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스페이스1)가 점점 일상생활 속으로 육박해 들어옴에 따라 사람들은 ‘현실’(reality)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상징’(symbol), ‘이미지’(image), ‘가상’(virtuality)에 기초하여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인간은 지금까지 수 천년 동안 살아온 자연공간(自然空間) 이외에 인간이 인공적으로 창조한 또 하나의 공간, 사이버스페이스를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정보매체는 이미지와 상징기제를 이용하여 우리와 ‘실제세계’와의 사이에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하나 더 만들어 내었고, 세계의 모든 일은 컴퓨터의 영역 안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유포되면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가 현실화됨에 따라 정보는 더 이상 자료가 아닌 환경이 되었으며, 인간의 새로운 모임과 활동영역이 되고 있다.
육체를 떠나 상징 혹은 기호로 나타나는 익명과 조작의 공간에서는 인간관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맺어지는 것일까? 미래학자들은 정보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의 변화 또한 초래할 것이라 예상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일반인들에게 각종 정보에의 접근 기회를 확대시킴으로써 다원적인 가치체계를 형성할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원적 가치규범과 유연적인 사고역량이 확대될 때 정보사회는 개개인의 자율성에 기반을 둔 다원적인 시민사회의 성격을 갖게 되며, 성별, 계층간의 경계는 무의미해진다는 낙관론이 대두되고 있다.
정보기술이 성과 계급, 인종과 같은 불평등의 벽을 허물고, 권력의 수평적 이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평등하고 비경쟁적이며, 유연한 조직구성을 가능하게 한다면, 사이버스페이스의 이러한 조직원리는 성차별적인 한국의 사회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사이버문화의 팽창은 실제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약화 내지 변화시킬 수 있을까?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사이버세계에서의 남녀간의 의사소통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성차별 담론이 약화되는지, 혹은 강화되고 있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성범주에 관한한 사이버스페이스는 남녀 불평등을 불식시키는 새로운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적 특성은 주어진 매체를 문화적으로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에 따라 실제와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즉 기존의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고스란히 가상공간에서도 그 위세를 떨칠 수 있다.
본 연구자는 하이텔내에 있는 대화방을 대상으로 삼아, 남녀간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통해 가상공간에서의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어떤 방식으로 운용되는지를 살펴본다. 채팅이라는 통신매체의 한 기능을 선택한 이유는 채팅이 일상적인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곳이므로 성별 고정관념이 쉽게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대화에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의 언어적/비언어적 행위들은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양성관계를 잘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연구방법론으로는 필자가 직접 대화자로 활동하고 조사하는 참여관찰법을 사용한다. 연구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남녀간의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언어적 영역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본다. 이 영역에서는 아이디(Id) 및 대화명의 사용, 소개, 대화방식 및 사용언어, 미소를 나타내는 의성어의 사용과 대화내용 등을 다룬다. 첫 번째 영역이 언어적 행위에 국한시켰다면 두 번째 부분은 비언어적 영역이다. 여기에서는 만남의 방식, 공간의 이용, 헤어짐의 방식을 분석한다.
2. 사이버스페이스의 출현과 그 의미
정보화과정의 절정은 첨단 정보통신 기술과 멀티미디어 기술의 융합의 결과로 나타나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등장이라 하겠다. 사이버스페이스란 “장소와 물질에 기반한 현실세계와는 달리 컴퓨터와 통신기술에 의해 형성되는, 네트워크 속에 존재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예를 든다면, 원격교육, 디지털 도서관, 사이버 기업, 사이버 사무실 등이다.
