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의 아침은 두툼한 도마에서 야채 써는 소리로 왔다. 전날부터 하룻밤을 함께 보낸 ‘제주 여성위원회’ 회원들을 위해 상차림을 준비하는 이미령 회장. 된장찌개를 끓이고 춘천닭갈비를 구어 낸 아침 밥상은 기자의 눈엔 향수가 어린 ‘어머니 밥상’이었다.
정성스런 아침상에 후식까지 다 먹고 회원들이 떠나자 이 회장의 테니스 인생에 관한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테니스 라켓을 잡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이 회장은 3년 전 여성위원회 회장으로 추대 되었다. 당시 볼을 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매 달 책임감 있게 모임에 참석하여 자리를 지켰다. 처음엔 도내 테니스 관련 행사를 잘 알지 못했다. 틈틈이 챙겨주는 오재윤 제주시테니스 협회 회장의 고무적인 전화를 받으며 여성위원회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3년째 회장을 연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여성위원회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 매 달 참석률 90프로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방안으로 전 회원 가정에 비데를 설치할 수 있는 상품을 준비했다.
“보통 20 만 원 이상 하는 비데를 매 달 2~3개씩 행운 상품으로 내 놓았다. 가격 여부를 떠나 활성화 차원에서 한 노력인데 의외로 성과가 좋았다. 참여율은 확실히 높아졌고 회원 누구나 당첨이 되면 좋아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작은 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예전에 서귀포 하나클럽에서 회장을 맡았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원래 하나클럽은 8명으로 시작해 지금 40명으로 늘어 정착 하기까지 위기와 순환의 성장 주기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위기 때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했고 특별한 리더십이 필요 했다.”
평소 내성적이고 가정적이어서 살림만 하던 이 회장은 8년 전 뜻하지 않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남편 고 김문호 대표가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 하는 바람에 남편이 운영하던 ‘제주 한라타일’ 대표를 맡게 되었다.
“청천벽력 같은 사고로 갑작스럽게 남편이 떠나자 삶이 많이 달라졌다. 당시 10여 명의 직원과 자식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남편이 살아생전 워낙 탄탄하게 기초를 다져 놓고 신뢰할 수 있는 비즈니스 관계를 맺어 놓았으나 처음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테니스 홀릭으로 카토 부회장까지 역임하던 남편을 보내고 한동안 정신을 잃은 이 회장에게 힘이 되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부부가 함께 운동하던 칠십리 클럽과 하나클럽 회원들이다.
“사고가 난 후 열 흘 동안 회원들이 집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 머물렀다. 남편이 남겨준 가장 훌륭한 유산은 남편 떠난 후에도 변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테니스로 알게 된 후배들이 ‘형수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남편의 부재를 못 느끼게 한다.”
이 회장은 8년 전부터 ‘고 김문호배’ 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이 대회를 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남편과 함께 운동하던 칠십리클럽 회원들 때문이다. 테니스 활성화와 저변 확대에 늘 든든하게 후원을 해 주셨던 고 김문호 회장을 영원히 기억하고 추모하자는 제의에서다.
“처음엔 참가비를 무료로 하고 현금으로 시상했다. 남자부 여자부 모두 6개 부서의 대회를 열었는데 입상자들이 받은 상금을 다시 기부했다. 좋은 분을 기리는 추모 대회를 앞으로도 멈추지 말고 계속 열어달라는 간절함이 녹아있는 기부였다. 그분들의 성심어린 기부에 감동을 받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대회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회장은 ‘고 김문호배 대회’를 개최하는 날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참가자들의 점심을 준비한다. 응원하러 온 갤러리나 가족들까지 먹을 200인분의 점심을 차려 대접한다.
“남편은 테니스를 사랑했고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 누구라도 가족처럼 대했다. 남편을 추모하며 대회에 나온 참가자들은 모두 가족 같은 분들이다. 남편을 위해 상을 차리듯 참가자들을 위해 밥을 차릴 때면 숙연해 진다. 함께 식사를 하면 가족 같은 정이 든다고 하지 않던가. 클럽 회원들은 대회 출전해서 뛰다가 떨어지면 바로 본부로 돌아와 점심 차리는 것을 돕는다. 혼자서는 해 낼 수 없다. 내 주변에 남편이 남겨준 좋은 인연들이 있어 든든하고 감사하다.”
