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제98주년
삼일절을 앞두고
복지관에서 아우내 봉화제 행사(2월 28일)에 참여할
참가 희망자 40명을 선착순으로 모집을 하였다.
4시 조금 넘은 시간에
복지관에서 출발
5시경
아우내 봉화제 행사가 열릴
추모각에 도착을 하였다.
추모각으로 오르는 오른편쪽으로
"순국소녀 유관순 열사 초혼묘 봉안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유관순 열사의 초혼묘 봉안 기념비문"
아래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애가 짧고 열사와 관련된 자료가 많지 않은 실정이라
그동안 열사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았다,
해방 이후 유관순 열사의 전기나 영화 등에 잘못 묘사된 것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순국일 : 10월 12일 → 9월 28일
순국 당시 모습 : 열일곱살 처녀 유관순은 사지가 육시(戮屍)로 찢기고
유택(幽宅)마저 파헤쳐서 흔적없이 망실(亡失) 당하였으니
→ 유관순은 유택(幽宅)마저 흔적없이 망실(亡失) 되었으니
◆ 육시로 찢긴 것은 과장이며 사실이 아님
위의 내용을 적은 팻말이 영문과 함께
고지되어 있었다
이곳은 사적 제 230호이며
유관순 열사의 애국 애족 정신을 기리고
영혼을 추모하는 곳임을 설명한 글문을 읽어보면서
추모각으로 올라갔다.
앞으로 열릴 행사의 무대 한쪽코너에서
검은 추모(追慕)리본을 받아
가슴 한켠에 달고
추모각으로 오른다.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중권씨의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이소제씨이며
이화학당에 다니던 중
서울의 3.1만세 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919년 4월 1일 3천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운동인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한다.
추모각에 오르기전
관장님과 두회원님들을 모셔보았다.
왼편에 계시는 회원님은 78세
내가 작년 신입으로 복지관에 들어오면서
복지관에서 우연히 오가며 뵐 때마다
따뜻한 미소로 반겨주신 회원님이시고
오른쪽 회원님은 79세로
금년도 국선도 수강에서 처음 뵙던 회원님이시다.
"아우내 장터 순대" 식당에서
순대국밥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회원님들의
나이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을 찾은 많은 이들이
열사의 영정앞에 향을 피워 향료안에서 타오른 향연기로
열사의 영정이 흐려있었다.
열사의 영정 앞에서
마음모아 추모를 드렸다.
추모관을 배경으로
복지관에서 준비해 온 플랜카드를 앞세워
복지관 관장님과 두분의 인사와 함께
이곳을 찾은 복지관 회원님들이 기념촬영을 하였다.
의정활동의 능력과 미모까지 겸비한
박남주 시의원을
난 참 좋아한다.
행사에 참여한 그녀는
나를 보는 순간 반기면서 얼싸안았다.
나 역시 그녀를 만날 때마다
기분좋아지는 좋은 에너지를 그녀로 부터 받곤한다.
의정활동을 모니터링해 온
한국여성유권자연맹 등
1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의정모니터 협의회로 부터
열심히 일 잘하는 시의원으로
2016년에 선정되었던
그녀
미모를 갖춘 세련된 그녀가
의정활동까지 잘 한다니 많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유관순 열사 추모각을
계속 오르고 있었다
유관순 열사 추모각을 떠나기전
복지관 임금자 회장님(오른쪽에서 두번째)과 같이 계셨던
회원님들을 폰에 담아
추억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을 담아보았다
유관순 열사 추모각 왼편쪽으로
디딤석을 따라 담문을 지나면
순국자 추모각이 나온다.
3.1운동을 하면서 순국하신 분들을 추모하는 곳인데
그곳에서 순국자 추모제가 열렸다.
순국자 추모각으로 앞서서 걸어가는
박남주 시의원의 뒷모습 자태가 아름다워 폰에 담아본다.
그리고 세련된 모습의 앞모습도
캐취해 본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되는 본행사에는
참석치 않고
내일 3.1절을 앞두고
유관순 열사와 함께 순국하신 분들을
추모하는 행사에
복지관에서 참여 하는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한
복지관회원님들 일행은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추모제가 진행되는 이곳에서
잠시 머물다
자리를 떳다.
순국자 추모각을 나와
대여한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하였다
뒤 돌아본
유관순 열사의 추모각이
송림 사이로 보이고
약 100여년전 나이어린 소녀가 태어나
유관순 열사가 목천을 근거지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준비했던 곳이라고
생각하니 돌아나오는 길이
무척 감회스러웠다.
유관순 열사의 오빠 우석은
공주영명학교에서 만세운동을 이끌다가 체포되었고
아버지 유증권, 어머니 이소제, 숙부 유중부 등
가족과 친인척이 함께 시위를 주도하다
최후에는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분들의
목숨과 맞바꾼 나라사랑의 애국심을 생각할 때
할매의 목젓이 뜨거워옴을 느꼈다.
요즈음 같이 나라가 시끄러울때
더더욱 가신님들의 애국심을 떠올리게 되는 시간이였다.
석양을 등지고 서있는
유관순 열사의 동상옆을 지나칠 때
나이어린 소녀의 몸으로 어디서 그런
용감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1920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으로 순국하였다하니
참으로 비통스러웠다,
세상이 바뀌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유관순 열사가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을 절대 잊어서는 않될 것 같다.
광장에는 7시 이후에 있을
본행사 햇불행진에 맞춰
선두에 설 태극기의 예행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천안 구본영시장님과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우내 봉화제 행사를 마무리했다.
추모각을 내려오면서
모든 회원님들을 각별히 마음을 다해
정성껏 인솔해준 복지관
직원과 사진도,
마음 나눔으로 가까워진
선배 회원님들과도 어울려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저녁식사를 할
<아우내 장터순대>식당까지 왔다.
천안으로 이사와
딸아이와 함께
순대국밥으로 유명한 <박순자 할매>의
순대국밥을 먹기 위해 아우네 장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
<박순자 할매>의 식당에 도착했을때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 이미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
우리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긴시간을 기다려 순대국밥 한 그룻씩을 먹고
유명하다는 <박순자 할매>의
순대까지 포장해서 싸온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 식당,
도로 건너편에 <박순자 할매> 식당 간판이 보였다.
식당의 크기가 그곳보다 넓고
신발을 신은채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식당 한 켠에 자리한 임금자 회장님도
함께하신 회원님들의 모습도
할매와 함께 식사를 나누었던 회원님들과도
폰속에 담아보고
"제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째서 군기(軍器)를 사용하여 내 민족을 죽이느냐"
유관순 열사의 어록 중 한부분을
떠올리게 되는 의미있는 행사 참여에 기회를 준
복지관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