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왜 아버지께 하느님에 대해
말하지 못했을까?’ 오랜 세월 동안 그 생각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후회했다. 그런
데 내가 상담 공부를 하면서 그리고 예수님을 더 가까이에서 체험하면서 우리 아버지
야말로 훌륭한 상담자였고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셨던 분임을 깨닫게 되
었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스물두 명의 손자가 있다. 아버지는 손자들이 각각 무슨 과자를
좋아하고, 무슨 놀이와 장난감을 좋아하고, 무슨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다 기억하셨
다. 아버지는 자식 집에 가실 때 손자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준비해 누구 하나 소외되
거나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게 나눠주셨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맞는 안부를 물어주시
고 그 아이에게 맞는 놀이를 함께하셨다.
자식들 사이에 균열이 있는 듯싶으면 아무 말씀 없이 다 불러 모아 함께 식사를 하셨
다. 가끔씩 맥주도 한 잔씩 따라주시며 “모처럼 너희들과 함께 식사를 하니 밥맛도 좋
고 참 기쁘고 행복한 것이,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복이 제일 많은 부자구나.”라고 말
씀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반성하고 화해와 용서를 하게 되
었다. 아버지는 누구를 만나든 항상 공평하게 대해 주셨고, 늘 말씀과 행동이 일치하
시는 자애롭고 따뜻한 분이셨다.
이제 내가 자녀를 기르고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문득문득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다.
이럴 때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하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때 보았던 아버지
의 지혜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마음 안에는 늘 아버지의 향기가 살아
있다.
오래전 기적처럼 예수님의 삶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버지께 하느님에 대해 말
하지 못한 후회스런 마음을 편히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 아버지의 삶 안에서 예수님
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를 둔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
람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버지의 향기로 살아간다.
윤미경(평화심리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