인간이 보다 편리한 생활을 위하여 발전시킨 통신기술은 이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물리적 장애를 극복하게 되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기본적으로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접속 가능하다. 즉 모든 정보를 실시간적으로 환원시킨다는 점에서 신속성과 즉시성을 지닐 뿐 아니라, 물리적인 거리와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탈공간적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ID만 가지면 접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익명의 접촉장이며, 하이퍼링크에 의해 다선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복합적, 중층적 구조를 지닌다. 올드미디어가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면, 뉴미디어로 이루어지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쌍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미래학자들은 “가상공동체”(Rheingold 1993), ‘전자공동체’(electronic community)(Jones 1995), ‘포스트모던 지리’(postmodern geography)(Soja 1989), ‘지구촌’(global village), ‘우주선 지구’(spaceship earth)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전자통신시설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들이 경험해 온 것과는 다른 방식의 사회관계가 전개될 것을 예견한다.2)
디지털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커다란 변화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정보기술 혁명”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것이 생활세계 속에 어떻게 흡수될 것인지는 간단히 예측하기 어렵다. 사이버스페이스의 기술적 측면이 곧바로 정보사회의 가능성과 한계를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 실체가 아닌 가상의 기술적 공간 속에서 인간이 감지하는 가상인식이 인간관계 형성에 있어서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쉽게 단언할 수는 없으나,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유대는 현실공간 만큼이나 실제적일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또 하나의 담론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computer mediated communication)에 대한 견해는 두가지 입장으로 구분될 수 있다. 한편에서는 통신망을 통한 가상공간에서는 결코 미묘한 감정과 상징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상공동체에서도 실제 지역공동체에서처럼 ‘정’을 매개로 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낙관론적인 입장이 있다. 전자의 입장은 ‘사회존재감 이론’(social presence theory)과 ‘사회적 맥락단서 결손모델’(reduced social context cue model)이 제시하고 있다. 사회적 존재감의 정도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이론화한 ‘사회존재감 이론’은 사회존재감이 낮은 채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비사교적이고 비인격적이며, 둔감하고 차가운 관계가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사회적 맥락단서 결손모델’(reduced social context cue model)도 사회적 맥락단서가 약한 경우에는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고 비규범적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대면적 관계에서만 인격체가 규범적이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다는 자연공간 중심의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실제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비대면적 관계에서도 문자적 기호(Text)를 통해서 정서나 감정이 교류되고 대면적 관계 못지 않게 인격성과 신뢰 형성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인간관계가 반드시 비인격적이라는 주장은 후퇴하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직접적 대면의 결여로 인해 관계형성에 그만큼 시간이 많이 요구되거나 관계가 일회성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지만, 반면 관계형성에 다른 요인이 작용함으로써 자연공간과는 다른 관계가 형성된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모니터 상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제 세계와는 다른 의사소통수단을 사용한다. 낙관주의자들은 전통적인 지역공동체의 경우처럼 가상공동체에서도 얼굴표정이나 감정을 기호로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고받는 문장과 전반적인 문맥을 통해 독특한 사회관계가 창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네티즌들은 제스처라든가 표정 등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 스마일리(smily) 등의 기호를 창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구성원들의 상호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의사소통의 장이다. 구성원들은 의사소통을 통해 상징적 자원들을 재구성할 뿐 아니라, 역으로 가치, 규범, 도덕적 코드의 체계는 구성원들에게 의미와 정체성을 제공한다.
정보기술 혁명은 사회적 규정하는 기술을 바꾸었고, 이와 함게 사회와 문화의 근본적 변화를 창출해내고 있다. 그러나 제 3의 기술혁명을 기술만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오류이다. 컴퓨터와 통신이 작용하고 있는 ‘배후의 기반’을 살펴보아야 한다. 정보통신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자체가 새로운 인간이나 사회관계를 낳을 수는 없다. 기술이란 각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특수성과 결합되어 사용된다. 동일한 정보통신기술의 기반 위에서 매우 상이한 문화가 발생할 수 있다.
사이버스페이스 문화는 미래의 대안문화로서 인간의 창조성과 자율성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양식으로 대두할 개연성을 지닌다. 그러나 사이버문화는 가상현실에서 뚝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엮어내는 상호작용을 토대로 사이버문화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상공간에 대한 연구에서 요청되는 것은 핑크빛색의 낙관론도, 암울한 비관론도 아니다. 정보사회가 제공하는 기술적 수혜를 어떻게 현실화시키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물리적 시설이나 소프트웨어적 기술등의 요인보다 그것을 이용하는 참여자들의 특성과 참여과정 등의 요인이 더 중요하다.
