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03년도 이제 몇일 남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언론과 대중매체들이 앞다투어 올 한해를 되돌아보는 의미로 10대뉴스를 선정하고 있기에 본인도 올해 롯데 자이언츠를 돌아보며 10대 뉴스를 선정하고자 한다. 10대 뉴스는 본인 마음대로 선정하였고 야구전문가들의 의견역시 완전히 무시한 본인의 생각으로만 선정하였기 때문에 약간은 틀릴수가 있지만 그래도 대체적인 의견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10대뉴스로 들어가보자.
10. 심볼, 로고, 유니폼 교체
어설픈 목수가 연장탓을 한다고 했던가? 공부 못하는 학생이 자리탓을 한다고 했던가?
2년 연속 최하위의 수모를 당한 롯데 구단에서 올해 초 대대적인 심볼, 로고 및 유니폼 교체를 단행했다. 프로야구 21년 역사에 처음부터 롯데는 존재해왔고 지금까지 3번의 유니폼 교체가 있었지만 팀의 심볼과 로고까지 대대적인 개편은 이번이 처음이라 생각한다. 당시에 롯데 구단에서는 제2의 창단이란 말과 함께 김해에 전용구장 건립을 하겠다고 발표를 했고 화려한 유니폼 패션쇼도 거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팬들의 반응은 두가지였다. 한쪽은 과거 롯데가 우승했던 원정 청색과 홈경기 베이지의 유니폼으로 돌아가 다시한번 우승을 하자는 쪽이었고, 한쪽은 기존의 유니폼을 완전히 탈피한 주황색을 기조로 유니폼을 만들어서 훨씬 산뜻하게 보인다는 의견이었다.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은 이번 심볼, 로고의 변경으로 한, 미, 일 3국의 자이언츠 팀의 컬러가 주황색으로 통일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 두고 싶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나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각각의 국가에서 명문팀으로 자리잡았지만 한국의 롯데 자이언츠만이 도깨비팀으로 거론되고 있었으니 이번 기회를 계기로 명문팀을 조금이라도 닮아줬으면 하는게 본인의 개인적인 바램이었다.
9. 스파이크 사건
사실 스파이크 사건을 10대 뉴스에 넣기 싫었다. 왜냐하면 롯데 구단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는 것이고 프로야구 21년 역사상 아니 세계 프로 스포츠 역사상 가장 치졸하고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스파이크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것은 8월말쯤으로 기억하며 실제로 선수들이 스파이크를 구걸하고 다닌것은 6월경부터라고 한다.
보통 선수들이 1년에 사용하는 스파이크는 8 - 10켤레정도이고 팀 사정에 따라 무료로 지급해주는 구단과 선수들에게 염가로 제공하는 구단이 있다. 롯데는 올해 나이키와 계약을 맺고 스파이크를 선수들에게 제공했다. 하지만 이러한 스파이크 사건은 시즌초반 이미 예견되었다. 시즌 초반 롯데에서는 지금까지 선수별로 일괄지급하던 스파이크를 2켤레만 지급하고 시즌을 시작했다. 모든 선수들이 반발하자 구단에서는 훼손된 스파이크는 즉시 교체한다는 약속을 하고 시즌을 시작했다. 그래서 주전선수의 경우 4,5켤레까지 원할하게 교체를 해줬으나 그 이후부터 갑자기 구단에서는 더이상 스파이크를 지급할수 없으니 각자가 구매를 해서 신도록 하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이때부터 사상 초유의 스파이크 구걸사건이 발생했다. 우선 스파이크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삼성, LG, SK, 한화, 두산등의 롯데출신 선수들에게 스파이크를 구걸하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들에게 구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참선수의 경우 후배에게 구걸할수 없는 입장이라 대부분 자비로 스파이크를 사서 신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롯데 구단의 이미지는 완전히 실추되었고 당시 김해 전용구장 건립부지가 그린벨트지역이라 건립은 물론이고 허가 자체가 불법이란 뉴스와 함께 다시한번 롯데 구단에게 실망을 하고 말았다. 또한 시즌전 연습중 방망이가 부러졌을때 보상금이 다른 구단은 10만원이지만 롯데만 7만원으로 책정이 되어 짠돌이 구단이란 오명을 쓰고 있던터에 스파이크 사건은 더이상 롯데에게 기대할것이 없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8. 이승엽 홈런사태의 희생양
이승엽의 아시아 홈런 신기록 56호...
