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3일 고모께서 향년 93세로 돌아가셨습니다. 고모에 대한 제 인상은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가족들이랑 함께 계실 때도, 묵주를 쥐고 기도문을 펴, 쉬지 않고 기도하셨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과 듣고 말하며 대화하실 때도 무리가 없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셨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와 사람들과의 대화에 특별한 경계가 없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사닥다리를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는 것 같았습니다(창28:12). 쉬지 않고 기도하시던 고모의 영혼이 천국에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천국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생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벧전2:9).」 믿음을 지키다가 죽은 이들뿐 아니라, 세상에 남아 교회를 이루어 믿음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베드로는 특별히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서 사는 나그네들(벧전1:1)」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격려’합니다(벧전5:12). 로마 제국 치하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지만, 천국의 백성으로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당시 교회였습니다. 제국보다 더 좋은 천국을 살며, 또 죽어서도 천국에 이를 것을 믿으며 사는 사람들이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구성원들 중엔 ‘하인’과 ‘여성’이 많았습니다(벧전2:18~3:6). ‘남성’들도 있었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지 싶습니다(벧전3:7). 교회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하인’과 ‘여성’이었습니다. 하인이라는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사람의 수에 들지 않았던 여성들이 교회의 주 구성원이었습니다. 이들을 하나님께선 천국의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당시 교회의 주 구성원인 하인들과 여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선택받은 종족, 임금이신 하나님의 제사장 일을 맡은 사람들, 거룩한 민족,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어둠에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이끌어 들이신 분의 뛰어난 일들을 여러분이 힘껏 알리도록 말입니다(벧전2:9).」
교회의 자리는 낮은 계급의 사람들과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제국에서 낮은 계급의 사람들과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어야, 천국을 바라는 하나님의 백성을 소망할 수 있었겠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눅6:20).」
어제 3월 19일 귀한 손님이 10개월 만에 책방을 방문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K가 과자봉지를 흔들며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온 것입니다. 10개월 전엔 쓰지 않던 안경을 쓰고 있어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K였습니다. K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말을 하는데, 한국 국적이 없습니다. K의 엄마 M씨는 베트남이 고향이고 현재 비자가 없습니다. “30cm짜리 주방용 나무젓가락으로 종아리를 한 대 때렸다”는 이유로 엄마는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법원의 판결이 날 때까지 엄마와 딸은 분리되어 있습니다. K는 엄마와 분리된 상태에서 코로나에 감염돼 그룹홈에서도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비자 없는, 국적 없는, 그야말로 ‘나그네(벧전1:1)’로 살아가는, 그래서 억울한 상황을 맞기도 하는 가족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과 내일, 장애인 자조모임 ‘푸른 하늘’이 제주도에 여행을 갑니다. 지적장애인 D씨는 가족 외 사람들과 처음 1박 여행을 갑니다. 가족들과 여행 좀 다녀본 학영 씨는 여행 코스와 식당을 자신 있게 소개합니다. 맏언니 Y씨는 여행을 위해, 꾸준히 알바를 했구요. 충분한 소득이 없는 장애인 청년들이 장거리 여행을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협동조합 달팽이학교가 지원하고 비장애인 조력자가 동행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보태주신 분들이 더 있어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게 됐습니다.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어려워 일상 속에 잘 드러나지 않는 장애인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계급사회는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는 게 현실입니다. 베드로의 격려를 받는 하인들과 여성들처럼, 자유가 없고, 가난하고,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있는 게 현실입니다. 교회가 만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하인들과 여성들을 특별히 격려하면서, 남성들에게도 말을 남겼습니다. 여성을 ‘존중’하라고 합니다(벧전3:7). 교회에 ‘주인’들이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하인을 ‘존중’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아마 베드로가 아는 한 당시 교회엔 '주인'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 굳이 ‘주인’에게 말씀을 남기지 않았겠습니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 존중하고, 하인과 주인이 서로 존중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존중하며 만나고, 이주민과 선주민이 서로 존중하며 만나는 시공간이 천국입니다. 그 천국의 백성들이 교회입니다.
돌아가신 고모에게 받았던 사랑을 생각합니다. 대학에 입학해 서울에 왔을 때, 몹시 마른 저를 보시고 제기동 한약 거리에서 보약을 지어 주셨습니다. 자주 뵙지 못했고, 또 치매를 앓으셔서 간혹 제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실 때도 있었지만, 당신이 베푸신 사랑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인생이 다하는 날, 제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 한 가지씩만 남겨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닿는 어리고 약한 사람에게 한 가지 기억할만한 작은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 우리의 믿음은 증명됩니다. 엄마와 분리되어 더 시간을 보내야하는, 코로나를 앓으며 격리되어야 했던 K에게 비타민 영양제를 들려 보냈습니다.
하인, 여성, 장애인, 이주민 「여러분들이야말로 선택받은 종족, 임금이신 하나님의 제사장 일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제사장 있는 자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입니다. 제사장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때에 우리 영혼은 구원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