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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포초등학교 개교 백주년 기념행사와 백년사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주년기념 동문한마당대축제 참석기>
2022년 6월11일 토요일 코로나19로 1년이나 연기되었던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주년기념 행사에 참석코저 동생(34회 하재범)이 운전하는 차로 오전 8시 반 부산을 출발하였다. 도중에 약간의 빗발이 스쳐 조금은 걱정이 되었으나 장승포에 도착할 무렵엔 맑은 하늘이 보였다. 교정 한켠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두고 교문 쪽으로 다시 나와 입구부터 천천히 둘러 봤다.
교문 입구 양쪽에 펼침막으로 제작된 연도별 졸업생 단체사진이 교정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반가히 맞아주고 있었다. 그중에 특히 눈에 들어오는 사진은 맨 앞쪽에 있는 30회 졸업생 단체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1955년 졸업한 이후로 66년간 내가 소중히 간직해오다가 제출한 사진이어서 더욱 눈에 띄었으며 졸업생 205명 중에 내 얼굴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잘 제작되어 있었다.
11시까지는 시간의 여유가 있어 고운 미소와 마음씨 상냥한 이미선 기획차장님의 주선로 교장실을 방문할 수 있었다. 동시작가인 동생(필명 하빈)이 자신이 출간한 수업시리즈 동시집 3권(수업끝 진짜수업 바다수업)과 산문집 "꼰대와 스마트폰"을 이상석 교장선생님에게 전하고 동시인으로 모교의 학생들에 도움이 될 일이 있는지 문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운동장으로 나와 원로석이란 팻말이 쓰인 텐트로 가서 30회 동기들을 만났다. 생각보다 많은 13명이나 되는 동기들(김경자 김금자 김영순 류덕자 박광자 박문수 박춘자 신영길 이진기 이향자 주수택 지한섭 황종성)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간간이 들러 인사를 나눈 분들을 정리하면 이웃에 살던 29회 배길송(옥포대첩기념사업회 회장) 선배님, 30회 동기지만 모교에서 20년이나 근무하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김경자님, 총동창회밴드를 통해 알게된 일본어에 박식한 41회 이형진님, 미모의 47회 윤수정 부회장님, 인상 좋은 52희 김용운 사무국장님, 다감한 56회 정종화 재무차장님 (거제수협 장승포지점장), 부지런하신 62회 유정훈 조직차장님 (거제시사회적공동체 지원센터 팀장) 등과 인사를 나눈 것으로 생각된다. 완벽한 행사 준비로 참석한 모든 동문에게 감동을 안겨주신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인사 말씀 전합니다.
아래는 당일 배부 받은 장승포초등학교 개교 100주년기념 동문한마당대축제 (2022 06 11 土 모교교정) 안내 팸플릿과 사진입니다.
<안 내 팸 플 릿>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년사" 톺아보기1]
지난 2022년 6월11일 감동적이고 열기에 가득 찬 개교100주년기념 동문한마당 대축제에 참가하고 돌아온 후 개교100년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그 내용을 몇 차례로 나누어 소개하여 보고자 한다.
우선 표지사진부터 자세히 보니 옛날의 장승포 1구에서 5구, 두모1구, 능포1구와 2구 그리고 옥포까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사진 한장으로 옛날의 장승포가 지금 얼마나 변했는 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됨을 알 수 있다. 이 표지 사진을 보며 모두들 옛날 내가 살던 곳을 떠올려 보며 옛추억을 반추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현재의 모교 교사전경이다. 아래 위 두 동으로 구성된 옛 모습은 흔적도 없고 산뜻한 모습의 교사가 눈길을 끈다. 옛 교사 뒤로는 산언덕이었는데 지금은 능포로 가는 큰 도로가 뚫려 있었다. 교정의 인조잔디 위에서 신나게 뛰어놀 후배들이 연상된다.
다음 페이지의 목차에는
01 인사말과 축사
-김도균 총동문회장 외6
02 사진으로 돌아보는 장승포초등학교
-장승포초등학교 발자취 외7
03 백년의 역사 장승포초등학교
-학교연혁 외6
04 이야기로 돌아보는 장승포초등학교
-동문회 기증 작품 외3
05 장승포초등학교 총동문회
-편집 후기 외6
●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년사" 톺아보기-2-]
백년사 목차의 첫 장에는 김도균 총동문회장(48회)의 발간사가 눈에 들어온다.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백년을 넘어 새로운 백년>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혹여 100년사를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아래에 그 발간사를 복원하여 전재하니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100년사 발간사>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백년을 넘어 새로운 백년> -총동문회장(48회) 김도균
존경하는 장승포초등학교 동문 선후배님, 기쁜 마음으로 인사드립니다. 1921년 6월 1일, 이운공립보통 학교로 개교한 우리 모교가 이제 거제에서 두 번째로 100년의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평생 한 번 맞이할까 말까한 모교의 100주년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 뜻깊은 때에 동문회장을 맡 고 있어 더없는 영광이기도 합니다.
3년 전 총동문회 11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저는 다가올 모교의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잘 준비하는 것이 첫 번째 소임이라 여겼습니다. 행사는 어떻게 하든 치를 수 있겠지만 수많은 동문 선후배님들의 마음이 모이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주체로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걱정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내주신 동문들의 모교와 문동회에 대한 열정은 저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각종 동문회 행사에 동기회의 이름으로 수많은 분들이 적극 참여해 주셨고, 100주년 기념사업을 위한 후원 금 모금에는 고단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700여명의 동문이 마음을 보내 주셨습니다. 감동의 연속이었고 저회 총동문회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열정은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인 <100년사> 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자칫 골방에 틀어박힌 족보처럼 맥없는 사료모음집이 될 뻔도 했지만 숨을 불어넣고 살을 보태 살아있는 이야기책으로 만들어 주신 것은 모두 동문 여러분의 애정과 협조 덕분입니다.
<100년사>에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피난, 보릿고개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겪어온 부모님 주틈살과도 같은 한 세기 동안 모교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모교를 거쳐 간 1만 7천여 명 졸업생 동문들의 숱한 추억도 장승포항 푸른 물결이 되어 스며들어 있습니다.
