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련과 하나님의 보호
사람이 살아가면서 웃다가 울다가, 기뻐하다가 또 괴로워하기도 하는데, 가장 즐겁고 기쁠 때는 언제일까요?
시카고 대학의 한 유명한 교수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조사 연구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지위가 높은 사람부터 낮은 사람까지, 그리고 모든 직종, 직업의 사람들,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다 조사하고 면밀히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가장 즐겁고 기쁠 때는 몰두할 때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순간, 그 순간이 가장 즐거운 순간이고, 또 몰두하는 그 일에 성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그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몰두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제 제가 전화 부탁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후에 미국에 전화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7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는데, 그것도 몰랐습니다.
제가 교회의 서재에 들어오면 일을 마칠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모릅니다.
"아! 시간이 지났네."
어떻게 하겠습니까? 2시간 뒤에 약속했는데 이미 7시간이 지났으니 말입니다. 약속한 분에게 미안하지만, 설교 준비하면서 이것저것을 생각하면 일이 안 되지 않습니까?
유태인 아이들은 어느 학교에 가도 거의 1, 2, 3등을 다 차지하는데, 그 아이들은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오락실에도 가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두 성공자가 되어서 유럽이나 미국에 가서 보면, 제일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대개 유태인입니다. 제일 좋은 식당에서 고급 음식을 먹는 사람의 대부분이 유태인입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제일 좋은 신발을 신는 사람의 대부분이 유태인입니다.
왜입니까? 일에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해도 몰두합니다. 유태인 사업가들은 술을 마시는 자리에 가서도 상대방이 부어 주는 술을 마시는 척하고 다른 음료수를 마십니다. 그러니까 사업에 실패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은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인데 그들은 맑은 정신으로 거래를 하니, 언제나 유리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직장인이 직장에 몰두하면 직장에서 실패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목회에 몰두하면 목회에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학생이 공부에 몰두하면 성적이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최고로 몰두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디에 몰두해야 최고의 복이 될까요?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일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찬송에 몰두해서 나의 100을 다 바쳐 찬송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만, 우리에게도 능력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에 몰두해 보십시오. 능력이, 응답이 쏟아지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하지만 기도한다고 뭐 응답이 될까? 기도해 봐도 그렇겠지만, 할 수 없이 기도한다.'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그 기도가 응답을 받겠습니까? 몰두해야 합니다.
1부 성가대에서 봉사하시는 귀한 우리 집사님 한 분의 가슴에 암 세포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주일에 통성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몰두해서 집사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의사를 도우시고, 간호사를 도우셔서 수술할 때 실수 없게 해 주세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직접 수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1부 예배를 마치고 나서 그 집사님이 성가대 가운을 입은 채로 제게 달려왔습니다.
"아니! 집사님, 벌써 퇴원했어요?"
조직 검사를 다시 했는데, 암이 아니라고 하더랍니다. 그 소식을 전하면서 집사님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저도 너무 기뻐서 "그래요? 축하합니다. 할렐루야!"하면서 집사님의 손을 덥석 잡고 막 흔들었습니다. 제가 할머니의 손은 잘 잡지만 젊은 집사님이나 새댁의 손은 잘 잡지 않는데, 너무 기쁘니 저도 모르게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쨌든 몰두하면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실 때도 몰두해 보십시오. 몰두하지 않는 이유가 있겠지만,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아니, 저 베드로 말이야,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사람이 무슨 얼굴로 저렇게 예수를 믿으라고 설교를 하나? 얼굴도 두껍다."라고 했으면 은혜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과거에 실수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에 몰두하니, 3000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고넬료의 집안 식구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으면서 "바울 말이야, 그렇게 예수님을 핍박하던 사람이 아니냐? 스데반을 죽일 때 박수를 치던 사람이 이제 예수를 믿는다고 저러니, 저거 가짜 아냐?" 하면 누가 은혜를 받겠습니까? 바울의 과거를 생각하지 않고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 몰두하니 은혜를 받아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4장을 보면, 앉은뱅이가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지용수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때 몰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용수 목사 말이야. 내가 자기 과거를 아는데, 얼굴 두껍게 …. 흰 옷 입었다고 흰 줄 아나?" 하면 손해는 여러분이 봅니다. 과거가 지저분한 목사님이라 해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필요하셔서 세우신 목사님이 말씀을 전한다.'