맨 처음 ‘고 김문호배’는 3월에 열렸다. 남편 돌아가신 달에 맞춰 개최했다. 그 후 관내 테니스 일정과 겹치지 않는 선에서 해마다 날짜는 달라지고 있으나 지난해까지 7년째 대회를 열어왔다. 참가비 무료였던 것을 유료로 전환하면서 꿈나무들을 위한 육성기금을 후원하고 있다.
“사실 참석한 동호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무료 대회를 계속 열고 싶었으나 주변에서는 다른 의견이었다. 참가비를 받아 풍성하게 대회를 치르고 어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해 후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다는 제의를 받아들였다. 올해는 6월에 대회를 열 생각이었으나 코로나로 모든 행사가 취소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연말까지 지켜 봐야 한다. 매 년 이 대회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지인들께 감사한 마음 한 가득이다.”
이 회장은 남편이 돌아가시고 1년 동안 두려워 테니스장에 나가지 못했다. 누가 무어라 해서가 아니라 코트근처만 가도 매일 운동하던 남편의 흔적들이 가슴으로 달려와서다.
“마지막 떠나던 날 영정을 들고 테니스장 한 바퀴 돌고 평소 쓰던 라켓과 공도 함께 묻어 드렸다. 평생 그토록 사랑하고 좋아했던 테니스를 저세상에 가서도 마음껏 즐기시도록 주변 동호인들이 챙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코트로 향할 때면 늘 남편과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이다.”
최근 이 회장은 일정을 조정해 새벽과 저녁 타임에 더블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환경에 큰 변화가 생긴 후 오랫동안 라켓을 잡지 못하다 이제야 다시 코트에 설 준비를 하는 중이다. 시간은 관점의 훌륭한 스승이다. 시간이라는 약으로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갑자기 맡게 된 사업 관리와 무릎을 시술하고 체중이 많이 늘었다. 현재는 호전되고 있는 상태여서 레슨과 유산소 운동으로 몸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테니스 하기 위해 도스치료도 오래 받았다. 사실 서귀포는 코트여건이 넉넉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레슨 시간을 잡기가 쉽지 않아 애를 먹었다. 테니스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노크하면 언제라도 기회를 줄 수 있는 그런 여건이 아쉽다.”
삶의 모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간결하게 대답한다.
“지키는 것이다. 사업해서 돈을 벌어 무언가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현재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매 달 봉급을 주고 세금을 밀리지 않는 것. 그리고 성장한 자녀들의 삶의 방향이나 결혼등 소박한 것들이다. 주어진 소명대로 최선을 다해 살고 건강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매일 새벽이면 일어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삶을 정화시키고 있다.”
이 회장은 테니스뿐만이 아니라 생활체육을 관장하는 서귀포체육회 여성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골프나 그 외 다양한 곳에서 봉사 하고 있다.
“여성위원 중 테니스 동호인이 6명이나 활동중이다. 그래서 그분들과 협의하여 앞으로 테니스 쪽으로 긍정적인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생활체육 골프 대회를 열 듯 여성들을 위해 테니스 대회를 개최할 밑그림을 그리고 코로나 상황이 호전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본다.”
평범한 주부였던 이미령 회장은 갑작스럽게 남편을 먼저 보내고 사업가가 되었다. 그리고 제주도 여성 테니스를 대표하는 ‘제주여성 테니스 위원회’ 회장을 맡았다. 두 아이의 엄마로 또 매 년 남편을 추모하는 대회를 개최하며 포트폴리오 커리어의 시대에 맞는 멀티-커리어리즘' (Multi-careerism)으로 살아가고 있다. 현재의 모든 순간은 지난 수십 년간 쌓인 사건들과 서로 상호작용한다. 슬픔을 축제로 승화시킨 ‘고 김문호배’ 추모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주변 지인들의 마음이 고맙고 지금 이 순간으로 자신을 이끌어준 모든 일에 감사해 한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창의적 발상으로 능숙하게 대처해 나가는 유연한 사고가 이미령 회장의 최고 장점이다. 날로 발전해 가는 그녀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글 사진 송선순
아래는 이미령 회장이 보내 준 '고김문호배' 사진 자료들
여성들의 파워 '제주여성테니스위원회'
이미령 회장
임원들
제주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도와 준 국화부 이정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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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오후, 제주를 대표하는 여성들이 모였다. 서귀포테니스장에서 강렬한 태양을 받으며 뛰는 여성들은 건강미가 철철 흘렀다. 제주도에는 여성 클럽이 총 4개가 있다. 라일락, 삼다도, 플러스클럽이 있고 서귀포시에 서귀하나클럽이 활동한다. 이 여성클럽 임원들이 모이는 ‘제주 여성테니스 위원회.’ 과연 어떤 모임일까?