1년여 시간 동안, 여기 저기 흩어진 자료와 동문들의 이야기를 모아 정리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던 까닭에 먼지 쌓인 100년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훌륭한 선후배님들의 영광스런 모습도 다 옮겨 싣지 못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부디 우리 모교가 디뎌온 세월의 흔적과 동문 선후배님들의 찰진 추억거리로 흙먼지 날리던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소품이라도 되길 기대합니다.
나아가 <100년사>가 자랑스러운 장승포초등학교의 새로운 100년을 그려보는 꿈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이라 했습니다. 옛것에 토대를 두되 얽매이지 않아야 하며, 새것을 만들어가되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이번 100주년 기념사업의 표어인 "100년을 넘어, 새로운 100년"도 전통과 진취성을 함께 담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책장마다 새겨진 애틋한 기록과 이야기들이 미래 동문인 우리 아이들에게 삶의 뿌리가 되고 인생의 활기가 되고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자부심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걸어가는 흔적이 장승포초등학교 새로운 백년의 역사로 키켜이 쌓여가기를 바랍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도움을 아끼지 않으신 많은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정성들인 원고와 사진을 보내 주신 동문 선후배님들, 각종 자료의 수집과 정리에 도움을 주신 장승포초등학교 교직원들의 협조를 잊지 않겠습니다.
무엇보다 각자의 생업과 맡은 중책으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편찬위원들의 노고가 무척 컸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모두의 수고가 동문 가정 어딘가에서 따뜻한 향기로 피워날 것입니다.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년사" 톺아보기-3-]
<백년사 톺아보기3 졸업생현황>
장승포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발간된 백년사에 등재된 졸업생 현황을 살펴 보았다.
<장승포초등학교 연도별 졸업생수 변동 추이>
ㅡ2021년 제96회까지 총배출 졸업생수: 16,507명
ㅡ개교연도: 1921년(大正10년)
ㅡ최초졸업생배출연도: 1925년 제1회 59명 (大正14년)
ㅡ최소졸업생배출연도: 1932년 제7회 30명 (昭和7년)
ㅡ최대졸업생배출연도: 1976년 제51회 336명 (조선회사 종사자 유입 증가?)
ㅡ졸업생배출없는연도: 1927년(大正16년 5년제에서 6년제로 학제변경?)
ㅡ100명 미만의 졸업생 배출: 1925년~ 1944년 (일제 강점기)
ㅡ100명 이상의 졸업생 배출: 1945년(제20회 139명) 이후 (광복 이후 귀향동포 증가?)
ㅡ200명 이상의 졸업생 배출: 1950년 (제25회 203명) 이후 (한국전쟁 피란민영향?)
ㅡ300명 이상의 졸업생 배출: 1975년 50회 315명 (조선사 종사자 이주?)
ㅡ2014년 이후: 졸업생수: 150명을 하회, 현재는 100명 내외 (조선업 등 불황 영향?)
ㅡ눈에 띄는 29회 졸업생: 옥포대첩 기념사업회 회장 배길송, 총동문회 고문 여무남, 새박사 윤무부(최근 밴드 가입)
ㅡ20년 단위의 졸업생 수
-01회(1925년)~20회(1945년): 1,276명
-21회(1946년)~40회(1965년): 3,495명
-41회(1966년)~60회(1985년): 5,240명
-61회(1986년)~80회(2005년): 4,130명
-81회(2006년)~96회(2021년): 2,366명
(졸업생 수는 해방 이후 20년 간은 전 20년 간 보다 2배 이상 증가. 이후 경제개발 기간인 20년간 피크를 이루다가 다음 20년은 천여명 감소, 그 다음 20년은 경제 침체와 출산율 저하 등으로 2천명 가까이 감소 추세)
<연도별 졸업생수>
1925년 1회 59명 (大正14년)
1926년 2회 90명
1927년 (졸업생 없음: 大正16년 학제변경?)
1928년 3회 51명 1929년 4회 36명
1930년 5회 42명 1931년 6회 32명
1932년 7회 30명 1933년 8회 59명
1934년 9회 34명 1935년 10회 59명
1936년 11회 72명 1937년 12회 74명
1938년 13회 73명 1939년 14회 69명
1940년 15회 62명 1941년 16회 60명
1942년 14회 72명 1943년 18회 74명
1944년 19회 89명
1945년 20회 139명(광복후 100명대로 증가)
1946년 21회 115명 1947년 22회 94명
1948년 23회 103명 1949년 24회 122
1950년 25회 203명(한국전쟁 피란민이주)
1951년 26회 143명 1952년 27회 168명
1953년 28회 128명 1954년 29회 181명
1955년 30회 205명 1956년 31회 177명
1957년 32회 171명 1958년 33회 156명
1959년 34회 192명 1960년 35회 225명
1961년 36회 200명 1962년 37회 217명
1963년 38회 241명 1964년 36회 199명
1965년 40회 255명 1966년 41회 251명
1967년 42회 254명 1968년 43회 290명
1969년 44회 297명 1970년 45회 265명
1971년 46회 291명 1972년 47회 290명
1973년 48회 271명 1974년 46회 282명
1975년 50회315명(첫3백명대:조선인구증가)
1976년 51회 336명 1977년 52회 279명
1978년 53회 235명 1979년 54회 183명
1980년 55회 198명 1981년 56회 187명
1982년 57회 231명 1983년 58회 255명
1984년 56회 235명 1985년 68회 295명
1986년 61회 279명 1987년 62회 289명
1988년 63회 280명 1989년 64회 256명
1990년 65회 219명 1991년 66회 219명
1992년 67회 221명 1993년 68회 235명
1994년 69회 219명 1995년 70회 206명
1996년 71회 199명 1997년 72회 171명
1998년 73회 179명 1999년 74회 192명
2000년 75회 152명 2001년 76회 150명
2002년 77회 156명 2003년 78회 163명
2004년 79회 178명 2005년 80회 167명
2006년 81회 153명 2007년 82회 175명
2008년 83회 209명 2009년 84회 198명
2010년 85회 178명 2011년 86회 192명
2012년 87회 180명 2013년 88회 186명
2014년 89회 147명 (조선업 불황 감소?)