하고 말씀에 몰두하면 주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주의 축복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에는 설교 시간에 시계를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혹시 저 모르게 슬쩍 보는 사람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계를 보는 사람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은혜가 임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이 말씀을 방송으로, 문서로 접하는 모든 분들이 다 말씀에 몰두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하늘의 성령의 전기가 우리에게 통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약속하신 주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우리가 말씀에 몰두하고 은혜에 취하면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베드로전서 강해 때마다 말씀에 몰두해서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나그네지만 행복한 나그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기억해 주어도 감사한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늘 계시며 우리를 감동케 하셔서 내 뜻대로 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그러다가 실수하고 죄를 지으면 주님의 sprinkler 피로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할렐루야! 또 영원히 쇠하지 않는, 부패하지 않는, 썩지 않는 하늘나라 기업까지 허락하셔서 이 세상 끝날 때는 그 나라에 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가 너무나 놀랍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영원히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크게 찬송을 불러야 할 일, 폭발할 듯이 기뻐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5절에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은 굉장한 약속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았고,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예수님의 피 권세가 우리에게 있고, 하늘나라에 우리의 집이 지어지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구원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은 받았으나 천국에 들어갈 때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의 길목에는 위험한 일이 있고, 사탄, 마귀, 귀신이 있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우리가 편안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보호해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그 당시 최고 미인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재벌이었습니다. 그의 집에 군사가 있었지만, 수십만 명이나 수만 명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가 생명을 보호받고 아내를 빼앗기지 않고 재산을 빼앗기지 않고 산 것은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니라."
이삭이 미인을 데리고 살고, 엄청난 부자로 왕보다 창대했지만, 아비멜렉 왕에게 아내를 빼앗기지 않고 재산을 잃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방패가 되어 주지 않으셨으면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칼에 죽었을 것입니다. 형님의 칼에 죽었을 것입니다. 세겜 지역의 연합군에게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의 방패가 되시니 그들이 야곱을 건들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보세요. 하나님께서 다윗의 방패가 되지 않으셨으면 사자에게 죽었을 것입니다. 양을 치다가 곰에게 죽었을 것입니다. 골리앗에게 죽었을 것입니다. 사울 왕에게 죽었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에게 죽었을 것입니다. 죽을 일이 그렇게 많았어도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니 다윗이 무사했습니다. 할렐루야!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의 방패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도 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방패, 사람의 보호는 오래 가지 않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지켜 주면 든든해도 아버지 어머니의 보호는 영원하지 못합니다. 영원한 방패가 되지 못합니다. 세월이 지나면 아이는 자라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늙고 힘이 없어집니다.
이제까지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 "조심해라. 조심해라."하며 늘 조심시키고 보호했는데, 이제는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이 전화를 할 때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몸조심하세요."라고 합니다. 지난 구정 때에 제가 볼일이 있어서 며칠 간 서울에 있으면서 아이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하루는 두 아들과 함께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데, 길이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두 아들이 양 옆에서 저를 붙들면서 "아버지, 조심하세요. 조심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내가 벌써 이렇게 됐나∼'하는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학생 때 기숙사에서 공부하다가 이 노래를 듣고 재미가 있어서 써 놓고 한참 불렀던 노래입니다. 요즘에는 잊어먹고 살았는데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1부 예배 때에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 2부 예배를 드리기 전에 생각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생각이 났습니다.
'좌석버스 지나가고 입석뿐이라
타고 보니 서서 갈 팔자였는데
앉아 있던 여학생이 나를 보더니
아저씨 하면서 앉으라 하네
아- 내가 벌써 이렇게 됐나'
자기는 아직 청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학생이 "아저씨, 여기에 앉으세요."하며 자리를 양보하니, "오, 내가 이렇게 늙었나?"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금방 늙어서 보호를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호가 되시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전세낸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다윗의 하나님, 지용수의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가 천당에 갈 때까지 우리의 방패가 되시는 것을 믿고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3장 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무서워하지 않겠노라. 사람이 나를 어찌하리요?"
