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90113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210926 주일
희망(希望)과 소망(所望)이 어떻게 다른지 아시나요?
믿음과 사랑과 함께 그리스도교 사상의 3가지 덕목이 됩니다.
한국 그리스도교에서는 흔히 '소망(所望)'이란 표현을 씁니다.
희망(希望)은 유한한 인생살이에 국한된다고 봅니다
사람이 바라보는 희망(希望)은 그 효력이 대단합니다.
(희망 : 어떤 일을 이루거나 얻기를 바라는 것->성경에서 구약관련 22건)
인간은 끝없이 "영원한 희망"을 노래하지만
그러나 냉철하게 말하자면 그 희망은...
아무런 약속도 보증도 없는 그저 희망사항 일 뿐입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기독교에서는 희망이라는 말보다 소망(所望)이라는 말을 씁니다.
(소망 : 어떤 일을 바람, 그 바라는 것->성경에서 신구약 가리지 않고 85건 사용)
약속과 보증이 있는 희망이기에 희망이라 표현하지 않고 대개 "소망"이라는 말로 다르게 표현하게 됩니다.
모든 종교들은 한결같이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희망이지만..
기독교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희망이 아니라
만물 창조하신 절대자 하나님에게서 인간에게 와 진 것입니다.
진실한 약속과 참된 보증으로 내게 와 지는 것입니다.
->소망에 대한 이런 개념에 마음에 두고 오늘 말씀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2. 본문이야기 시편 39:1-13
39편은 다윗이 중한 병이 들어 연약해진 상태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연약한 자신에 대해 탄식하는 시로 다윗 시대에 찬양대 지휘자였던 여두둔으로 하여금 지휘하게 한 찬양입니다.
다윗이 병이 들어 심신이 매우 연약해지자 다윗의 적대자들은 은근히 좋아했습니다.
원수들은 병이 든 다윗을 비웃으며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병든 것도,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고 돌아다니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이라고 깨달았고, 따라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다윗은 병으로 인해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인생이란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뭔가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것이나 다름없구나. 내가 왕으로서 쌓아놓은 부귀와 영화, 이것들이 내 손에 있는 것 같지만 언제 내 손을 떠날는지 모르는 것들이구나.’
이렇게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오자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본문 7절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된 고백을 합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다윗은 소망을 하나님께 둡니다.
3. 그러면 다윗의 고백,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는 것일까요?
첫째로,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은
짧은 인생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4-5절을 보겠습니다.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다윗은 지금 자신의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여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병상에서 자신의 지난 삶이 불과 한 뼘 길이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뼘 길이 같은 인생이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없는 것과 같겠구나.’
다윗은 자신을 정확하게 직시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다윗은 악착같이 살아온 인생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표현들
①죽을 날을 모름(창 27 : 2), ②나그네 길(창 47:9), ③베틀의 북(욥 7 : 6), ④한 호흡(욥 7:7),
⑤쇠하는 꽃(욥 14:2 ; 시 103 : 15), ⑥머물지 않는 그림자(욥 14:2), ⑦꿈 같이 지나감(욥 20 : 8),
⑧손 넓 이 만한 날(시 39 : 5), ⑨, 잠깐 자는 잠(71 90 5), ⑩일식간( 시 90 : 9), ⑪소멸하는 연기(시 102 : 3),
⑫수에 칠 가치가 없음(사 2:27), ⑬조석 간에 명이 다함(사 38 : 12),
⑭마르는 풀(사 40 : 6-8), ⑮사라지는 안개(약 4 : 14)
다윗은 병이 들자 인생의 연약함을 통해서 영원을 사모하는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뼘에 불과한 짧은 인생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교훈한 것입니다.
ex)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신부 ( 1506~1552 )
포르투칼 국왕 요한3세의 명으로 인도, 말레이지아, 스리랑카, 일본 등 선교->동양선교의 선구자
일본어로 "예수의 길" 발간, 이후 중국에서의 전도를 위해 1551년 중국에 갔지만 입국하지 못하고, 이듬해 광둥 성 앞의 섬에서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그를 파송한 포르투칼 국왕 요한3세에게 남긴 유언.