2009년 12월. 정인자 제주시테니스 협회 부회장을 초대회장으로 추대하여 창단되었다. 이 모임이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는 제주도의 여성 동호인들의 활성화 및 저변확대였다. 제주 서귀포 성산 애월등 각지에서 운동하는 여성들을 하나로 규합하고 든든하게 실력배양을 시키는 터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정인자 고문은 “당시 고민 끝에 창단을 했는데 활동하고자 하는 인원이 20명에서 현재 34명으로 늘어 갈수록 의미 있는 단체가 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여성위원회의 가장 큰 행사는 매 년 제주도내에 활동하고 있는 여성 동호인들을 위해 대회를 열고 있다는 것. 금배 은배 동배등으로 나눠 9년째 개최하는 동안 제주의 여성 동호인수는 50여명에서 150명으로 늘었다.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성 위원들의 활약이 한 눈에 보일 정도다.
3년째 이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이미령 회장은 활성화를 위해 매 달 비데를 2~3점씩 행운 상품으로 내 놓는다. 모임이 끝나면 가장 마지막에 행운권 뽑기를 하는데 한 번 당첨이 된 사람은 다시 가져 갈 수 없다. 그리고 5개월 이상 무단결석하면 자동으로 회원 자격을 상실하도록 회칙을 수정했다.
이 회장은 “초창기에는 참여율이 기대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며 “그래서 매 달 상품을 준비했고 이제는 실력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입소문으로 서로 위원회에 들어오고 싶어 할 정도다”고 했다.
이 위원회에는 선수출신 및 국화부들이 헌신적으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순천에서 열린 전국대회에 출전한 개나리 선수들을 위해 대회 출전하지 않은 국화부들까지 올라가 응원했다. 응집된 단합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한순실 총무는 “제주 여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데 이 위원회가 큰 역할을 해 왔다”며 “대회가 열릴 때마다 회원들은 참가자 모두 경품 하나씩 가져갈 수 있도록 상품을 협찬한다”고 전했다.
신제주 클럽 회장을 맡고 있는 황현숙씨는 테니스 선수다. 허나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모이는 이 모임에 정기적으로 출석한다. 황선수는 “원래 사람을 좋아해 실력 따지지 않고 어울린다”며 “특히 이 모임은 여성 테니스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후원하고 계시는 이미령 회장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육지에서 살았던 이정자는 공기 좋고 다양한 취미 활동하기에 적합한 제주도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실력 출중한 선수들의 볼 맛을 볼 수 있어 최고라고 자랑한다.
경기이사를 2년 째 맡고 있는 이은경은 “매 년 육지로 투어를 가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이벤트를 해 왔다”며 “올해는 코로나로 모든 행사가 중지되어 이미령 회장님께서 본인의 집을 내 주시고 바로 곁 펜션을 후원해 회원들과 1박2일의 뜻 깊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고 했다.
테니스 행사를 마치자 회원들은 모두 이미령 회장댁에 모였다. 발렌타인 30년산이 한 순배 돌자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회원들은 일부 수영을 하고 일부는 노래를 하며 흥을 돋았고 이 회장은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대접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를 알게 한 순간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한다는 것. 위원회가 잘 될 수 밖 에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임원
회장 이미령
부회장 최진록
총무 한순실
경기 이은경
글 송선순 사진 유길초
이미령회장댁앞 잔디가 푸르렀다.
비데를 탄 행운의 주인공
그외의 행운 상품
행운 상품으로 비데를 받은 주인공들
발렌타인 30년산의 우아한 맛. 잊을 수 없다.
30년산 발렌타인 안주로는 참치가 최고의 궁합
행운상은 가위바위보로 결정
어머니 밥상처럼 차린 이미령 회장표 아침상
회원 누구나와 격의없이 어울리는 모습
함께 나누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아래는 이미령 회장이 보내준 제주여성테니스 위원회의 과거 활동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