살다보면 "너, 죽인다."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 "죽여 봐!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는데 죽여 봐!" 하는 담대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아들의 피까지 뿌려주시고 우리를 위해 하늘에 천국의 집까지 준비하신 그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실까요?
오늘 본문 6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근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또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의 기쁨은 희열입니다.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시련 때문에 기뻐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실까요? 그리고 왜 기뻐하게 될까요?
우리가 시련을 당하면 힘들고 어렵지만, 그 시련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강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할렐루야!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에게 아무리 캄캄한 일이 다가와도 그 일은 하나님께서 결재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기가 막히는 일이 내게 닥쳐와도 하나님께서 결재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앞에 닥친 캄캄한 일만 보지 마시고 캄캄한 일을 결재하신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모두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저희 아들이 군에 가기 전에 한 달 동안 매일 아침에 아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깨워서 산을 오르게 했습니다. 쉬지 않고 올라갔다 내려오면 1시간 20분 정도 걸렸는데, 아들이 불평을 한없이 했습니다. 저도 그때 훈련대장 노릇하느라고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아빠, 제발 좀 그냥 두세요."
"야, 너 여름에 훈련소 가야 되는데 이렇게 훈련하지 않으면 안 돼."
"아빠, 술 먹고 놀다가 군에 간 아이들도 다 무사히 제대합디다. 그냥 좀 놓아 두세요."
"아니야, 훈련 받아야 돼."
"제발 좀 그냥 두세요!"
"안 된다."
강제로 일으켜서 훈련을 시켰습니다.
아들이 그 더운 7월에 입대를 해서 7월, 8월에 연병장을 뛰어다니며, 산을 기어야 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 같이 훈련을 받던 친구들은 기진맥진하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는데, 매일 높은 산을 오르내리며 훈련을 받았던 제 아들에게는 그것이 식은 죽 먹기였던 것입니다.
아들이 훈련소에서 편지를 보냈는데, 뭐라고 쓴 줄 아십니까?
'아버지, 고마운 아버지, 감사한 아버지, 선견지명이 있는 아버지…'
뭐 좋은 말은 다 쓴 것 같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 아이가 자기 엄마 편이었는데, 그때부터 제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시련, 훈련을 받을 때는 아빠가 싫었지만, 군에 가보고 아빠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나를 위해 그렇게 훈련시키셨구나.
여러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게 하는 것은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시험을 쳐야 농땡이 아이라도 공부를 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쳐야 벼락 공부라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아 실력이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험 때문에 학생들의 실력이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큰 바위에 금이 2g만 섞여 있어도 그 바위는 바위가 아니고 금광석입니다. 그 금광석이 귀하지만 순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순금이 되려면 어차피 금광석을 부수어야 합니다. 부순 후에는 불 속에 넣고 연단해야 순금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담배를 피우고,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고, 어떤 사람은 음란한 욕심이 있고, 어떤 사람은 명예욕이 있고, 시기, 질투가 있습니다.
금광석에 금이 있지만 바위도 있듯이,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받는 우리, 은혜가 있는 우리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 같이 섞여 있습니다. 마치 금광석과 같습니다.
이것을 그냥 두면 순금 같은 믿음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심으로 교만, 음란, 좋지 않은 습관을 다 깨뜨려 부수고 금 같은 믿음만 남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19편 71절에도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고난 당하기 전에는 좋지 않은 잡지를 보고, 지저분한 영화를 보다가도, 고난을 당하고 나면 성경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낚시를 즐기러 다니는 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부인 집사님이 주일에는 낚시를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려도 주일마다 낚시를 즐겼는데, 어느 주일날, 낚시를 하러 가다가 자동차가 몇 바퀴 뒹구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집사님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다리와 팔이 부러져서 깁스를 하고 있는 집사님의 모습이 꼭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 같았습니다.
그 후로 그 집사님이 주일에는 낚시를 하러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한 가정도 가정 예배를 모르고 살았는데, 온 식구들이 돌아가실 뻔한 자동차 사고를 당한 후부터는 가정 예배를 꼭 드린다고 합니다.
