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기 93년 7월 5일 월초 기도법회 및 단법회 ○
안암뉴스상영
: 풍성했던 6월의 안암교당 소식으로 7월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
신성회 훈련 참가 : 유은서 교우님 감상담
신성회 훈련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성지의 기운을 느끼며 조용한 가운데 할 수 있는 훈련이다.
마음이 신기한 것이 훈련을 가기 싫으면 일이 모두 겹쳐서 못 가게 되고,
훈련을 가려고 마음 먹으면 일이 일사천리로 미리 진행이 되어 훈련만 오롯하게 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총 참가 인원이 35명이었는데 안암교당에서 11명이 참여 했다.
결제식을 하고 나서 친교회 시간에 1분 스피치가 있었다.
자기소개를 하고 어떤 목적으로 여기에 왔는지 이러한 것을 이야기 하는 시간이었다.
고민이 많다보니 자기소개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사실 재가를 할 것인가 출가를 할 것인가 고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교무님을 뵈니 눈물이 많이 났었다.
그 뒤로 여러 교무님들의 끊임없는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훈련의 장점이 단 편성이 되면 예비교무님들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이 강연을 듣고 감상담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있었다. 서로가 배우는 입장에서 더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예비 교무님께서 하셨던 말들 중에
“잔가지를 많이 쳐 나가다보면 딱 하나가 보일 것이다. 아직 나이도 어리니깐 좀 더 다듬어 가다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해주셨다.
또한 훈련도 많이 나다 보면 조금씩 또는 더 일찍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서로의 조언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진지한 시간이었다.
이것은 훈련이 끝나서도 계속 연마해야 할 화두 같다.
신성회 훈련의 꽃은 삼밭재에 오르는 것이다.
삼밭재에서 함께 영주를 외고 일원상 서원문을 외면서 함께 모아지는 기운이 더 큰 것 같았다.
더 없이 맑아지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대종사님의 발자취를 걸으며 경건해 지는 기분이었다.
은산님 설법 중에서 좋았던 말씀이 있었다.
우리의 삶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바다를 잘 알아야 즉 파도가 어느 정도 치고 날씨는 어떤지 알아야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에 난파되지 않고 갈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목적지까지 가고자 할 때 미리 연마를 해 가야 훨씬 쉽고, 좌절감 보다는 성공에 대한 믿음이 강해질 수 있다.
여러분들 역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김제원 교무님 설법
오늘 벌써 7월 법회로서 첫 시간입니다.
금년 시작하여 어느새 반년이 지나고 하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금년에 계획 세우신 것의 반은 이루셨겠네요.
어떤 사람은 초과달성도 하셨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무엇을 세웠는지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운 계획이 막연하면 그 사람의 인생도 막연하기 쉽습니다.
계획을 세웠다면 반드시 구체적인 실행이 있어야 할 것이고,
계획을 세울 때도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실행을 점검해 가는 평가 시스템이 나와 있어야 합니다.
계획과 실행과 평가가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원심력을 이뤄 다시 구심력이 되면 계획이 실행되어 버리고 평가가 되어
그 계획은 다시 수정이 되어 더욱 힘을 얻어가고 확고한 것이 되어서
하나의 그림, 이미지가 되어 문구로 구체적으로 마련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연하게 나 혼자만 세운다 그것은 아니죠.
계획은 단원들과 공유하고 때로는 대중들에게 오픈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것이 자력과 타력을 입는 기회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여행을 가려면 돈을 절약하고, 표를 예약하고, 기본 정보를 수집하는 등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웁니다.
또 여행을 다녀오면 그것을 정리해 보는 것이 중요하죠.
우리가 인생의 여행, 이생을 여행 또는 넘어서 영생을 여행함에 있어서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즉 어느 방향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그냥 ‘남들이 가니까 간다. 괜찮은 것 같다, 한번 해보자, 잘 되겠지’ 하면
그 사람은 거의 실패할 수 있다.
