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K일보의 S기자는
이런 멜랑꼴리한 제목으로 책을 한권 출간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2초 안에 알 수 있는 실명을
저는 굳이 이니셜로 표기합니다. 고소당할까봐...^^
그닥 수준이 높지 않은 몽골소개서이자 여행기입니다.
제목을 쌈빡한 것으로 달아
독자들을 현혹하고 싶었겠다... 그렇게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몽골은 ‘아내를 빌려주는 나라’가 아닙니다.
<평생에 한번 만나는 인연>
몽골이 여행객을 감동시키는 것은
신문활자보다 많은 밤하늘의 별,
신기루 너머까지 펼쳐진 무한한 지평선,
그 위를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바람, 바람...
그런 것들만은 아닙니다.
텅빈 듯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 피보다 진하고 술보다 강한 ‘정’ 때문입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 여러번 되풀이되지 않는, 평생 ‘단 한번’ 만난다는 뜻입니다.
불교의 수행자들에게서 나온 말이지만, 결국 사람은 누구나 일기일회의 삶을 삽니다.
몽골을 여행하다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을 만날 때면
손님을 맞이하고 환대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들은 마치 ‘일기일회’를 체득한 선사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Once in a lifetime, 일생 단 한번 만나는 인연.
두 번 만나기 힘든 세상에서 서로 만났으니 만났을 때 최선과 지심을 다하는 것이지요.
광활한 우주 속의 점 한톨 같은 인간, 몽골 초원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그러니 지금 옆에 있는 한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몽골 사람들이 손님을 접대하는 마음이 딱 그렇습니다.
초지를 찾아서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이동 중에 누군가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받고 또 누군가에게 그만큼을 베풀어 줍니다.
그런 순환 고리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연고가 있든 없든, 안면이 있든 없든 모든 유목민들은 그렇게 살아갑니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는 누구나 길을 잃을 수 있고,
허기와 추위와 맹수로부터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몽골초원은 하루 종일 차를 달려도 집 한 채를 구경하기 힘듭니다.
그러니 천신만고 끝에 만난 겔에서 숙식을 거절당한다면
그 나그네는 다음 겔을 만나기 전에 죽을 것입니다.
도가 지나치다 싶은 호의, 상식을 뛰어넘는 친절을 멀리서 바라본 외지인들은
유목민이 손님을 접대하는 마음을 곡해해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오해가 ‘아내를 빌려주는 나라’란 것입니다.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동방으로 장사길에 오릅니다.
그때가 1271년 경.
그렇게 쿠빌라이의 원나라에 도착한 마르코 폴로는
20여년 동안 여행도 하고, 관직에도 있고(3년간 양주지방의 현감을 합니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일칸국’으로 시집가는 공주(코카친) 행렬을 따라
바그다드를 거쳐 이탈리아로 돌아갑니다.
그리곤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어 제노아 감옥에 수감이 되고
그 안에서 ‘엄청난 허풍’을 곁들인 동방여행에 관한 무용담을 늘어놓지요.
그걸 감옥동기인 루스티켈로가 받아적어서 출간하게 된 책이 ‘동방견문록’입니다.
원 제목은 ‘백만인의 서’인데... 마르코 폴로가 입만 열면 ‘백만’이라는 말을 했다하여,
그의 별명이 ‘밀리오네, 백만장자’이고, 그의 책 제목도 그리 된 것이지요.
제목에 대한 설도 많은데... ‘세계의 서술’이 원제라고도 합니다.
몽골제국으로 인해, 그들의 장벽허물기 덕택에
‘여행’이 가능해지고, 기행문이란 장르가 생겨났으며,
‘세계사라는 인식’이 처음 등장했으니... 그 제목도 충분합니다.
아~ 왠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가 이리 길까요?
‘아내를 빌려주는 나라’에 대한 기록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117장, 가인두에 대해 말하다... 부분입니다.
가인두는 당시의 건도, 현재의 서창시입니다. 돈황 북부 하미 근방이지요.
금나라와 서하의 경계 지역쯤인 그 곳에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남자는 아내에게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든 다 들어주라고 말하곤
밭이나 과수원으로 가서 나그네가 자기 집에 머물 동안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그네가 머무는 사흘 혹은 나흘 동안, 여자와 동침하는 일은 흔히 일어나지요.
나그네는 자기가 집에 있다는 표시로 모자나 다른 표식을 문기둥에 걸어둡니다.
그런 표지가 있으면 집주인 남자는 절대로 집에 돌아가지 않습니다.
얼빠진 남자들의 행동을 어찌 이해할 것인가?
마르코 폴로는 ‘그 지방이 우상을 숭배한다’고 했는데,
아내를 빌려줌으로써 신과 우상이 자기들에게 혜택을 준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손님의 대부분이 대상단이었기에, 세속적인 물건을 가져다주기도 했지요.
그런 연유로 수치를 느끼지 않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몽골제국의 4대칸인 멍케칸 시절(그는 1250년에서 1259년까지 집권했지요)
가인두의 ‘아내를 빌려주는 풍습’을 듣고, 경악을 합니다.
몽골인들의 사고에선 말도 안되는 얼치기 풍습이었던 것이지요.
하여 칸령으로 금지를 시킵니다.
그렇게 3년여의 시간동안, 가인두에 자연재해를 비롯한 악재가 계속됐다고 하네요.
사람들은 몰래몰래 과거의 풍습을 다시 행하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 동네에 가시면 혹시?
아~ 저는 학교랑 도서관에 가야해서 여행은 좀....^^
결론적으로 몽골은 아내를 빌려주는 나라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확인을 했는데... 역시 ‘잘’ 안빌려 줍니다...^^
그러니 남의 아내를 탐하시면 아니되옵니다...
대신, 아내를 함께 공유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다음엔 그 이야기를....
<p.s. 아내를 빌려주지도 않고, 그래서 아내를 빌리는 사진도 없고...
늘 그렇듯,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