2015년 90회 126명 2016년 91회 115명
2017년 92회 100명 2018년 93회 109명
2019년 94회 92명 2020년 95회 108명
2021년 96회 98명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년사" 톺아보기-4-]
맨 끝장의 <100년사 편집후기>인 "100년사를 마무리하며...."를 보고 수고하여 주신 면면을 알게 되었다. 편집위원장인 김도균(48회) 총동문회 회장을 비롯하여 편집위원으로는 김용운(52회) 사무국장, 이미선(55회) 기획1차장, 정종화(56회) 재무1차장, 유정훈(62회) 조직1차장, 손윤정(63회) 기획2차장 그리고 56회 동문인 박상출님 등이 큰 수고를 하여 주셨음을 알게 되었고 이분들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뜻으로 아래의 편집후기를 많은 동문분들이 읽기를 권해 본다.
<100년사 편집후기>
100년사를 마무리하며....
1년 남짓한 기간에 100년의 묵은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아득한 일입니다. 직접 겪은 일이야 기억을 더듬고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내고 사료를 보충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며 교정 곳곳에 새겨진 역사는 그 암울했던 시간만큼이나 기억 저 멀리 묻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오랜 역사의 파편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펴낼 수 있었던 것은 귀한 자료를 제공해 준 모교와 거제시를 비롯한 관계 기관. 그리고 잊혀져가는 기억을 되살려 이야기를 보내주신 동문 선후배님들의 애정과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모교의 <100년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에는 무거운 책임을 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사료의 정확성이 중요했으므로 할 수 있는 한 가장 사실에 근접하도록 점검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애를 쓴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정확하지 않거나 부실한 내용이 있다면 이는 전적으로 저희 편찬위원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100년 역사 중 도저히 자료를 구할 수 없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널리 이해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00년사>는 모교가 개교한 이래 겪은 수많은 일을 정리한 기록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문들의 모교에 관한 추억이 더해진 살아있는 이야기책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얼마나 글을 잘 쓰는가와 상관없이 동문 각자가 느꼈고 가슴에 묻어두었던 추억들을 한데 모아보는 일은 매우 소중하고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100년사>는 그런 의미에서 가까이 두고 그리울 때마다 한 장씩 넘겨볼 수 있는 빛바렌 앨범 같은, 서로를 연결해주는 끈 같은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100년사 편찬위원회는 총동문회 사무국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출판업체와 계약을 맺고 기획에서 인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맡기는 손쉬운 방법도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제작비를 아껴보자는 셈도 있었지만 힘들더라도 직접 총동문회의 노력으로 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값어치 있겠다는 판단이 앞섰습니다. 1년여 기간 동안 한 달에 두세 번 모임을 통해 틀을 잡고, 사료와 원고를 모으고 끊임없는 교정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다들 지역사회에서 중차대한 본업을 맡고 있는 까닭에 시간과 에너지를 쪼개 협력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모교의 100년 역사를 정리하는 과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큰 영광이자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지나온 100년을 작은 이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점만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이 <100년사> 에 따뜻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모교와 졸업생들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 <150년사>, <200년사>가 만들어 지길 소망합니다.
뜻깊은 이 일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동문 선후배님, 감사합니다.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년사 편찬위원회]
위원장/김도균 위원/김용운, 이미선, 정종화, 박상출, 유정훈, 손윤정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년사" 톺아보기-5-]
100년사에 게재된 "사진으로 돌아보는 장승포 초등학교" 중 -장승포항 전경 -장승포초등학교 발자취 -학교상징인 교화(영산홍), 교목(향나무), 교표, 교가 -역대교장 -역대 동문회장 -연도별 교직원 등의 사진을 전재하여 본다.
*참고로 1년 늦어진 100주년 기념행사 때(2022년 6월 11일)의 교장선생님은 이상석 38대 교장선생님이었습니다.(당일 축사 참조)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년사" 톺아보기-6-]
100년사에 게재된 "사진으로 돌아보는 장승포 초등학교" 중 다음은 연도별 학교 변천 모습이다. -1982년의 본관,강당,화장실 모습과 -1960년(단층교사), 1983년(2층교사), 1996(3층교사) 2020년(3층교사)의 학교전경 사진을 전재하여 본다.
*참고로 1960년 사진의 단층교사 중앙계단은 단체사진 촬영 장소였다. 저가 제공한 1952년 2월의 3학년1반 딘체사진(69년간 보관)과 1955년 30회 졸업생 단체사진(66년간 보관)도 이곳에서 촬영한 것이다.(첨부 사진 참조)
그 다음의 사진은 "시대별 교육활동사진"이다. 1930년대 사진을 보면 "이운공립보통학교(二運公立普通學校)"라 표기되어 있다. 당시의 행정구역상 장승포는 통영군 "이운면(二運面)" 이었고 지금의 지세포가 통영군 "일운면(一運面)"이었다.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년사" 톺아보기-7-]
100년사 제3장의 "백년의 역사 장승포초등학교 History"에는 -1-학교연혁 -2-그림연표 -3-[기고] 장승포초등학교 100년을 말한다 -4-은사님 글 -5-재학생글 -6-졸업생 현황 -7-졸업 기념사진 등의 순서로 되어있다. 이번에는 그중 1970년대까지의 "학교연혁"을 살펴보기로 한다.