복권이라는 것은 우리의 무엇을 표현한 것이냐 하면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행성, 욕심, 어쩌다보면 잘되겠지,
혹시나 하는 것을 조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은 몇 백만분의 일 이라는 사행성을 보고
희망을 걸고 산다는 것은 정말 무지한 인생이죠.
탄탄하고, 하다 보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길을 가야 합니다.
어쩌다 보면 잘되겠지, 환경을 바꾸면 되겠지, 나이가 먹다보면 되지 않겠는가 해서는 안된다.
사주를 보니까 이렇게 나와있다더라 해서는 안된다.
참 사주는 심상이다.
참 글씨도 심서라고 한다.
참 공덕은 무덕이라 한다. 진짜 공덕은 덕이 없다. 덕이라고 할 것이 없다.
참 관상은 심상이다.
그 사람의 마음 따라서 일체가 이뤄지는 것이다.
여러 성자들은 우리에게 지도를 내주셨다.
“야, 너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여기가 그 자리다.
이렇게 가면 가장 빠르고 쉽고, 좋은 길이다.
이런데 그 곳은 가서만 행복한 게 아니라 가면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법이 있다.
그것이 내 법이다.”
하고 대종사님은 우리에게 알려주신 겁니다.
지금은 괴로운데 나중에는 어쩌다보면 잘 되겠지, 취직하면, 집사면,
좋은 여자 만나면, 애기만 낳으면 등 끝없는 갖춤 속에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고 그 순간을 만끽하며 사는 인생.
그것이 우리 대종사님께서 내놓으신 무시선이요, 그것이 사사불공 교법이다
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아까 뉴스를 보는데 우리 이연이는 참 잘 하였다.
생기발랄하고 활력을 주었다. 지현이 CF는 프로급으로 찍었다.
부장님이 마음먹고 찍으신 것 같다. 아무나 찍어주지 않습니다.
신심 있고, 공심 있고, 공부심도 있어야 하며 전생의 복도 현생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6단은 소개를 보니 재치 있고, 발랄하고 참 좋습니다.
나머지 단들도 이왕이면 멋있게 해서 서로가 은혜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신성회 훈련 11명이 다녀와서 참 좋으셨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또한 원불교에서 훈련하기 가장 좋은 장소가 영산입니다.
훈련참석자 대비 도우미가 가장 많은 훈련이 신성회 훈련입니다.
그리고 간 사람은 교무님이 가장 이뻐하는 사람입니다.
한번쯤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출가 재가를 떠나서 나는 어떤 행복을 향해서,
무엇을 향해서 어디에 에너지를 쓰고 살 것인가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젊은 시절에 인생을 공과 사를 놓고 어떻게 보면은 출가 재가를 놓고,
어떻게 보면 인간락과 천상락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고 현실의 경계 속에서 무참히 힘들어 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젊은 시절에 훈련을 통해서 거기에 대한 고민, 연구 때로는 치열한 대화. 나와 나의 대화,
작은 나와 큰 나의 대화. 때로는 육신과 마음의 대화, 스승과 교법과의 대화, 중생심과 부처심과의 대화를 해 봐야 하지 않는가.
남들 결혼하니까 결혼하고, 남들 직장 얻으니 나도 얻어 보고 이렇게 해서는 않된다.
누가 불 나서 ‘불이야’ 하고 쫒아 갔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이 같이 뛰고 있더랍니다.
남들 뛰니까 왜 뛰는지도 모르고 뛰고 있는 것이다.
만약 미래에 대한 비전과 계획이 없이 남들 뛰니까 뛰고, 먹으니까 먹는다면 그것은 노예의 인생이다.
그것은 짐승과 별반 없는 삶이다.
짐승도 똑같이 자기 새끼를 예뻐하고,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잡니다.
진돗개는 효도도 하고 보은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을 받아서 엄청나게 입은 은혜, 부모님, 스승님
때로는 보이지 않은 사회와 국가, 성자들의 교법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살고 있으면서
오직 나 하나 재미있고 편안하고 나 하나만의 인생을 통해 살아간다면 그런 사람일수록 가장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인과의 이치이다.
