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9-10, 출 12:8-10> 불에 구워서 먹고 삶아서 먹는 영적 의미/ 구워서 먹은 유월절 고기, 불에 때우는 번제물과 삶아서 먹은 화목제물 의 의미, 십자가의 삶, 믿는 자의 고난과 연단
1. 말씀배경
성경에서 고기나 생선을 구워서 먹는 것과 삶아서 먹는 내용이 나옵니다. 유월절 고기도 구워서 먹고 남은 것은 불살라야 합니다.
[출애굽기 12:8]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영과 다르게 육신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무슨 먹을 것을 달라고 했을 때에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렸고 받으시고 잡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숫불이 있었고 그 위에 생선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셨고 제자들에게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내용으로 보면 분명히 구운 생선임이 분명합니다.
[요한복음 21:9]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그리고 번제는 제단 위에서 태워서 하나님께 드렸고, 화목제를 드릴 때에 기름은 분리하여 제단에 태우지만 나머지 고기는 삶아서 나누어 먹습니다.
그러므로 제물은 불에 태우기도 하고, 삶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의미를 묵상하는 과정에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오늘 말씀과 관련하여 깨닫게 하신 것이 있습니다.
오늘 그 깨달은 내용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2. 고기나 생선을 불에 구워서 먹는 의미
1) 유월절 절기 제물은 구워서 먹습니다.
유월절 절기는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그들이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을 때 애굽의 모든 집은 장자를 포함하여 처음 태어난 것은 다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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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유월절 제물은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피가 있는 사람과 집안은 죽음이 넘어가 구원을 받는다는 예표를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유월절의 의미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절기의 모든 행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예수님의 고난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무교병을 먹는 것도 십자가의 고난이요, 쓴 나물을 먹는 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불 같은 고난을 가장 작 보여주는 이미지가 바로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는 것입니다. 고기를 하나도 남김 없이 먹거나 불에 태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받는 극심한 고난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마치 불에 구워지고 태워지는 유월절 고기가 불에 구워지는 것과 같은 고난인 것입니다.
2) 번제물로 드려지는 어린 양도 번제단 위에서 태워집니다.
불에 태우는 번제물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번제물이 태워지는 것은 온전히 자신을 제물로 드려지는 모양이므로, 죄가 태워지고 자아가 완전히 죽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이요, 우리들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죽는 고난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오늘날 나를 번제물로 드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번제물은 형체도 없이 완전히 타버리는 것이므로 십자가에 온전히 자신을 못 박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아가 없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구운 생선을 드셨고, 또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구운 생선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생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생선, 고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특히 전도할 대상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이들이 영적으로 구워져야 합니다. 완전히 자아가 죽은 변화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운 생선은 변화된 사람을 예표합니다. 무엇으로 변화된 것인가요? 바로 불입니다. 불 같은 성령의 역사인 것이죠
그래서 여기서도 구운 생선은 십자가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성령의 불로 완전히 자아가 죽는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자신이 영과 다르게 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구운 생선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역시 갈릴리 바다에서 제자들에게 구원 생선을 먹였습니다.
제자들에게 구운 생선을 먹이신 것도, 너희들도 나처럼 십자가를 지고 살면, 결국 내가 부활 후 구운 생선을 먹는 것처럼 신령한 몸을 입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도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십자가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앞으로 나와 같이 십자가와 같은 고난이 따를 것이다. 그러면 부활하게 될 것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세가지 사례를 통해서 본다면, 불에 태워지는 것, 구운 것을 먹는 다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 지는 것과 같은 십자가의 삶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로 자아가 완전히 태워지는 예표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3. 삶아 먹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화목제물은 기름을 제와하고는 고기를 삶아서 먹습니다.
▶ 화목제의 절차를 잠시 말씀드리면, ① 흠 없는 어린 양을 준비합니다. ②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제주가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전가하기 위하여 안수를 합니다. ③ 그리고 제주가 제물을 도살하면, 그 피를 제사장이 제단 사면에 뿌립니다. ④ 제물에서 떼낸 기름은 제단위에 불사르고 나머지 고기는 나누어 먹게 됩니다. 그러면 이 고기를 삶아서 먹을까요? 구워서 먹을까요?
사무엘상 2장을 보면 고기를 삶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4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15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16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1)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삶는 냄비나 큰 솥에나 가마에 갈고리를 넣어 걸려 나오는 것을 가지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의 아들들은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은 고기를 계속 먹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구워서 먹겠다는 것입니다.