1921년에 "이운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해방될 때까지 교장은 일본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이 기간 동안에는 일본어가 국어였고 창씨개명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족의 성이 河가에서 河本으로 바뀐 것을 어릴 때의 호적등본에서 본적이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기에는 학교가 병원으로 사용되는 통에 야외수업도 다반사였던 기억이 새롭다. 1959년 사라호 태풍에 많은 피해가 있었고 1963년에는 2층건물의 새교사 신축, 1975년에는 마전국민학교가 분리 개교하였으며 병설 유치원도 생겼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
-1920년 07월: 독립운동가와 지역주민 학교 설립 운동 전개
-1921.04.01 이운공립보통학교 설립 인가
-1921.06.01 개교(大正10년)
-1922.09.21 제1대 학교장 임명(三本藤助 미츠모토 토오스케) 초대 일본인 학교장
-1923.04.01 학교장(三本藤助 みつもと とうすけ):전근
-1924. 04.15 제2대 학교장 임명(朝永雄三 あさなが ゆうぞ 아사나가 유우조)
-1924, 04.30 제3대 학교장 임명(末次淸吉 すえつぐ せいきち 스에츠구 세이키치)
-1926년04월 학년연장 인가(6년제 大正15年)
-1927.01.24 교사 및 교무실 70평 확장
-1929.01.05 제4대 학교장 임명(中司直一 なかし なおいち 나키시 나오이치)
<1930년대>
-1934.02.18 이운공립보통학교 옥포분교 설립 기성회 조직
-1934.03.31 이운공립보통학교 옥포분교 분리
-1934.04.17 제5대 학교장 임명 (吉田成磨 よしだ せいま 요시다 세이마)
-1935.09.01 졸업생지도교로 지정
-1935.10.31 제6대 학교장 임명(久部太平 ひさべ たいへい 히사베 타이헤이)
-1938.04.01 이운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
-1938년08월.교사 신축 및 부지 확장
-1939.05.01 옥포공립심상소학교와 분리됨
<1940년대>
-1941.04.01 개축공사 착수
-1941.04.01 이운공립국민학교로 개칭
-1942. 11,08 개축 공사 준공
-1942. 11.11 개축 신교사 이전
-1945. 08.15 개교
-1945.09.24 신교육 개시
-1945. 10. 31 제7대 학교장 임명(丁龍武) : 처음으로 한국인 학교장 부임
-1946. 06.08 장승포공립국민학교로 교명 변경
-1947.04.01 신촌분교 설치 인가
-1947.04.01 제8대 학교장 임명(朴埈宅)
-1947.09.01 제9대 학교장 임명(金均坤)
-1949.02.17 본관 후면 배수공사 준공
-1949. 10.25 3개 교실 증축공사 착공
<1950년대>
-1950.02.13 제10대 학교장 임명(崔斗永)
-1950.04.01 장승포국민학교로 교명 변경
-1950.11.31 제11대 서정실 교장 취임
-1952.01.29 서정실 교장 사망
-1952.03.07 옥포국민학교장 오강영 장승포초등학교장 겸임
-1952.04.30 제12대 학교장 임명(오강영)
-1952.05.01 별관 천장교사 증축
-1952.09.15 제13대 최성렬 교장 임명
-1953.04.09 장승포초등학교 아양분교 개교
-1953.09.10 본 교사 입교 (이전: 6.25 전쟁 중 세브란스 병원으로 사용)
-1954.04.09 아양분교 분리
-1954.08.23 본교사 대수리공사 완료
-1954.09.01 폭풍우로 파손된 하교사 2개 교실 재준공
-1954. 10.01 마전 분실학생 편입
-1954. 11.18 제14대 최인수 교장 임명
-1956.05.05 아양분교장 아주국민학교로 독립됨
-1958.01.20 폭풍우로 파손된 하교사 2개 교실 수리공사 완료
-1958.01.25 하교사 교실 공사 완료하여 사용케함.
-1958.09.25 식료수용 수조 및 발전시설 완료
-1959. 02. 26 군지정 연구발표(건강교육)
-1959. 05.10 후교사 보건장 및 배수공사 완료
-1959.09.17 태풍 사라호로 하교사 옆 창고 넘어짐
<1960년대>
-1960. 01.28 제15대 이원찬 교장 임명
-1960. 10.05 전축 구입
-1961.09.30 이원찬 교장 정년퇴직
-1961, 10,05 제16대 옥행석 교장 임명
-1962. 02. 28 학교교사 대수리 완료
-1962.07.21 제17대 이삼룡 교장 부임
-1962. 09.10 신축교사 예정 교지 지질검사 실시
-1962. 06. 16 신축 6개 교실 착공
-1963.01.20 신축 6개 교실(신관 철근 콘크리트 2층 건물) 착공
-1963. 06. 29 호우로 인하여 본관 10개 교실 및 후관 5개 교실 피해
-1963.07.30 증축 3개 교실(신관 철근 콘크리트 2층 건물) 준공
-1964, 10, 31 운동장 예지 작업 완료
-1965.09.20 제18대 장부봉 교장 장목교에서 전입
-1966, 10, 15 제19대 천덕수 교장 일운교에서 전입
-1966. 12.01 수항 신설(본관 교사 서편)
-1967.03.02 별관 2동 6개 교사 증축
-1967.03. 10 본관 서편에 변소 신설
-1967.07.20 화단 신설(본교 교실 후면에)
-1968.03.31 양어장 신설(별관교실 후면)
-1968. 07.05 방송 및 전교실(30개 교실) 인터폰 장치 시설
-1968. 08. 10 화단 축대 신축 및 화단설치(교실 전면)/온실 신설(5평)
-1969. 03.05 변소 신설(동편 6간)
-1969.07.01 2000평 구입 광장(동쪽 보건장)
-1969. 12. 25 숙직실 신축(본관 교사 후면)
<1970년대>
-1970.01.20 수항 신설(본관 교실 동편)
-1970. 03.02 29학급 편성
-1971. 10.01 교문 축조 및 동화단 설치
-1972.01.20 강당 신축(128평)
-1972.01.31 변소 10간 증축(동편)
-1972. 12.05 창고 10평 신축
-1973.03.20 강당 앞 화단 설치/철조망 조성(교사 후면)
-1973. 09.01 제20대 김선용 교장 계룡교, 이근석 교감옥포교에서 전입
-1973. 12.07 본군 산수과 우수학교 과제발표
-1974.05.15 강당 전·후막 이도업씨 기증
-1974.07.30 관찰장 14평, 모포장 105평 신설(학교 우정 2개소)
-1974.09.01 대우조선 건설로 아주교 학생 204명 본교에 편입
-1975. 02. 15 제50회 졸업식 거행 (졸업생 총수 8,181명)
-1975. 03. 01 마전국민학교 신설분리(3학급) /병설유치원 개원/28학급 편성
-1975. 03.29 세종대왕 및 이순신 장군 동상 건립 (본관 전면)
-1975. 10.31 온실 6평 개축
-1975. 11.01 묘포장 24평 설치(본교 후면)/교장사택(온돌) 대수리
-1975. 11.26 앰프시설 완성/군체육대회 축구·배드민턴 우승
-1976.04.06 급수장 4평 신설
-1976. 04.06 화단 개축
-1976.09.01 제21대 윤석규 교장 발령
-1976.09.15 교사 주위 환장 길이 86m 완성
-1978.02.17 제53회 졸업식 거행
-1978. 11.21 군지정 음악과 연구학교 발표
-1979.02.20 제54회 졸업식
-1979. 03.01 장승포 유치원 설립 인가(2학급 80명)
-1979.05.30 전국 소년 본선 여자배구 준우승
-1979.12.31 반공우수학교 선정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년사" 톺아보기-8-]
100년사 제3장의 "백년의 역사 장승포초등학교 History"에는 -1-학교연혁 -2-그림연표 -3-[기고] 장승포초등학교 100년을 말한다 -4-은사님 글 -5-재학생글 -6-졸업생 현황 -7-졸업 기념사진 등의 순서로 되어있다. 이번에는 그중 1980년대부터의 "학교연혁"을 살펴보기로 한다.
