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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500(12)바라~방생~방하착
149. 바라(婆羅) ☀불교에서 나온 말
전체적인 형태는 서양악기의 심벌즈와 비슷하다. 타악기의 일종으로 동(銅)으로 만든 두 개의 평평한
접시모양의 원반 형태인데 중앙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 구멍을 내고 끈을 달아서 좌우 손에 한 개씩
들고 서로 비벼 치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 바라춤
불교 의식시에 스님이 사용한다. 우리나라 전통무용에 있어서 바라춤은 중요한 영역을 차지한다.
불법(佛法)을 수호한다는 내용을 포함하며, 의식도량(儀式道場)을 정화하여 성스러운 장소가
되게 하는 춤이다. 바라춤은 다라니와 진언에 맞추어 행해지므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바라춤은 8가지 주제가 있다.
①천수(千手)바라춤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의 중생구제를 위한 대자대비의 대원을 몸짓으로 보여줌으로써 해탈무(解脫舞), 또는 열반무(涅槃舞)의 형식을 갖춘 춤이다. 2인에서 5인 가량이 추며, 5인이 출 경우 일렬횡대 혹은 사방에 4인 중앙에 1인이 서서 춘다.
②사다라니(四陀羅尼)바라는 4가지 진언 즉 변식진언(變食眞言), 시감로수진언(施甘露水眞言), 일자수륜관진언(一字水輪觀眞言), 유해진언(乳海眞言) 염불에 맞춰 춤을 추며, 일체 중생에게 공양을 베풀기 위한 춤이다.
③명(鳴)바라는 2인 이상 추는 춤으로 태징과 북만으로 반주하며 야외 괘불 앞에서 두 사람이 바라를 치며 춤을 추어 세상의 모든 중생과 영혼들까지도 구제하려는 의미를 지닌다.
④내림게(來臨偈)바라는 부처님이 오셔서 강림하심을 환희의 마음으로 찬탄하며 부처님을 모시고 임하는 뜻을 마음으로 표현하는 춤이다.
⑤관욕게(灌浴偈)바라는 신(身), 구(口), 의(意)의 삼업(三業)에 의해 가려진 마음의 때를 씻어버리기 위해 행하는 바라춤으로 태징, 북, 목탁, 호적에 맞춰 춘다.
⑥화의재진언(化衣財眞言)바라춤은 화의재진언을 법주가 선창하면 태징 소리에 맞춰 두 사람이 화의재
진언바라춤을 관욕실 앞에서 춘다.
⑦회향게(廻向偈)바라는 보회향진언(普廻向眞言)에 맞추어 추는데, 부처님 앞에서 엄숙하고 단아한 일념으로 춘다. 하지만 104위 신중단(神衆壇) 앞에서는 웅장하고 힘 있는 춤사위로 춘다.
⑧요잡바라는 시련과 옹호게에서 모시고자 하는 성중(聖衆)의 강림이 완료된 것으로 보고 강림에 대해
감사하고 환영하며 환희를 표현하는 춤이다. 일명 번개바라, 막바라라고 한다.
춤사위는 바라를 손에 들고서 거의 움직이지 않거나 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서 춤을 추는 동작과, 바라를 크게 치고 전진, 후퇴, 회전을 하는 동작으로 되어 있다. 정적인 요소와 동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고,
불교의식에 리듬과 활기를 부여하면서, 또한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150. 바라문, 카스트(婆羅門)
☀ 바라문 (婆羅門)
범어(梵語) Brahmana. 바라문은 종교ㆍ문학ㆍ전례(典禮)를 직업으로 하여 인도 사성(四姓)의
최고 지위에 있는 종족으로 승려의 계급이다. 이 바라문을 번역하면 정행(淨行)ㆍ범지의 뜻이다.
바라문교의 전권(專權)을 장악하여 임금보다 윗자리에 있으며, 신의 후예라 자칭하고 정권의 배심
(陪審)을 한다. 만일 이것을 침해하는 이는 신(神)을 침해하는 것과 같다고 하며, 그들의 생활에는
범행(梵行)ㆍ가주(家住)ㆍ임서(林棲)ㆍ유행(遊行)의 네 시기가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밑에 있다가 좀 자라면 집을 떠나 스승을 모시고 베다를 학습하고, 장년에 이르면
다시 집에 돌아와 결혼하여 살다가
늙으면 집안의 살림을 아들에게 맡기고 산 숲에 들어가 고행 수도를 한 뒤에 나와 사방을 다니면서
세상의 모든 일을 초탈하여 남들이 주는 시주물로서 생활을 영위한다고 한다.
