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직은 그리움이 되지 말자
하희경
“날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오래전에 글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였다. 남들이 볼 때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보는지, 스스로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표현해보라는 말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남자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오아시스”, “살아있는 천사”라고 답해주었다. 나는 그날 오아시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찬솔아, 나 어떻게 하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러게, 어쩌자고….’
차마 그에게 전화할 용기가 없어 그녀에게 했다. 그악스럽다할 정도로 강인한 그녀가 대전역이라며 봇물 터지듯 울먹인다. 병실이 없어 입원도 못하고 검사받으러 가는 길이라며, 터진 울음을 어쩌지 못하는 그녀 모습이 눈에 밟힌다.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듣고만 있는 내가 한심하다. 병든 남편에게 아내인 그녀가 아무것도 못해주듯이, 나 역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공염불 같은 기도만 중얼거릴 뿐, 어쩌면 좋을까.
필리핀에 있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세영이 아빠 소식 들었어?” ‘아니. 왜?’ “많이 안 좋으신가봐. 신장에 이상 있는 걸 발견했는데, 전이가 많이 됐다나봐.” 먼 길 돌아 날아온 소식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불과 며칠 전에 봤던 모습이 떠오른다. 좋아하는 자두가 익었다며 주말에 따러 오라는 걸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며칠 후 외출에서 돌아오다가 주차장에 있는 남편과 그를 보았다. 날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자두를 한 자루 안기면서 두 팔 벌려 포옹한다. 얼결에 같이 안아주고는 ‘남의 여자한테, 그것도 남편 앞에서 이래도 되는 거야?’ 하니, “그럼 그래도 되는 사이지.” 한다. 워낙 스스럼없이 지내는 사이라 남편하고 같이 웃고 말았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날따라 평소보다 더 활달하게 행동한 게, 어쩌면 이미 자기 병을 알아서 그랬던 건 아닌가싶다.
삼십여 년 전 처음 그를 만났다. 대전으로 이사와 이웃이 되면서 뜻하지 않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의 일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충청도 특유의 감성으로 느긋하고, 강아지처럼 순한 눈빛을 가진 남자였다. 당시 서른한 살 총각이었던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아들을 돈줄로만 여기는 부모님과 술 중독자인 형네 가족 사이에서 하루도 편한 날 없이 휘둘리던 남자. 패악이라고 할 정도로 막무가내인 가족들 사이에서 그는 오직 웃음 하나로 자신을 무장하고 있었다.
가정환경 때문에 결혼도 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다행스럽게 한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 행복하게 잘살길 바랐지만, 원가족의 패악은 며느리 기죽이기까지 더해 점점 더 강도를 높여갔다. 천만다행으로 그의 아내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시댁의 온갖 불합리한 말에도 기죽지 않고, 때로는 맞붙어 옳고 그름을 따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막무가내인 부모와 절대 고개 숙이지 않는 아내 사이에서 그의 고뇌는 더 깊이 침잠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아는 한 그는, 그 모든 소용돌이를 그저 말없는 웃음으로 버텨나갔다.
이웃사촌으로 시작된 관계가 삼십여 년 세월을 지나면서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내가 자란 가정과 너무 닮아 남 같지 않았던 그 남자, 마치 한 배에서 나온 형제처럼 가족으로 인해 고통 받는 그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일들을 겪는 그와 그의 아내에게 작은 힘이나마 되어주려고 노력했다. 그 가정에 한 번씩 회오리바람이 불 때, 우리 집은 피난처가 되었고, 두 집 아이들은 함께 모여 놀이도 하고 봉사활동도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고,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고, 이제 그도 좀 편하게 지내겠구나 싶었는데 아프단다. 어지간히 복도 없는 남자다.
난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그가 비탄에 빠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러기는커녕 끝날 줄 모르는 시련에도 가족이나 성당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남자라는 존재에 존경심을 갖기까지 했다. 크고 작은 소동이 일어날 때마다 그저 웃기만 하는 남자. 그런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그가 넘어야만 했던 날들이 병을 만든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혼자 삭혀온 그 가슴에 어떤 옹이들이 자리 잡았는지, 과연 신앙만으로 그 모든 일들이 괜찮은 일이었는지….
오래전에 뜬금없이 전화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이번엔 내가 그에게 그 말을 해줘야겠다. ‘당신은 오아시스이고 살아있는 천사‘라고 말이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해줄 것이다. 난 아직 당신을 그리움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우리 아직은 서로에게 그리움으로 남지 말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