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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S] 1승이라는 기적을 향한 무한도전
스포츠를 흔히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 말 만큼 스포츠를 그럴싸하게 표현한 말은 없는 듯도 하다. 드라마에 주연과 조연이 있듯 스포츠는 강자와 약자가 나뉘어지는 듯 하나 예상과는 다른 이변도 있고, 예외도 있고, 기적도 있다. 확률적인 데이터를 들이밀어도 설명할 수 없고, 수치화된 기록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스포츠에는 있다. 그래서 남들이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을 시도하는 무모한 도전도 존재하는 것이 스포츠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력이라는 감초조연이 있다면 무모한 도전이라는 드라마는 분명 기적이라는 히트작이 될수도 있다. 지금 이시간에도 운동장을 뛰고, 뒹굴며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재료로 멋진 히트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배경은 중국 광저우, 소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하나, 주연은 12명의 외인군단, 한국 최초의 여자럭비대표팀이다.
◆ 여자럭비대표팀의 탄생
여자 럭비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 첫 발을 내딛게 됐다 (사진 : 대한럭비협회)
지난해 10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총회를 열고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루올림픽부터 골프와 럭비를 정식종목에 추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 중 럭비는 전통적인 15인제 대신 7인제 경기로 치러진다. 럭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됐다는 것은 올림픽 메달을 딸수도 있다는 희망 그 차원을 넘어서는 큰 의미를 지닌다. 올림픽 종목이라면 국민들의 관심을 좀더 이끌어 낼 수 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실업팀의 창단, 선수들의 저변확대로 이어질것이다.
특히 여자럭비는 올림픽에 앞서 이미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상황이었기에 대한럭비협회의 움직임은 바빠졌다. 럭비를 대중화할 수 있는, 그것이 아니더라도 럭비를 좀더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남녀 종목이 모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만큼 여자럭비대표팀을 육성하자는데 까지 럭비계의 의견이 모아졌다.
한국여성의 근성과 노력은 스포츠 분야에서도 두드러져왔고, 장기적인 플랜으로 접근한다면 세계정상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대한럭비협회는 지체없이 여자선수들 모집에 나섰다. 그것이 지난 5월의 일이다.
"나이나 신체 조건에 제한이 없으며 한국 국적만 갖고 있으면 된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항들이 여자럭비대표팀의 선발조건이었다. 럭비협회 게시판에 공고를 내기는 했지만 럭비라는 생소한 종목에, 그것도 남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는 럭비를 하겠다고 지원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지 않았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여성들은 역시 용감했다.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발테스트 (사진 : 대한럭비협회) |
지난 6월5일 낮, 서울 안암동 고려대 녹지운동장. 여자럭비대표팀의 공개선발전이 진행됐다. 유난히 여름이 빨리 찾아왔던 올해, 그래서 6월이라지만 햇볕은 한여름 만큼이나 뜨거웠고 그 30℃에 달할 정도로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젊은 여성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힘겨운 씨름을 했다. 선발전은 50m, 100m 달리기, 왕복달리기, 킥, 패스 순으로 진행됐다. 협회에서는 11월에 있을 아시안게임보다는 앞으로 한국 여자 럭비를 이끌어갈 선수를 뽑는다는 취지아래 기본 운동능력 테스트에 중점을 뒀다.
그나마 여자럭비클럽 동호인이나 축구 선수 등 럭비와 무관하지 않은 선수 출신은 이겨낼만 했을지 모르지만 럭비공을 처음 만져본 여성들에게는 럭비공을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일정이었다. 헛발질을 하거나 아예 공을 뒤로 차 보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1차 테스트를 힘겹게 마친 지원자 중에서 20명 정도를 추리고 그 후 추가테스트를 통해 최종 14명을 선발했다. 이 14명으로 한국최초의 여자럭비 대표팀은 첫 걸음을 내디뎠다.
◆ 광저우를 향한 첫 발걸음
아시안게임 첫 출전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달리는 여자대표팀 (사진 : 대한럭비협회)
선수라는 호칭 자체가 생소하기만 한 최종선발자들이 지난 7월1일, 힘찬 포부와 알수없는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합숙훈련에 돌입했다. 처음으로 장비와 유니폼을 지급받고 훈련할 장소와 숙소도 배정을 받았다. 정식으로 공을 만져본 것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대표팀을 이끌 코칭스태프는 청소년대표팀을 함께 조련했던 문영찬 감독과 강동호코치, 이들은 기본기 훈련부터 시작했다.
