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마리안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
Portrait of a Lady on Fire, 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
성별과 신분의 차이를 깨고라도 마음졸이며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18세기 두 여성의 사랑을 담은 셀린 샴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개봉했다. 각색으로 재능을 나타냈던 감독은 <내 이름은 꾸제트>(2016)로 세자로영화제 각색상을 <걸후드>(2014)로 스톡홀롬국제영화제 작품상을 받았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칸 영화제에서 다퉜던 작품이다. 결국 황금종려상은 <기생충>에 내줬지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각색상을 받았다. 국내에선 n차 관람층이 생기며 벌써부터 셀린 샴마의 차기작을 기대하는 바램이 돌고 있다. 관객들은 퀴어영화 장르에서 <캐롤>, <문라이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이은 수작이란 평을 내렸다.
영화는 프랑스 세 여성의 연대와 고통을 두 축으로 팽팽하게 서사한다. 금기를 거부한 충실한 사랑, 신분차이를 넘는 연대,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묵시록 등이 강렬하게 펼쳐진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 수녀를 포기하고 언니대신 결혼을 해야 하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는 운명처럼 조우한다. 성벽처럼 견고한 금단의 땅에 갇힌 엘로이즈와 거친 풍랑을 뚫고 화구를 들고 온 구원자 마리안느. 스크린을 둘의 등장을 대비시킨다. 이 대비는 그들의 앞날을 암시하듯이.
영화는 그녀들의 운명처럼 시종일관 빛과 어둠이 교차된다. 거친 파도는 원초적 욕망으로 표현되며 촛불을 켜야 보이는 컴컴한 집안은 현실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작품을 출품해야하는 마리안느, 자살한 언니를 대신해 수녀의 꿈을 포기하고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해야는 엘로이즈, 임신해도 키울 수 없는 신분 탓에 낙태를 해야 하는 소피. 관객은 프랑스 사회가 지닌 제도와 계급차이의 폭력성을 본다.
감독은 엔딩에 비발디 <사계> 중 '여름' 3악장을 선택했다. 탁월하다. 음악은 폭풍치는 여름날 타오르는 불꽃처럼 그녀들의 사랑을 기억한다. 바이올린 선율은 엘로이즈의 고통을 순식간에 끌어올린다. 관객은 숨죽이며 마리안느가 되어 엘로이즈의 눈물을 지켜 봐야한다. 일그러진 엘로이즈 표정에서 추억, 사랑, 아픔, 회환, 고통이 쏟아진다.
영화는 마리안느만 엘로이즈를 공연장에서 본 것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복선으로 등장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나 엘로이즈가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좌석에 앉는 동선을 보러라도 그녀는 분명 마리안느를 봤다고 추측된다. 마리안느를 봤지만 돌아갈 수 없는 처지. 돌아보면 추락하고 마는 에우리디케와 같은 운명이 그녀인 것이다. 비극같은 시간을 엘로이즈는 얼굴로 폭발시킨다. 3분 넘게 엘로이즈를 클로즈업한 카메라는 무참하다. 관객은 그녀의 비극을 고스란히 앉고 일어서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