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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병을 영어로 표현하면 Princess Complex 라고 합니다.
하지만 공주병이라는 말과 Princess Complex라는 말의 어감은 상당한 차이가 나지요.
그 이유는 공주병이라는 말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듯한 뉘앙스가 있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Princess Complex 라는 말은 심리학적 용어에서 나온 말이지요.
컴플렉스라는 말은 정신분석 용어인데 마음속에 잠재한 어떤 심리적 현상이지 병은 아니지요.
Princess Complex 라는 말은 여성의 잠재의식속에 깊이 내재해있는 심리적인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지 공주병처럼 문제가 있다는 식의 뉘앙스는 없다는 것이지요.
많은 남성들은 공주병을 여자의 허영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여성들은 공주와 같은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지요.
여자라면 누구나 그레이스 켈리나 다이아나 비의 삶을 동경하고 심지어 수상의 반대로 왕비가 되지 못한 심프슨 부인조차 수많은 여성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지요.
여자들은 대부분 한 번 쯤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언젠가는 자신의 왕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러한 심리는 젊은 여성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결국 공주병이란 모든 여성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자라면 누구나 공주와 같은 대접을 받고 싶은 것이고 남자의 마음도 왕자와 같은 대접을 받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자만 자신의 왕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남자도 자신의 공주를 기다리지요.
단지 누가 일찍 포기했느냐의 차이겠지요.
어떤 면에서 남자들은 공주병과 왕자병에 대해서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은 잘난 척하면서 여자가 잘난 척하는 것은 못봐주는 경우가 많지요.
자신은 왕자처럼 행동하면서 여자의 공주병은 고치지 않으면 안되는 병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여자든 남자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요.
Princess Complex 는 병이 아니라 모든 여성의 꿈인 것이지요.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줄 자신의 왕자를 만나고 싶은 여자들의 꿈이지요.
그것이 우리가 공주병이라고 부르는 Princess Complex 입니다.
반면에 신데렐라 컴플렉스는 왕자처럼 멋진 남자를 만나 인생을 바꾸고 싶은 여자의 심리를 말합니다.
심리학적으로 Princess Complex 와 Cinderalla Complex는 비슷하면서도 차이점이 있습니다.
신데렐라 컴플렉스는 자신이 공주는 아니지만, 왕자를 만나서 공주(princess)가 되는 것이지요.
반면에 Princess Complex 는 공주로서 자신의 왕자님을 만나는 것이지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것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지요.
공주로서의 자존심은 분명히 평민 출신인 신데렐라와는 다를 테니까요.
신데렐라의 자존심도 대단하겠지만 공주의 자존심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자들이 자존심 때문에 애인하고 헤어지거나 자존심 때문에 좋아하는 남자에게 좋아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심리는 Princess Complex 의 영향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다음은 프린세스 컴플렉스가 심한 어느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케이트는 공주병이 있었는데, 좋아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막연히 그가 먼저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남자도 그녀에게 호감이 있지만 그동안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에 자신도 거절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았지요.
그녀는 그의 소극적인 행동에 화가 났습니다.
분명히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그는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았지요.
'겁쟁이' '바보' 그녀는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그의 소심함을 원망했지요.
기다리다 지친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다른 남자들이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면 받아주기 시작했지요.
그녀와 다른 남자가 데이트하는 장면을 목격한 그 남자는 자신도 데이트 신청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내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였지요.
그의 데이트 신청을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린 그녀는 그와 데이트한 이후에 다른 남자들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기 때문에 남자는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그녀는 그와 결혼할 수 있었지요.
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여성은 프린세스 콤플렉스가 심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린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지요.
반면에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강한 여성들은 왕자님같은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대쉬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가진 여자가 프린세스 콤플렉스를 가진 여자보다 이처럼 융통성이 있어 보이지만 배우자를 선택하는데에 있어서는 프린세스 콤플렉스를 가진 여성이 더 융통성이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강한 여성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외적인 조건들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나 검사는 좋지만 변호사는 싫다던가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는 좋지만 마이너리그 야구선수는 싫다는 여성들은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프린세스 콤플렉스가 강한 여성은 배우자의 직업이나 사회적인 지위보다는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들이 자신을 존중해주기를 원하여 아무리 멋진 남자라도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도 사과하지 않으면 헤어지는 경우가 많겠지요.
이처럼 프린세스 컴플렉스와 신데렐라 컴플렉스는 비슷하면서도 많은 차이점이 있지요.
