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신차 보다도 사람이 인기였던 모터쇼 이번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도 여타의 모터쇼와 어김없이 새로운 차종들이 선을 보였다. 주요한 차종들로는 벤츠의 신형 S클래스가 나왔었고, 재규어의 신형 XK 쿠페도 ‘마침내’ 선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차량들보다 더 인기를 끈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이었으며, 가장 많이 화두에 오른 사람은 폭스바겐 브랜드의 신임회장인 볼프강 베른하르트(Wolfgang Bernhard)였다. 그가 가는 곳마다 언론진이 따라다녔으며, 그가 하는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뉴욕타임즈는 자사의 웹사이트를 통해 VOD로 소개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가장 화제의 인물은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의 새로운 회장인 디어터 제체 회장이라고 말했지만 정작 비디오서 찍힌 제체 회장의 모습은 베른하르트 회장이 이번 모터쇼에서 선보인 VW의 신형차인 이오스(Eos)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두 명 다 메르체데스 벤츠의 엔지니어 출신이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크라이슬러의 총책임을 맡았으니 말이다 (제체 회장은 크라이슬러 CEO, 베른하르트 회장은 크라이슬러 COO). 그리고 두 명은 크라이슬러를 성공적으로 살려냈고, 베른하르트가 메르체데스 벤츠 CEO로 취임하기 전 그룹 내부 권력 다툼으로 실각하고 푸대접에 가까운 대접을 받자 가장 불평을 많이 한 사람중의 하나가 제체였다. 이제는 두 명 다 중환에 걸려 있고 더 큰 환자인 메르체데스 벤츠와 VW을 각각 맡게 되었으니 이들 두 명에게 독일을 비롯한 전세계 자동차 업계의 관심이 집중될 만도 했다.
새로운 임무에 임명된 지 불과 몇 달이 안된 체제 회장과 달리 이미 1년 이상의 적응기간을 마친 베른하르트 회장은 부가티, 벤틀리, 폭스바겐과 세아트 등 4개의 브랜드를 책임지는 폭스바겐 브랜드 회장으로 처음 공개석상에서 말한 것은 VW 브랜드가 처한 어려움이었다. 북미 VW지사는 2003년에 한화 1조2천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으며, 임금과 각종 복지혜택, 그리고 구조정리가 어려운 VW의 회사구조로 인하여 정체현상에 빠져들고 있는 회사 앞날은 매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VW의 미래밖에 없다’는 절박한 말로 노조측의 양보를 강하게 부탁했고, 안 그럴 경우 VW의 신형 소형SUV 생산지를 독일의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스페인의 VW공장으로 옮기겠다는 발언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원가절감을 통해 예산을 절감하고, 절감한 재정으로 제품개발에 투자하여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그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크라이슬러 시절 개발을 이끈 크라이슬러 300C를 비롯하여 매그넘 등의 인기도 바로 뛰어난 제품 대비 저렴한 가격 (300C는 V6엔진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가격이 $24200에서 시작한다)을 구현했기 때문이고, 이것을 바탕으로 VW에서도 동일한 전략을 구사하고자 한다. VW의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그는 간단하게 ‘크라이슬러 시절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기도 하다.
