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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집결 : 2010년 5월 16일(일) / 2호선 잠실역 3번출구 (07시)
◈ 참석자 : 13명 (갑무, 용우, 정남, 종화, 창수, 재홍, 윤환, 원무, 재웅, 삼환, 해황, 문형, 천옥)
◈ 산행길 : 대전사-주왕산(정상)-칼등고개-후리매기삼거리-3폭포-2폭포-1폭포-지하교-대전사
◈ 동반시 : "소나무를 만나" / 박곤걸
◈ 뒷풀이 : 토종닭백숙에 소·맥주 / "대구여관식당"<달기약수터(고갑무 산우 제공)>
지난번 북한산 산행때 친구들을 처음으로 만난 이후 이번 주왕산 산행기를 쓰려고 하니 여러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동안 장기간의 지방근무와 회사 생활에 쫒기다 보니 친구들과 만남이 너무 적조한 것 같았고, 객지생활 반평생에 느는 건 주름이요, 주는 것은 메모리 용량이라 친구를 만나면 반가움보다 이름과 얼굴의 불일치로 인한 머뭇거림과 쭈삣거림으로 친구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서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이번 주왕산 산행은 잠실역 3번출구 가까운 장소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어 시간에 늦지 않도록 나가야지?하는 조바심 때문에 새벽에 잠을 두 번이나 깼다. 그래도 새벽에 일찍 일어난 집사람이 배낭이랑 먹을 것 마실 것을 세세하게 챙겨준 덕분에 오히려 시간여유를 가지고 약속장소로 나갈 수가 있었다. 이럴 때 집사람에게 뭐라고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그리쉽게 입이 열리질 않으니 항상 구박받을 짓을 달고 사는 형국이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지난번의 산행으로 낮이 익은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는데, 아뿔사! 또 이름과 얼굴이 덜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 미안하네. 내가 더 부지런을 떨어 자네들 까까머리 모습이라도 입력을 시켜놓고 나갔어야 하는데... (지금은 다행히 종화 친구가 사진에 이름까지 다 명기해서 카페에 올린 덕에 많은 도움을 받었음) 정남 친구가 지난 북한산 산행때 주문받은 스틱을 약속장소까지 가지고 와 나눠준 수고 덕분에 이번 산행은 좀 더 수월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남이 고맙네! 자넨 복 받을 끼여...
참가 인원 13명을 태운 버스는 아침 7시 5분 주왕산을 향하여 잠실을 출발, 중앙고속도로 진입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다행히 도로는 한가한 편이어서 우리는 정체없이 목적지로 여유롭게 운행을 할 수 있었고, 나는 삼환친구와 뒤편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애기를 주고 받았다. 잠시후 이 회장님은 북한산(도봉산 포함)의 봉우리와 계곡, 성문에 대하여 몇 일동안 작업했는지? 암기하기 쉽게 유인물로 준비해 와 자세히 설명해 준다.
시산회 회원이 되려면 이렇게 산에 대하여 구석구석까지 알아야 하는지? 물이 흘러가듯 편하게 살고싶은 내 머리 속을 잠시 혼돈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산의 곳곳을 상세히 알고 산행을 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되어 이 기회를 빌려 회장님께 존경심과 아울러 고마움을 전한다. 잠실을 출발한지 1시간쯤 됐을까? 여주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자는 의견이 나와 일단 버스를 휴게소 뒷쪽 그늘에 주차를 하고, 준비한 음식물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기로 하였다.
이런 막간행사에 나름대로 경력이 붙은 친구들은 빠른 동작으로 자리를 펴고서 곧장 준비한 음식물이 일사분란하게 자리를 잡고, 우리는 주변에 둘러서서 간단한 먹거리로 아침의 허기를 때우고 있었다. 그 때 덩치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이 회장이 시루떡을 꺼내 먹기좋도록 솜씨있게 칼질을 하는데, 그 내공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한 손에 위생 비닐장갑을 끼고 한 손으로 보기좋게 떡을 자르는데, 그저 사과나 깍고하는 솜씨는 아닌 것 같다. 저 정도면 상당한 수준급 실력인데... 궁금하긴 하지만, 칼들고 작업하는데,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궁금증은 산행도중 한 친구가 이 회장에게 자네도 집사람과 싸우는가? 하고 물었을 때 쉽게 풀렸다.