☀ 카스트 (사성계급)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인도의 사성계급(카스트제도): 카스트는 4가지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 브라만: 성직자(승려), 학자로 최고 계급이며 신과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신들에게 기도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종교의례를 전담하는 높 은 계급
• 크샤트리아: 무사, 군인, 왕족 등 사회제도 안보와 통치를 맡는 계급
• 바이샤: 상인, 생산 활동 하는 사람들 사람답게 사는 계급
• 수드라: 육체노동자 몸 쓰는 일 등 천민으로 기본 노예 계급
위 사성계급 외에 • 달리트: (불가촉천민) 시체처리 가축돌보기 변소치기 기타 등등 노예만도 못한
계급이 있다.
이들 불가촉천민에게는 카스트내에 위치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더러워진다.
여겨지며 굉장히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인도인구 10억 가운데 불가촉천민이 1억이 넘는다고 한다.
151. 반야경(般若經)
현재 가장 널리 읽혀지는 경전을 꼽으라면 단연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꼽는다. 모든 법회의식에서
빠지지 않고 암송되는 반야심경은 ‘공(空)’사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고 있다. 팔만사천법문을
집약한 반야심경은 643년 현장법사가 번역한 것으로 ‘반야경의 핵심’ 경전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완벽한 지혜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고 있는 반야심경을 통해 반야경의 발전을 조명해 볼 수 있는데
반야경은 대반야바라밀다경, 반야심경, 금강반야바라밀경, 아취반야경 등 모두 열두 가지 이상을
헤아린다. 반야경은 일반적으로 모든 법은 공(空)이며 그 하나하나의 법이 고정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소승불교의 한계와 부처님 말씀의 참뜻을 지적한 반야경은 대승불교의 초기부터 발달해 현재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을 이루고 있다.
152. 반야심경(신중단에)을 읽는 이유
불, 보살의 마음은 허공과 같이 텅텅 비어 있다. 비어 있으므로 일체 중생의 마음을 관통하게 된다.
따라서 내 마음이 비면 곧 제불 보살님과 즉시 교통하여 신통이 나타나므로 신가ㆍ구가ㆍ의가
(身加 口加 意加)의 가피력을 얻게 된다.
몸에 가피력을 얻으면 부처님과 같은 행동이 나타나고,
입에 가피력을 입으면 부처님과 같은 말이 나오고,
뜻에 가피력을 입으면 생각이 부처님과 같게 된다.
이런 도리를 일깨워 주기 위해서 신장님께 반야심경을 읽어드리는 것이다. 신장님은 복으로 보면
인간들보다 훨씬 뛰어난 분들이 많으나 정사(正邪), 선악(善惡)을 따지는 마음 때문에 때로는 남의
생명을 살상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대자대비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불법을 교육할 필요가 있게 되므로
<반야심경>을 읽어드리는 것이다.
153. 반좌 (半座)
잡아함(雜阿含)이라는 경전에 마하가섭(Mahaksyapa) 이야기가 나온다. 부처님의 십대제자로 꼽히는
이들 중 사리불, 목건련 다음가는 제 3의 대제자이다. 마하가섭은 수행에 힘써서 두타제일(頭陀第一)
이라 부른다. 두타대(頭陀袋)란 것은 수행자가 어깨에 걸치는 자루 즉 바랑이다.
마하가섭이 어느 날 낡고 구겨진 옷차림으로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에 갔다.
사람들은 그의 차림새가 너무도 추레해서 얕잡아 보았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에게 ‘이리 와서 앉게’ 하고는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의 절반을 내주어 곁에 앉게 했다. 그것을 본 비구들은 황송하다 못해 모골이 송연했다고 한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마하가섭은 그처럼 유덕(有德)한 사람이었고 또한 부처님 재세시(在世時)에 사리불과 목건련이
입적했기 때문에 부처님 입멸 후 불교교단의 대표자가 되었다.
부처님 입멸 후 다비하기 위하여 불을 붙였지만 불길이 제대로 붙지 않았다.
마침 먼 곳에 나다니던 마하가섭이 늦게 와서 장례를 주재하자 그제서야 불이 제대로 타올랐다는 것도
교단의 새로운 통솔자는 그 이외에 다른 사람일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일화일 것이다.