하지만 전혀 다른 것은 아니고 비슷하면서도 공통점도 많습니다.
결국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니까요.
남자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의 모든 여자는 공주병이나 신데렐라 컴플렉스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공주나 신데렐라 같은 여성을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소녀들은 동화 '신데렐라'를 보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왕자와 같은 남자를 만나서 신데렐라처럼 행복한 결혼을 할 것이라고 믿게 되지요.
'Someday my Prince will come'라는 내용의 노래 가사는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영화음악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의 꿈인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왕자는 없지만 모든 여자가 부러워 하는 왕자와 같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 여성들의 꿈이지요.
여자들은 왕자와 같은 남자가 아니라면 좀처럼 남자에게 대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기 가수의 공연장에 가면 "사랑해요, 오빠!"를 외치면서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소녀들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내숭쟁이로 돌아오곤 하지요.
여자의 마음이란 자신의 왕자에게는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지만, 평범한 남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여자의 마음은 공주의 마음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요.
공주는 왕자에게는 청혼을 하는 경우가 있어도 귀공자나 기사에게 먼저 청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물론 소설을 보면 공주가 평민과 사랑에 빠져 청혼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소설이고 실제 역사적으로 그런 일은 별로 없겠지요.
결국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공주처럼 대해주어야 되겠지요.
자신이 왕자와 같은 남자가 아니라면 말이지요.
남자들은 남자가 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 여자친구 있어. 왜 이래?" 할지 모르지만, 정말 여자친구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그렇지 못한지는 여자친구만이 알겠지요.
설령 여자친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해도 여자친구를 공주처럼 대접하지 않으면 여자의 입장에서는 섭섭할 수 있겠지요.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이러한 여자의 공주병을 먼저 이해하여야 되겠지요.
우리는 어머니의 진정한 안식처를 벗어나면서 부터, 아니 안식처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존재로 크 게 나뉘어 지며, 이 사실은 우리가 죽어 다시 대지의 안식처로 돌아갈 때 까지는 부인될 수 없다.
이러한 성별에 따른 구별에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페미니즘' 이란 단어에 친숙할 것이고 더 나아가 이 용어가 여성문제 를 통해서 가부장적인 현 사회의 억압적 구조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화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인류의 평화공존이라 는 원대한 목표와 이념을 갖춘 사회운동을 지지하는 신념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여성문제는 그 대상이 여성자신에게만 국한되어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세상은 두 가지 성-여성과 남성-으로 구성되 어져 있고 이 땅위의 여성은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이자 아내이자 그리고 누나, 동생, 딸, 연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렇듯 여성문제는 남성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며 더 정확한 표현을 찾자면 여성과 남성문제를 포함하는 인간문제라고 명명해야 할 것이다. 인류역사상 점차적으로 인종의 차별과 신분의 차별이 지구상에서 소멸되어져 가는 것처럼 생물학적으로 구 별되어지는 여성과 남성의 성차별도 소멸되어져야만 '인류평화공존' 이라는 큰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온 동네가 깨끗하려면 우리집 앞마당부터 쓸고 닦아야 하는 것처럼 여성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여성자신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고 본다. 그래서 여자는 당연히 알고 남자또한 마땅히 알아야 할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 중에서 요즘 가장 많이 알려진 '신데 렐라 콤플렉스'를 살펴봄으로써 여성의 외부세계의 문제 뿐만 아니라 내부세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며, 결혼의 참된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보다 나은 이해를 돕기 위해서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자. 미국의 저널리스트 콜레트 다울링(Colette Dowling)은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억압된 태도와 불안이 뒤얽혀 여성의 창의성과 의욕을 한껏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미개발 심리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하자면, 여성은 의존적인 성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 다. 보이지 않는 여성의 심리 깊숙한 곳에는 생떽쥐베리의 'Little Prince'라는 작품에서 어린 왕자가 한 송이 장미를 바람과 벌 레로부터 보호해 주기 위해 씌여주었던 유리벽과 같은 따뜻하고 튼튼한 뭔가를 원하는 강한 욕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진 여성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거나 해야 할 때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낀 나머지 주저하거나 포기하려는 상태에 이른다. 예전부터 우리나라에 전해내려오는 '삼종지도'라는 말이 있듯이 여성은 어릴때에는 부모에게, 젊어서는 남편이나 애인에 게 또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에게 의지한다. 특히 일정한 나이를 먹으면 일생을 책임져 줄 남편감을 찾기에 급급해진다. 동화 속 의 신데렐라처럼 자기의 인생을 뒤바꿔 줄 왕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의 꿈을 깨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왜 이런 어 리석은 꿈들로부터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조장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살펴보자.