3.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남녀간 의사소통
각 사회에는 남성상과 여성상에 대한 준거틀, 즉 남자와 여자는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태도를 갖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가치와 규범체계가 있다. 인간은 태어나 자라면서 성에 대한 사회적 가치와 규범체계, 행동양식, 상징을 내면화하며, 이러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성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아이는 부모나 가족성원들에 의해 부여된 성분류에 의거해 자신을 여성 혹은 남성으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성별에 적합하다고 규정된 가치관과 특성을 습득해가는 성전형화(sex-typing)가 시작된다. 이 성전형화 과정에 의해 성별에 따라 성역할(sex roles)을 배우게 된다. 성전형화 과정의 결과 각 개인은 성차이데올로기를 수용하며, 자신의 성에 따른 지위와 역할을 인식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남성성은 자기주장적이며 활동적이고 독립적이고 목적의식이 있다는 등으로 도구적인(instrumental) 특성이 주를 이루는 반면, 여성성은 감정적이며 자기 희생적이며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등 표현적인(expressive)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성차 이데올로기가 가상공간에서의 의사소통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언어적 차원과 비언어적 차원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3.1. 언어적 영역
1) 아이디(Id) 및 대화명의 사용
네티즌3)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아이디나 대화명을 사용한다. 실제 개개인의 이름이 부모에 의해 일방적으로 부여된 것이라면, 아이디는 개개인의 자유가 허용되는 영역이다. 네티즌들은 외부의 강요가 없이 전적으로 자신의 창조적이며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상징적인 이름을 찾는다. 그러나 성역할 이데올로기의 ‘호출’적 기능은 남녀들이 아이디나 대화명을 선택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성 네티즌들은 주로 부드럽고, 우아하고, 유아스럽고, 섹시한 아이디를 갖는 반면, 남성들은 심리적으로, 성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강인함을 보여주는 아이디를 사용한다.4) 여성이 사용하는 아이디는 “보라빛향”, “샘터”, “채팅요희”, “아름드리”, “진수무향”, “산안개”, “수선화”, “예삐”, “계절여행”, “솔향기”, “재스민” 등이며, 남성의 아이디는 “비아그라”, “검객”, “아령”, “겨울신사”, “기신병단”, “도리깨”, “호랑이”, “진도리” 등이다.
2) 소개
전자대화는 직접적인 대면없이 문자의 통신으로 이루어진다. PC통신 상에서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는 상대방의 실제 모습에 대해 알 수 없다. 한 이용자가 다른 이용자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기본적으로 아이디(ID), 아이디의 이용자명, 대화명(nickname)에 국한되며, 더구나 특정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개인정보에 나타난 바로 그 사람인지, 나아가 제공되는 정보가 정확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러한 정체성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은 사람들이 대화방에서 대화를 나누려고 할 때 중요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일회적으로 들어와서 ‘장난’만치다 나간다면 몰라도 적어도 자주 대화방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구성원들은 어떤 식으로건 서로를 확인(identify)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상호작용을 조정하고 대화의 수위를 조절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대화방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정 먼저 서로에 대한 소개로부터 채팅이 시작된다. 대체로 성별, 거주지, 나이, 결혼 여부, 가족관계의 순으로 소개가 이루어진다. 이때 무엇보다도 성범주가 대화의 실마리를 어떻게 푸느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상대가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대화의 방식과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성과의 만남을 목적으로 채팅을 하는 경우에 성별은 일차적인 관심이 된다. 본 연구자가 여성으로 위장하고 채팅을 하고 있는데, 제 3의 어떤 남성이 여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방으로 들어 왔다가 연구자가 대화방을 떠나자 따라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일상생활에와 마찬가지로 가상공간에서도 남성은 자신을 소개할 때 키, 몸무게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반면, 여성의 경우 자신의 신체적 특징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꺼리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은폐시키는 헹위는 소위 “날씬하고”, “섹시”하다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여성의 외모는 여성의 전인적 능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이며, 여성의 사회적 열등감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은 가상공간에서도 실제의 얼굴과 몸을 감추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가진다.
