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보트로 넘은 콜롬비아와 파나마
전에 검문을 다룬 항목에서 잠시 적었듯 콜롬비아 군인의 강압적인 검문에 의해 다시 에콰돌로 돌아가겠다는 소리까지 해댔지만 결국은 콜롬비아 제2수도 메데진까지 버스는 22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18-20시간이면 넉넉할거라 옆 승객은 말했지만 22시간 소요후 당도한 것이다.
물론 2회의 검문 같은 인위적인 늦장 요소도 있었지만 비로 인한 도로유실 1회, 도로공사 2회등이 없었다면 2-3시간은 족히 단축할 수 있을 법 한데.
주로 산길이라서 한쪽이 막히면 대책없이 길가에서 안내인의 수신호만 기다리는 게 이곳의 실정이다.
콜롬비아 버스는 페루나 다른 남미처럼 음식서비스가 없다.
중간 휴게소에서 쉴 때 주머니속을 만지작거리다 평소때는 별로 손을 대지 않는 소세지로 최소의 허기를 해결하였다.
북쪽 해안가 도시인 뚜르보(Turbo) 행 밤 버스를 5300페소 주고 샀다.
메데진은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특별히 머물 이유가 없는 단순 경유지일 뿐이다.
남쪽과 북쪽을 향한 터미널이 2원화되어있어 북쪽행 터미널로 가는 데 콜롬비아노들의 친절은-군인들은 개인적인 선입견이 들어서 제외-여기서도 어김없이 작동되어 터미널은 물론 매표소 직전까지 이사람 저사람이 안내를 해준다.
PC방에서 메일 첵크를 하고 밤 8시반에 버스를 타니 내 몸의 1점5배 옆으로 퍼진 상태의 흑인 세뇨리따가 나를 보고
“어이, 아저씨. 기타 가지고 있는 거 보니 뮤지션인가 보네. 연주 좀 해봐요.”
시덥잖게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데 앞에 앉은 아주머니까지 덩달아 ‘그래봐’ 하면서 맞장구를 친다.
웬만한 자리에서 거절을 안하는 편이지만 단순히 호기심어린 치기에 응할 필요는 없어 그냥 웃음으로 떼워버렸다.
이 처녀는 헤드폰을 끼고 혼자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노래를 따라부르는데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
그런 떠들썩함 속에서 어김없이 밤은 깊어가고 나도 모르게 깊이 잠속에 빠졌다.
가급적 이런 곳에서 출발하는 차들은 막차를 타는 게 좋을 성 싶다.
너무 일찍 당도하면 숙소에 들어가기도 어중간하고 낯선 곳에서 불안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내 차도 새벽 5시경 도착을 하여 우려하였던 상황이 벌여졌다.
“헤이, 친구. 부둣가 가려면 나 따라와. 나도 배타러 가니까.”
다행히도 마침 같은 차안에서 내린 흑인 청년이 안내를 해서 따라갔더니 선착장은 바로 근처에 있다.
녀석도 베네수엘라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고 나와는 방향이 조금 다른 해안가에서 숙박업을 한단다.
오염이 된 썩은물내가 진동하는 포구 구멍가게 앞에서 흑인 위주로 구성된 일단의 군인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다 나를 힐끗 쳐다본다.
콜롬비아의 해안가쪽에서는 흑인들 비율이 내륙보다 더 높은 게 사실인 거 같다.
나중에 살펴보니 사람들이 대기하는 화장실 오수처리가 정화조 없이 바로 바닷물로 유입이 되어 이렇게 썩은 내가 진동한 이유를 알겠다.
이곳 해변은 특이하게 좁은 강 지류처럼 안쪽으로 바닷물이 닿아 있어 대양으로 바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물들로 이런 오염을 더 가속화시키는 듯 하다.
보통 이런 배를 타고 1-3시간여 카리브해 짠내음을 맡아야 한다.
모터보트는 8시반에 출발이라며 7시 반부터 티켓을 팔았지만 출발은 막상 10시에 하였다.
이곳은 그늘이 없으면 아침부터 견디기 힘든 폭염이 퍼부어댄다. 하긴 해가 뜨기 전부터 몸이 먼저 알고 갑갑해했으니.
가방이 젖는다며 비닐에 싸라고 계속 눈치를 주지만 의무사항은 아닌 것 같아 외면했는데 사실 물이 튀길 염려는 거의 없었다.
근데 왜 그리 사람들이 기를 쓰고 뒷자리를 선호하나 했더니 출발 후 안 사실은 쾌속모터보트는 연달아 몇초간격으로 수면위로 떨어지며 선미만 일정한 안정세일뿐 멋모르고 앞에 탄 우리들의 등과 장을 뒤틀리게 할 정도의 충격을 연달아 가한다.