1983년에 전 교실 앰프시설, 85년에 수세식 회장실 설치, 86년에 능포국민학교 분리, 1990년에 신축교사개축이 있었고 1996년부터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칭하였다.
2000년에는 새박사 윤무부(29회: 1954년 졸업), TV탤런트 윤지숙(61회:1986년 졸업) 등 유명인사도 다녀가고 일본학교와의 활발한 교류도 보인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원격 수업하신 선생님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그리고 학교연혁에는 2021년 제96회까지의 총 졸업생 수가 17,112명으로 나와 있으나 졸업생 현황에 등재된 연도별 졸업생(1925년~2021년) 수를 합해 보면 총 졸업생 수는 16,507명으로 605명의 차이가 난다. 학교 관계자는 이 점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980년대>
-1980.02.08 30개 교실 아스타일 및 전 복도 세멘트 깔기
-1980.02.20 제55회 졸업식
-1980.04.30 교문 진입로 화단 절제 장식
-1981.02.19 제56회 졸업식 및 유치원 제2회 졸업식
-1981.09.01 제22대 남기수 교장 발령
-1982.05.01 제23대 이종근 교장 발령
-1983.04.18 교실 전체 앰프시설(JTR 교육방송시설)
-1985.01.20 수세식 화장실 완공(10칸)
-1986.03.01 능포국민학교 분리
-1986.09.01 제24대 조용섭 교장 발령
-1986.11.02 개천예술제 합주부 최우수
-1988.11.01 전국합주경연(개천예술제 최우수)
-1989.05.11 경상남도 소년체전 축구부 우승
-1989.09.01 제25대 윤석규 교장 부임
<1990년대>
-1990.01.10 구교사에서 현교사로 개축
-1990.08.31 신축교사 31개 교실 개축
-1990.10.01 교문 신축(36회 동기회)
-1990.11.20 국기 게양대 신설(24회 동기회)
-1990.11.30 학교 교훈탑 신설(총동창회)
-1991.03.01 제26대 김인식 교장 부임
-1992.03.10 급식소 건물 신축 및 급식학교 운영
-1992.03.15 사택 1개동 개축(19평)
-1992.04.25 도 소년체전 체조부 2위 입상
-1993.02.18 제68회 졸업식
-1993.03.01 제27대 안국현 교장 부임
-1995.09.01 제28대 김도권 교장 부임
-1996.01.01 장승포초등학교로 개칭
-1997.02.16 제72회 졸업식
-1997.03.01 제29대 조용주 교장 부임
-1998.02.19 제73회 졸업식
-1999.09.01 제30대 이계무 교장 부임
<2000년대>
-2000.03.01 경남교육청지정 교통안전 시범학교 운영
-2000.03.06 KBS 영상팀 내교(윤무부 교수: 자연과 수업)
-2000.05.31 TV는 사랑을 싣고 촬영(탤런트 윤지숙)
-2000.08.19 국제교류 일본 이마즈 소학교 내교
-2000.12.14 축구부 창단식
-2001.02.17 제76회 졸업식
-2001.08.18 국제교류 일본 이마즈 소학교 방문(학생 25명)
-2002.05.31 새박사 윤무부교수 (장승포초등학교 29회 졸업생) 특강
-2002.08.21 국제교류 일본 이마즈 소학교 본교 방문(학생 25명)
-2002.10.15 거제시장기 체육대회 배구 우승
-2002.12.25 축구부 샤워장 및 합숙소 개소식
-2003.02.18 제78회 졸업식(졸업생 총 14,401명)
-2003.08.09 이마즈 소학교 본교 방문
-2003.09.01 제31대 박암오 교장 부임
-2004.02.18 제79회 졸업식
-2004.07.30 이마즈 소학교 친선교류 (7/30~8/2)
-2004.08.19 이마즈 소학교 방문(총 38명)
-2004.08.25 과학실 현대화사업 실시
-2005.03.01 제32대 박성영 교장 부임
-2005.11.18 축구부 창단식
-2007.07.18 제12회 거제수협장기 수영대회 종합 3위
-2007.08.17 일본 이마즈 소학교 방문(44명)
-2007.09.01 제33대 문병열 교장 부임
-2007.10.18 제10회 대한축구협회장기 7:7 전국유소년 축구대회 우승
-2008.06.13 거제애광원 자매결연
-2008.08.14 화랑대기 전국초등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2008.10.19 제11회 대한축구협회장기 7:7 전국유소년 축구대회 우승
-2009.02.25 도서관 완공
-2009. 07.11 거제수협장기 수영대회 준우승
<2010년대>
-2010.03.01 제34대 김재건 교장 부임
-2010.06.17 놀이터 및 노면포장공사
-2010.06.25 초등돌봄교실 시설 구축
-2010.06.29 동편 계단 및 별관 이음부 누수방지 공사
-2010.08.24 통영예술제 기념 전국 학생 음악 경진대회 최우수
-2011.03.30 전자도서관 구축
-2011.05.18 학부모 초청 공개수업
-2011.08.18 일본 이마즈소학교 자매결연학교 방문
-2011.08.22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점자블럭 외 2종)
-2011.09.01 제35대 도상원 교장 부임
-2011.09.24 전국 초등축구리그 경남서부 준우승
-2011.10,04 거제문화예술회관 자매결연 조인식
-2011.12.07 동편 창고 보강공사
-2011.12,15 급식소 주변 배수로 공사
-2012.05.04 봄 운동회
-2012.05 10 학부모 초청 공개수업
