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개~값 얼마면 됩니까?"
" 에이 뭔 돈이여 그냥 가져가"
" 아녀요, 그래도 단 돈 만원이라도 줘야하는거라는데 이거 받으세요"
그렇게 나와 만난 잡종 견공은 고향집 마당 가에 근사한 새집으로 오게되었다.
어찌나 밥을 많이 먹어대는지 엄니는 '짜구'난다고 밥그릇을 빼앗았다.
사무실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아장거리며 컨테이너 밑 풀밭에서 장난을 친다.
에미는 집고양이어도 새끼는 길들이기 전엔 야생 고양이라 크면 잡기 힘들어 공장장에게 부탁해 잡았다.
애들이 키우겠다는 것을 뿌리치고 고향집에 데려다 주었다.
집안에서 동물 키우는 것을 싫어해서이기도 하지만 고양이의 본연의 의무는 애완보다는 쥐를 잡는거 아닌가?
고향집에 갈적마다 두 녀석이 나를 반기고 따랐다.
개는 몰라보게 몸집이 커 갔고 고양이는 쥐를 박멸해 부모님이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기분이 흐믓했다.
개는 묶고 고양이는 풀러서 키우는게 요즘 시골의 동물 사육 풍경이다.
그러다보니 들로 마을로 부모님을 졸졸졸 좇아다니는 녀석은 개가 아니라 고양이다.
고양이의 재롱은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
고양이가 새끼를 뱄다.
개도 중개가 되어 제법 어른 티가 난다.
잘 자라주고 앞으로도 좋은 인연으로 남을줄로만 알았는데
갑자기 개가 죽었다.
갑자기라기 보다는 삼일 전부터 시름시름 앓고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시골 분들은 도시에서 애완용을 키우는 것과 달리 그저 마당 한 귀퉁이에 묶어 놓고 제때 밥 주고 물 주면 되는 줄로만 안다.
그래서 집 잘 지키면 훌륭한 개라고 생각 한다.
병든 개를 보고도 저러다 괜찮것지 생각하신 모양이다.
급하게 전화가 걸려 왔다.
개가 이상하다며 약을 좀 사오라는 것이다.
그래도 증상을 보고 약을 사오든 말든 해야 할 것 같아 부랴부랴 시골엘 갔다.
개의 눈이 이미 뒤집혀 있었다.
혓바닥은 반쯤 밖으로 나와 있고 몸은 굳어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한 시간도 못버틸 것 같다.
손을 쓰기엔 너무 늦었다.
그것도 모르고 부모님은 고추밭에서 꾸부정한 허리로 힘겹게 두둑을 만들고 계셨다.
"아범아 이거 저쪽 개울가는 길 가에 있는 밤나무 근처다 묻어주거라"
외발수레에 뻣뻣하게 굳은 개를 얹고 삽 하나 들고 좁은 둑길을 끌고 갔다.
'에이구 이리 가는거냐 좀더 버티지 그랬어... 미안타 네 운명은 여기까진 모양이다.'
구덩이를 정성것 파고 죽은 개를 묻었다.
불룩하게 솟은 땅을 꾹꾹 눌러 평탄하게 해줬다.
고양이 새끼를 보러 화목보일러가 있는 뒷곁으로 갔다.
종이박스 위에 스치로폴 뚜껑이 엉성하게 덮혀 있다.
가만가만 뚜껑을 들어 들여다보니 이제 겨우 눈을 뜬 고양이 여섯 마리가 뒤엉켜 있다.
노란 줄무늬가 3 마리 검은 색에 흰 점이 박힌 것 두 마리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묘한 색을 띠고 있는 한 마리
실 같이 가는 발톱과 배냇티를 벗지 않은 순진한 눈망울 그리고 보송보송한 털이 앙증맞다.
죽은 개~ 생각은 금방 잊어버리고 귀여운 고양이만 눈에 가득 들어온다.
세상이 살기 힘들다고 단박에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있고
힘겨워도 죽을 힘을 다해 사는 사람이 있다.
힘 없고 미천한 동물도 살아 있어야 사랑스럽고 귀염을 받는 것을 보면서
아무리 사방이 우겨쌈을 당해도 살아있고 봐야 한다.
골수파 야당 아무개가 [봉하일기 , 그곳에 가면 노무현이 있다] 란 책을 내게 주어 책상 옆에 두고 가끔 읽곤 한다.
그가 죽지않고 살아 있다면 욕을 먹고 있을지언정 사람들의 가슴에 애틋한 섭섭함을 남기지는 않았을 것을...
사람이나 동물이나 삶과 죽은의 의미는 일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