이 회장님曰 "집사람이 나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수 있다면 모든 것을 기꺼히 감수한다"고... 와~! 갑자기 이 회장님이 엄청 존경스러워 졌다. 그래! 비결은 가장 가깝고 단순한 곳에 있어. 단지, 우리가 그걸 빨리 또는 늦게 파악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있는 내 마음을 이 회장이 읽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갑무! 자네가 이번 산행기를 한번 써 보지 그래? 하면서 뜬금없는 제안을 한다. 그래 마땅히 대응할 말도 없고해서 '생각해 보고'라고 대답했더니 대부분 친구들이 마치 사전에 약속이나 한듯이 그려! 저건 쓰겠다는 야그여. 하면서 바로 쓰는 것으로 기정사실화 해 버린다.
"참가한지도 얼마 안됐고 하니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라고 내편을 들어준 친구가 단 한명도 없다. 이거 완전 고립무원이네. 그렇다고 시산회 분위기를 100% 파악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뭐라고 하기도... 그래서 바로 꼬랑지를 내리고 말았다.
때는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덥지도 춥지도 않는데다, 날씨마저 기막히게 좋아 휴게소는 상춘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우리는 대충 주변을 정리하고 바로 목적지를 향해 남쪽으로 기수를 향했다. 배도 부르고, 버스도 원활하게 잘 주행하고 보니 이제야 차창주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항상 그렇듯이 5월의 신록은 정말로 아름답다. 뭐라할까? 완벽한 연초록의 자태. 기존 침엽수의 약간 짙푸름을 배경으로 도드라지게 들어나는 연한 속살의 향연이랄까? 저걸 그림이든, 사진이든 아니면, 글이라도 동원해 한 번 멋지게 표현해 보고 싶은데... 짧은 능력에 괜히 마음만 산란하다.
양호한 도로여건으로 11시 25분에 주왕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여주휴게소에 한번, 주유하기 위해 주유소에 또 한 번, 두 번 밖에 쉬질 않았으니 비교적 제 시간에 도착한 듯하다. 헌데 이번엔 날씨가 문제다. 아까 휴게소에서 출발할땐 분명히 봄이었는데, 주왕산엘 도착해보니 완전 여름으로 절기가 바뀌어져 있었다. 거참 이상하네...? 해서 겉옷은 벗어 차안에 두고 산행에 나서기로 했다.
배낭속에 준비한 음식물 등을 각자 분배해서 집어넣고, 하차하자 마자 정남친구는 막걸리 수량부터 확인하느랴 바쁘다. 지난번에 1인 1병기준으로 준비했는데, 모자랐다나? 막걸리가 부족하면 절대 안된다고 친구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나도 얼른 매점에 들려 1병을 구입, 잽싸게 배낭에 챙겨 넣었다.
주왕산 입구에 있는 대전사 경내는 5일 후면 다가올 '부처님 오신날'을 대비하느라 온통 연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절 입구에 있는 겹살구꽃은 석가탄신일을 맞아 사찰을 방문한 신자나 등산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한껏 흐드러진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주왕산 백미는 바로 입구에 떡 버티고 서있는 기암일터... ‘기’ 字는 기이할 ‘奇’ 字가 아니고 깃대 '旗' 字라고 설명서에 쓰여 있는데, 암만보아도 "깃대" 하고는 거리가 있어 보이고, 오히려 홍진에 뭍인 세상을 위에서 관조하며 득도의 고행을 수행하고 있는 묵언 수도승의 모습으로 보인다.
해발 720.6 m로 표기된 주왕산을 본격적으로 등산하기 위해 스틱을 적당한 높이에 맞춰 조정을 하고, 배낭끈도 질끈 조여 무게중심을 잘 잡고, 이런 등산이 전문인 프로 친구들을 따라 묵묵히 뒤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시작부터 장난이 아니다. 무슨 코스가 평지나 내리막길은 하나도 없고 계속해서 이,삼십 분을 가파르게 오르기만 한다.
점차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하나, 초짜라 쉬자는 애기도 못하고 그냥 꿀먹은 벙어리마냥 부지런히 뒤만 따라갈 수 밖에 없다. 한참을 가니 이제 그만 쉬어가자는 애기가 나온다. 그 말이 어찌나 반갑든지... 누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그건 찐한 산행 한번 해 보고 그 다음에 해도 될성 쉽다.