"폐하께서는 어느날 하나님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끝날의 계산을 위하야 폐하게서는 더욱 양심적인 국왕이 되며 사람과 하나님앞에서 더욱 겸손한 왕이 되어 부끄러움이 없는 총결산의 시간을 맞이하시도록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 뼘도 안 되는 짧은 인생을 삽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우리의 한 뼘 인생이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은
헛된 일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 하반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5.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하며, 그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주변 국가들을 모두 제압하여 조공을 바치게 하는 등 천하를 호령하면서 굉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병들어서 뒤돌아보니 자신의 인생이 별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이란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무언가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것이나 다름없구나.’
다윗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직시하게 되었고, 실존적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성기를 맞이하면 자신의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죽은 후에도 사람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두고두고 자기의 업적을 인정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신기록도 깨어지고 명성이나 공로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사울이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다가 망했습니다(삼상 15:12).
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압살롬도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다 망했습니다(삼하 18:18).
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많은 사람들이 당대에 업적을 쌓고 후대에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가 문제를 일으키곤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지 말라.’ 이것이 성경이 주는 교훈입니다.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 로마황제 세베루스의 권력 무상
세베루스는 AD306년부터 307년까지 로마황제를 지냈던 인물.
그는 『내가 곧 세상』이라면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임종의 순간에 『나는 모든 것이지만,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라고 탄식하며 『화장후 내 유골이 담겨질 항아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신하가 항아리를 가져 오자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조그만 항아리여 너는, 이 세상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미약한 존재였던 한 사람의 뼈를 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잠시 있다가 사라질 세상의 헛된 명예와 권력, 재물과 세상의 영광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은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보겠습니다.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그림자는 생명도 없고 실체도 없는, 곧 사라져 버릴 허무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라는 말은 금방 사라질 그림자 같은 존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땀 흘리며 수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쌓아 놓지만 그것을 누가 거둘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 재물을 쌓아 놓으면 누가 그것을 누리게 될까요?
우리의 희망은 우리 자신이 다 누리고 가는 것이고, 그 다음 자식이나 가족이 누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사람이 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며 죽기 살기로 재물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물이 불필요하다는 것도 아니고, 재물을 쌓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재물이 우상이 될 정도로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생의 우선 순위를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모으는 일에 마음을 빼앗겨선 안 되며, 재물을 영원히 내 것인 것처럼 착각해도 안 됩니다.
재물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재물은 주인이 없습니다.
이후에 누가 취할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재물입니다.
ex)사우디아라비아의 억만장자 무기거래상인 카쇼기
[지난 2002년 충남도청이 안면도 땅을 아랍계 무기거래상인 카쇼기에게 매각하려 한다는 소문이 번진 적이 있습니다.
카쇼기는 가능한 한 꽃지해수욕장 주변과 병술만을 둘러싼 땅을 통째로 사들이겠다는 속셈을 내비치고. 점용수면의 독점사용권까지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명박정권에서는 한반도대운하 및 새만금 개발사업에 대한 투자유치를 시도했었다고 합니다.
"캬쇼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돈벌이의 천재라고 합니다.
재산 40억 달러, 자가용 제트 여객기 3대, 하루 용돈 28만 달러(약 2억 원)하면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부족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딸을 "아라비아의 망나니"라는 별명을 가졌던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와 결혼시켰습니다.
사정을 알고 보니 이 결혼이 성사되기 전에 리비아는 캬쇼기에게 하루 10만 배럴의 석유를 배럴당 시가보다 3달러 싼값으로 파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간단히 계산해도 하루 30만 달러(약 2억 1천만 원) 이익을 캬소기는 보는 셈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캬쇼기는 하루에 2억 1천만 원씩 받고 딸을 카다피에게 팔았다는 얘기도 됩니다.
정작 그 딸은 카다피를 만난 일도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카쇼기는 1986년 미국이 인질구출을 위해 비밀리에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이란-콘트라 사건을 비롯해 20세기 주요 무기 스캔들에 연루되어 1987년 미국내 지주회사가 파산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빈털터리가 되었다.
재물은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영원히 내 것이 아니며, 천국에도 가지고 갈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제 재물에 내 마음을 빼앗기기를 원치 않습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여,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고백을 통해 내 인생의 현주소를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인생의 길이를 한 뼘 길이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지는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며 우리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소망해야 합니다.
다윗은 주님이 유일한 소망이 되심을 고백했습니다.
삶의 기초와 우선순위와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이렇게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다윗처럼 인간 중심의 사고를 하나님 중심으로 전환하고 안목을 바꾸어 인생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고,
변함없는 영원한 소망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