▶ 고기를 삶는 것은 직화가 아니라 물을 솥이나 남비에 넣고 제물을 그 물속에 넣은 후 솥이나 남비 밑게 불을 지펴서 물의 온도가 서서히 높아져 마침내 끓여서 익혀 먹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불에 직화로 굽는 것과 같은 십자가의 형벌이라기 보다는 물이라는 세상 속에서 서서히 고난의 강도를 더해서 마침내 삶아지게 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서서히 삶겨서 자아가 죽게되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삶아서 먹는다는 것은 단번에 십자가를 져서 일시에 고난의 분량을 다채우는 구워먹는 것과 다르게 세상의 물이라는 환경속에서 서서히 물이 뜨거워져 삶겨지는 고난, 연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겨지는 모습으로 훈련되어지고 연단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느리지만 결국 삶겨져 자아가 죽게 될 것입니다.
▶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과 관련하여 묵상해 본다면, 엘리의 아들들이 고기를 구워서 먹겠다고 생고기를 가져가는 것도 무슨 영적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기도 중에, 묵상 중에 제게 떠오른 생각입니다. 다 맞다고 볼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혀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장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제물의 피흘림을 통하여 사함받게 하고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재사장으로서 제물된 생고기를 제단 위에 놓고 거룩한 불에 태우면 상관없겠지만, 거룩한 제단이 아니고, 거룩한 제단의 불도 아닌 것으로 제물의 고기를 스스로 구워 스스로 먹는다는 것은 분명히 좋지 않는 모습입니다.
제물이 아니라면 상관이 없습니다. 구워서 먹든지, 삶아서 먹든지 문제가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물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다른 불로, 사가에서 거룩한 제물을 구워 먹는다는 것은 마치 마치 자기가 구원자가 되어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겠다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지고 가라고 주신 십자가는 져야 합니다. 그것은 거룩한 예수님의 피 안에서 이루어지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누어주시는 구운 공기는 상관이 없습니다. 마치 오병이어 물고기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각자가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의 행위는 오늘날 예수님의 십자가와 다른 십자가인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요 다른 십자가인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는 오직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그 외의 십자가는 필요없습니다.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주님이 주시는 십자가요. 나를 위한 십자가입니다. 메시야, 구원자로서의 십자가는 아닙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한 행위는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것이며(삼상 2:17), 엄청난 이탈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날에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삼상 4:17).
에스겔 40장 이루에 나오는 에스겔 성전을 보면, 부엌이 있습니다. 제물을 삶는 부엌인 것입니다.
[에스겔 46:23]그 작은 네 뜰 사방으로 돌아가며 부엌이 있고 그 사방 부엌에 삶는 기구가 설비되었는데 24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삶는 부엌이니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가 백성의 제물을 여기서 삶을 것이니라 하시더라
에스겔 성전은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때에 있을 성전 모형의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는 번제단에서 제물을 태우는 것과 성전 안 솥에서 제물의 고기를 삶는 것 밖에 없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처럼 거룩한 제물의 고기를 사적으로 빼내어 집에서 구원 먹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한번으로 족합니다.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시면 안됩니다(히 6:6).
영적으로 제물의 고기를 구워서 먹고자 하는 것은 마치 모세가 이미 갈라진 반석 (히,셀라, 갈라진 바위)을 또 치는 것과 같습니다.
(민수기 20:11). 모세의 행동은 영적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또 박는 모습이기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모세가 처음 지팡이로 친 비위는 히브리어로 그냥 바위인 “추르”임(출 17:6)
엘리의 아들들이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우리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맺는 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제물로 삶기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고난과 같이 단번에 불에 구워지고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 지금도 삶기도 있을 것입니다.
불이 성령의 역사로 본다면, 불이 계속 가해지므로 서서히 끓어 오르는 뜨거움으로 인하여 점차 삶겨져 변화가 되고 있을 것입니다.
삶기는 도중에 힘이 들어서 도저히 교회를 다니지 못하겠다. 믿음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원망하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출애급 1세대와 같이 가나안 땅에 못들어갑니다.
속히 삶겨서, 또는 불에 구워져서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더 오랜 고통을 당하지 않는 지름길입니다. 고난의 분량이 차야 내 자아가 죽습니다. 그러지않고 자꾸 솥이나 남비에서 뛰쳐 나가면 안됩니다.
지금 다가온 고난은 우리들 속에 죄성, 세상의 영, 완고함을 빼내기 위한 성령의 역사로 고난의 불인 것입니다. 고난의 솥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쇠 풀무불”과 같은 애굽이었습니다(신 4:20)
솥에서 서서히 끓어 오르는 물은 여러분들의 세상 환경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여러분들을 이런 환경 속에 넣고 훈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 1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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