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의 시, 거울의 제국[제3편]
우선 ‘거울’이라는 장치에 대해서 문제삼을 수가 있다. 거울은 무엇인가? 거울은 표상들이 나타나 춤추는 백지다. 무엇보다도 거울은 표상을 생산한다. “<거울>은 말과 이미지의 불균질적인 침투상태로 구성된 장치이고, 이 장치는 말과 이미지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을 생산한다. 즉, 표상을 생산한다. 주체라는 표상을 자아라는 표상을, 타자라는 표상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표상은 욕망하고, 광란한다.” 거울은 실재계를 비추지만 현전을 그대로 옮기는게 아니다. 거울은 ‘나’이면서 ‘나’가 아닌 것, ‘이것은 나다’와 ‘이것은 내가 아니다’와 같은 언명들, 이 일치와 불일치를 동시에 품는다.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그것을 “말과 이미지의 불균질적인 침투상태”라고 말한다. 이상은 명민하게도 거울에 비친 자기에게서 상상계와 상징계가 상호 침투하면서 하나로 포개지는 사태를 인지한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 못한다. 분열은 거울이 상상계와 상징계 사이에 놓인 벽으로 기능하는 한에서 이미 예정된 조건이다. 상상계와 상징계가 하나로 포개지는 일은 상상의 층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자아를 거울 단계라는 도식 안에서 ‘거울이전’과 ‘거울 이후’로 나눈다. 아직 자기의 전체상을 보지 못한 유아기의 자아는 ‘거울 이전’에 머문다. 이 시기에는 오직 파편화된 자아상만을 갖는다. 유아는 성(性)도 없고 말도 없으며, 신체도 없고 향락도 없는 비-세계 속에 머문다. 그 비-세계에는 엄마의 젖을 쥐고 빨아대는 맹목의 접촉과 애착만이 있다. 반면 ‘거울 이후’의 자아는 정형외과적인 자기 신체의 전체상을 보고, 자아와 타자를 분별하며, ‘나’를 완성된 인격체로 전유한다. ‘거울 이후’는 자기를 발명하고, 스스로를 자기-신으로 섬기는 단계다. 그때 인간은 쥐고 빨아대는 맹목의 행위에서 벗어나 ‘거울’에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유아기에 치른 쥐기와 빨기는무의식의 심층에 희미한 흔적으로 남는다. ‘거울 이후’에는 ‘거울 이전’의 말, 이미지, 신체를 부정하고, 환희와 격동의 세계로 나아간다. ‘거울 이전’은 독립된 주체의 탄생과 더불어 상징적인 죽음을 맞는다. ‘거울 이후’의 자아는 어떻게 자기 이미지를 탐식하는가?
거울 속의 밤은 자라지 않는다 물들지도 않고 움켜쥐지도 않는 거울 속에는 역사가 없고 순간의 연애만 있다
깨어지며 완성하는
거울이 흐른다
결심을 모르는 거울에 아무도 빠져 죽지 않아 꽃이 피고 바람불듯 맑고 동그랗게 태어나는 노래들
위태로운 사랑이 살얼음으로 정의되는 순간 허공에 박혀 있던해와달이 세 번 거울을 부인하며 거울을 빠져나간다
새는 몸 밖을 근심하여 새가 되지 못하고
방금 전 태어난 알몸의 거울은 명랑하게 다시 죽는다 조문도못 하고 거울에서 흘러내린 나뭇잎들이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물가로 돌아가는
이곳에서 날마다 창세기의 첫 줄이 불타고 있다
- 홍일표 「백치 거울」 전문
「백치 거울」에는 태어나는 것과 죽음 사이에 여러 ‘순간’들이 개입한다. 연애의 순간, 위태로운 사랑이 정의되는 순간이 그것이다. “거울 속의 밤은 자라지 않는다”는 언명 속에서 우리가 꺼낼 수 있는 단서는 무엇인가? 첫 연에서 거울의 할 수 없음, 거울의 불가능성은 도드라진다. 거울은 물들지도 않고 움켜쥐지도 않는다. 거울은 매끄러운 표면을 가진 화석이고 지층이며, 더러는 얼어붙은 음악이고, 말로 쓰이지 않은 경전이다. 시간과 의식은 거울의 매끄러운 표면 위로 흘러간다. 거울에는 아무것도 고이지 않는다. 거울이 역사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거울이 할 수 있는 것, 혹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순간의 연애뿐”이다. 거울은 순간마다 태어나고 너무 빨리 “명랑하게” 죽는다. 따라서 거울은 현재성의 표면으로서의 찰나 말고는 다른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
장석주 「은유의 힘」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