수많은 은혜를 이 순간에도 받고, 누리고, 이용하며 살면서 겨우 산다는 것이
나 하나 잘 살기 위해 산다면 어떻게 이 세상 수많은 관계 속에서 함께 사는데
어찌 진리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복을 줄 것이며,
어찌 진리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은혜가 될 것이냐.
그것은 진리가 아닐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떤 것이 나이며 어디까지가 나인가. 죽으면 끝나는가.
나는 왜 이러한 특성이 있는가.
생각없이 사는 인생은 참으로 편한 것 같지만 그 사람처럼 긴 고통이 없다.
임시의 생각을 싫어하는 그 무명이 자신을 더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든다.
그러나 생각이 깊고 깊어서 밝은 지혜로까지 연결된다면
그 사람은 하는 족족 풀려나가고 쉬워지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교법이요 우리가 얻고자 하는 깨달음의 지혜다.
신성회가 끝나고 만덕산, 대학선방, 여름정기훈련, 이렇게 세 개 남았습니다.
최소한 여름정기훈련은 다 날 것이고,
어떻게 보면 이 청년시절에 만덕산 훈련도 못 가 보았다. 대학생으로서 대학선방도 못 가봤다.
안암교당 다니면서 신성회 훈련 한번 못가봤다.
그 사람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아요.
결혼하여 아이가 있다면 훈련을 가고 싶어도 못 가게 됩니다.
지금 상황보다 몇 배 더 어려워 집니다. 가고 싶어도 못가실 겁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실 겁니다.
좋은 말로 할 때 갈 수 있으면 가시라. ‘시간이 나면’이 아니라, 만들어서 가시라.
인생은 만드는 것이다.
딸려가는 것. 때로는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인생, 자주적 인생, 만들어가는 인생이어야 한다.
그것이 젊은이의 기백 아닌가.
저녁 내내 술 먹는 것이 성질나서 부셔버리는 것이 젊은이가 아니다.
내 인생의 깊은 곳에 과감히 침잠해 보고 때로는 현실을 넘어서 내 인생의 돌파구를 찾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젊을 때 불교, 원불교를 만나 1000배, 2000배, 때로는 3000배 만 배도 못해 본다면 젊은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무엇이 젊은 것인가!
육신이 젊고, 용기가 있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얼마든지 어떤 것도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못한다면 어찌 젊은이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뇌를 쓰는데 얼마나 쓰는가?
3% 정도? 나머지 97%는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의 자존심은 “네가 나에게 맞먹어?” 하며 성질내는 자존심이 아니라
“너는 성공하였는데 왜 나는 못하겠는가?” 하는 분발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가만히 보니 성공한 사람들을 분석할 때
‘조건이 좋았다든가, 부모를 잘 만났다든가 인물이 좋아서’
이런 조건을 찾아서 나는 그래서 안 되고 너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조건이 맞아서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환경을 넘어서 조건을 뛰어넘는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무서운 것이다.
마음보다 큰 것도, 무서운 것도 없으며 힘 있고, 빛나는 것도 없다.
어떤 사람은 조금만 하고도 아프다고 한데, 마음의 큰 힘이 있는 사람은 더 큰 것으로도 안 아플 수도 있다.
마음의 힘은 내가 생각한 것, 상상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부분이다.
우주보다도 더 큰 것이 바로 마음이다.
태양보다도 더 밝은 것이 마음이다.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이다.
기술은 한계가 있다.
태양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태양이 밝고 따스워도, 밤이 되면 캄캄하다.
그러나 마음은 중생의 어두운 마음까지 밝힌다.
그 어둡고 차가웠던 마음을 부처님의 법이 딱 들어가면 다 녹일 수 있다.
묘하다. 다리미보다 더 뜨거운 것이 마음이다.
