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노바디>
선택하지 않은 미지의 길
정지혜

2092년 가상공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118살의 니모 노바디(자레드 레토). 그는 지금 기억의 혼란으로 이름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자’다. 그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시간은 과거의 기억 속뿐이다. 그 시작은 어린 니모가 이혼하는 부모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인생의 첫 갈림길에 섰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나 아빠를 선택하는 것에 따라 니모는 안나(다이앤 크루거), 엘리스(사라 폴리), 진(린당 팜)을 만나 각기 다른 사랑을 나누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산다. 그리고 모든 선택지들은 기억의 혼란을 보여주듯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마침내 과거에서 깨어난 니모는 모든 삶 가운데 무엇이 진짜였고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답을 내릴 수 있게 된다.
<토토의 천국> <제8요일>의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이 무려 7년간 시나리오를 쓴 <미스터 노바디>는 인생이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면서도 선택하지 않은 미지의 길을 상상해보는 이야기다. 결혼식장에 있는 신부 안나의 사랑스러운 눈빛이 이내 엘리스의 웃음으로, 진의 얼굴로 이어져 바뀌고, 엘리스의 남편으로 사는 니모에게 진과 찍은 가족사진이 배달되는 상황은 현실이 꿈이 되고 다시 현재가 되는 생경한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식의 장면전환이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행히 감독은 능란한 편집술로 니모의 상상 속 에피소드들을 그럴듯하게 접붙인다.
그러나 정작 <미스터 노바디>에서 당혹스러운 지점은 따로 있다. 니모가 “우리는 9살 꼬마의 상상 속에 있을 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앞서 보여준 선택지들을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혹은 무위로 돌려보내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모든 삶이 진짜요, 모든 길이 올바르다”는 니모의 자답은 선택의 순간이 어째서 필요한 것인지를 따져 묻게 만든다. 인생의 결단들이 만만치 않다고 본다면 모호하고 허무하기까지 한 엔딩이라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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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비둘기미신, 시체공시소에 있는 니모, 물속의 차에 있는 니모, 욕조에서 총을 맞는 니모, 유성세례로 폭발하는 우주선 안의 니모, 뒤죽박죽 이상한 영상들로 연결되다가 34살 이후의 기억이 없는 1975년생 118살의 니모가 2092년 죽을 수 있는 마지막 인간으로서 의사의 진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 치료 후에는 기자가 병상에 몰래 찾아와 그를 취재하는데, 이때부터 뒤죽박죽 노인의 진술이 이어진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니모는 태어날 때 천사에게서 망각의 표징을 받지 못했고, 따라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니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비효과의 산물로 만나 니모를 낳았고, 니모는 자신이 존재하는 것인지 등등 철학적 질문을 하며 성장한다.
니모는 동네에 살고 있던 진, 앨리스, 안나 세 여자 아이를 알고 있었다. 니모는 수영장에서 안나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니모는 수영을 하지 못한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안나의 아버지와 불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니모는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때문에 이혼한다. 니모는 기차역에서 떠나는 어머니와 남는 아버지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기로에 놓인다. 9살 니모는 마지막 순간에 떠나는 열차를 향해 뛴다.
이 영화는 기차역에서 달리기 시작하는 소년의 머리 속에서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미래를 볼 수 있는 9살 소년의 머리 속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지 몰랐다. 따라서 그는 순간적으로 모든 미래을 본다. 이 상태를 암시해주는 대사는 빵집에서 빵을 고르는 부분에서 나온다.
그럼 결말 부분의 이상한 중간 세계에서 노인 니모가 젊은 니모에게 2092년 2월 12일 5시 50분까지 살아 있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 순간은 Big crunch가 일어나는 순간. 시간이 거꾸로 가는 순간. 모든 삶의 경로와 가능성을 알 수 있는 순간이다. 그래서 임종 때 니모는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한 것이다. 그의 모든 미래는 체스의 말을 움직일 때 최적의 선택은 움직이지 않는 것일 때를 지칭하는 츠쿠브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어느 선택을 해도 그의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든 비극적이다.
모든 가능성을 알아낸 니모는 결국 어머니, 아버지도 아닌 제 3의 선택, 즉 기찻길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한다. 이 것은 그의 2092년 임종 순간 마지막 말이 안나였다. 마지막 장면에 안나와 니모가 호숫가에 즐겁게 앉아 있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