3) 대화방식 및 사용언어
심리학자 Nancy Henley는 자신의 저서 [육체의 정략 Body Politics]에서 “한 쌍의 남녀가 함께 다닐 때 남성은 여성을 데리고 다닌다. 즉 길을 건널 때 잡아 준다거나 모퉁이를 돌 때 뒤에서 밀어 준다거나 하는데,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방향을 설정하고 이끄는 것은 조정자의 특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은 이러한 특권을 포기하고 남성에게 자신을 맡기고 있다. 가상공간에서도 이러한 행동들은 대개 무의식적으로 행해진다. 남성은 항상 대화를 리드해 나가야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서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를 붙이고, 여성은 단순히 여기에 자신의 느낌만을 표현하면 그만이다. 말 잘하는 여자 보다는 짧은 말로써 ‘수줍게’ 아니면 ‘귀엽게’ 상대방의 말에 비위를 잘 맞춰주는 여성이 ‘인기’를 독차지 하게 된다. 한 번은 본 연구자가 여성대화자로서 행세하며 지적인 대화를 주도해 나간 적이 있었다. 보다 못한 한 남성대화자는 “그래, 이 X아, 너 잘났다. 서방께나 힘들것다” 욕을 하고 대화방을 떠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복종, 온순함, 무력감 등의 소극적인 태도가 여성의 미덕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여기에서 일탈된 행위는 여성답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사회의 통념이 가상공간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여성들은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성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두 종류의 표현방법을 선호한다. 어린애들이 쓰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귀엽고, 깜찍한’ 상을 만들어 내려고 하거나, 생략하지 않고 문어체를 사용함으로써 ‘정숙한’ 이미지를 창출하고자 한다. 상대남성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면서, 중간에 동의한다는 표현을 가끔씩 함으로써 ‘온화한’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4) 미소를 나타내는 의성어의 사용
실제 세계의 남녀의 만남에서 여성은 남성 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미소를 짓는다. 미소는 주로 상대방의 기분을 풀어주고 상대방의 언사나 행동에 대한 인정 및 이해를 표현하는 기능을 한다. 이는 여성이 감정적이며 타인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표현적인 특성을 지녀야 한다는 성역할 이데올로기의 결과이다. 남녀의 관계에서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 농담이나 우스개 말을 한 사람이 말을 끝내자마자 재빨리 반응하는 것은 대개 여성의 경우에 보여지는데, 이 때 여성들의 웃음이나 미소는 자신이 갖는 즐거움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맞추고 상대방의 우월감을 더욱 만족시켜 주는 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의 미소는 애교로서 흔히 받아들여진다.
여성들에게 있어서 미소는 직접적인 자기 의사표현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상황적일 때가 많다. 여성에게는 공적인 자리에서의 온화한 미소와 함께 고분고분한 행동을 요구하며,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명랑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이 요구된다. 미소나 웃음이 여성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기능을 한다면, 미소를 짓는 것 혹은 웃는 것은 메시지의 진의와는 상관이 없으며, 미소짓거나 웃는 얼굴표정을 통해 여성적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사이버공간에서도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미소나 웃음은 상당히 상황적인 경우가 많다.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은 자주 의성어를 사용하여 ‘미소를 짓거나’ ‘웃음’으로써 대화의 분위기를 맞춘다. 연구자가 조사기간 동안 여성들이 사용한 의태어, 의성어, 스마일러는 남성들보다 약 1.5-2배에 가까운 수치를 보였다. 채팅의 장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비공식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여성들은 온화한 미소라기 보다는 명랑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맞추거나 살리는데 익숙해 있다. 이에 비해 남성들은 웃더라도 너털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분위기에 동참한다기 보다는 말문이 막히거나 상한 자존심을 보이지 않으려는 전략적 측면에 가깝다.
<사례>5)
이미경: 어서오세용, 호호
박진수: h2
김미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김진철: 아, 그럴수도 있겠군요. 푸하하하~~~
신민식: 오랜만이네요.