시즌 중반까지 아니 막판까지도 이승엽의 홈런레이스에 이상기류는 보이지 않았지만 시즌 막판의 극심한 부담감과 항상 시즌 막판에 체력이 떨어지는 이승엽의 특성이 나타나면서 이승엽의 신기록 도전은 험난한 여정을 맞게 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은 그렇지 않아도 시즌 최하위를 3년연속 확정한 롯데에게 이승엽 홈런기록의 희생양이 되길 바랬다.
운명의 9월 27일...
그날은 이승엽의 홈런을 직접 목격하기 위한 팬들로 사직운동장은 가득찼다. 또한 롯데팬과 삼성팬이 아닌 그저 이승엽의 홈런볼을 주어볼려는 뜨내기 팬들과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려는 팬들까지 장사진을 이뤘다. 그리고 그날도 이승엽의 홈런포는 가동되지 않았다. 그러나 8회초 선두타자 박한이가 출루하고 고지행의 보내기번트로 만든 1사 2루상황에서 김용철 감독은 이승엽에게 고의사구를 지시한다. 그러나 이승엽의 홈런기록 달성을 보고싶어하던 팬들은 그순간 일제히 흥분하기 시작하면서 경기가 중단되고 말았으며, 일부관중은 운동장으로 뛰어들고 사직구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당시 이승엽은 3타수 무안타의 극심한 부진을 보이고 있었고,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것을 피하긴 하였지만 김용철 감독은 대부분의 야구팬들에게 비난을 받는 위기로 몰렸다. 결국 결과론적으로 이승엽 사태로 인하여 김용철 감독대행은 차기 감독후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퇴출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그리고 또 다시 삼성과 시즌 마지막 경기를 해야하는 10월 2일 대구구장...
모든 팀의 순위가 결정된 상황에서 2003 프로야구시즌중 마지막 남은 기록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이었다. 이날 선발은 부상에서 돌아온 이정민투수... 이정민도 입단 당시는 빠른공을 던지는 유망주였지만 부상의 여파로 아마시절의 구위를 보여주진 못했지만 이날만큼은 이승엽과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운명의 2회말
이승엽은 앞선 1회말 양준혁의 병살타로 1회에 등장하지 못했고 첫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난다면 오늘 홈런기록에 대한 부담으로 다음타석까지 영향을 미칠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직구만을 노리고 들어온 이승엽은 결국 이정민의 바깥쪽 낮은 직구를 그대로 받아쳐 중월 솔로홈런을 기록하면서 대기록 작성을 하고 말았다. 순간 관중들은 환호했고 경기장은 이승엽의 홈런기록 경신에 대한 기념식으로 경기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이승엽 홈런의 희생양이었던 이정민은 각종 언론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기이한 현상도 일어났다.
아무튼 이승엽과 삼성은 롯데와 무슨 원한이 있는지 결정적인 순간에서 많이 만났던것 같다. 아울러 이정민은 프로 첫승을 거두었고 롯데도 야구팬들의 비난을 피할수가 있었다. 결과론적이지만 사직에서의 구단고위층의 압력만 아니었더라도 아니 김용철 감독대행이 조금만 소신이 있었더라도 관중 난동사태만큼은 피할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7. 백인천 감독, 김용철 감독대행의 경질
여러분은 시즌전에 백인천 감독의 말을 기억하는가?
'롯데를 꼴찌로 예상했던 전문가들의 밥줄을 끊어놓겠다.'
하지만 그말을 했던 백인천 감독의 밥줄이 먼저 끊어지고 말았다. 롯데는 시즌 중반 성적부진의 책임을 물어 백인천 감독을 경질하고 수석코치인 김용철 감독대행을 내정했다. 경질당시 롯데는 시즌 최다패인 16연패를 간신히 끊어놓는 1승을 한 다음날에 이뤄져서 더욱 충격을 더했다. 하지만 백인천 감독의 시즌중반 퇴출설은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2002 시즌중반 우용득 감독으로부터 지휘봉을 이어받은 백인천 감독은 한번도 성적부진으로 감독직을 물러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도 많았고, 이승엽을 키워낸 감독이란 명성답게 물방망이 롯데타선을 강하게 키워낼 것만 같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법이라는 속담이 정확할만큼 백인천 감독은 감독취임 이후 이렇다할 공격력의 상승을 가져오지 못한채 상식을 벗어난 작전구사와 선수기용 그리고 프런트와의 잦은 마찰을 일으키며 개막전 12연패와 시즌 최다패인 16연패를 일찌감치 달성하면서 롯데호를 좌초의 위기에 몰아넣고 말았다. 그의 업적(^^)중에 굵직한 것 5개만 들어보자.
