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신채호의#조선혁명선언과#조선상고사[6]-제6문-조선혁명선언 3.
#단재#신채호의#조선혁명선언과#조선상고사
제6문
#조선혁명선언 3.
강도 일본의 구축驅逐(어떤 세력이나 해로운 것 따위를 몰아 쫒아냄)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다음과 같은 논자들이 있다
제1은 외교론이니
이조 5백년 문약정치가 외교로써 호국의 장책長策(좋은 계책)을 삼아왔다
더욱이 그 말세에 이르러 대단히 심한 나머지
갑신 이래 유신당維新黨·수구당守舊黨의 성쇠가
거의 외원外援(외국의 원조)의 유무에서 판결되었다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갑국을 끌어들여 을국을 제압함에 불과하였고
그 의뢰依賴의 습성이 일반 정치사회에 전염되었다
갑오·갑신 양 전역에 일본이 수십만의 생명과
수억만의 재산을 희생함으로써 청·노 양국을 물리치고
조선에 대한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 하는
이들은 일검일탄으로 혼용탐폭昏庸貪暴(어리석고 용렬하며 탐욕스러운)한 관리나
국적에게 던지지 못하고 탄원서나 열국공관에 던졌다
청원서나 일본 정부에 보내 국세國勢의 고약孤弱함을 애소哀訴하여
국가존망·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합병’―곧 ‘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천년만에 처음 당하던 치욕에
조선민족의 분노의 표시가 하얼빈의 총, 종로의 칼,
산림유생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과거 수십년 역사야말로
용자勇者로 보면 침을 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인자仁者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러고도 국망 이후 해외로 나가는 모모 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교가 그 제1장 제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일미전쟁·일노전쟁 등 기회’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고
최근 3·1운동에 일반 인사의 ‘평화회의’ ‘국제연맹’에 대한
과신의 선전이 도리어 2천만 민족의 분용전진奮勇前進(용감히 떨쳐 일어나 앞으로 나아감)의
의기를 때려 부수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제2는 준비론이니
을사조약 당시에 열국공관에 비발 돋듯 하던 종이쪽지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해아海牙(헤이그) 밀사도 독립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 아니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을 하겠느냐?
산림유생들은 춘추대의에 성패를 불계不計(사정을 가려 따지지 아니함)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아관대의로 지뤼의 대장이 되며
사냥포수의 총든 무리를 몰아가지고 조일전쟁의 전투선에 나섰지만
신문쪽이나 본 이들―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리 할 용기가 아니 난다
이에 “금일 금시로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은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사졸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 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감각되어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 이외까지 확장돼
교육도 진흥해야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다
경술(한일병합국치) 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북간도의 삼림을 더듬으며
혹 서비리아西比利亞(시베리아)의 찬바람에 배부르며
혹 남·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돌아가며
혹 경향京鄕에 출몰하여
십여성상十餘星霜(10여년간) 내외 각지에서
목이 터질만치 준비! 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라야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없는 단체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력誠力(성실한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실은 그 주장의 착오이다
강도 일본이 정치·경제 양 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기관이 전부 박탈돼 의식衣食의 방책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지 일의 비교라도 되게 할 수 있느냐?
실로 일장一場의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