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폰카 에세이】
솔숲에서 부처님을 뵙네
― 솔향이 내 몸에 스며들 때
윤승원 수필가
솔숲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내원사 목탁 소리
염불 소리 들리네
반복적으로 들리네
귀에 익숙한 소리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저 염불 소리
반복해 들어도 왜 좋을까?
저 목탁 소리도
언제나 똑같은 리듬인데
반복해 들어도 왜 좋을까?
그 이유 소나무가 전해주네
부처님이 그 소리를 타고
가만가만 오신다네
소나무는 왜
바라만 봐도 좋을까?
매일 바라보는 소나무인데도
왜 그냥 좋을까?
솔바람 타고 부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기 때문.
어디서 오는 향기일까?
솔숲에 혼자 앉아 있으면
내 몸에 부처님 말씀의 향기가
솔솔 스며드네 ♧
◆ 필자의 말 :
나는 불자(佛子)는 아니지만, 사찰의 고요한 풍경을 좋아하고 대웅전 지붕 위 기왓장의 그 아름다운 곡선을 즐겨 감상한다.
부처님 앞에 합장(合掌)하는 경건한 마음도 내 안의 정서를 풍부하게 한다. 때로는 불전함(佛錢函)에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박한 마음을 넣는 것도 즐겁다.
내 어머니도 생시에 카세트테이프로 불경 듣는 것을 좋아하셨고, 장모님은 초파일에는 절에 가셔서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축원하며 등(燈)을 다셨다.
그런 깊은 인연이 오늘을 살아가는 내게도 미친다. 사찰 앞 솔숲에서 은은히 풍기는 솔향이 그래서 부처님이 내게 주시는 복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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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9. 7.
윤승원, 내원사 솔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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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의 감상평
솔숲에서 부처님을 만나는 마음
— 윤승원 수필가의 「솔숲에서 부처님을 뵙네」를 읽고
윤승원 수필가의 이번 폰카 에세이 「솔숲에서 부처님을 뵙네」는 자연과 감각, 명상이 한데 어우러진 짧은 ‘서정 수필’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미덕은 부처님을 먼 사찰이나 불상 속에서 찾지 않고, 매일 마주하는 소나무와 솔바람과 목탁 소리 속에서 발견한다는 데 있다.
첫머리의
“솔숲에 혼자 가만히 / 앉아 있으면”
이라는 두 행은 작품 전체의 정서를 결정한다. ‘혼자’와 ‘가만히’라는 말에는 현대인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산행 인의 수행 자세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고요 속으로 멀리 내원사의
“목탁 소리
염불 소리 들리네”
가 들어온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소리가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반복적으로 들리네
귀에 익숙한 소리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작가는 스스로 묻는다.
“저 염불 소리
반복해 들어도 왜 좋을까?”
“저 목탁 소리도
언제나 똑같은 리듬인데
반복해 들어도 왜 좋을까?”
바로 이 질문이 이 작품의 중심축이다.
보통 반복은 지루함을 낳지만, 염불과 목탁의 반복은 오히려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불교문화 포털에서도 염불은 반복을 통해 집중을 돕고 심신을 이완시키는 수행으로 설명하며, 다른 사람이 하는 염불을 듣는 것 역시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윤승원 수필가는 이러한 불교적 의미를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아름다운 자신만의 문학적 해답을 내놓는다.
“그 이유 소나무가 전해주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이 이 작품의 백미다.
“부처님이 그 소리를 타고
가만가만 오신다네”
얼마나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상상인가.
부처님이 걸어오시는 것도 아니고, 구름을 타고 내려오시는 것도 아니다. 목탁과 염불의 소리를 타고 ‘가만가만’ 오신다.
‘가만가만’이라는 의태어가 참 좋다.
부처님의 현현(顯現)을 장엄하고 거창하게 표현하지 않고, 마치 바람처럼, 향기처럼, 소리처럼 조용히 표현한다.
이 한마디 때문에 작품의 종교적 색채가 교리적 설법에서 문학적 서정으로 바뀐다.
◆ 소나무는 이 작품에서 ‘자연’이 아니라 ‘법문’이다.
작품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은 소나무다.
“소나무는 왜
바라만 봐도 좋을까?”
“매일 바라보는 소나무인데도
왜 그냥 좋을까?”
여기서 작가는 다시 질문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답을 얻는다.
“솔바람 타고 부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기 때문.”
이 대목에서 소나무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소나무 → 솔바람 → 목탁소리 → 염불소리 → 부처님 → 내 마음
이라는 아름다운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특히 폰카로 보여주신 사진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소나무의 몸통과 서로 얽히면서도 조화롭게 펼쳐진 가지들을 바라보면,
이 작품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소리를 품은 숲’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선명해진다.