1. 김주찬을 30-30클럽의 대형타자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선수만 망가짐
2. 일본인 투수코치 이시이, 일본 용병투수 모리, 재일동포 김영화 영입 실패
3. 유일한 거포 조경환 트레이드
4. 유망주 이명호를 좌완 사이드암투수로 키우다가 망침
5. 팀의 모든 패배에 관한 기록을 갈아치움
이밖에도 많은 행적이 있지만 이미 떠난 감독이고 건강이 나쁘다는 점을 감안하여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만하도록 하자. 당시 홈구장인 사직구장에는 백인천 감독 퇴출운동을 팬들이 직접 나서서하기도 했으면 현수막을 부착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하였다. 그만큼 백인천 감독은 롯데의 역사상 가장 팬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 감독이 되었으며, 그 종말은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다.
그리고 수석코치 생활을 마치고 감독대행이 되었던 김용철 감독대행...
그는 원년부터 롯데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던 롯데출신 선수였다. 비록 은퇴는 삼성에서 했지만 전성기와 대부분의 시즌을 롯데에서 보낸 선수이기에 팬들이나 선수들의 기대도 컸다. 김용철 감독대행은 부임하면서 합리적인 선수기용과 구단 프런트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5할에 육박하는 승률을 거두었다. 그리고 선수들간의 융햡을 강조하면서 큰 형님 역할을 잘해줘서 그렇지 않아도 백인천 감독으로 인하여 분열되었던 팀을 강력하게 합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승엽 사태로 인한 팬들의 분노와 비록 구단의 암묵적인 지시로 일어난 사태이지만 결국 책임을 져야하는 감독이란 위치의 특성으로 인하여 내년도 감독직 부임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에 보여준 롯데 선수들의 투혼은 그동안 끈끈하고 조직적인 야구를 보지못한 롯데팬들에게는 청량음료와 같은 일이었고, 삼성과의 더블헤더를 독식하는 등 선두권팀들에게 딴지를 걸어줘서 마지막 순위경쟁에 재미를 더해주었다. 이제 감독직은 후배인 양상문 감독에게 넘겨줬지만 다른 팀에서 더 좋은 지도자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6. 김수화, 장원준 입단
순천 효천고 에이스 김수화와 부산고 좌완 에이스 장원준
두선수 모두 지역을 대표하는 투수들이었고 김수화의 경우는 고교 최대어로 평가받는 선수였다. 그나마 기아가 김수화 대신 대형 3루수 김주형을 신인 1차로 지명하면서 어부지리로 롯데로 넘어온 대형투수였다. 당시 롯데는 팀내 신인 최고 계약금인 5억원보다 많은 금액을 배팅할것이란 예상이 나왔고 결국 5억 3천만원의 계약금으로 롯데에 입단했다. 이 금액은 롯데 신인최고 금액이며, 프로야구 사상 임선동, 김진우(7억)와 조용준(5억 4천)에 이은 4번째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만큼 김수화에 대한 기대가 컸고 실질적인 고교 최대어에 대한 대우를 해준것이라 생각한다.
김수화 선수 역시도 비록 고등학교에서는 팀전력이 약해서 많은 대회를 뛰지 못했지만 항상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야구를 한다는 스카우터의 평가를 받아왔다. 그동안 손민한, 차명주에게 5억의 계약금을 쏟아붇고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롯데입장에서는 작년도 김대우를 놓친 분풀이라도 하듯 거액을 배팅을 하면서 김수화를 입단시켰다. 140Km중반대의 직구와 낙차큰 커브가 주무기인 김수화는 무엇보다 정확한 제구력을 강점으로 하는 투수로 앞으로 롯데 마운드의 차세대 주자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부산지역 최고투수 장원준...
부산고 출신의 장원준은 비록 3학년인 올해에는 부상회복을 위하여 투구를 자제하였지만 2학년때까지는 초고교급 선수로 명성을 날렸다. 또한 부산고에 많은 투수자원들 때문에 상대적인 혹사를 당하지 않았고 부산고 코치 김종석 선수가 고교시절 혹사로 인하여 대학과 프로에서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한점으로 인하여 특별한 배려가 있어 싱싱한 어깨를 자랑하는 선수이다. 올해는 팔꿈치 수술로 투구를 하지 못하여 투구감각을 찾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수술의 상태가 아주 좋아 내년시즌 기대를 벌써 하게끔 만들었다. 왼손투수라는 강점이외에 140Km초반의 직구와 안정된 제구력을 바탕으로 경기운영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장원준은 주형광이 선발로 빠진 롯데의 불펜진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비록 계약금은 2차지명인 김수화보다 작은 3억 5천만원이지만 다른 1차지명 선수와 비슷한 계약을 했다고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