1. 5년 내에 10~15개 신차종 이번 모터쇼에서 베른하르트 회장과 함께 등장한 VW Eos는 하드탑 컨버티블이면서도 썬루프가 장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VW에게 완전히 새로운 차종이다. 그러나 그는 향후 5년간인 2010년까지 Eos와 마찬가지로 현재 차종에는 없는 새로운 차종 10~15가지를 내놓을 것이라며 VW측의 제품 공세를 선언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일 정도로 많은 차종이 나오는 듯 하지만 현재 1.0리터급 가솔린과 디젤엔진부터 5.0리터급의 가솔린과 디젤인 W12엔진의 개발 및 생산능력을 비롯하여 FSI와 TDI등의 뛰어난 기술력까지 보유한 폭스바겐에게는 그의 선언은 현실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이러한 다양한 엔진군을 채용할 플랫폼만 존재하면 새로운 제품을 창출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점이다. 또한 유럽 최대의 메이커임에도 불구하고 VW 브랜드 차종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바, 베른하르트 회장의 선언은 모든 세그먼트(segment)와 틈새시장(niche market)에 있어서 제품을 투입하는 경쟁사들에 대한 선전포고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면 도대체 어떠한 10~15개의 신차종들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그동안 VW의 신제품 소식을 간간히 듣고 있던 필자는 그 숫자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 정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1) SUV/Truck/Minivan 군 – VW 신차종으로 네 개의 차종이 예상됨. 도요타가 미국 시장에서 팔고 있는 SUV의 종류로는 소형 SUV인 RAV, 중소형인 하이랜더, 중중형인 4Runner, Tundra 트럭의 4도어형인 세콰이어, 그리고 대형 SUV인 랜드크루저 등 모두 5개 차종이다. 여기다가 트럭으로는 타코마와 툰드라가 있으며, 미니밴으로는 시에나가 있다. 더 나아가 SUV에 신형 라인업으로 FJ Cruiser가 대기하고 있다 (물론 이 차종은 하이랜더를 대체한다는 루머도 있다). 결국 도요타가 미국시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SUV트럭과 미니밴을 합치면 8~9차종이 된다는 것이고, 그에 비례하여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와 매우 대조적으로 VW가 이 분야에서 팔고 있는 것은 단 한 차종으로 투아렉이 전부이며 이런 이유로 SUV/트럭/미니밴을 찾는 사람들에게 VW는 쇼핑 대상이 되기 쉽지는 않다.
이러한 약점에 대해 VW측은 SUV/트럭의 경우 투아렉을 기반으로 하는 SUT 및 크로스오버 차량인 투아렉 스포츠(가칭), 그리고 2007년경 나오는 소형 SUV등 모두 3개의 추가 SUV/트럭 제품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투아렉 SUT는 투아렉을 그대로 4도어 트럭을 만든다는 컨셉이므로 개발은 새롭게 개발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가칭 투아렉 스포츠인 크로스오버 차량은 인피니티 FX35/45와 같이 스포츠 쿠페와 같은 형상으로 이 또한 투아렉을 기반으로 하므로 이 두 차종 모두 개발기간 및 비용은 짧을 수 있다. 소형 SUV의 경우 도요타 RAV와 혼다 CR-V에 대응하는 VW의 경쟁차종으로 골프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경쟁력 있는 가격을 이루기 위해 앞서 언급한 대로 VW의 독일노조에게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에 경영진의 주장이 받아 들여진다면 이 2007년 소형 SUV로 시작될 VW측의 SUV/트럭 공세는 적자로 허덕이고 있는 미국시장에서 결정적인 구원투수 역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니밴의 경우, VW가 1960년대에 미국에 내놓아서 성공한 마이크로버스는 1970년대 말 포드의 사장이었던 리 아이아코카가 크라이슬러로 이직할 때 포드3세의 양해를 받고 가지고 간 미니밴 개발보다 무려 20년 이상 앞선 것으로 VW은 이 분야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VW는 초기 마이크로 버스 이후 이를 대체하는 미니밴 제품이 없었다. 고로 미니밴이 중요한 미국시장을 의식, 2001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마이크로버스 컨셉트를 선보여 후속형을 개발하고자 했지만 뉴 비틀처럼 단순한 아이콘으로 고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인지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이를 대신하여 베른하르트 회장은 친정이었던 크라이슬러 측에 미니밴 개발을 문의하였으며, 크라이슬러측은 사용률이 낮은 북미 공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다. 결국 큰 이변이 없는 한 수년 내로 크라이슬러와 공동개발하고 북미 공장에서 생산된 VW 미니밴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VW측에서는 자사의 상징인 뛰어난 감성 및 디자인을 적용시킨, 크라이슬러의 제품들과는 전혀 다른 제품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