(곽시쌍부:槨示雙趺)
부처님이 앉아 계시던 자리의 한쪽을 내준 것, 즉 반좌는 분좌(分座)라고도 하는데 덕을 같이 지니고
있었다는 뜻도 된다. 부처님도 마하가섭같이 훌륭한 후계자가 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이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불경은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는 아난존자의 입으로 암송되었다지만 그것을 왕사성 결집이라는
대규모 편집회의에서 이룩한 공적은 역시 마하가섭의 역량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것이다.
154. 발우공양 (鉢盂供養)
현행의 발우공양은 영탑(靈塔)순례의 상징성을 갖는 회발게(불은상기게)를 시작으로 일체중생의 삼륜
공적을 기원한 채 발우를 펴는 전발게에 이어 제불보살에 대한 염송(念)과 함께 반야바라밀에 대한
귀의의 내용을 담은 십념불 그리고 음식을 받고서 모든 중생이 선의 열락으로서 음식 삼아 법의 기쁨
충만케 되기를 기원하는 봉발게, 음식이 건네 온 인연과 나의 덕행을 헤아린 채 오직 도업을 위해
음식을 먹겠다는 의지의 오관게, 귀신들에게 공양을 기원하는 출생게 등을 외운 후 죽비 세 번에
합장저두하고 공양에 임한다.
그리고 공양을 마친 후 발우를 씻은 물을 아귀에게 주며 그들의 포만을 기원하는 절수게, 공양 후
충만한 내 몸과 마음속에 인연과 과보에 집착하지 않음이 생겨난 채 오직 일체중생이 신통을 얻기
원한다는 수발게 등을 외운 후 죽비 세 번에 합장저두하는 것으로 공양을 마친다.
발우 1벌은 4개의 짝으로 구성된다. 성도 후 조(爪)와 우바리(優婆離)라 불리는 상인으로부터 최초의
공양을 받게 된 부처님께 사천왕이 각각 하나씩 발우를 부처님께 올렸는바 부처님께서는 그 4개의
우를 받아 하나로 합쳐 공양을 받은 데서 유래한다.
가장 큰 발우는 ‘불발우’ 다음 것을 ‘보살발우’ 다음 것을 ‘연각발우’ 제일 작은 것을 ‘성문발우’라 칭한다.
<본서: 공양 참조>
155. 발원문 (發願文,怡山禪師 이산선사)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법보와 보살성문 스님네께 지성귀의
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주옵소서 저희들이 참된성품
등지옵고 무명속에 뛰어들어 나고죽는 물결따라 빛과소리 물이들고
심술궂고 욕심내어 온갖번뇌 쌓았으며 보고듣고 맛봄으로 한량없는
죄를지어 잘못된길 갈팡질팡 생사고해 헤매면서 나와남을 집착하고
그른길만 찾아다녀 여러생에 지은업장 크고작은 많은허물 삼보전에
원력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 바라옵건대 부처님이 이끄시고
보살님네 살피시어 고통바다 헤어나서 열반언덕 가사이다 이세상에
명과복은 길이길이 창성하고 오는세상 불법지혜 무럭무럭 자라나서
날적마다 좋은국토 밝은스승 만나오며 바른심심 굳게세워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눈이 총명하고 말과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안들고
청정범행 닦고닦아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
점잖은 거동으로 모든생명 사랑하여 이내목숨 버리어도 지성으로
보호하리 삼재팔난 만나잖고 불법인연 구족하며 반야지혜 드러나고
보살마음 견고하여 제불정법 잘배워서 대승진리 깨달은뒤 육바라밀
행을닦아 아승지겁 뛰어넘고 곳곳마다 설법으로 천겹만겹 의심끊고
마군중을 항복받고 삼보를 잇사올제 시방제불 섬기는일 잠간인들
쉬오리까 온갖법문 다배워서 모두통달 하옵거든 복과지혜 함께늘어
무량중생 제도하며 여섯가지 신통얻고 무생법인 이룬뒤에 관음보살
대자비로 시방법계 다니면서 보현보살 행원으로 많은중생 건지올제
여러가지 몸을나퉈 미묘법문 연설하고 지옥아귀 나쁜곳엔 광명놓고
신통보여 내모양을 보는이나 내이름을 듣는이는 보리마음 모두내어
윤회고를 벗어나되 화탕지옥 끓는물은 감로수로 변해지고 검수도산
날선칼날 연꽃으로 화하여서 고통받던 저중생들 극락세계 왕생하며
나는새와 기는짐승 원수맺고 빚진이들 갖은고통 벗어나서 좋은복락
누려지다 모진질병 돌적에는 약풀되어 치료하고 흉년드는 세상에는
쌀이되어 구제하되 여러중생 이익한일 한가진들 빼오리까 천겁만겁
내려오던 원수거나 친한이나 이세상 친속들도 누구누구 할것없이
얽히었던 애정끊고 삼계고해 벗어나서 시방세계 중생들이 모두성불
하사이다 허공끝이 있사온들 이내소원 다하리까 유정들도 무정들도
이체종지 이뤄지이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156. 방부의례 (榜附儀禮)
방부의례는 스님이 한 사찰에 들어가 정주(定住)하고자 할 때에 갖추어야 할 절차와 위의이다.