최소라: 후훗, 그렇군요.
이기식: 어솨요.
송미정: :-)
여성들의 경우 같은 여성들끼리의 피드백에서 나오는 웃음보다는 남성들과의 대화에서 보다 많은 웃음을 보인다는 것은 권력관계와 어느 정도 유관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즉 미소나 웃음은 여성적 여성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임과 동시에 노예를 포함한 낮은 지위의 집단에서 예외없이 발견되는 생존전략의 하나이다.
5) 대화내용
통신에서 동호회나 게시판이 어떤 목적이나 주제를 두고 만나는 것이라면, 채팅은 주제의 제한이 없으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려있는 공간이다. 채팅은 성별, 계층, 교육수준, 지역을 뛰어 넘어 동일한 시간, 동일한 가상공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시간적인 제약이나 사회적 지위가 별 의미를 갖지 않는 이러한 만남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과 흥미를 제공한다. 특히 가정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는 전업주부의 경우에는 채팅이 가족과 이웃의 범위를 넘어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 주부들은 채팅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하면서, 실제 세계에서 결핍되었던 사회적 관계에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채팅은 일대일 대화와 그룹 대화의 두가지 방식이 있다. 다자간 채팅의 경우 대화주제는 일상적인 사건이나, 그냥 신변잡기로 가볍게 시간을 때우는 식으로 전개된다. 진지한 대화는 일대일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주제는 남녀간의 사랑, 성, 가족, 자녀, 부부 혹은 애인 등 무수한 일상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그런데 만일 대화의 물꼬가 성에 관련해서 터져나오면 남녀간에 반응하는 양식은 다르게 나타난다. 남성의 경우 성적으로 흥미가 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대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반면, 여성의 경우 매우 소극적이며, 거부하는 행동을 보인다. 대화를 하다가 남성이 성적인 주제로 전개시키면, 일이 있다고 하면서 방을 떠나거나 나는 관심이 없으니 당신이나 다른 여성을 찾아보라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는 여성들이 많다. 만약 방의 제목이 성에 관련된 경우이면 이 곳을 찾아드는 여성들은 거의 없다. 만약 성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면 여성들은 하이텔의 ‘여성전용 대화실’ 하이텔의 주부동호회 ‘모자이크’, 천리안의 ‘여성클럽’ 등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전용대화실을 이용한다.
남녀간에 보이는 이러한 태도의 차이는 정숙한 여성은 성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알고자 해서는 안된다는 편견이 작용한 결과이다. 여성이 “대담하게” 성에 대한 대화에 끼어 든다면 남성들은 이런 여성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된다. 그 중에는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도 있고, 남자의 “고유의 영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등의 본능적인 적의를 보이기도 한다.
3.2. 비언어적 영역
1) 만남의 방식
일상생활에서 집을 장만하는 일이 주로 남성에 의해 이루어지듯이 사이버공간에서의 ‘집장만’, 즉 방만들기에서도 남성이 주도권을 가진다. 방을 만든 사람을 ‘방장’이라 부르는데, 다음 사례를 보면 방장이 모두 남성들이다.
남성들은 방을 만든 후 여성들의 눈에 잘 띄도록 방의 간판인 방제목(‘방제’라고 함)을 짓는데 많은 신경을 쓴다. 남성들이 새로운 방을 만드는 일을 전담한다면, 여성들은 남성이 만들어 놓은 방을 기웃거리며 자기 마음에 드는 방을 선택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이 선택되는 대상이 아니라 남성들이 만든 방을 선택하는 이러한 방식은 여성들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선택의 대상이기 보다 선택하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
여성이 선택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은 여성과 남성간의 정보격차에서 연유한다. 국내 PC통신의 여성 이용자의 수는 전체의 약 20%정도이다.6) 1996년 20세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정보화 지수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남성을 100으로 했을 때 여성은 32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컴퓨터 통신의 경우 남성은 전체응답자의 12.6%, 여성은 4.1%가 이용하고 있다(한국정보문화센터 1996). 정보설비와 이용에서 남성이 여성을 월등히 능가할 때7) 남녀간의 만남은 남성에 의해 주도될 수밖에 없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만남의 장인 방이 주로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만남이 남성에 의해 주도됨을 의미한다.