최초라는, 거창하게는 럭비역사의 한획을 긋는다는 포부로 시작한 문감독과 강코치가 이것이 쉽지 않은 도전이 될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럭비를 동호회에서 해봤다는 선수도 있고, 기본체력이 되는 체육학과 출신들도 있었지만 앞날이 캄캄했다.
강동호코치는 "전반적으로 선수들이 근력도 없고, 조금만 힘든 운동을 하면 아프다고 하고, 기술습득 진도는 앞으로 나갈 줄을 모르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었죠."라며 합숙초기 힘든 상황을 회상했다.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열심히 가르쳐놓아도 휴가를 일주일 갔다오면 선수들의 몸상태나 기술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있어 기본기 훈련을 또다시 해야했다. 휴가동안에 그동안 배운 기본기를 연습해보고 싶어도 공은 물론 훈련장소도, 같이 훈련해줄 선수도 없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현실이었다.
문영찬 감독의 고민도 마찬가지. 휴가기간 혹시 그만둔다는 선수가 있을까봐 내내 긴장을 늦출수가 없었다. 선수에게 전화라도 한통 올라치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먼저 스쳐지나갔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고 1차합숙을 끝난 후 두명의 낙오자가 생겼다. 때문에 부산에서의 2차 합숙은 어쩔수 없이 12명의 선수로 치러야했고, 다행히 그 열두명은 지금도 문영찬감독과 강동호코치와 함께다.
문영찬감독은 12명이 지금까지 와 준것에 대해서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 "이제 이 열두명은 럭비의 매력에 빠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여자가 할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우리 아이들은 그런 말에 신경쓰지 않을 정도가 됐죠. 사실 신경 쓸 여력이 없어요"
세간의 이야기들과 편견된 눈빛에 신경쓸 겨를이 없는건 사실이다. 오후 훈련까지 마치고 나면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선수들은 그대로 잠을 청하는 법이 없다. 저녁식사 후에도 개인훈련을 빠뜨리지 않는다. 인천 모처에 자리한 숙소 주차장 작은 불빛을 벗삼아 패스훈련도 하고 웨이트장을 찾아 체력단련도 한다. 익숙하지 않은 럭비공과 친해질수 있다면 뭐든 이들에게는 훈련의 도구가 되고, 어디든 훈련장이 된다.
선수들과 함께 달리는 문영찬 대표팀 감독 (사진 : 대한럭비협회) |
문영찬감독에게는 럭비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12명의 선수가 그의 말대로 딸 같은, 자식같은 존재다. 실제로 또래의 딸이 있는 문영찬 감독은 한켠에 안쓰러운 마음을 우스개 소리로 표현한다. 훈련을 마치고 이동차량으로 몸을 싣기 위해 땀에 흠뻑 젖은 채 훈련장비들을 짊어메고 터벅터벅 움직이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저 무거운 것들을 메고 다니면서도 좋단다"라는 혼잣말을 하며 기특해하곤 한다.
늘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던 문감독이기에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이들의 도전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문영찬감독은 한국럭비해외진출의 선구자다. 럭비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80년대, 동료인 한동호와 함께 한국 럭비 사상 최초로 일본에 진출한 인물이다. 당시 한국에는 럭비팀이 없었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교사의 길을 가던 때였다.
안정된 길이 있었지만 문감독은 일본전기회사 럭비팀 입단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고 팀을 3년만에 1부리그로 끌어올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잘 맞지 않는데다 생활방식 또한 생소한 부분이 많아 힘든적이 많았지만 자신을 통해 후배들의 해외진출이 물꼬를 틀수도 있다는 사명감에 견딜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여자럭비대표팀 육성도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고 힘들지만 분명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며 그 일을 내가, 아니 우리가 하는 것 뿐이라고"
◆ 無에서 有를 창조하라
이들이 동고동락한지도 3개월이 됐다. 지금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럭비선수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지만 그래도 선수의 색깔이 조금은 덧입혀진 느낌이다. 서로를 배려할 줄도 알게 된 한팀이 됐다. 대학원생인 김선아는 "훈련강도가 높아 처음에는 내몸 하나를 챙기기도 바빴어요, 오늘도 버텨냈구나 하는 심정으로 한달여를 보내고 보니 어느새 우리 전체가 보였다, 내가 힘내면 우리가 힘을 내는 것이고, 내가 웃으면 우리가 웃는다는 것을 알았죠"라고 말했다.