-2012.06.09 사랑해요 거제 한 바퀴
-2012.08.28 화단조경공사
-2012.10.04 인조잔디운동장 조명탑 보수공사
-2012.11.13 멋과 끼가 있는 학예회
-2012.12.23 합천군수컵 축구대회 우승
-2013.02.21 제88회 졸업(186명, 총 16,217명 배출)
-2013.08.01 화랑대기 전국유소년 축구대회 참가(화랑컵 2위)
-2013.08.16 일본 이마즈 소학교와 자매교류
-2013.08.29 본관 동편 학생화장실 개보수 (1~3층)
-2013.09.12 축구부 컨테이너 휴게실 및 학교창고 설치
-2013.12.02 본관 중앙 엘리베이터 설치 (1~3층)
-2013.10.01 대교눈높이 전국 초등 축구 리그 2위
-2014.02.21 제89회 졸업식(147명, 총 16,364명 배출) 및 종업식
-2014.03.14 보건실 현대화 사업
-2014.05.28 학부모초청 공개수업
-2014.07.18 친구와 함께 하는 고운 노래 부르기 대회
-2014.10.31 교내 학예회 "펼쳐라! 장승포 꿈과 끼"
-2015.02.17 제90회 졸업식(126명, 졸업생 총 16,490명 배출) 및 종업식
-2015.05.10 내부도색 및 본관동 보수보강공사
-2015.06.04 다목적 강당 준공(급식소, 체육관)
-2015.07.21 다목적 강당 개관식
-2015.09.01 제36대 감기통 교장 부임(공모)
-2015.10.30 교내 학예회 "펼쳐라! 장승포 꿈과 끼"
-2015.10.31 2015 후반기 스포츠클럽 축구 참가(3위)
-2015.11.01 축구부 경남초중학생 종합체육대회 시부 준우승
-2016.02.04 제91회 졸업식(115명, 총 16,605명 배출) 및 종업식
-2016.03.02 계단핸드레일 교체 및 외부 도장공사
-2016.03.03 교실 노후 환경게시판 교체
-2016.03.04 상수도 배관교체공사/중앙현관 게시판 교체
-2016.03.13 경남축구협회장기 소체대표 선발전 준우승
-2016.04.19 생활기록부 전산화 작업
-2016.04.23 축구부 경남초등 종합체육대회 3위
-2016 05.04 장승포초등학교 어울림 한마당
-2016.07.28 옥내 소화전(물탱크) 교체 공사/방화셔터 설치공사
-2016.08.08 본관 전면 외벽개선공사
-2016.08.11 옹벽 보수공사
-2016.11.04 본관 건물 외벽 디지털 벽시계 설치
-2016.11.11 운동장 트랙 마사토 공사
-2016 12.21 운동장스탠드 캐노피 공사
-2017.01.26 후문 출입구 소방 펌프실 철거 공사
-2017.01.26 본관 후문 확장공사
-2017.02.15 제92회 졸업식(100명, 총 16,705명 배출) 및 종업식
-2017.03.06 소년체전 경남대표 선발전 및 협회장기 축구대회 우승
-2017.04.28 해오름 한마음 운동회
-2017.05.31 축구부 화장실 뒷면 담장휀스 설치
-2017.10.18 방송실 현대화 사업
-2017.11.06 전국 축구부 왕중왕전 16강
-2018.02.14 제93회 졸업식(109명, 총 16,814명 배출) 및 종업식
-2018.09.01 장승포초등학교 총동문회 회장 취임식
-2018.11.16 장승포교육공동체 어울림 한마당
-2019.02.15 제94회 졸업장수여식(92명, 총 16,906명 배출) 및 종업식
-2019 02.28 본관 내진공사 완료
-2019.04.16 정문 배움터지킴이 초소 설치
-2019.06.04 미래형 컴퓨터실 구축
-2019.07.15 영어체험교실 구축(6/28)
-2019.09.19 학교장과 전교 학생 임원과의 간담회
-2019.09.01 제37대 강기룡 교장 부임
-2019.10.11 가을운동회
-2019.12.06 텃밭동아리 김장 기부 (장승포동주민센터 15상자)
<2020년대>
-2020.01.10 제95회 졸업장 수여식(108명, 총 17,014명 배출) 및 종업식
-2020.02.24 후문 설치
-2020.04.16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개학 (4~6학년)
-2020.04.20 코로나 19로 인한 온라인 개학(1-3학년)
-2020.04.23 교실 및 복도 부분 도장공사
-2020.05.20 유치원 놀이터 차양막 설치
-2020.05.22 운동장 배수로 정비공사
-2020.05.22 교실 칠판 및 화이트보드 판면 교체(6실)
-2020.05.25 위클래스 구축공사(~6/8)
-2020.05.27 코로나 19로 인한 격일제 등교와 온라인 수업 병행 실시(1~2학년)
-2020.06.03 코로나 19로 인한 격일제 등교와 온라인 수업 병행 실시(3~4학년)
-2020, 06.08 코로나19로 인한 격일제 등교와 온라인 수업 병행 실시 (5~6학년)
-2020.07.10 축구부 중점스포츠크럽에서 FC로 전환
-2020.07.30 학생통학로 보도블럭 교체 및 보차도 분리공사(~8/23)
-2020.08.24 코로나 19로 인한 격일제 등교와 온라인 수업 병행 실시 (2/3)
-2020,08.26 코로나 19로 인한 격일제 등교와 온라인 수업 병행 실시(1/3)
-2020.10.19 전체 등교
-2020.11.09 스탠드 환경개선 공사
-2020.11.12 후문 화단길 조성(수목, 화분 포함) (~11/13)
-2021.02.09 제96회 졸업장 수여식(98명, 졸업생 17,112명) 및 종업식
●["장승포초등학교 개교100년사" 톺아보기-9-]
100년사 제3장의 "백년의 역사 장승포초등학교 History"에는 -1-학교연혁 -2-그림연표 -3-[기고] 장승포초등학교 100년을 말한다 -4-은사님 글 -5-재학생글 -6-졸업생 현황 -7-졸업 기념사진 등의 순서로 되어있다.