대화 중 사이버 공간을 떠나 실제로 만나보자고 제의하는 “call”도 거의 남성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call”이 남성의 전용물이라는 사실에는 이성과의 만남이나 성관계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허용적인 우리사회의 이중적인 성규범이 작용한다. 미혼 여성이든 기혼 여성이든 순결이 중요한 도덕적 덕목인 성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타인의 시선과 도덕적 비난에서 “안전한” 사이버 공간을 떠나 실제 세계에서 이성을 만나는 일은 “위험”하고 일탈적인 행위라 여겨지게 된다.
“cal”을 신청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남성들은 많은 경우 대화방을 떠날 때 자신의 연락처(주로 휴대폰 번호)를 남기는 반면, 여성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만남을 현실세계로 연결하고 싶은 욕구가 더 많고,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더 많다.
2) 공간의 이용
공간이용에 있어서의 성적 차이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여성은 남성보다 더 적은 공간을 통제하며 여성의 개인 공간은 남성의 것보다 더 작고 더 자주 침해된다고 한다(넨시 M. 헨리, [몸에서의 심리학], 일월서각 1984: 52). 예를 들면 집안에서 어머니의 공간은 부엌이다. 하지만 부엌은 현대에 와서 모든 사람이 같이 공유하는 식당이 되어 버렸다. 응접실과 식탁에는 무언중 지정된 아버지의 자리가 있으나 어머니의 자리는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공간의 차별적 이용은 전자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상공간에서도 보여진다. 가상공간에서의 공간거리라는 것은 물리적 차원 보다 상징적 차원에서 나타난다.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적인 아이디나 대화명으로 둔갑하지 않는 한, 수시로 남성들의 표적대상이 된다.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수시로 날아드는 남성들의 초청장, 메시지로 여성들의 가상공간은 남성들의 것보다 더 자주 침해당한다.
본 연구자는 실제로 여자로 행세하며 며칠 동안 같은 시간대에 채팅방에 상주해 있었는데, 여러 남성들이 지속적으로 이 시간대에 나타나 수시로 본인에게 편지, 초청장, 메시지 혹은 call(일대일 대화를 할 수 있는 온라인 전화)을 하며 접근하였다. 이렇듯 가상공간에서도 여성의 개인적 공간이 자주 침해받는 것은 여성의 상대적 지위 및 위치가 낮음을 보여주며 동시에 독자적인 일을 할 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권력관계와 연관지어서 보면 ‘지위가 높은 사람’(남성)이 ‘낮은 사람’(여성)보다 여러 ‘호출기능’(편지, 쪽지, say, call 등)을 사용함으로써 가상공간의 활용을 최대화하고 있다.
3) 헤어짐의 방식
컴퓨터가 일시적으로 고장을 일으켜 접속이 끊기는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대화(특히 일대일 대화)를 마쳤을 때, 남성이 먼저 대화방을 빠져나가는 일은 극히 드물다. 다음의 예에서 보듯이 남성은 방에 남아서 여자가 방을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려 준다. 만약에 남성이 부득히하게 먼저 나가게 되면, 상대여성 대화자에게 ‘먼저 나가서 미안하다’는 짧은 메시지 글을 남기는 것이 통상적이다.
[김욱동 ] 고마웠어요.
[김미진 ] 네..
[김미진 ] 저도
[김욱동 ] 먼저 나가세요
[김미진 ] 네.. 좋은 시간 되세요.
[김욱동 ] 안녕히
[김미진 ] 그럼, 저먼저...
━━━━━━━━━━━━━━ 통화종료: /Q ━━━━━━━━━
## 김미진(꽃향기)님이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이러한 헤어짐의 방식은 실제 세계에서 교제하는 남녀사이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데이터 후에 남자가 여자의 집까지 바래다 주는 것이 정례화되어 있는 우리의 데이터 문화가 가상공간에서도 보여지고 있다고 하겠다. 여성은 남성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 여겨진다.
