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영혼을 담은 주얼리, 케이 브루니니(K. Brunini)
뉴욕의 주얼리 편집샵 프래그먼츠에서 처음 만난 케이 브루니니. 다음날 브랜드의 웹사이트에 들어갔을 때 나는 화면을 장악한 재미난 상상력에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건 독특한 컬렉션명. 우리말로 옮기기도 애매한 ‘Spirit Animal’부터 ‘DNA’, 보호의 상징인 ‘보디 아머(Body Armour)’, 심지어 ‘척추(Vertebrae)’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이 중 가장 호기심을 자극한Spirit Animal컬렉션에 들어가니 똬리를 튼 뱀, 가죽으로 만든 게, 반지 모양의 달팽이, 왕관을 쓴 두꺼비 등 뭔가 심상치 않은 예술 세계가 펼쳐진다. 비호감 동물이 대부분임에도 징그럽기는커녕 어딘가 엉뚱하면서 사랑스러운 모습에 나는 이들이 주얼리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몰입했다.
케이 브루니니의 주얼리는 이처럼 소위 ‘영혼이 담긴’ 매우 강력한 스토리텔링으로 유명하다. 디자이너인 케이티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엉뚱함과 유기적인 미학에 대한 오마주’라고 설명한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 형태 안에 시(詩)적인 요소도 들어있다. 물론 높은 수준의 품질과 장인정신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결과다. 그렇다면 자연이 가진 고유의 힘과 우아함을 아우르는 케이티의 디자인 원천은 어디서 온 걸까? 미국 샌디에이고 북쪽 작은 해변가 마을에서 자란 그녀는 바닷가에서의 어린 시절이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일깨워 준 장본인이라 답한다.
그래서 오랜 세월 내공이 증명된 플래티넘, 골드, 스털링 실버를 다이아몬드, 진주 및 각종 희귀석과 짝을 맞추고, 때로는 독특한 나무, 뼈, 뿔로써도 날 것과 정제된 것 사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끌어낸다. 또한 그녀는 예술성뿐 아니라 섬세함과 우아함으로 표현되는 ‘영묘함(ethereal)’에서도 영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세계 각지를 누비고 있다. 잠재 의식 속 인간의 정신이나 예부터 내려오는 전설, 신화 같은 소재를 통해 말이다. 따라서 브루니니의 디자인은 동양적이고, 추상적이며, 원시적인 예술을 오묘하게 엮은 결과물로 표현되곤 한다.
케이티의 역사, 문화, 예술에 대한 욕망은 사실 대학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전공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불타올랐다. 90년대 초 이집트로 여행 중 파라오에 의해 현실화된 불멸의 세계에 사로잡혀 주얼리에 열정을 바치리라 결심한 것. 설사 불멸까지는 아닐지라도 오랜 시간 동안 존재 가능한 유산으로써 주얼리의 가치를 깨달은 시점이다. 한 때 그녀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거주한 적이 있는데 낮에는 카누와 패러글라이딩을, 밤에는 별자리를 바라보며 그녀만의 예술적 영감을 찾았다.
화산 지대가 있는 시칠리아의 풍경은 그녀의 가공되지 않은 듯 자연의 흔적이 남은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다. 카타니아(Catania)란 곳에서는 금세공 장인 밑에서 고대의 세공 방식까지 습득했고, 이후 GIA를 졸업하고 브랜드를 세우기 전 4년 간 미국의 소매상에서 맞춤 디자인을 담당했다. 각종 주얼리 디자인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샌디에이고 자연사 박물관과 GIA 박물관에도 영구 소장품으로 지정되는 등 그녀의 재능은 이미 다양한 분야를 통해 입증되어왔다.
그녀는 보석 중에도 특히 오팔과 바이 컬러 투어멀린, 아쿠아머린, 터키석을 애용한다. 마치 클로드 모네의 그림 같은 오팔의 빛과 자연이 만들어낸 무늬는 주얼리에 활기를 불어넣는 중요한 존재다. 이들을 금속뿐 아니라 나무, 뼈, 철광석 등으로도 감싸는데, 실버와 골드를 쓸 때는 풍부한 컬러를 부각시키거나 벨벳처럼 부드럽게 질감을 살리고, 어둡게 앤틱 처리할 때도 많다.
그런 그녀가 유달리 자랑스러워하는 스테이트먼트 피스는 7개의 박물관급의 오팔이 세팅된 목걸이다. 이 오팔은 라벤더 핑크 다이아몬드와 함께 스털링 실버에 베젤 세팅되어, 최종적으로 18K옐로 골드로 마무리됐다. 이 밖에도 다채로운 컬러의 드롭형 귀고리,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칵테일 반지, 스태커블 커프, 그리고 웨딩 반지도 그녀의 컬렉션을 구성하는 대표작들이다.
얼마 전 케이티는 지난 15년 간 주얼러로서 깨달음을 담은 “The Adventures of Sky dancer and Travelling Dreamtime”이란 책을 발간했다. 그녀가 영감을 받은 시와 향, 융 심리학, 티벳 불교 등이 컬렉션과 함께 담겨있다고 하니 그 원천이 주얼리로 승화된 여정에 동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출처 : 주얼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