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부엌살림은 널어 말리는 게 보배
원 없이 쏟아지는 햇빛은 축복이다. 그냥 흘러가게 두지 말고 살림 죄다 꺼내 널자. 최고의 항균 효과를 비용도 안 내고 누리는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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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리| 어느 해던가, 등산길에 절 입구에서 샀던 광주리도 여름이 오기 전 햇빛 부서지는
곳에 말린다. 시어머니나 어른들 오시는 날엔 그분들 추억도 되살릴 겸, 나도 점수 딸 겸
해서 잘 보이는 곳에 세팅을 해보는 거다. 정감 있게 살림 잘하는 여자로 보이는 것은
자명한 일. 잘 닦아 한나절 말린 광주리는 용도가 무궁무진. 상추를 씻어 담아도 좋고
행주를 널어도 좋은, 여름철 살림 보배라 할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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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 커다란 양은 냄비에 쪼가리 비누 넣고 폭폭 행주를 삶는다.
일일이 헹구기 귀찮으니 삶은 행주 모조리 세탁기에 넣고 한 번 돌린다. 다시 꺼내어
맹물에 넣고 한 번 더 삶으면 달걀막처럼 하얀 찌꺼기가 꼬이기 시작한다. ‘거봐, 맹물에
다시 삶길 너무 잘했어’ 혼잣말 하며 볕 잘 드는 마당에 널어놓는다. 어떤 그림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하얀 행주가 널린 마당 풍경은 고흐의 그림보다 더 뿌듯하고 값진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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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도마는 일단 여러 개 사고 볼 일. 두툼한 물푸레나무 도마, 세균 번식 막는 옻칠
도마, 책받침 도마, 치즈 자르는 스틸 도마…. 살림하는 여자라면 위생을 따지며 생선,
고기, 채소용을 일일이 구분 지어 쓰며 까탈도 부려볼 일이다. 묵은 도마라도 안 버리고
보관해 ‘박물관이 뭐 별건가?’ 하며 나만의 살림 역사를 만들어도 좋을 일. 볕 좋은 어느
날 죄다 꺼내어 뜨거운 소금물 한 번, 맹물 한 번 확 끼얹어 쨍하게 말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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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 전진 배치되는 보기 시원한 부엌살림
어찌 됐건 더운 여름엔 보기 시원한 물건들이 최고다. 보기 예쁜 것, 쨍하니 기분 좋은 것들은 부엌살림 0순위로 전진 배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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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유리그릇은 일 년 내내 기분 좋은 식기다. 점잖지는 않지만 보기에 상큼하고 설거지
할 때도 깔끔하고 닦아 놓으면 반짝거리며 윤나는 게 뿌듯해진다. 여름 식탁 위의 색깔 예쁜
유리그릇은 비키니 수영복 입은 해변의 여자 같다. 뜨거운 공기에서도 시원해 보인다.
투명 유리그릇을 보면 사이다에 수박 넣어 화채를 만들고 싶고, 과일 갈아 주스도 만들고
싶다. 여름밤 마시는 와인과 맥주잔이 투명 유리 글라스가 아니라면, 술 맛도 아마 덜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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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쿠리| 물버들 소쿠리, 댕댕이 소쿠리 재료 따라 모양도 여럿이지만 제일 만만한 건
시장서 산 누런 대소쿠리다. 나물도 말리고 무 썰어 말리고 조기, 민어 생선도 사다 꾸들
꾸들 말리는 데 만만한 소쿠리. 생선 냄새 배었다 싶으면 굵은소금 푼 물에 담갔다가
일조량 많은 곳에 널어 보송보송 기분 좋게 말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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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셰| 어떤 초라한 물건도 화려하게 바꿔 놓는 게 클로셰의 힘이다.
오두막도 베르사유 궁전처럼 보이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손님용 물 한 잔도 클로셰를
컵 받침으로 깔아 내면 시원하고 특별해 보인다. 공부하는 아이 곁에서, 신문 읽는 남편
곁에서 말없이 코바느질을 하는 여자는 분명 그 모습이 고울 것이다. 옛 유럽 여자들이
평생 코바느질로 나만의 클로셰 커튼을 만들었듯이 한가로운 저녁 클로셰 뜨개를 시작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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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릇| 쇠 그릇에 과일을 담으면 과일에 골병이 들거나 쉽게 무르지만 나무 그릇은
그런 일이 많지 않다. 테이블 위에 꺼내 놓고 먹는 과일을 꼭 나무 볼에 담는 것은 다 이유
가 있는 것이다. 샐러드 버무릴 때 역시 큼직한 나무 접시와 볼이 제격. 무엇보다 나무
그릇은 가벼우니 설거지할 때도 만만해서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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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볼| 크고 작은 스탠 볼은 음식 할 때 최고. 나물을 무치고 열무 넣어 밥도 비비고
급할 땐 가스레인지에 올려 채소도 데친다. 수세미로 살살 닦기만 해도 금세 반짝거리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굴러도 별 탈 없으니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유용한 물질’이란 평은
틀리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