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앙이라고 하는데
강학종 / 하늘교회 목사
엡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적이 있습니다.
모인 무리가 너무 많은 탓에 지붕을 뚫어서 침상 째 예수님께 달아 내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서기관들이 그 얘기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하겠느냐며, 신성 모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말이 쉽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예전에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이 중풍병자를 고치는 내용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중풍이 아무리 난치병이라도 치유 자체가 불가능한 병은 아닌 모양입니다.
죄를 사하는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말보다는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라는 말이 훨씬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쉬운 말을 놓아두고 어려운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알게 하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중풍병자가 낫는 것과 비교도 안 되는 사건입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중풍이 치유되는 정도의 능력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1977년에 미국에서 토성 탐사선 보이저 1호를 발사했습니다.
그때 보이저1호는 하루에 120만 km의 속도로 달렸습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384,000km이니, 하루에 달을 한 번 왕복하고도 한 번 더 갈 수 있는 속도입니다.
그런 속도로 3년 2개월을 달려서 토성에 도착했습니다.
지구에서 토성까지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 우리로서는 상상을 못할 지경입니다.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는 대략 120억 광년 떨어진 별도 관찰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용골자리라는 별자리가 있습니다.
그 별자리의 에타라는 별은 태양보다 5백만 배나 더 밝다고 합니다.
지구에서 640광년 떨어진 곳에 베텔게우스라는 별이 있습니다.
지름이 무려 1억6천만km나 되는 초거성입니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1억5천만km이니,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보다 더 큰 별입니다.
이런 엄청난 우주를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능력으로 무엇을 하셨느냐 하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당장 의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왜 그런 능력으로 우리를 도와주시지는 않습니까? 우리 삶은 언제면 형통하게 되는 겁니까?”
우리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이전에 먼저 성경이 하는 얘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을 알아야 한다고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모든 내용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알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신앙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기대하는 것은 아마 심리적인 안정과 주술적인 효과일 것입니다.
“교회 다니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겠느냐?”, “착실히 교회 다니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겠느냐?”라는 얘기를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불렀는지를 모르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어떤 것을 예비하셨는지를 모릅니다.
하나님이 어떤 능력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우리 눈에는 우리 문제만 보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인정은 하면서도 알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막연히 기대합니다.
하나님이 언제면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주실지 그것만 궁금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문제보다 세상 사는 문제가 훨씬 급합니다.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별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