불과 몇개월전만해도 이들은 기본기 조차 없는 선수들이었다 (사진 : 대한럭비협회) |
3개월전만 하더라도 이들은 체력적인 부분 뿐만아니라 리시브, 패스 등 기초기술은 물론이고 럭비의 용어, 룰까지도 따로 공부해야할 정도로 백지상태나 다름없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은 룰을 배우기 위한 미팅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될 정도는 됐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룰을 숙지했다고 해서 그것이 실전에 녹아드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실수는 횟수가 줄었을 뿐, 계속 되고 있다. 드롭킥, 트라이, 터치다운, 스크럼 등의 용어와 어떤 경우에 어떤 규칙들이, 또 어느정도의 점수들이 적용되는지를 모두 숙지하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게 바로 럭비다.
럭비에서 꼭 지켜야하는 규칙과 용어를 쉽게 설명하자면, 럭비는 절대 앞으로 패스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패스를 하면 바로 양팀 선수들이 약간 엎드린 자세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여 그 가운데에 넣어진 공을 발로 빼앗는 ‘스크럼’이라는 대형을 만들게 된다. 축구에서의 골과 같은 것이 트라이(try) 터치다운 (touch down)이다. 상대편 골대밑에 라인이 있는데 그곳을 넘어가서 공을 땅에다 대면 5점, 트라이를 한 팀에게는 골 킥이 주어지는데 이것이 들어가면 2점이 추가된다. 트라이 하나로 7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선수들은 서서히 럭비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진 : 대한럭비협회) |
대표팀이 겨우 이런 규칙들을 숙지했다 싶었을 즈음 문영찬 감독과 강동호 코치는 선수들에게 한가지 목표를 던져줬다. 국제대회에서의 트라이 하나, 여자럭비대표팀 최초의 트라이가 그것이다. 합숙훈련을 시작한지 20여일 만에 첫 국제대회인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나갔다. 성적은 예상대로 4전 전패. 태국에 47-0, 대만에 52-0, 필리핀에 31-0, 인도에 22-7로 4전 전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인도와의 예선 최종전에서 낸 7점, 바로 첫 트라이를 기록하며 대회 전 세운 소박하지만 그들에게 이룰수 없을 것만 같았던 목표를 이루고 돌아왔다.
문영찬감독은 "경기결과를 모르는 사람은 한국이 우승한 줄 알았을 것"이라며 당시 선수들의 기뻐하는 분위기를 귀띔해줬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에게 뛰라고 한 격이지만 트라이 하나가 가져다 준 힘은 무척 컸다. 목표를 이뤘다는 성취감으로 이들은 어느새 하나가 돼 있었고, 그들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바로 아시안게임에서의 1승이다. 다른 종목선수들은 비웃을지 모르지만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목표다. 훈련기간도 짧고 국제대회 경험이라고는 딱 한차례, 그나마 훈련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처지다. 학생신분의 선수들은 중간고사를 보기 위해 학교로 복귀해야하고, 예정된 연수나 교생실습을 나가는 선수들도 있다. 그래도 1승이 가능하다고 믿는 힘, 그것은 럭비를 향한 그들의 열정이다.
◆ 럭비는 내 운명
여자럭비대표팀은 인천환경공단 송도종합스포츠센터의 인조잔디구장 한켠을 빌려 한달여 남은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개막은 11월12일지만 럭비종목은 20일 이후 시작되기 때문에 경기전 까지는 한달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다.)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훌륭한 환경에, 풍족한 지원을 받으며 훈련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국가대표 새내기팀에, 메달유망종목도 아닌 여자럭비에게 그 차례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럭비경기장과 같은 천연잔디 구장에서 훈련을 하다가 그마저도 어려워 인조잔디 구장으로 밀려나 훈련을 하고 있지만 이런 장소라도 있다는게 고마울 따름이다. 풋살구장 정도 되는 이 훈련장에서는 파이팅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뛰고 달리고 공을 던지고 받기를 수백번, 온힘을 쏟아붓고 있다.