작가가 직접 폰카로 찍어 보여주는 내원사 풍경 역시 붉게 핀 배롱나무와 고즈넉한 전각이 어우러져 자연 속에 자리한 수행의 공간이라는 작품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뒷받침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 사진은 단순한 기록사진이 아니다. 사진이 ‘눈으로 보는 풍경’이라면, 수필은 그 풍경에서 ‘마음으로 듣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 ‘솔향’은 결국 ‘부처님 말씀의 향기’가 된다
마지막 부분은 작품의 제목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온 모든 이미지가 하나로 수렴하는 부분이다.
“어디서 오는 향기일까?”
이 질문은 매우 감각적이다. 독자는 실제로 솔향을 맡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작가는 그 향기의 정체를 다시 한번 정신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내 몸에 부처님 말씀의 향기가
솔솔 스며드네”
여기서 ‘솔솔’이라는 표현도 절묘하다.
앞에서는 솔바람, 뒤에서는 솔향, 그리고 마지막에는 말씀의 향기가 된다. 즉 자연의 향기가 어느 순간 마음의 향기로 전환된다.
이것이 윤승원 수필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거창한 철학을 앞세우기보다 일상의 작은 체험 하나를 붙잡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숲을 걷다가 소나무를 보고, 목탁 소리를 듣고, 염불을 듣고, 솔향을 맡는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아주 평범한 경험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 평범한 경험을 자신의 내면에서 다시 발효시켜 ‘부처님을 만나는 체험’으로 승화시킨다.
◆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은 ‘설명하지 않는 명상 언어’이다
이 작품은 불교를 독자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관세음보살이 무엇인지, 염불이 어떤 수행인지, 목탁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듣고,
바라보고,
느끼고,
마지막에는 향기를 맡는다.
그 결과 독자는 자연스럽게 작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산책수필’이면서 동시에 ‘자연수필’이고, ‘명상수필’이며, ‘감각수필’이다.
특히 ‘부처님을 뵙네’라는 제목도 실제로 부처님의 형상을 보았다는 뜻이라기보다 자연 속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느꼈다는 은유로 읽는 것이 더욱 아름답다.
목탁 소리에서 ‘자비’를 듣고, 소나무에서 ‘평온’을 느끼며, 솔바람에서 ‘마음의 청정’을 느끼는 순간, 작가에게는 그곳이 곧 법당이 되는 것이다.
◆ 짧은 문장이 만들어내는 긴 여운
형식적으로도 이 작품은 윤승원 수필가가 최근 보여주는 짧은 호흡의 ‘폰카 에세이’와 잘 어울린다.
문장이 길지 않다.
질문하고,
대답하고,
다시 질문한다.
“왜 좋을까?”라는 반복도 눈에 띈다.
그런데 이 반복은 단순한 문장 반복이 아니다.
처음에는 소리가 왜 좋은가를 묻고, 다음에는 소나무가 왜 좋은가를 묻는다. 그리고 결국 그 두 질문의 답은 하나로 합쳐진다.
“부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기 때문.”
이것이 바로 작품의 정신적 결론이다.
◆ 맺음말
「솔숲에서 부처님을 뵙네」는 거대한 깨달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매일 보던 소나무가 어느 날 새롭게 보이고,
늘 듣던 목탁 소리가 어느 날 마음을 위로하며,
늘 맡던 솔향이 어느 순간 부처님의 말씀처럼 느껴지는 것.
어쩌면 문학이란 바로 이런 순간을 붙잡는 일이 아닐까.
윤승원 수필가에게 내원사 솔숲은 단순한 산책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몸을 쉬게 하는 숲이면서 마음을 닦는 도량이고, 소나무가 법문을 들려주며, 솔바람이 부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연 속의 법당’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마지막 구절,
“내 몸에 부처님 말씀의 향기가
솔솔 스며드네”
는 단순한 결말이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숲에서 얻은 ‘평온’을 독자에게도 조용히 건네는 한 줄의 ‘축원’처럼 읽힌다.
솔숲을 바라보는 눈이 맑아지면,
목탁 소리를 듣는 귀도 맑아지고,
마음이 맑아지면
어디에서든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이 짧은 ‘폰카 에세이’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따뜻한 문학적 깨달음이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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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6.09.08.13:56
윤 선생도 아시겠지만, 현재 조계종에서 예식의 첫 부분에 천수경을 외웁니다. 그 한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아금견문득수지(我今見聞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입니다. 이를 번역하면 부처님의 설법은 더 이상이 없는 깊고 깊은 미묘한 법입니다. 이는 수억만 년 동안에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내 지금 듣고 간직하니 원컨데 여래의 진실한 뜻을 알고 싶습니다. 이처럼 불교와 인연을 맺는 것 자체가 어려운 기회인데 윤 선생이 법당에서 울려오는 염불소리가 소나무를 통해 즐기시니 더할 나위 없는 복덕을 어머님 장모님 인연으로 큰 공덕을 받으시고, 이를 즐기고 계십니다. 인간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감이 바른길인 가를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생로병사의 4苦와 8苦를 여의는 방법. 탐진치를 벗어나는 방법을 모든 불교 경전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좋은 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천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따뜻한 눈길로 졸고를 살펴주시고 격려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