첫째, 여성은 어려서부터 '여자다움'을 강요 받아왔고, 불평등을 조장하는 여성교육을 꾸준하게 받아왔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이며, 남성의 보조자로써 남성을 위안해야 한다는 믿음은 성별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야기시켰고 동시에 이러한 고 정관념은 여성의 열등성을 확인시켜주었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사람답게' 길러진다기 보다는 성별에 의해 '여자답게' 또는 '남자답게' 길러진다. 남자다움의 대부분은 사람다움의 가치와 동일하게 여겨지며 누군가를 지칭하면서 '사람다움'이라고 말할 경우, 그 사람의 성별은 대개 남성이다.
우리는 자신의 특성을 무시한 채 사회가 요구하는 성별특성에 맞추어져야 하며, 이미 그렇게 길들여져온 부모의 고정관념에 입각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사회가 요구하는 성별역할에 익숙해져 왔다.
한 아기가 여자아기인가 남자아기인가에 따라서 옷 색깔이 달라지고, 여자아기가 아랫도리를 내놓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반면에 남자아기가 내놓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어지며, 데리고 노는 양상과 이야기를 걸때의 내용이 달라지며, 시키 는 일과 무엇을 잘해야 한다는 기대가 달라지고, 어떤 성격을 가져야 하고, 커서 무엇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달라지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교육을 통해서 우리의 부모들이 바라는 '여자다운' 여자의 특성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남성에 대한 의존성이 며, 좀더 구체적으로 열거해 보자면 감성적, 주관적, 순종적, 수동적, 비논리적 특성들이다. 이러한 특성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외모또한 아름답고 부드러워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동화 속의 주인공 신데렐라를 떠올린다면 이러한 특성들이 어떤 이미지인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재투성이'라는 의미 의 이름을 가진 신데렐라와 왕자의 만남은 매우 극적이다. 그들은 어떤 인간적인 교류를 나누기도 전에 왕자는 신델렐라를 보자 마자 첫눈에 반해버렸다. 왕자가 그녀에게 반한 것은 그녀의 미모 때문이다. 조건좋은 왕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과 대등한 한 인간이거나, 그녀의 내면세계, 그녀의 능력, 그 어느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그녀의 비참함과 그녀의 외모였다. 왕자의 백마와 힘셈(능력)과 용기가 그러했듯이 공주의 의존성과 비참함(열등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사랑의 조건'이 되었다.
둘째는 가부장적 가족제도 내에서의 생계부양자는 남성, 살림꾼은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역할 분리에 그 기반을 둔 불평등 구 조이다.
가부장제는 기본적으로 남성을 과잉보호속에서 키운다. 더욱이 다른 여자형제에 의해 차별적으로 떠받들려 자라게 된다. 남자 는 결코 여자가 하는 하찮은 일들을 해서도 안되고 가정의 중심은 항상 남자라는 쓸데없는 권위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가부장적 가족은 남성의 자아를 매우 취약하고 불안정하고 불건전하게 만든다. 언제나 자신을 내세우고, 지배해야 하며, 우월해야한다는 자아의식 때문에 남성의 자아는 오히려 더 상처받기가 쉽다. 너무 강해 부러지기 쉬운(?) 이러한 남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부장 적 가족제도는 손쉬운 방법으로 남자가 아닌 여성을 알맞게 교육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가부장적 전통가족 제도에서도 이러한 역할 분리 성별분업이 확연하게 이루어져 왔다. 옛날부터 여성은 '안방마님'이 라 칭하여, 훌륭한 살림꾼으로서 집안 내에서의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며 '바깥어른'인 남성은 생계 부 양자로서 아녀자와 식솔들을 거느려야만 하는 중대한 의무를 지닌 사람으로 분리되어져왔다.