여성이 먼저 방을 나가며, 남성이 방에 남아 여성을 배웅해 주는 것은 이 방의 주인이 남성이라는 의미 또한 함축한다. 여성은 방문객이기 때문에 이를 끝가지 보살펴주고 배웅하는 일은 남성의 몫이다.
4. 맺는 말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이 성적, 신체적, 심리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너무나도 좁은 범위에 국한되어 왔으며 이는 다양한 여성형 또는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형성되는데 저해요소가 되어 왔다. 사이버스페이스의 대화방에서 나타난 남녀차이는 실제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구조의 불균형 상태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가상공간에서 보여준 여성들의 커뮤니케이션 행위는 그 특징상 첫째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의식적이며, 둘째 폐쇄적이며 방어적이다. 셋째 기존 사회의 성차이데올로기를 재현하고 있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여성의 주변적 위치를 잘 드러낸다. 정보기술이 갖는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중층적 구조에도 불구하고, 사이버스페이스는 기존 세계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정보기술 혁명은 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창출해내고 있으나, 정보기술 그 자체가 블평등한 사회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실제 세계에서의 성별위계질서가 변하지 않는 한, 가부장적 사회구조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사이버스페이스는 가부장제를 유지, 강화하는 장이 될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경제적 빈부격차가 성불평등을 포함하여 사회적 갈등의 핵심적 요인 중의 하나였다면, 정보사회에서는 정보의 획득과 소비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된다. 따라서 정보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적 과제로 등장한다. 정보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장원리를 넘어서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보편적인 정보접근권이 시민 권리로 정착되어 모든 시민들이 정보에 접근하고, 이용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정보불평등의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각종 교육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와 같은 공공교육 기간이 정보화교육의 거점이 되어야 성과 소득에 따른 정보격차를 줄여 나갈 수 있다. 특히 여성은 성사회화과정 속에서 기술에 대해 친밀함을 갖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여학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정보통신네트워크가 상업망 중심으로 확대되는 반면, 공공영역에서의 정보화설비 구축이나 공공데이타베이스 확충은 지지부진하여, 정보화가 상업적 이해관계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보화가 철저히 적자생존과 이윤추구로 대변되는 시장논리에 의거하게 된다면, 정보화는 기존의 권력구조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정보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은 무엇보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여성의 참여와 통제에 달려 있다. 따라서 여성운동은 각종 시민운동과 연대하여 국가와 시장의 정보독점을 견제하여 정보흐름을 민주화해야 한다. 각종 사회단체들은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국가적인, 혹은 국제적인 소통과 연대활동을 추진할 수 있으며, 이로써 폭넒은 지원과 강력한 정치력을 확보할 수 있다. 각종 사회단체들은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국가적인, 혹은 국제적인 수준에서 자신의 활동을 폭넒게 홍보하고 지원을 호소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와 초국적 기업의 통제력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추세에서, 국제적인 연대활동과 지원은 사이버스페이스의 민주화를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테크놀로지는 특정 사회의 사회구조적 조건 속에서 배태되고 발전하는 것이지만,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일정하게 대항의 기술적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따라서 정보통신 기술이 갖는 민주적인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통신기술의 탈시간화, 탈공간화, 쌍방향성은 가정에 묶여 있는 여성들에게 좀 더 손쉬운 참여방식을 제공함으로써 여성운동을 활성화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굳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성문제와 관련한 강연을 듣거나 토론을 할 수 있고, 각종 정보도 수집할 수 있으며, 어떤 주제를 이슈화함으로써 공론화할 수 있다. 정보기술의 이러한 잠재력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여성운동의 장 속에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참 고 문 헌
공성진, 강선미 (1996), “정보사회와 여성의 생활세계”, [포럼 21] 한백연구재단.
김애실 (1995), “정보기술의 발전과 성별분업”, 한국여성학회 제11차 춘계학술대회 발표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