왼쪽 위부터 강동호코치, 김아가다, 주은수, 이민희, 김민지, 김다흰, 이예솔, 문영찬 감독. 송정은, 민경진, 김선아, 박소연, 채성은, 정하니 (사진 : 대한럭비협회) |
당분간은 20대 여성으로서의 삶이 아닌 럭비대표선수로서의 삶은 택한 이들은 그들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주장 이민희는 럭비가 운명처럼 다가왔다고 했다. 어느날 우연히 신문에서 국내 외국인 여자럭비클럽을 소개한 기사를 읽은 후 무작정 그 팀을 수소문해 들어가 럭비를 시작했고 럭비대표팀을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는 하던 일도 그만두고 대표팀에 합류했다. 럭비가 좋아 해외연수를 떠나 지난해 9월부터 두 달간 홍콩 여자럭비리그에서 뛰었을 정도로 그녀의 열정은 대단하다. 열정만큼 목표도 크다. "저는 아시안게임만이 목표가 아니에요, 월드컵도 나갈거구요, 럭비심판도 되고 싶어요. 럭비는 제 인생을 바꿔놨습니다"
이력들도 다양하다. 관심에서 취미로, 취미에서 운명이 됐다. 라디오 방송국 PD 출신으로 올 6월 대표선발 테스트 공고를 보자 프리랜서 일까지 접고 대표팀에 들어온 맏언니 민경진, 축구에서 펜싱으로 전향한 뒤 적응에 힘들어하다 럭비대표팀에 합류하게 된 막내 채성은, 이외에도 창던지기 선수 출신, 대학조교, 체대생 등 외인구단이 따로 없다. 그러나 시작은 이렇게 늘 미약하다고 생각한다. 아시안게임이 코앞에 놓인 과제지만 이들은 더 먼 미래를 이미 바라보고 있다.
여자축구가 시작된지 20년만에 세계정상에 올랐듯 여자럭비도 세계를 호령하기 위해서는 시간이라는 묘약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기에 자신들이 지금 거기 서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다흰은 편견없이 바라봐 달라며 말했다. "단지 1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관심을 못받는 종목을 왜 힘들게 하냐고, 우리를 안타깝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지금 여자럭비의 미래를 시작하는 거니까요. 열심히 할겁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동아리 하나라도 더 생긴다면 우리는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 1승의 제물은?
여자럭비대표팀은 이제야 럭비를 조금이나마 알게 된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공이 딱딱해 리시브할때마다 눈을 감아버리는 습관도 없어지고 럭비공을 가슴 깊숙이 받아 떨어뜨리지 않는 법을 알겠고, 스크럼도 제법 모양이 갖춰지고 있단다. 머리에서 몸으로 아닌, 생각과 몸이 이제야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아시안게임 여자럭비 조 편성 (괄호안 숫자는 출전국 랭킹) |
앞으로 한달, 이제는 조별예선에서 만날 상대 중 1승의 제물을 골라 집중적으로 연구해야한다. 같은 A조에 속한 나라 중 중국은 유력한 금메달 후보, 태국도 메달을 노리는 팀이고, 홍콩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그나마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아시안게임의 목표인 1승을 바라봐야하는데 그 또한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한국이 지난 7월 전패했던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즈베키스탄은 올해 8위에 그쳤지만 지난해 이 대회에서는는 4위에 올랐을 정도로 저력이 있는 팀이다.
게다가 기술과 스피드가 필요한 7인제라는 점도 경험이 부족한 한국선수들에게는 불리한 조건이다. 럭비는 15인제와 7인제가 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종목은 7인제다. 전후반 40분씩 진행되는 15인제와 같은 규격의 경기장을 쓰는 7인제는 많은 공간이 창출돼 스피드 있는 선수가 유리하며 15인제는 파워와 체격 좋은 선수에게 유리하다.
아시안게임 선전을 다짐하는 여자럭비대표팀 (사진 : 이유미) |
한국남자럭비대표팀은 그동안 많은 대회를 통해 경험을 쌓고 기술을 연마해왔기 때문에 7인제에서 강점을 보이지만 여자럭비대표팀의 사정은 다르다. 15인제가 힘과 체력이 관건이라면 7인제는 스피드를 겸비한 기술이 관건이기 때문에 탄생된지 5개월정도 밖에 안된 상태에서 경기에 나서야하는 한국여자럭비대표팀에게 1승은 쉽지않은 목표이며, 아시안게임의 여정 또한 험난할 전망이다. 이들도 알고 있다. 1승을 하지 못할 수도 있고, 배운대로 잘 해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한걸음을 최선을 다해 멋지게 떼고 싶다. 그래야 4년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걸을 수 있고, 2016년 리우 데 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뛸수 있을테니 말이다.
여자럭비대표팀은 아시안게임 열기가 절정에 달했을 무렵 한국을 떠나 뒤늦게 광저우에 입성한다. 감독 선수를 포함한 15명의 선수단은 아마도 누구의 배웅도, 관심도 받지 못하고 광저우를 향해 갈지도 모르겠다. 광저우에서도 메달유망종목에 가려, 심지어는 남자럭비대표팀에 가려 그들의 경기소식은 신문 한켠에 단신으로도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힘든 여정을 치르고 돌아오는 귀국길도 이들이 주인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름다운 도전을 선택했다. 단 1승이 목표지만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한국여자럭비가 만들어 낼 감동의 드라마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이라는 예고편을 시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