가부장제에서 이러한 이분법적 역할 분리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 고 있는 사람이 오직 가장 한 사람뿐이기 때문에 여성은 이러한 남성을 왕처럼 극진하게 모셔야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고, 오직 이 사람이 바람과 온갖 벌레로부터 약한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든든한 유리벽이 되어줄 수있다는 사실에 사로잡혀 서 더 이상 자신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가시없는 장미'가 되고 그리고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한 송이 '해바라기'가 되어가는 것이다.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고학력의 여성들도 많아지고, 이에 따라서 많은 능력있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더불어 치열한 경쟁 사회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려고 많은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이분법적 논리가 팽배하고 있는 사회속에서 기혼여성들이 성 공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이나 미혼 여성들 보다도 더 많은 자기 희생을 통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사회적 의식이 바뀌어서 구성원들의 협조가 있기전까지는 용기있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한 여성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성장도 많은 여성들이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는 데 원인이 되었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자유'는 결혼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봉건시대까지 신분사회의 결혼은 일차적으로 신분에 의해 규 제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신분을 폐지함과 동시에 결혼을 신분간의 결혼이 아니라, 신분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의 결혼으로 만들었다. 신분적 제약은 봉건시대까지 남녀간의 사랑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였다. 자본주의 자유의 진가가 구두닦이에 게 재벌의 꿈을 심어주는 데 있듯이, 자본주의적 자유연애의 진가는 애정 그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신데렐라의 꿈, 혹은 재벌 사 위가 되는 엘리트 사원의 꿈을 심어주는데 있다.
그렇다면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지닌 의존적이고 나약한 여성들의 최대의 관심사이자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결혼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법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남편이라는 든든한 보호막을 가질 수 있는 제도적인 수단이며 ,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생존수단이 될 수도 있으며, 또한 신분상승의 꿈을 이루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부 한 생각에 묻혀서 요즘 결혼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점점더 퇴색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결혼은 진정으로 안전하고 완전한 대피소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현대사회에서의 결혼의 진정한 의미와 결혼생활에서의 여성과 남성의 이상적 결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봄으로써 여성내부의 벽인 콤플렉스를 여성 스스로 극복함으로써 성의 구별로 구분되어진 나약한 여성으로서가 아 닌, 한 종류의 인간으로서 또다른 종류인 남성과 어떻게 조화롭게 살 수 있는지 이상적 여성으로 살기 위한 몇 가지를 제안하겠 다.
우선 법률적 측면에서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결혼을 법률적 용어로 '혼인'이라고 하는데 법전에는 혼인을 " 사회적 제도적으로 승인된 영속적인 성적 결합관계를 맺는 것"으로 설명해 놓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적 결합관계는 자 녀를 낳아 세대를 잇기 위한 사회적 역할에 중심을 둔 것이다. 비록 법정의 규정은 부분적이고 미흡하나만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이 결혼이란 남녀사이의 어떤 특정한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결혼을 결심한다는 것은 남녀가 서로 부부가 되기로, 부부관계를 맺기로 결정하는 것이며, 서로를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선택하는 사회적 행위인 것이다. 이렇듯 결혼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는 모든 생산의 기본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며, 개인적으로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내 안으로 맞아들임으로써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일생의 가장 중요한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 이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가장 존 중되어야 될 가치들이 무시되어지고 결혼의 의미가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대의 성공적 결혼이란 성별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전통적 부부관계를 의미한다. 여성은 스스로를 아름답고 나약한 공주로 자처하며, 어느날 백마를 탄 늠름한 왕자님이 나타나서 자신을 구원해주기를 꿈꾼다. 의존적인 여성과 독립적인 남성의 결합은 전통적인 역할 분리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이상적인 관계로 인식된다. '백마탄 왕자'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남성적 가치를 가장 많이 소유한 남성을 이른다. 현대사회에서 남성적 가 치는 자본주의가 이상적 가치로 추구하는 권력, 돈, 지식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오늘 우리사회에서 백마탄 왕자는 판검사, 의사, 기업가, 교수들이라는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은 그녀의 소설에서 결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 고 있다.
결혼이란 교양은 있되 재산이 얼마되지 않는 여성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명예로운 대책이었다. 그러한 결혼이 행복할 수 있을 것 인가는 확실치 않다 할지라도, 빈곤을 면하려면 여성들이 가장 기꺼이 바라는 보장된 길인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신데렐라에게 결혼은 현실로부터의 구원이며 피난처이다. 여자는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싸우는 대신 참으면서 기다린다. 자신을 이 비참함에서 구제해 줄 누군가를. 사랑과 결혼에 인생을 걸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대신 남자가 자신을 떠맡 아 주기를 기대하는 것,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현실로부터 한 남자의 품으로 도망가고자 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 수많은 여 성들이 앓고 있는 신데렐라 증후군이다.
오늘날의 신데렐라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안전하고 완전한 대피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대답은 '아니다'이다.