오늘 단회하실 것인데 예도편 다 읽어 오셨는가.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예습을 잘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그 수업 시간이 아주 만끽하는 시간이 되고, 때로는 축적 저장을 하며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예습을 안 해오면 재미도 덜하고 얻어가는 것도 적다.
학교 공부도 마찬가지이고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학교 공부도 예습을 해 가면 수업시간이 너무 재미있다.
법회를 보는 것도 예습입니다.
살다 보니 아니더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히 예습하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 내놓은게 아니라 우주 진리를 원만하게 깨치시고, 대각하시고, 성자가 되신 대종사님 교법을 우리는 예습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길을 제시한 곳이 어디에 있는가.
예도편 1장을 보면,
예도라는 것은
예라는 것은? 한마디로 경(敬)이라고 한다.
경(敬)이란 말은 결국 처처불상이라는 이야기이다.
공경하는데 그 대상을 어디까지 공경하는가.
과거에는 남편만, 하늘만, 사농공상 중에서도 사만 공경하였다.
그러나 처처불상은 하늘뿐만 아니라 땅도, 상하 뿐 아니라 좌우도, 동물도 금수초목까지도 길에서 장사하는 저 아저씨.
전부가 부처님이다. 이것이 바로 예의 기본 정신이다.
그런데 그 예는 크게 체와 용으로 나뉜다.
체라는 것은 대(大)를 말한다. 용은 유무(有無)를 말한다.
체는 평등(平等)이요, 유무는 구별과 차별이다.
구별과 차별은 상황성. 시대나 장소, 여건 따라서 수시 변역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버스를 타려고 갔는데 내가 좀 일찍 도착했다면
원래 2시 차를 타려 했었어도 1시 40분차가 있으면 그것을 탈 수 있다.
나라별로도 다르다.
그러나 예의 체. 즉 근본정신 공경은 평등하다.
예를 들어서 내가 은서와 25년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은서와 내가 이 대 자리로 보면 하나이다.
소중한 은서요 소중한 나이다.
그러나 소 자리에서 보면 25년 차이가 나는 사제(師弟)이다.
과거 유가에서는 예를 들면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잘 차리라 하셨다.
즉 소 자리와 유무 자리를 공자께서 잘 해 놓으셨다.
그래서 그 도와 법이 국가와 사회에서 실현되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체 자리 보다는 용 자리를 잘 밝혀 주셨다.
그러나 불교와 도교는 체 자리를 잘 밝히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체를 바탕한 용인데 때로는 체가 되기도 하고 용이 되기도 하고 둘이 섞여있기도 한 것을 잘 모른다.
용은 형식인데, 내용을 담고 있어야 형식이다.
그런데 내용이 빠져버린 형식이라면 그것은 이미 벗어난 것이다.
음식을 차리고 정성스럽게 제사를 차리게 하는 것은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바치라는 것이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조상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되어서 인터넷에서 음식을 시키기도 한다. 이것은 음식이라는 형식만 담은 것이다.
체를 아는 사람은 공경의 마음에 바탕해서 음식이 바뀔 수도 있고 때로는 꽃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하고 싶은 마음이냐, 하기 싫은 마음이냐. 아니면 형식에만 묶인 마음이냐.
아니면 체와 용을 다 두루해서 할 수 있는 마음이냐. 다르다.
예도편은 오늘 여러분들께서 공부하시겠지만 형식이라는 것이 그 근본의미. 근본 체가 무엇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정말 재미있는 것이 예도편이다.
처음에 원불교를 만나면 어떤 사람은 요훈품이 좋다, 인도품이 좋다. 인과품이 좋다 하기도 한다.
정산종사 법어를 보아도 법훈편, 무본편, 경의편이 재미있기도 하다.
그런데 원불교의 진리의 체와 용을 아는 사람은 예도편이 재미있을 것이다.
나는 사축이재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육일대재이다.
그 안에 영육쌍전의 원리, 삼동윤리 모든 것이 기가 막히게 다 들어있다.
그런데 그 원리를 모르는 사람은 가장 재미없는 시간이 육일대재이다.
