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동네에 살아도 같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눈인사하기도 어색한 것이 도시 사람들의 삶입니다.
현대 사회는 이렇게 사람들을 개인화 원자화시켜서
서로를 낯설은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게 만들지요.
이우생협의 무지개방과후는
이우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이우생협을 허물없이 드나들게 만드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날 동네 잔치는 지역 사람들과 이우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한바탕 실컷 놀아보자는 취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한동네에 사는 아이들에게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동네 아저씨가 해주는 뽑기를 먹어보고
동네 아줌마가 해주는 팥빙수를 먹어보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아침 7시 30분 이우FC 아빠들과 무지개방과후 아빠들이
동천초에 하나둘씩 집결합니다.
훈규아빠가 이우트럭을 몰고 들어오고
다빈아빠가 또 하나의 트럭을 몰고 들어옵니다.
조를 나누어 목양교회와 이우학교, 생협과 좋은친구센타에 가서
행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실어 나릅니다.
10시에 행사가 시작되니 9시까지는 셋팅을 마쳐야 한다는
은지엄마의 명이 있었는지라
전날의 술기운이 남아있었지만 몸놀림은 30대에 뒤지지 않습니다.
아침 10시, 1부의 하일라이트인 괴물 가면 만들기 부스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듭니다.
색지들과 반짝이 천들을 가지고 저마다 괴물가면 만들기에 몰두합니다.
이하주샘(무지개미술샘)은 한 번에 100명도 넘는 아이들을 집중시키는
놀라운 통솔력을 발휘합니다. 도우미 엄마들은 글루건을 붙여주고
가위질이 서투른 아이들을 도와줍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어른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가면들을 만들어냅니다.
낮12시. 접수대에서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700명을 넘어가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옵니다. 먹거리를 총지휘한 장미님의 얼굴이 순간 당황합니다.
예상 인원 500명을 기준으로 먹거리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김밥 1000줄, 핫도그 500개, 유기농쥬스 350개, 구운달걀 600개, 팥빙수 500인분
어떻게 한다? 순발력 강한 장미님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묘안을 찾아냅니다.
특히 해피쿠키에서 기증해주신 300개의 쿠키가
결단을 쉽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늦게 온 사람들은 얼린 쥬스나 핫도그를 못 먹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어쨌든 대략 800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즐거운 점심 시간을 보냈습니다.
팥빙수의 달콤 시원함을 느낄 때쯤 좋은친구센타의 초딩 밴드가 풍악을 울립니다.
무지개와 좋은친구센타를 다니고 있는 낯익은 아이들의 얼굴이 보입니다.
항상 음악의 완성도를 고집하시는 목사님과 앰프 설치자 경섭아빠는 긴장된 얼굴입니다.
이우를 자퇴하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 해완이의 무대가 이어지고
장미님과 동네 아저씨들의 노래 솜씨도 일품입니다.
이 공연을 본 아이들은 나도 드럼 배우게 해달라고 집에 가면 떼를 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1시 30분 중1 아빠들이 지도하는 본격적인 놀이 게임이 진행됩니다.
아빠 유치원 보내기, 신발뺏기, 달팽이 놀이, 물풍선 나르기 등이 펼쳐집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승부욕을 불태웁니다.
아빠들을 유치원 보내기 위해 세수 양치질 시키고 밥을 먹입니다.
아이들은 거의 우격다짐으로 아빠들 입에 밥을 쑤셔 넣습니다.
물풍선을 날라 마지막으로 터뜨릴 때에는 어떻게 하면 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는지
자기들끼리 머리를 굴리고 요령을 즉각적으로 터득합니다.
비옷을 입고, 창하아빠가 만들어주신 못 박힌 나무판을 들고 있는 아빠들은 옷이
물에 다 젖어도 즐거운 표정들입니다.
오하마께서는 자기팀이 이겼다고 즐거운 비명을 지릅니다.
뽑기 부스는 행사의 가장 힘든 3D업종입니다.
뽑기 하나를 먹기 위해 30분 이상도 줄을 설 수 있다는 아이들의 결연한 눈빛에
화장실도 갈 수 없는 것이 뽑기팀입니다.