현실의 신데렐라들은 불행히도 백마탄 왕자와의 결혼으로 얻어진 그 성이 모래성이었음을 발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척박 한 모래성에서는 아름다운 꽃들은 피어나지 못하고 가시덤불만 자라난다. 게다가 현실의 자그마한 위협에도 이 모래성은 흔들리 고 금이 가고 구멍이 뚫리고 허물어진다.
이 성을 모래성으로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이 성이 '사랑'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해타산'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다. 함정은 바로 그들의 사랑 그 자체에 있다. 공평하고 다행스럽게도-그러나 우리의 돈바라기 남자들과 신데 렐라에게는 불행하게도-진정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의 반대급부로써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돈에 대한 사랑이지 그 자신에 대한 사랑은 아닌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무엇보다도 소중한 내 존재를 한 남자에게 맡겨버린, 의존성 강한 신데렐라들은 또 하나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 다.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에서오는 실망감을 극복할 자세가 되어있어야만하고, 그들 사랑의 부조화에서 오는 갈등을 참아내야만 한다. 신데렐라들은 여자에겐 사랑이 전부라는 식으로 배워왔다. 유능한 여성들조차 일에 자신을 쏟기보다는 결혼하기 전에 잠시 거쳐가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진정한 흥미를 갖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남자들은 남자에게 사랑이란 일에 비하면 아주 사 소한 것이라고 배운다.
남편과의 관계에 인생을 걸고 있는 여자와, 자기 삶에서 짜투리만을 여자를 위해 남겨두고 아내를 자기 생활의 작은 공백을 메우는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남편. 결혼에 대한 기대에 가득차 있던 여자는 신혼초부터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에 사 로잡힌다. 남자들은 자기 좋을대로 움직일 줄 알았던 여자들이 이것저것을 요구하자 "잘못 걸렸다"고 생각한다. 이런 결혼생각이 삐그덕거리는 것은 당연하다. 결혼은 행복의 문이 아니라 갈등과 부조화에 찬 '지옥의 문'이 된다. 남편과 아내는 서 로에게 '이해 안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1829년 생시몽주의자들은 "남자와 여자, 그 둘이 합쳐서 사회적 개인이 된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다시 풀어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자나 남자 모두 한쪽으로는 제 구실을 할 수 없다. 남녀가 만나 한 쌍을 이뤄야 사회적 개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짝을 지음으로써 남녀를 평등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결혼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결혼은 강한 자 와 약한 자의 불평등한 결합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춧돌을 기반으로 하여서 이상적인 사회적 개인을 창출해 내기 위한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결합인 것이다. 기존의 가정윤리는 성별 불평등에 기반함으로써 현대사회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켜왔다. 가정안에서 인간은 개인 특성이 무시된 채 경직된 성별분업을 담당하도록 강요되어져 왔으며, 그러 한 성역할에 적응할 수 있게끔 사회화되어져 왔다.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의 문제가 다른 사회문제들과 분리되어 하찮은 문제로 다루어져 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새로운 사회의 창조를 위해서는 현대가정의 질적인 변화에 도움이 될 실천적인 노력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새로운 사회는 성 에 따른 구별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에 따라 그 개인의 잠재력이 최대한으로 실현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즉 개인의 능력을 무시한 다른 특권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사회, 물상화 도구화된 인간을 회복시켜주는 사회, 냉혹한 경쟁의 논리가 아니라 진정 한 단합과 협동의 윤리가 요구되는 사회 -우리는 이러한 사회를 새로운 사회로 추구한다. 말할 것도 없이 새로운 가정은 위의 원 리가 적용되는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평등주의적인 민주적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꼭 수반되어져야만 하는 전제조건이 있다. 그것은 가족을 형성하는 결혼 에 있어 남녀가 자의적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며, 결혼은 사랑에 기반한 도덕적 관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은 진정으로 상호 간의 인격적 성장과 복지에 관한 관심과 책임을 위해 협동하는 관계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새로운 가정을 위한 발전의 방향은 가족의 안전과 존속이 여성의 예속과 소외를 강요하는, 즉 여성의 희생위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가정이 여성을 공적 역할이나 사회생활에서 소외시켜 한 남성에게 예속되어 살게하는 속박의 구조가 될 수 없다. 가정은 여성이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평등한 권리와 책임을 사회와 가정에서 스스로 실천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되어야한다.
가정은 부부사이 그리고 부모와 자녀사이에 평등의 원칙이 유지되는 생활공동체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각 개 인 특히 여성의 확고한 주체성과 자율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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