사찰의 소임을 맡기보다는 선원이나 강원 등에서 대중생활을 할때 대중에게 ‘대중과 함께 화합하며
정진할 것’을 약속하고 허락 받는 것이다.
우선 방부를 들이고자 할 때는 먼저 그 절의 지객(知客)소임을 맡은 스님이 준비한 참중원서(參衆願書)를 적는데 이때 필요한 관련증명을 첨부한다. 선원에 방부들일 때는 이전의 안거증을 제시하며,
강원에 방부들일 때는 이전 과정의 수료증을 첨부해야 한다.
조계종 교육원에서는 강원(승가대학)의 이동질서 확립을 위해 전 강원의 강주(승가대학장)의 동의서를
제출하게 한다. 지객은 참중원서를 받아 찰중에게 또다시 찰중(察衆)은 입승(入繩)에게 허락을 구하며
이후 아침공양이 끝난 후 약식 공사가 행해질 때 큰방에 인사를 드림으로서 정식 방부절차를 행한다.
장삼과 가사를 수(垂)한 다음 지객과 함께 큰방에 들어선 객은 먼저 불단에 반배한다. 다음 지객이
밖으로 나가면 어간을 향해 삼배를 한 후 무릎을 꿇고 앉는다. 사찰의 교무 소임자는 방부들일 스님의
본사와 은사, 간략한 약력과 함께 방부 처소를 발표한다.
어른스님으로부터 ‘대중에 들어와 화합할 것’등의 훈계를 듣고 난 후 절을 올리고 큰방을 나오면
방부의례는 끝난다.
157. 방생 (放生)
방생은 생명의 존엄성을 깨우쳐 주는 의식이며 선업을 짓는 적극적인 자비행이다. 산 짐승을 놓아주는
의식으로 죽음에 처한 생명을 구제하는 의미가 있다. 질병과 굶주림에 고통 받는 이웃을 도우며
생사고해에서 윤회하는 중생을 구제하는데 이르기까지 의미는 매우 넓다.
부처님께서는 ‘살생은 과거의 부모형제를 살해하는 것이고 미래의 부처님을 죽이는 행위로 생명의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큰 죄악’이라 말씀하셨다. 생명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깨우쳐 주는 것은
불교의 사명으로 최근 생태계를 위협하는 환경문제와 함께 생각해 볼 때 방생 정신을 실현하는 것은
불교인의 사명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방생은 불자들이 행해야 할 제일의 규범가운데 하나다.
<석문의범> 방생편에는 ‘예수코자(豫修齋를 행하고자)하거든 방생부터 먼저 하라’ 고 말했다.
이어 자식이 없는 자가 자식을 두고자 할 때ㆍ아이를 배어 생산의 안녕을 바랄 때ㆍ기도를 행할 때ㆍ
예수재를 행하고자 할 때ㆍ재계(齋戒)를 가질 때ㆍ복록(福祿)을 구하고자 할 때ㆍ염불을 하고자 할 때 등 일곱 경우에 방생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의식은 천수경ㆍ거불ㆍ청성가피ㆍ참제업장ㆍ참회진언ㆍ귀의삼보ㆍ방석물명ㆍ정근ㆍ다게ㆍ
사다라니ㆍ사대진언ㆍ회향게ㆍ축원ㆍ반야심경 순으로 진행한다.
☀ 적석도인 칠방생 (赤石道人 七放生)
첫째. 자식을 얻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방생하라.