뽑기가 빠진 어린이날 잔치는 있을 수 없다는 주최측의 소신대로
뽑기 부스는 탁상공론팀이 기꺼이 맡아주셨습니다.
작년에도 애써주신 태희아빠를 대장으로 하여
외국 출장 일정도 앞당겨 돌아오신 허영아빠
아이들을 줄서게 할 수 없어 미리 일정 분량을 만들어 오신 준석엄마
봄날님 부부, 다빈 아빠, 졸업생 형기아빠와 돌아저씨 등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들이 아이들 앞에서 저마다의 뽑기 솜씨를 뽑냅니다.
그 정도의 속도밖에는 못 내느냐는 은지엄마의 구박은 귓등에도 듣지 않으며
자기들의 노하우를 자랑하기 바쁩니다.
마지막으로 문탁네트워크가 집단 댄스를 지도합니다.
규형엄마의 노련한 몸놀림이 시작되고
보조 댄서들이 사람들을 춤으로 이끕니다. 그런데 웬걸? 보조댄서로 나선
천년바위님과 영무아빠는 이끌기는커녕 더 헷갈리게 만듭니다.
완전 몸치들입니다.
오후3시 이우FC가 짐을 싸기 시작합니다.
돌아저씨는 분리수거를 완벽히 마치고 흐뭇한 표정입니다.
엄마들이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나오니 순식간에 모든 일이 완료되어 있습니다.
진행팀들은 스스로의 기동력에 놀라며 아무래도 이벤트 회사라도 차려야겠다고
자화자찬합니다.
만약 이벤트 회사를 차린다면 행사의 꽃인 사회자는
단연 중2의 쌍둥아빠로 결정될 것입니다.
쌍둥아빠의 본디 직업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산만하기 이를 데 없는
관중들을 집중시키는 데 이만한 능력을 가진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우생협의 이사로 모셔오려는 삼고초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날의 이색적 부스는 문탁팀의 음양오행 부스입니다.
최근에 의역학을 연마하신 문탁여사들께서
사주 상담을 하였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부스에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속출하였다고 합니다.
역학의 신비함과 문탁여사들의 인생 내공이 핵융합하여
후배 아줌씨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모양입니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진행팀들은 희망대에서
다소 과장된 서로의 무용담을 늘어놓기 바쁩니다.
태희아빠께서는 중1 지섭아빠에게 내년의 뽑기팀 대장을 확실하게 인수인계합니다.
그리고 내년에 본인은 유기농 풀빵을 만들어 보겠다고 호언합니다.
모든 행사의 전기 담당 경섭아빠의 후계자가 없는 것에
눈물겨워 하는 은지엄마의 걱정에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괜찮다고 우깁니다.
놀이지도를 해준 중1아빠들은 아예 어린이날 놀이지도는
이우에 입학한 중1아빠들이 ‘무조건 한다’는 전통을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돌아저씨는 내년에는 2주전에 애드벌룬도 띄우고
3월부터 아빠들까지 모여 브레인 스토밍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역시 경영 컨설턴트답습니다.
이웃과 어울린다는 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며 이우생협 무지개방과후가 이우인들과 마을 사람들을 연결하는
의미있는 네트워크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다짐해 봅니다.
참으로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상품 쌀을 기증해주신 삼도생협 작년에도 올해에도 진행팀 T셔츠를 기증해주신 빈이아빠
이우의 찍사 제제님, 김민주 아빠
제기만들기 부스를 운영해주신 상현도서관 엄마들
500명분의 팥을 직접 삶아주신 승목맘과 팥빙수 팀
무엇보다도 후원금을 모아주신 학부모님들
좋은친구센타와 문탁네트워크의 후원
작년에도 올해에도 큰돈을 후원해주신 이우교육공동체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웠던 무지개 엄마 아빠들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이우생협 무지개방과후 드림
첫댓글 이런 생생한 후기까지....감동입니다. 제일 많이 애쓰신 심명화 쌤!! 짱이야~
ㅋㅋ 일찍도 댓글 남기네요. 지송해욤. 멋진 후기. 다시 한 번 그 날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심명화 선생님 감사!!
선생님의 후기를 보니 참석 못한 게 더욱 아쉽네요. 모두들 고생도 많으셨겠지만 보람도 즐거움도 크셨을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