 게재하고 그의 작품 《고향》을 번역하여 한국 내에 소개하였다.
1943년 국내에서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되었고, 다음해인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 구금 중 순국했다. 유고시집 《육사시집》(1946)이 동생이자 문학평론가인 이원조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 강점기 하의 그의 항일 투쟁활동과 일제 강점기 하의 詩作활동을 기려 '건국포장', '건국훈장 애국장',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탄신 100주년과 순국 60주년을 기념하여 2004년에는 고향인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마을에 '이육사 문학관'이 건립되었으며 시문학상이 제정되었다. 또한 안동시는 안동 강변도로를 '육사로'로 명명하였다.
첫댓글 의미있는 여행을 하셨네요. 자세히 올려놓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지나면서 본것 같아요 육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