세상 사람들이 자식을 얻고자 함에 약을 먹는데 온 힘을 쏟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 평생 약을 먹고도 효험을 보지 못하는 사례가 많나니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병이 있어서 자식이 없거든 약을 먹고 병이 없는데도 자식이 없거든 방생을 하라고 말 하노니 대저 천지에 가장 큰 덕은 생명을 살림에 있음이라.
그러므로 사람을 살리고 만물을 살려서 살려주고 살게 하는 이치가 끊어지지 아니하니 진실로 살게
해주는 마음으로 마음을 삼아서 저를 살게 해주는 것이 반드시 나를 살게 함이라 방생만 하고 보면
꼭 자녀를 얻게 될 것이다.
둘째. 자식을 임신하거든 반드시 방생하여 산모를 보전하라.
세상 사람들은 자식을 임신하여 혹 귀신에게 빌어서 순산과 안녕을 바라면서도 방생을 통하여 모든 일에 안전을 기약하는 훌륭한 인과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구나!
대저 잉태하여 자식을 보는 것은 사람과 만물이 다르지 않고 사람과 만물은 천지의 생명이라 짐승의
새끼 가짐을 내가 구하여 주는데 내가 자식을 잉태하면 어찌 하늘이 보호하지 않겠는가!
셋째. 기도함에 반드시 방생하여 복을 지어라.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밥을 드시고 귀신은 피를 마신다 하나니 이는 크게 잘못 이해한
까닭이다.
자고로 부처님께서는 하늘과 신의 스승이요, 신이란 부처님을 받들어 어김이 없는 자이라, 생명을 살리는 것을 기뻐하시는 덕은 신과 부처님이 같으시니 진실로 신과 부처님의 덕을 깨달아서 금수만물이 급한
경우를 당하거든 많고 적음을 가리지 말고 보는 대로 돈을 주고 사서 놓아 줄 것이며 만약 돈이 없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염불이라도 하여 주면 자연히 높은 천신들이 감동하여 복을 얻음이
한량없을 것이니라.
넷째. 예수재를 지내고저 하거든 방생부터 먼저 하라.
세상 사람들이 언제나 스님을 청하여 불사를 짓고 미리 닦는 것은 진실로 죽은 뒤에도 육도에 윤회함에
업식이 아득하고 아득함이라. 미리 불보살님께서 어여삐 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구하여서
예수재를 지냄이 아닌가!
그러므로 자고로 세간의 자선은 방생보다 더 좋음이 없으니 내가 자비심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
방생하여 불보살님의 자비로우신 큰 덕에 감동을 받게 되면 반드시 그 복으로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게
될 것이니라.
다섯째. 재계를 가짐에 반드시 방생하라.
제불보살님께서 중생들이 재계를 가짐을 좋아 하시는 이유는 만물을 어여삐 여기사 자비심으로
보호하기를 바라는 까닭이라,
일체 중생이 불자 아님이 없나니, 진실로 재계를 가지는 날에 더욱 방생으로 선행을 보태면
제불보살님께서 몇 배나 더 환희심을 내지 않겠는가!
여섯째. 녹을 구함에 먼저 방생하여 복을 지으라.
개미가 송기(宋祈)에게 보은하고 용자(龍子)가 사막(思邈)에게 은혜를 갚았으니 방생하여 이익을
얻음은 결코 헛되지 않음이라,
대저 부귀명복은 요행으로 되지 않고 오직 복을 짓는 자라야 반드시 명복을 얻나니 사람이 어진
마음으로 미물의 생명을 불쌍히 여겨서 죽어가는 미물의 목숨을 구제할 것 같으면 나의 구제를 입은
생명이 기회를 엿보아 보답할 것은 정해진 이치가 아니겠는가!
일곱째. 염불함에 반드시 방생부터 하라.
산중에 있어 참선을 오래도록 하다가 하루아침에 견성오도(見性悟道)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번뇌로
뒤덮인 속세에 묻혀 살면서 염불하는 입장에 있어서는 더욱이 말할 나위 없이 자비심으로써 방생을
주로 할지라.
미물을 구제함이 사람을 구제함보다 낫지는 않겠지만 사람이 극형을 범하는 것은 대개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그 죄과를 받음이나 미물들이 참혹한 환란을 만남은 무슨 연유로 말미암은 것인가? 누구든지
연지대사와 영명연수선사의 방생으로써 급한 업무를 삼는 것을 보아 깨달음을 얻을지니라.