이번에는 그중 "그림연표"와 전갑생(59회, 84년도 졸업,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근현대사 연구)교수의 "장승포초등학교 100년을 말한다"를 살펴 보기로 한다.
먼저 그림연표는 시대적 배경과 학교의 변천을 함께 비교하여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여겨진다. 1919년부터 2018년까지의 시대적 배경요약을 아래에 전재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 2년 후인 1921년 6월
1일에 장승포초교 전신인 이운공립보통학교가 개교(大正10년)하여 1945년 해방 때까지는 교장이 일본인이었다.
1941년 12월 8일에 발발한 태평양전쟁도 원폭투하에 따라 일본이 항복함으로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으나 3년 동안 미군정을 거쳐 2년임기의 제헌국회의원(100-2명)* 선출(1948 05 10)로 겨우 헌법을 만들 수 있었다.(*제주 4-3사건여파로 제헌국회의원 100명 중 2명 선출 못함)
제헌국회가 만든 헌법에 따라 당시 국회의장이던 이승만 국회의장이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년 후인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120명)을 뽑고 한달이 채 되지도 않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거제도에 많은 사람들이 피란을 와서 우리의 이웃이 되었다.
1919.03.01 3.1운동
1923년 물산장려운동
1927년 신간회 결성
1940년 광복군 결성
1941.12,08 태평양전쟁 발발
1945.08.15 광복
1948.05.10 남한 총선거
1948.07.17 대한민국 헌법 공포
1948.0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50.06.25 한국전쟁 발발
1953.07.27 휴전 협정
1960.03.15 3.15 부정선거
1960.04.19 4.19 혁명
1960.04.26 이승만 대통령 하야
1960.06.15 윤보선 대통령 취임
1961.05.16 5·16 군사 정변
1963.12.26 박정희 대통령 취임
1968.12.05 국민교육헌장 선포
1969.07.21 경인고속도로 개통
1970.07.07 경부고속도로 개통
1972.07.04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
1972.12.27 유신헌법 공포
1973.11.14 호남(전구간),남해고속도로 개통
1979.10.16 부마항쟁 시작
1979.10.26 10-26 사건(박정희 대통령 피격)
1979.12.12 12.12 군사반란
1980.05.18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0.09.01 전두환 대통령 취임
1988.02.25 노태우 대통령 취임
1988.09.17 서울 올림픽 개막
1993.02.25 김영삼 대통령 취임
1997년 IMF 외환위기
2003,02.25 노무현 대통령 취임
2008.02.25 이명박 대통령 취임
2010.03.26 천안함 침몰
2013.02.25 박근혜 대통령 취임
2017.05.10 문재인 대통령 취임
2018.02.09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다음은 근현대사 연구자인 전갑생 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의 "장승포초등학교 100년을 말한다"는 자료이다.
"장승포초등학교 100년을 말하다"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이운공립보통학교 이전의 교육제도 변화
1) 장승포의 학교 설립 이전의 교육제ㅣ도
(1) 일제의 교육정책
(2) 교육 과목과 교원단체
2) 장승포의 일본인 학교 설립
2. 3.1운동과 이운공립보통학교의 개교
1) 이운공립보통학교 설립 과정
2) 양정학원과 이운공립보통학교 활동
3. 학년 연장운동과 학교의 주요 활동
1) 학년 연장운동 전개
2) 학교의 주요 활동과 사건
4. 이운공립보통학교의 성장
5. 해방 이후 장승포초등학교의 변화와 활동
●["장승포초등학교개교100년사"톺아보기-10-]
100년사 제3장의 "백년의 역사 장승포초교 History"에는 -1-학교연혁 -2-그림연표 -3-[기고] 장승포초등학교 100년을 말한다 -4-은사님 글 -5-재학생글 -6-졸업생 현황 -7-졸업 기념사진 등의 순서로 되어있다.
이번에는 "은사님의 글" 중 김경자선생님 (30회 1955년 졸업)의 글을 전재하여 본다. 김경자 선생님은 저와 같은 해에 졸업하였으나 이번 기회에 동기임을 처음 알게 되어 감회가 새릅다. 선생님의 글을 읽어 보니 내가 김경자 동기를 왜 잘 모르고 있었는지 알 것 같다.
※참고: 아래를 클릭하면 장승포초등학교 개교 백주년 기념행사와 백년사 종합분(1회~10회 종합분)을 볼 수 있음
<김경자 선생님의 글>
[장승포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축하합니다]
ㅡ김경자 선생님(장승포초등학교 제30회 졸업 1972년 ~ 장승포초등학교 20년간 근무 2006년 2월 정년퇴임)ㅡ
먼저 장승포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국사봉 아래 민족의 정기가 서린 장승포 미항을 끼고 도도히 1세기를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가 겪었던 모든 아픈 역사를 다 겪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한편으로 잘 견디어 주신 학교 관계자분들과 선 생님들의 노고에 감개무량합니다.
