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번뇌를 제거하는 수행법으로 제시한 경전으로는 <모든 번뇌 경>을 들 수 있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봄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봄으로써 없애야 한다.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피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수행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수행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모든 비구가 모든 번뇌를 단속하여 머물고 갈애를 끊어버렸고 족쇄를 풀어버렸고 자만을 바르게 꿰뚫었고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버렸다.'라고 한다.
-맛지마니까야 모든 번뇌경(대림 스님)-
부처님의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번뇌를 제거하라."이다.
부처님께서는 <대념처경>에서도 번뇌를 제거하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호흡 관찰, 몸의 움직임 관찰, 몸을 32부분으로 해체하여 보기, 몸을 4대요소로 해체하여 보기, 시체 썪어가는것 보기, 느낌 관찰, 마음 관찰, 법 관찰.
이 모든 수행법이 지향하는 것은 결국 번뇌를 일으키는 것은 '유신견이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유신견을 타파하라.'이다.
그래서 번뇌를 제거하고 유신견을 타파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되어 왔다.
그 다양한 수행법을 열거하면, 미얀마의 파옥 수행법, 마하시 수행법, 쉐우민 수행법과 인도의 고엔카 수행법과 호주의 아짠 브람 수행법 등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각각의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지만, 또한 그것이 오히려 수행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다.
각각의 다른 방법들 사이에 또한 주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깊은 선정을 성취하지 않고는 통찰지(위빠사나)를 개발할 수 없다.'라는 주장과, 반대로 '깊은 선정 없이도 통찰지를 개발하고 도과를 얻을 수 있다.'라는 주장이다.
깊은 사마디(삼매) 없이 통찰지를 개발할 수 없고 도과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곳은 파옥 사야도와 아짠 브람이다.
반대로 마하시 사야도와 쉐우민 사야도는 삼매 없이도 도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종의 화두 수행도 깊은 선정은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색계 선정이나 무색계 선정 없이는 도과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파옥 사야도와 아짠 브람 사이에서도 주장이 갈린다.
파옥에서는 삼매를 얻은 후에 위빠사나로 전환해야 한다고 하고, 아짠 브람은 삼매의 성취가 곧 도과의 성취라고 주장한다.
파옥은 삼매를 얻기 위해 하나의 대상에 집중을 해야 한다고 하고, 아짠 브람은 번뇌를 소멸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삼매를 얻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다양한 수행법과 다양한 주장들이 수행자들을 혼란하게 만들고,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자기가 하는 방법이 옳다는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수행법들을 다른 각도에서 분류하자면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방법과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마하시 수행법은 대표적인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 마음을 호흡으로 일어나는 복부의 움직임에 묶어둠으로써 번뇌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하시 수행법은 <모든 번뇌경>에서 '단속함으로써 번뇌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반면에 쉐우민 수행법은 자연스러운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현상이므로 그대로 두고 번뇌의 발생과 소멸과정을 연구하여 깊이 이해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번뇌가 소멸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쉐우민 수행법은 <모든 번뇌경>에서 '수용하고 이해함으로써 번뇌를 제거하는' 방법이다.
한국의 화두 수행법도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마음을 화두에 묶어두어 마음이 산란하거나 달아나지 않게 훈련시켜 마음을 길들이는 것으로 반 강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화두를 잡아나가다가 의정이 일어나면 그것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아 자연스러운 수행법으로 바뀐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방법들, 각각의 스승들이 열반에 대한 설명도 또한 논란거리이다.
마하시에서는 열반 상태에서 의식이 없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쉐우민에서는 열반 상태에서 의식이 있다고 주장한다.
파옥에서는 열반 상태에서 마음과 마음부수가 있으며, 열반상태에서 나와 마음과 마음부수를 확인하는 작업까지 한다.
아짠 브람도 열반은 완전한 제로 상태이며, 열반에서 나와서 자신이 그런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열반이 아닌 것을 열반으로 착각하게 만들고, 도과를 얻지 못했으며서도 도과를 얻었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착각도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면 더욱 큰 일이 발생한다.
요즘 한국의 유명한 스님이 '그것이 초견성이야!'라고 인가를 남발하면서 인기를 끌듯이 커다란 문제를 야기한다.
이런 다양한 방법들이 다 옳은 것일까?
다 도과를 얻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수행이 다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기도, 염불, 주력까지도.....
나는 그런면에서는 좀 편협한 사람이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고 맞는 것은 맞는 것이라는 생각한다.
잘못된 수행법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수행법이든 어느 정도까지는 번뇌를 소멸시키는 효과가 있다.
어느 정도까지.... 그 이상은 무리다.
그러나 바른 수행법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순환도로를 타지 않고 바로 직선으로 달리는 고속도로가 된다.
왜 금방 갈 수 있는 쉽고 빠른 직선길을 놔두고 힘들고 어렵게 굽이굽이 돌아간단 말인가?
바른 마음가짐, 바른 견해, 바른 수행법.
이것이 우리를 열반으로 인도한다.
첫댓글 다음 법문 바른 수행법~열반?
이순간 바라는 마음이 새록새록 ...
수행방법은 선택할 수 없는거 같습니다.
어느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른 원인과
결과만이 존재할 듯.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봄,단속함,수용함,감내함,피함,수행함으로써
번뇌를 부수기위해 유신견을 타파해야된다 하셨고
열반의 정의지음이 우선 되어야될듯하네요.
혼자 가본 길이라 그러한가요?
열반은 있으나 열반한 자는 없으므로
부디 길안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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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어느 수행법이 바른 수행법인가? 어느 것이 틀렸고 어느 것이 맞는 방법인가?
참 애매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붓다의 정법을 만나기란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