서울의 한 장로님은 헌금도 제대로 하지 않고 교만하여 목사님을 괴롭혔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이 깡패를 만나서 자동차도 빼앗기고 돈도 빼앗기고 실컷 두들겨 맞은 후로는 변해서 새사람이 되었답니다. 목사님을 잘 섬기고 감사헌금도 아주 많이 드린답니다.
시련은 좋지 않지만, 시련 때문에 우리가 정금같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욥에게 시련이 없었다면 욥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욥이 부자로 잘 먹고 잘 살다가 편안하게 죽었으면 누가 욥을 기억하겠습니까? 금광석으로 있다가 그냥 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시련을 통과해서 정금이 된 것입니다.
욥이 당한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욥기 7장 17절에서 19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너무 힘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는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고 고백했습니다.
'금광석 같은 내가 정금이 되리라.' 라고 했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떨어져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여러분이 지금 당하는 그 어려움을 모르실 줄 아십니까? 다 아십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깨닫고 정금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할렐루야!
욥이 그 시련, 그 어려움을 통과한 다음에는 새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전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어제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욥이 부자이고 다 좋았지만 아내가 악처라 아내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욥이 시험 들었을 때 그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시오." 하고는 집을 나가지 않았습니까? 그런 여자가 평소에 욥에게 잘 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내 때문에 마음 고생이 많은 욥을 보고 하나님께서 '아하, 내가 사랑하는 욥이 저 여자 때문에 고생을 하는구나. 안 되겠구나. 바꿔버려야 되겠다.' 하시고 욥에게 시험을 주셔서 그 여자를 떠나가게 하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정말 악처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불구자가 되거나 사업이 망해서 재산이 없어지면 떠나갑니다. 그런 여자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아닙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나쁜 여자입니다. 그런데 망하기 전에는 누가 그런 여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여자가 그런 나쁜 여자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일찍 내보내시고 마음씨 좋고 고운 새 여자를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 아내와 일곱 아들과 세 딸을 낳고 살았으니 욥이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
욥이 시련을 당한 때는 잠깐이었습니다. 그저 몇 달이었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따라합시다.
"잠깐"
하나님의 시험은 잠깐입니다. 잠시입니다.
그런데 욥이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고 살자면 몇 년이 걸렸겠습니까? 사 년 터울로 낳아도 사십 년입니다. 그러니까 욥의 행복에 비하면 욥의 시험은 정말 잠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시험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사랑하는 아들, 독자를 내게 바쳐라."
'아이구, 하나님을 믿다가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하다니. 내 아들 이삭을 내 손으로 죽여서 바치라고 하시다니….'
삼일 동안 초죽음이었습니다. 모리아 산으로 가면서 지옥의 맛을 봅니다.
'하나님을 믿는 내가 이런 일도 당하는구나.'
모리아 산에 도착하여 울면서 아들을 찔러 죽이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 됐다. 네가 네 아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줄을 이제 알았다. 내가 너에게 큰 복을 주리라. 네 자녀를 바다 모래처럼 많게 하리라. 천하만민이 네 씨로 복을 받으리라."
그 때 아브라함은 감사가, 기쁨이 폭발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 그렇지. 그럼, 그렇지." 하며 좋아서 산에서 춤을 추지 않았겠습니까?
3일의 시험이 30년, 영원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은 결국 우리를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련은 잠시잠깐 오지만, 결국 우리에게 영원한 큰 기쁨을 줍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무리 세찬 태풍이 불어도 며칠이면 끝납니다. 영원히 사는 삶에 비하면 몇 십 년도 잠깐입니다.
그리고 시련 때문에 내가 정금이 되면 나만 빛이 나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힘을 얻게 됩니다.
어느 집사님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맥이 빠져 파김치가 되어 있는 그 집사님에게 많은 사람이 찾아가서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의 위로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셋을 다 잃은 한 권사님이 그 집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집사님, 너무 그러지 말아요. 집사님은 한 아들이 남아 있잖아. 나는 세 아들이 다 죽었어도 이렇게 사는데, 힘을 내요."
그때 집사님이 힘을 얻었습니다. 위로를 받았습니다.
'두 아들 중에 한 아들만 죽고 한 아들이 살아 있잖아. 권사님은 세 아들이 다 죽었어도 저렇게 사시는데.'