555Km(직선거리인지 해안선 곡선거리인지는 모르겠슴)를 버스도 아닌 배로 3시간내 주파한다는 것은 처음 이런 경험을 갖는 사람들 혼을 빼놓기에 충분하였다.
이 코스를 중미에서 내려온 선험자는 위험하다고 적었지만 파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연속된 가격 때문에 얼른 이 시간이 지나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중간에 물색이 몇 번 바뀐 바다 한가운데 섰을 때 혹 모터보트가 고장난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앞섰지만 심한 충격파로 헤매는 아줌마를 뒷자리로 옮기기 위한 배려에서 잠시 멈춘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흔들리는 카메라를 무조건 집어들고 섬이라도 보일라치면 셔텨를 부지런히 눌러대곤 하였다.
제일 앞칸은 배낭들 차지, 이때까지는 물이 다소 흙탕물.
정말 다행히도 배는 중간 어느 해안가에서 멈췄는데 그중 일부가 내리는 데 미리 인터넷 예약을 해서인지 물속까지 들어온 젊은이들은 서로 통성명후 세뇨리따를 번쩍 안아서 물에 젖지않도록 배려한다.
남자들은 어떻게 했냐구?
당연히 알아서 나오라는 식이고 나라도 같은 남자가 나를 안아올려 해안가로 모시고 나가는 것은 상상키 힘들 것 같다.
손님은 왕, 아니 여성은 무조건 왕비입니다. 당신이 젖지 않도록 이 한몸 다바쳐..
제일 앞칸에 있던 아르헨티나들은 그 와중에도 계속 재잘댄다.
이렇게 두어 해변마을을 경유해 1시쯤에 휴양지겸 출입국관리소가 있는 목적지 까푸르가나(Caprugana)에 도착하였다.
한시라도 빨리 중미로 넘어가는 게 내 지상사명 같아서 '파나마 파나마' 하고 외치는 녀석을 따라 출국절차후 바로 땅을 밟자마자 출발하였다.
그래 여유는 돌아올 때 어차피 이 길로 내려 올 것 같으니 그때 갖자고 자위하면서.
파나마에 들어가도 내일에나 비행기가 있다고 모두들 예서 하루 유숙하고 가는데 나만 무슨 조급증이 발동하였는지 모르겠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아니 두채 이상...
평화롭고 금실 좋아보이던 콜롬비아 끝 마을 민박집부부
아마 이 마을이 보기에 따라 콜롬비아 마지막이자 처음 마을일 듯.
빠나마(Panama)쪽으로 가는 모터보트는 바로 콜롬비아 마지막 마을에 사는 민박집 부부와 -그들은 중간에 내림-나 혼자 초소형 배에다 운전도 실같은 것을 잡고 하는데 이젠 오전과 같은 충격은 없지만 대신 파도에도 뒤짚어질 것 처럼 느릿하게 염기에 가방까지 젖어 카리브해 바다를 실감하면서 국경을 가르는 특징있는 바위를 돌아 파나마로 넘어섰다.
아쉬운 것은 날씨가 흐릿해서인지 바다 예쁜 색조가 카메라에 영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이 카누와 같이 작은 배는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인지 굳이 해안선 300미터 반경내에서만 움직이는데 뒤집어지면 그 정도쯤은 헤엄칠 지근거리라 여겨진다.
운동을 턱하니 내세울 건 없어도 수영만큼은 아직도 자신있지만 그런 기능은 안쓰일 상황이길 빌지만 말이다.
이 돌출되어 나온 곳을 기점으로 콜롬비아와 파나마가 구분이 됨.
나 혼자 태워 출항시킨 젊은 선장? 실을 잡고 운전해 성의가 영.
콜롬비아 까뿌르가나나 내가 1시간여 후 도착한 빠나마 뿌에르또 오발디에(Obaldie)는 각각 국경 2번째 마을이다.
첫 번째 마을은 육안으로 봐도 민가가 몇채 안되어 보이지만 국토의 끝에서 각기 등대처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전세대에서부터 아마 살아왔을 것 같다.
쾌속선으로 3시간 달려오는데 4900페소를 주었는데 파나마로 넘어가는 저속선은 겨우 1시간에 4000페소(달라화 가치 하락으로 22불정도)를 달란다.
역시나 나 한 사람에게 값을 다 전담시킨 것 같다. 중간에 내린 민박집 부부에게는 아예 요금을 받지도 않는 걸 보니.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무심한 바닷가에도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코발트 빛 국경을 넘어 난 남미에서 중미의 관문 파나마에 들어섰다.
나는 나는 갯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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