존경하는 장승포초등학교 교장선생 님,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100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본교의 수많은 동창회 회원 여러분!
본교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 움을 주신 지역사회 귀빈 여러분과 학 부모님들 대단히 고맙습니다.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이었으니 내년이 100 주년 되는 본교와 2년 차이로 사회 상황이 비슷했을 것이므로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성장했음이 분명합니다.
본교는 일제강점기인 1921년 6월 1일에 개교하여, 1세기를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가 겪은 여러 아픈 역사의 현장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인재를 양성해 왔습니다.외세의 핍박과 무력에 굴하지 않고 우리 선조들이 지켜온 후학의 터전은 1950년 6.25 한국전쟁을 겪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피난민들과 전쟁고아들을 품어야 하는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난과 수난을 극복하며 성장해온 우리 장승포초등학교가 100주년이라 하니 대단히 기쁩니다. 감사드립니다.
제가 장승포초등학교와 인연을 맺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65년 전, 1955년도입니다. 장승포국민학교로 발령받으신 아버지를 따라 저도 6학년 2학기에 전학을 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는 참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학교 건물은 장승포 읍사무소가 있던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작고 볼품없이 낡았습니 다.
원래 일본인들이 행정업무를 보던 곳이었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버려지게 되었지요. 운동장은 구릉 논을 복토하여 넓혔으나 전교생이 조회를 마치고 행진을 할 때면 군데군데 발이 빠지는 그런 학교였습니다. 하지만 거제군 내에선 가장 선진화된 학교였으며 3개 반으로 구성될 정도의 규모였습니다. 저는 장승포국민학교 30회 졸업 후 아버지를 따라 군내 여기저기를 돌아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으며, 장승포국민학교와의 짧은 인연은 한동안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인연을 맺은 해는 1972년으로, 장승포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꿈 같이 짧았던 어린 시절의 모교에 다시 와보니 가슴은 감동과 희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17년 만에 돌아온 장승포국민학교는 「학급문고 시범학교」 사업이 한창이었으며, 교 사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세월 따라 학교 외관도 많이 변화하였습니다.
옛날 건물은 없어지고 2층 건물이 세워졌으며, 교실 바닥도 시멘트로 바뀌었습니다. 교정 동 편엔 커다란 강당이 신축되었고, 본관보다. 조금 낮은 2층짜리 별관도 있었는데 본관 뒷편에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었습니다. 발이 빠지곤 하던 어린 기억 속의 운동장은 넓게 확장되고 잘 정비되어 학생들이 마음껏 뛰놀고 체력을 키우는 장이 되었습니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둘러쳐진 학교의 화단에는 향나무가 군데군데 서 있어 학생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안정된 배움의 터전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목포 대우조선소가 생기면서 인구 유입이 급격히 늘어난 본교는 6.25 동란 때 피난민 수용을 하던 이후 처음으로 과밀학급이 되었습니다. 인근 마전동에 12,3학년만 옮겨갈 마전초등학교의 설립인가는 났으나 학교가 신축 중이어서 한동안 본교에서 더부살이를 하였습니다. 특히 저학년의 2부제 수업으로 학교에는 늘 생동감이 넘쳐났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렇게 흥하던 조선업계가 침체기로 들어서면서 지금은 우리 장승포초등학교의 학생 수도 많이 줄었으리라 짐작이 가며 옛날의 일번지 학교의 모습도 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나눠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 많 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여 보다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나아가 우리나라를 주도할 인재를 육성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봅니다. 이것이 우리 선배들이 해야 할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온 100년보다 다가올 100년을 더 잘 살아갈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선배들의 몫이 아닐까요? 급변 하는 현대문명과 문화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의입니다. 정의로운 국가, 정의로운 사회 정의로운 가정을 짊어지고 나갈 정의로운 꿈나무를 우리 장승포초등학교에서 기초를 단단히 만들어 진학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 세계 속의 장승포초등학교의 굳건한 정의로운 인재 배출 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모교 출신자 중에서 제2, 제3의 코로나19 예방 백신을 개발하는 걸출한 인재가 배출될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일으키고 세계를 치유할 누군가가 장승포초등학교에서 나올 것입니다. 미래는 어떤 바이러스가 인간을 곤경에 빠뜨릴지 이 세상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을 대비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100년 전의 허준 이제마 선생은 100년 후에 겪을 병마를 예언하셨다 합니다. 그런 예지를 우리 학교에서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100년 후의 어떤 어려움을 극복할 인재를 차근차근 육성하는 일을 시작하는 꿈을 꿉니다. 제게는 장승포초등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이 많습니다. 교직에 봉직하는 착하고 능력있는 훌륭한 제자들과 같이 근무하는 기회도 많았습니다. 지금도 저마다 각 분야에서 열심히 맡은 일을 하는 제자들을 생각하면 기쁘고 흐뭇합니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마이클 샌델(MICHAELJ.SANDEL)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한국의 독자 들에게'라고 명시하고는 한국은 젊은 민주사회다. 세계에서 앞서가는 경제권을 가진 한국인들이 돈으로 더 많은 행복을 살 수 있을까? 불평등의 심화는 어떻게 해결할까? 건강보험료는 어떻게 부담할까? 중소기업과 대기업, 북한과의 관계. 세월호의 비극에 대한 대처 등, 이 외에도 많은 것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인을 대단하다고 기술했습니다. 이제 한국은 그런 질문에 명료하게 답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후 예는 정의의 기본 원칙과 좋은 사회의 의미에 대해 논쟁하며 답을 추출해 세계의 석학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 당당히 그들 앞에 명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다가올 100년의 한국은 세계의 유토피아가 되길 꿈꿉니다. 한국인의 저력이 장승포초등학교의 저력입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희망을 놓지 않겠습니다. 모교여, 영원히 발전하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모든 선생님들, 건강하십시오! 건강한 어린이로 키워 주십시오! 선생님들의 노고를 늘 기억합니다.
감사합니다. 100주년 생일을 거듭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