한 분은 외동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귀한 아들을 잃어서 정신이 없었지만 기도를 하니, 감사가 나왔습니다.
"죄 짓고 망하다가 죽지 않고, 멸망할 아이로 죽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용서함을 받고 구원받은 아이로 죽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 집보다, 제 품보다 천 배 만 배로 좋은 천국 집에서, 주님 품에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아들이 없어서 우리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만 바라보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어느 때라도 감사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감사할 때 그 감사 때문에 많은 불행한 사람이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시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높으신 뜻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욥이 이런 시련을 통과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번 미국 집회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 분이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사를 가려고 배로 이삿짐을 다 부쳤답니다. 갖가지 귀한 것과 금그릇까지 다 부쳤는데 태풍이 불어와서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답니다. 그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자살하려고 했는데 욥기를 읽고 이렇게 살았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시련은 힘들지만 그 시련 때문에 나는 정금같이 되고, 많은 사람은 나 때문에 살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아주 행복합니다. 너무 기쁩니다. 그러나 어릴 때, 한 십 년 간은 시련이 아주 많았습니다. 새벽 2시가 되어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깜짝 놀라서 일어났습니다.
"아이구, 어떻게 하나?"
그래서 교회에 가서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는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근심을 거두어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현실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근심하지 말라.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셔서 그대로 믿었는데 문제도 또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추석이 되어도 송편도 즐기지 못하고 금식하며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련 때문에 제 믿음이 자라서 오늘 제가 양곡교회 목사로 일하는 것으로 믿어집니다.
그리고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여러분, 지금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5분 뒤에 죽는 사람에게 금궤를, 사과 궤짝 만한 금 덩어리를 주어 보십시오. "자, 이 금 덩어리를 당신에게 줍니다."라고 해 보십시오. 하나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5분 뒤에 죽는 사람에게는 금 궤짝 백 개를 주어도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정금은 금광석보다 귀하고, 세계 만인이 정금을 좋아하지만, 죽을 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살아서도 좋고, 죽을 때도 좋은 것은 믿음뿐입니다.
오늘 본문에,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큰 금 덩어리를 가슴에 품고 죽어도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죽으면 끝나지만, 믿음을 품고 세상을 떠나면 우리 주님의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중국 격언에 '초록색 나뭇가지를 품에 안으면 새들이 날아와 지저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푸른 나뭇가지를 안고 있으면 새들이 와서 깃들고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라빠진 앙상한 가지가 아니라, 정말 청청 푸른 믿음의 가지들을 안고 있으면, 은혜도, 축복도, 상금도, 상도 다 날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워너 메이커, 세계적인 백화점 왕 워너 메이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성공 비결이 무엇입니까?"
"예, 나는 주식 투자를 잘 했습니다."
"무슨 주식에 투자를 했습니까?"
"믿음의 주식을 샀습니다. 믿음의 주식을 사서 안고 있으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본문 5절에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방패는 믿지 않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에게 같이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만 가지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방패의 복을 받고, 천국에 가서도 존귀와 영광과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지금 시련을 당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직장을 찾아도 잘 안되고, 사업을 하려고 해도 잘 안되고, 팔려야 될 집은 팔리지 않고, 딸은 노처녀가 되었는데도 시집도 못 가서 어려움을 당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일로 고민하고 기도할 때 점점 정금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봄바람이 만물을 소성하게 하고, 여름의 뜨거운 바람이 만물을 성장하게 하고, 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오곡백과를 무르익게 하고, 겨울의 찬바람이 수십 미터가 되는 장대 같은 높은 나무의 가지 끝까지 수분을 밀어올려 줍니다. 바람이 항상 부는 것은 아니지만, 부는 것이 축복입니다.
우리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에도 때때로 시련의 바람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련이 있어도 하나님의 방패, 하나님의 보호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앞길 때문에 염려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방패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평안할 때도 도와 주시지만, 엄청난 시련을 당해도 도와 주시며 지켜 주십니다.
불이 나면 토끼, 산돼지, 사슴은 피해서 달려가는데, 꽃과 풀과 나무는 그냥 타 죽습니다. 피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불 같은 시련을 만나면 그대로 망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말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할렐루야!
그러니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 위에 있습니다. 언제나 방패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전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