아무튼, 바늘에 실 가듯이 휴식은 음식물 공급이라 곧바로 시원하게 냉장된 수박도 나오고, 구수한 쑥떡도 나오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흘려가는데... 이 회장님이 나에게 한 마디 던진다. 갑무! 산행기를 쓰려면 이런저런 상황을 기록해야 하는데...? 그는 아까부터 자의반 타의반, 산행기를 맡은 내가 영 미덥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산행기를 쓰려면 기초가 되는 발생상황을 상황일지 쓰듯이 기록을 해야 하는데, 내가 도무지 쓸 생각도 안하고 딴전만 피우고 있으니, 오히려 본인이 더 불안한 생각이 들었나 보다.
사실 나라고 딴전만 피웠겠는가. 나름 기억도 하고 핸폰을 이용, 사진으로도 기록유지를 하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 그 때 옆에 있던 종화친구가 결정적으로 한 마디 한다. 이제 우리나이는 기록을 하지않으면 생각이 잘 안나서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들어 그때부터 메모지 빌려, 볼펜도 빌려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산행기 말이 나오기전 상황은 운전기사에게 물어서 다시 적기도 했다.
오후 1시 5분, 드디어 주왕산 정상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이것 저것 주섬주섬 주워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시장기가 돌았다. 정상 바로 밑 평지에서 깔개를 펴고 그 위에 준비한 족발, 부침개, 유과, 초밥, 김밥, 과일, 김치, 막걸리와 올라오는 도중 사권 영광군 에서 온 등산객들이 제공한 말린 영광굴비까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그런데, 영광굴비는 말 그대로 명불허전이었다. 마치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금방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도 잽싸게 한 가닥 입에 넣지 않았더라면 고린자비처럼 쳐다만 보고 입맛만 다실뻔 했다.
이어서 재웅 회장이 오늘 친구들이 많이 모인 자리이고 하니 본인의 시산회 가입을 박수로 환영하자는 제의를 했고, 친구들의 따뜻한 박수소리에 "친구란 좋은 것이여"가 절로 나왔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친구들! 고마우이...
시산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산행중에서의 시낭송이다. 오늘의 낭송인은 황공하옵게도 시산회 왕초짜인 내가 그 영광을 맡었다. 나는 동반시(“소나무를 만나"/박곤걸 시인)를 나름 감정을 실어 낭낭한 목소리로 낭송을 하였는데, 박수소리로 판단하건데, 좀 더 수련이 필요할 듯 하다.
낭송이 끝나자 이 회장의 시 내용에 대해 용기있게 반론을 제기하고, 시 발췌자인 정남 친구가 은유와 비유에 대해 즉석에서 설명을 하였다. 학교졸업후 근 40년이 지났고, 각박한 사회생활 속에서 인성과 감정이 메말랐을리도 하련만은 아직도 시평과 시 해석에 대해서 고담준론을 펼치는 시산회 회원들을 보면 말할 수 없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계속 정진해 우리 회원들의 수준높은 자작시집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입이 즐거우면 만사가 즐거운 법. 먹고 마시며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40년전의 계림동산의 추억으로 빠져들게 된다. 우리 친구들의 영어수준 하향화에 지대하게 기여를 하신 선생님부터 각 반의 담임선생님 야그까지, 그중에서도 영어점수 30점이면 전교에서 최고 점수였으며, 윤환친구는 자기가 8점(80점 아님)도 받아 보았다는 거의 전설적인 야그까지... 그래도 고대에 갔잖아! 라고 누군가(해황?)가 이야기 한다.
오후 2시 15분, 식사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통상 내 경험에 의하면 하산은 등정시간의 절반정도면 충분한데, 주왕산은 그게 아니었다. 하산길이 내리막이 아니라 오르막이다. 술까지 마셨는데... 이거 또 힘들어 지기 시작한다. 한참을 가니까 평지도 나오고 내리막도 나와 조금은 편안한 맘으로 하산을 했다. 조금만 평지가 더 늦게 나왔더라면 사망신고를 낼뻔 했다. 평시 체력단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한 하루였다.