똑같이 예도편도 아는 사람은 가장 재미있는 것이 예도편이다.
단장님들께서 짱짱하게 준비해 오셨을 것이고,
각각 개인도 충분히 연마해왔을 것이니 즐겁게 얘기하셨음 합니다.
(오늘 우리 종교인들, 그리고 원불교인들도 촛불집회에 함께하자고 하여 공문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오늘 5시까지였습니다.
나는 원불교가 당연히 사회 참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약국에서는 약을 팔고, 중국음식점에서는 중국음식을 파는 것이 맞다.
우리는 사회 속에 있지만 그 안에서도 특히 원불교이다.
우리는 정치인을 키우는 연수원이 아니다.
삼일 만세운동 당시에 대종사님께서는 일체 생령을 잡을 수 있는 그물을 짜셨습니다.
앉아서 그물을 짠 그 사람이 더 큰 열정을 가진 사람도 있다.
직접 뛰어든 사람도 참여요, 준비를 하는 사람도 참여다.
때로는 배가 고프면 법도 좋지만 밥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때로는 사회적 시국이 그러하면 참여할 수도 있지만 근본은 결국 도덕이 살아나야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부처님의 지혜가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혁명으로 되지 않습니다.
나는 왜 대종사님이 왜 삼일 만세 부르러 가는 제자에게 앉아서 기도하자고 하셨을까.
앞으로는 서로 상생의 시대, 하나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때로는 함께 하나가 되는 세상이지 적으로 바라보고 이겨내고 힘으로 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촛불 집회를 나가도 좋습니다.
그러나 좌선도 안하고, 헌배 사경도 안 하는 마음으로 촛불집회 나가는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공무원들이 하루 종일 개고기 먹지 말자고 하고
맨 마지막에 “우리 덥고 힘든데 보신탕이나 먹을까” 하기도 한다.
이 사회의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데모하고는 다시 돌아가서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한다.
이 세상의 뿌리는 정치가 아닙니다. 정치는 가지와 줄기이다.
이 세상의 뿌리는 도덕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살아서
자기 관리도 안 되면서 밖으로만 뛰는 것은 바로 과거의 일이다.
우리 대종사님도 수신의 요법, 제가의 요법, 강자약자 진화상의 요법, 지도자의 요법을 내어 주셨듯이
앞으로는 종교가에서 정치인도 뽑아갈 것이라고 하셨다.
이번에 OUT MB 라고 하셨다.
이것은 민주당을 위해서 OUT MB 한 것이 아니다. 바로 정치에 대한 불신이다.
정치인의 마음속에 인과의 원리나 근원적 도덕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앞으로는 우리 종교가에서 정치적 사회적 지도자를 많이 찾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원불교만 좋아하는 사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대통령이 나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레부터 천도재가 있습니다. 현재 20여명이 접수되었다.
예전에 돌아가셨는데 천도재 못 지낸 분들,
인공유산 된 분, 어찌할 수 없이 유산되기도 하고 시키기도 한 영가를 위해서.
어제는 우리 성식이가 와서 봉투에 20만원을 가지고 와서
새끼 밴 뱀에 대해서 천도재를 지내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가 살아있는 자로서, 나만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 그런 인연이 있으면 권장도 하시기 바란다.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하면 훨씬 더 좋다.
먼저 가신 인연, 형제간도 있을 것이고, 사정에 의해서 못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
영가로서 천도도 못 받고 가신 영가는 불행한 것이다.
몇 백년이 지났는데 죽은 줄도 모르는 영가가 많이 있습니다.)
상반기 교화시상이 있었습니다.
▶ 심사기준 (포인트)) - 교당인도 2점 / 입교 5점
입교후 출석 1회 +3점, 2회이상 +3점을 기준
1위 : 서현정
2위 : 주성주, 정용환
3위 : 유지현
아차상 : 이제선, 최성양, 유도솔, 고혜경, 이진성, 박순명, 박만오
첫댓글 은전이도 수고가 많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