☀ 연지대사 칠종 불살생 (蓮池大師七種不殺生)
첫째. 생일에 살생하지 말라.
상서(尙書)에 말씀하시기를 슬프다.
부모시여, 나를 낳으시느라 수고하셨다 하였으니 내 몸이 출생하던 날은 어머니께서 거의 죽을뻔 하시던 때라 이날은 결코 살생을 경계하며 재계(齋戒)를 가지고 널리 착한 일을 행하여야 먼저 가신 부모님께는 삼악도를 여의고 천상과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공덕을 지어드리며 만약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신다면 복과 수명을 늘어나게 함이거늘, 애달프다!
어찌하여 어머니께서 나를 낳으실 때 고통을 겪으시고 곤란을 겪으며 목숨이 위태롭던 일들을 모두 잊고 망령되이 생명을 살해하여 위로는 부모님께 누를 끼치고 아래로는 자신에게 이롭지 못하게 하는고?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둘째. 자식을 낳거든 살생하지 말라.
대저 사람이 자식이 없은즉 슬퍼하고 자식이 있으면 기뻐하면서 모든 금수(禽獸:짐승)도 각각 그 새끼를 사랑함은 생각지 못하는구나! 나의 자식이 태어남은 기뻐하면서 남의 새끼를 죽게 함은 어찌 마음이 편안할까?
대저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남에 덕을 쌓지는 못할지언정 도리어 살생을 하여 업을 짓는 것은 가장
어리석음인데도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셋째. 제사(祭祀) 지냄에 살생하지 말라.
돌아가신 조상님의 기일(忌日)과 춘추(春秋) 소분(掃墳: 벌초하는 날)에 마땅히 살생을 삼가하여 먼저가신 조상님의 명복을 빌어드려야 하거늘 도리어 살생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한갓 악업만 더하게 되나니
대저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돌아가신 조상님께 올릴지라도 어찌 구천(九泉:저승)에 가신 유골을 일으켜 흠향(歆饗:음식을 잡수시게 하는 것)하시게 할 수 있겠는가?
조금도 이익(利益)은 없고 해(害)만 됨이거늘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넷째. 혼례(婚禮)에 살생하지 말라.
대저 혼인이라는 것은 백성이 살아가는 시초가 아닌가,
살아가자는 시초인 혼례에 살생을 하는 것은 이치가 벌써 틀린 것이요, 또 혼례는 좋은 일, 즉 길사(吉事)인데, 좋은 날 길일(吉日)에 거꾸로 흉한 일을 행함이 참혹하지 않은가?
또 결혼식을 하면 반드시 부부로써 서로 평생을 해로(偕老)하기를 축사하나니 사람은 해로하기를 원하면서 금수(禽獸)는 먼저 죽게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도리란 말인가?
또 시집을 보내는 집에서 삼일동안 촛불을 끄지 않는 것은 모녀가 서로 이별하는 것을 아파하기 때문이나니 사람은 이별하는 것을 괴로워하면서 금수는 이별을 당하게 함을 전혀 돌이켜 보지 못하단 말인가?
혼례에 살생하는 것이 이토록 참혹한 행위이거늘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다섯째. 잔치를 베풀 때에 살생하지 말라.
좋은 일로 잔치를 배품에 주인과 손님이 서로 마주하여 담담한 다과와 신선한 야채, 나물과 채소 국에다 향기로운 과일로 잔치를 배품에 전혀 방해됨이 없거늘 어찌 살생을 즐겨하여 살아있는 생명의 목을 따고 배를 가름에 비명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한단 말인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어찌 이런 비명소리를 듣고서 측은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단 말인가?
만약 우리가 저 축생의 입장이라면 어찌 비참하지 않겠는가?
만일 식탁에 아름다운 산해진미가 도마 위의 고통으로부터 말미암아 왔다면 저 생명의 죽임을 통해
지극한 원한으로 나의 지극한 환락을 마련한 꼴이니 생각하는 동시는 비록 먹더라도 목이 멜 것이거늘
잔치를 하면서 살생하는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여섯째. 기도를 함에 살생하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병이 들어 기도를 할 때 살생을 하여 상을 차리고 기도하여서 복 받아 병이 낫고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도리어 자기가 기도하는 목적이 죽음을 면하고 살기를 구하는 것임을 생각하지
못함이로다. 남의 목숨을 죽여서 자신의 목숨을 늘리고자 함이 벌써 천리(天理)에 어긋나지 않는가!