내려오면서 3폭포, 2폭포 그리고 1폭포까지 모두 구경하면서 사진도 찍었는데, 갈수기여서 인지 폭포라고 하기엔 규모나 수량이 많이 부족한 것 같고, 큰비가 온 이후에 보면 제법 폭포의 면모를 갖추고 있을 것 같다.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다리가 제법 뻐근해 등반거리를 계산해 보니 약 12 km 정도를 걸은 듯 하다. 어째 다리가 좀 아프더니 산길 12 km면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주차장에서 버스에 도착하니 기사아저씨가 따뜻한 국화차를 한 잔씩 준비해서 제공하고 있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덥기도 해서 시원한 냉차 였으면 더 좋았을 걸? 하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일단 차는 맛있게 마셨다. 그리고 바로 청송의 진미중에 하나인 달기약수 토종닭백숙을 먹으려 장소를 이동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하얀 사과꽃이 눈길을 끈다. 청송의 사과맛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전국의 차량을 이용한 사과판매상들은 판매지역이 어디인지를 불문하고 모두 청송사과라고 팻말에 적어 놓았겠는가. 의심이 나면 올 가을에 꼭 한번 확인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보니 청송엔 사과밭이 정말 많다. 벚꽃이 지고 난 이후의 하얀 사과꽃 정말 보기 좋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흩날리고 사과꽃 향기는 코끝을 간지럽히고... 버스 안이지만 사과꽃 향기가 코 끝에 아른거리는 듯 하다.
드디어 달기약수 토종닭백숙집에 도착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준비한 백숙을 곧바로 가져온다. 백숙을 먹기전에 달기약수를 한 잔씩 먹어보니 마치 옛날고향의 펌프에서 퍼올린 약간 녹내나는 물 맛, 바로 그 맛이 난다. 하루종일 산행하면서 먹기만 한 것 같은데, 친구들이 모두 백숙을 또 맛있게 먹는다.
역시 별칭이 '먹산회'라고 하던데, 틀린 말이 아닌 듯... 나도 개인적으로 포항에 근무할 때, 이곳 백숙을 먹으려 여기에 온 적이 있기 때문에 맛이 더 각별한 것 같다. 친구들중에 혹시 이곳 근처에 올 기회가 있는 사람은 이 집(대구여관식당 054-873-2176, 절대 홍보가 아님)에 미리 예약하면 별미백숙을 맛 볼 수 있으리라...
저녁까지 해결했으니 이젠 행복의 원천인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오후 6시 15분, 청송 달기약수터를 출발, 중앙고속도로 진입해 원주, 호법을 거쳐 잠실역에 도착하니 오후 10시 30분. 오는 도중에 축구대표팀 시합결과가 궁금해 치악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것을 제외하고 곧장 왔으니 휴일 귀경시간 치고는 빨리 도착한 셈이다.
잠실역 앞에 도착 후 친구들은 모두 손을 합하여 시산회 파이팅을 외치고, 다음 산행을 기약하며 해산하였다. 친구들! 오늘하루 모두가 즐거웠고 수고했네. 항상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뵙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2010년 5월 17일 고갑무 씀.
"소나무를 만나" / 박곤걸 < 시집 「하늘 말귀에 눈을 열고」 중에서 >
바람을 다스리지 못하겠거든
산으로 가서 소나무를 만나
말 대신 눈으로 귀를 열어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절제하고, 절단하고
바람이 부는 날
하늘에다 온몸으로 수화하는
나무의 설법에 큰절하고
잘 늙은 소나무가 손짓해 주는
그 곁에 가서 뿌리를 내려라
어느덧 산을 닮아
푸른 자태가 제격이면
바람도 솔잎에 찔려 피를 흘린다
인간의 마음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 완고해지고 삭막해지며,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잃으면 자연 속에 살아있는 것들 또한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되며 결국은 인간으로부터 등을 돌린다고 믿는다. 대지는 모든 존재의 어머니며, 그들 삶의 근거이자 나서 돌아가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산에서 만난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예사롭지 않은 것도 그 소나무의 두터운 껍질과 빳빳한 솔잎 하나에도 각기 다른 설법이 담겨있음을 믿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어디 늙고 구불텅한 소나무 뿐이겠는가. 돌짬 속에 핀 풀꽃 한송이에도, 쓰러진 촌집 뒷간의 토담을 타고 오르는 호박넝쿨에서도 귀한 말씀이 깃들어 있는 것.
바다를 메꾸어 땅을 늘리는 일이나 강의 물길을 다스려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궁리도 충분히 그런 자연의 설법을 듣고 난 후에 삽을 들어도 들었으면 좋겠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도 명백한 자연의 일부다. 사람이 자연의 설법에 귀 기울일 때의 모습이 모름지기 저렇거늘 현실의 자세는 니내없이 아직 한참은 더 낮추어야 할 것 같다(시평은 평론가에 따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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