목숨은 늘리지도 못하고 살생업만 짓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 살생하여 자식을 구하고 살생하여
재물을 구하고 살생하여 벼슬을 구하면서 그 아들과 재물과 벼슬이 다 본인의 전생에 닦은 업보이며
그 분수에 따라 정해진 것이며 결코 귀신의 능력이 아닌데 이것을 알지 못하도다.
그리하여 어쩌다 혹 자신의 원대로 소원이 성취되면 이것을 귀신이 영험하다고 생각하여 더욱 믿고
더욱 살생하여 기도를 행하나니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일곱째. 살생하는 직업을 갖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의식주를 위해서 혹은 사냥도 하고 혹은 고기도 잡으며 혹은 소도 잡고 개도 잡아서
생계를 하지만은 나는 생각하기를 이 노릇을 하지 않더라도 밥을 먹지 못하고 옷을 입지 못하여서
굶어 죽었다거나 얼어 죽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노라.
살생하는 직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천리(天理)를 어그러뜨림이라 지옥과 깊은 인연을 심고 내세에
나쁜 과보를 받음이 이보다 심함이 없거늘 어찌하여 다른 생계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아니 하는고,
이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습관이 되어 그릇된 줄을 알지 못하니 참으로 통곡하고 길이 탄식할 일이로다.
158. 방장 (方丈), 조실(祖室)
방장, 조실은 정신적 귀의처가 되는 것은 공통적이나 방장은 총림(叢林)의 최고 지도자로 그 통솔 범위가 넓고 조실은 규모가 조금 작은 사찰의 최고 어른이다.
총림은 종합수도 도량이다.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 종무소(禪院,講院,律院,念佛院,宗務所) 등의 규모가 잘 짜여진 도량이다.
대한불교조계종에는 영축총림 통도사ㆍ가야총림 해인사ㆍ조계총림 송광사ㆍ덕숭총림 수덕사ㆍ
고불총림 백양사 등의 5군데가 있다.
159. 방편 (方便)
차별의 사상(事象)을 알고 근기에 따라 중생을 제도하는 지혜다.
접근하고 도달한다는 의미로 실상의 법계 속으로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마련한 수단을
말한다.
강을 건너는데 쓰이는 뗏목으로 비유되는 이 방편은 <대승의장>권15에 있는 깨달음을 향해 가기 위한
준비단계인 진취방편, 중생을 인도하는 권교방편 등 여러 가지다. 특히 선교방편(善巧方便)은 중생을
인도하는 수단으로 세간에 작용되는 지혜 즉 방편지의 작용을 말한다.
모든 교설은 언어와 문자에 의한다는 점에서 방편시설에 지나지 않는데 깨달음을 직접 설하여 진실한
의도를 나타낸 것을 진실한 가르침, 진실로 인도하기 위해 상대에 따라 다양하게 보이는 것을 방편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깨달음을 성취한 뒤의 방편을 과후(果後)의 방편이라 하고 보살에겐 12교 방편을 세우고 불법을 배워
중생을 선도하는 지침으로 삼게 한다.
160. 방하착 (放下著)
‘방하착’이란 내려 놓으란 말이다.
엄양이 조주에게 말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에 어떡합니까?”
조주가 대답했다.
“방하착 하라” 엄양이 또 물었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방하(放下)합니까?”
조주가 엄양에게 다시 말했다. “그러면 지고 가거라.”
⌾ 방하착: <다음백과사전: 무소유를 의미하는 불교 용어.>
방하착은 손을 내려 밑에 둔다는 뜻이다. 흔히 ‘내려놓아라’, ‘놓아 버려라’라는 의미로 불교 선종에서
화두로 삼는 용어이다.
중국 송대의 불교서적인 오등회원 세존장의 일화에 방화착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흑씨범지가 합환한
오동꽃을 받들어 세존께 공양하자, 부처님이 범지를 불러 ‘방하착하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방하착하라는 것은 단순히 손을 내려놓으라는 의미가 아닌 꽃을 공양했다는 집착된 마음마저
내려놓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인간의 마음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탐욕을 버림으로써 무소유를 통한 인간의 자기회복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방하착의 의미는 선종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화두로 쓰이고 있다.
‘착’은 앞의 ‘방하’ 를 강조하는 어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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